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380화


817화

예를 표한 코넬리온 자작이 돌아섰다. 그를 따라 움직이던 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멋진 기사로군요. 내공도 제대로 갈무리한 것이 실력도 좋아 보입니다.”

“코넬리온 백작가의 장남이에요. 장래가 기대되는 기사죠.”

“확실히 그래 보이네요. 그리고 그 기사가 황녀님께 관심이 매우 많은 것 같은데요.”

“호호호, 원래 제가 인기가 많답니다.”

이드의 말에 황녀가 달아오른 열기를 손으로 식히며 웃었다. 옆에 있던 이드도 황녀를 향한 열정 가득한 눈빛을 보았는데, 황녀가 보지 못했을 리가 없나. 하지만 재능 넘치는 기사가 황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전엔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 조금 놀랐어요.”

“골키퍼가 사라진 걸 알아 버린 모양이네요. 아, 골키퍼는…………….”

“대충 알겠어요. 게일 경 같은 입장을 말씀하시는 거죠?”

설명 없이도 대화의 맥락으로 모르는 단어의 뜻을 알아차리는 모습에 이드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역시 똑똑하십니다.”

“칭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그것보다 코넬리온 자작이 갑자기 저러는 것도 결국 단장님 때문이라는 거네요. 이번엔 온전히 실전에 신경을 쏟고 싶었는데,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정확히 따지면 게일의 탓이겠지만, 어차피 장난임을 아는 이드는 장난으로 받아 주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제가 모든 기사들에게 황녀께 고백하려거든 저부터 쓰러트려야 한다고 선포하도록 하죠.”

“아앗! 그건 아니죠. 지금 누구 혼삿길을 막으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하하, 결혼은 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당연하죠. 저도 끝까지 검후님을 믿고 사랑하고 후원해 준 혼 후작님처럼 멋진 분을 만나 결혼할 거예요.”

멋진 분이라. 셰인 혼의 능글맞은 첫인상을 기억하는 이드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바람둥이가 제대로 임자를 만나 공처가로 사는 것과 같은 모습이려나?

이드와 황녀는 그 후 황녀의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넬 기사단의 숙소로 돌아왔다.

[이드, 어서 와요.]

“회의는 잘 끝났어요?”

황녀와 헤어져 방으로 돌아온 이드를 라미아와 일리나가 반겼다.

“정신의 관 위치를 밝히는 자리라 별거 없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 다 날 기다린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있어요. 검은돌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에단에게서도 오고.]

“양쪽에서 같이? 어떻게 동시에?”

따로 떨어진 양측에서 동시에 연락이 오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드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곳에서 둘로 갈라졌을 텐데.

[이번 일 때문에 서로 연락을 했대요. 검은돌을 통해서요.]

“검은돌이 가진 정보망도 보통이 아니네.”

이드는 허리에 걸어 둔 검을 탁자에 올려 두고는 의자에 앉았다.

일리나가 내민 컵에 담긴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이드가 마주 앉은 라미아를 보았다.

“그래서 양쪽 다 무슨 일로 연락한 거래?”

[우선 검은돌의 스톤 씨는 추적하던 초인들의 목적지가 나온 것 같다고 연락했어요. 재밌게도 우리 목적지하고 겹치더라고요.]

“우리 목적지면, 정신의 관?”

[거길 지나칠 게 아니라면요. 그런데 그럴 것 같지는 않잖아요?]

확실히 거쳐 가는 길은 아닌 것 같다.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공감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지원인가?”

“단정하긴 힘들다고 생각해요. 토벌대에도 많이 참가하고 있으니까요. 초인파 측에서 공격과 방어에 동시에 나서는 건 이상하잖아요.”

소리 없이 이드의 빈 잔을 채우던 일리나가 말했다. 과연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정말 지원을 위해 나선 것이라면 같은 편끼리 죽고 죽이겠다는 것인데,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지원이 아닐 수도 있겠네. 어부지리를 노리는 건가?”

[뭐가 목적인지 모르지만 그쪽일 가능성이 높죠. 스톤 씨도 아직 정신의 관에 합류한 것이 아니라서 확신할 수 없으니 변화가 생기는 대로 연락하겠대요.]

이쪽에서 요구하기 전에 나서는 일처리가 깔끔하다. 과연 비싼 값을 한다.

“일단 그쪽은 다음 연락을 기다리고, 에단은 무슨 일인데? 거긴 이쪽 방향하고 겹칠 것도 없었잖아.”

애초에 북서쪽을 향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남서쪽에 자리한 정신의 관과 관련이 있으려면 공간 이동을 하거나 와이번 항공권이라도 구해서 날아와야 할 거다.

[그런 일은 아니고, 비올라 때문에요.]

“비올라가 왜? 연구거리도 옆에 있고, 뭐가 불만인데?”

짐작 가는 일이 없던 이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전 귀한 재료를 받아들고는 얼마나 극진히 고개를 숙이던가. 그 모습을 봐서는 오랫동안 불평불만 한마디 없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바로 그 연구거리가 문제라고요. 당장 이쪽으로 오겠다고 난리에요.]

“그러니까 왜? 거기서도 충분히 열구할 수 있잖아. 오히려 여기는 보는 사람이 많아서 연구는 더 못하잖아.”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드의 반응에 라미아가 답답하다며 가슴을 쳤다.

[뭐긴 뭐겠어요? 정신의 관에 있는 바이트 타블렛 때문이죠.]

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싶어서. 좀 더 새로운 마법을 자세히 알고 싶어서. 탑주와 부관주가 숨기고 있는 마법에 접근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국에는 그 마법을 손에 쥐기 위해서.

지극히 마법사다운 그 목적을 위해서 생명의 관을 배신하고 이드에게 붙은 비올라가 아니던가.

그 목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바이트 타블렛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으니, 몸이 달았을 것이다. 직접 움직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바이트 타블렛을 보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이드의 눈은 미지근했다.

“그거 어차피 지금 손에 넣어 봤자 제대로 분석도 못 하잖아. 생명의 관에서 가져온 바이트 타블렛도 아직 완벽히 분석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욕심만 많은 거 아냐?”

마침 여러 가지 급한 일 때문에 억지로 연구를 끝낸 기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드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비올라로서는 제대로 손댈 수 없는 바이트 타블렛을 연구하기 위해 라미아가 정리한 자료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리나는 그렇기 때문에 비올라가 더 애타게 또 다른 바이트 타블렛을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바이트 타블렛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의 관에서 얻은 바이트 타블렛에서 얻지 못한 것을, 정신의 관에 있는 바이트 타블렛에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드도 이해는 갔다. 무형검강결에서 난화십이식의 해법을 찾은 것처럼, 여기저기 찌르다 보면 찌를 만한 곳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꼭 여길 와야겠다?”

[그런 거죠.]

“왜 하필 이 사람 많은 자리에? 그냥 확보한 후에 천천히 살펴도 되는 거잖아.”

[바이트 타블렛 때문에 원래 있던 마탑도 배신했는데, 그런 말이 먹히겠어요? 거기다 비올라 주장으로는 바이트 타블렛이 정신의 관에 설치된 모습을 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네요. 뭐,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요.]

어쩐 일로 라미아가 비올라의 편을 들어준다.

이드는 라미아까지 그렇게 나오자 살짝 고민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괜히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혹시라도 그가 생명의 관 소속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하지만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욕심으로 미완의 마탑을 배신한 만큼 그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세세한 부분을 협의하지 못했지만, 비올라가 협조하는 조건으로 들어준 것도 있고 말이다.

“일리나 생각은 어때요?”

“큰 문제가 없다면 허락하는 쪽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저쪽에 있다고 해도 제대로 역할을 해 줄지 모르잖아요.’

“과연, 파업해 버리면 소용없겠네요. 비올라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좋아, 오라고 하자.”

이드는 에단 앞에 누워 아이처럼 생떼를 쓸 비올라의 모습을 상상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대신 여기 와서는 철저하게 우리 말에 따라야 한다고 조건을 다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요. 그럼 가서 데려올게요.]

라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가려고?”

[당연하죠. 아직 비올라 실력으로 공간 이동은 무리죠.]

이전 이드와 라미아의 공간 이동에 군침을 뚝뚝 흘리던 비올라였지만, 아직 한참 연구 중일 뿐 직접 공간 이동을 시도할 결과는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 네 수고료와 재료비도 비올라 앞으로 달아 놔.”

“이드, 그건 심했어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차후에 이번처럼 억지를 부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때를 대비해야죠. 라미아도 가서 확실히 답을 듣고 데려와야 해요.” 이드의 당부에 라미아가 큭큭거리며 알았다고 하고는 방을 나섰다.

공간 마법에는 상당한 마나의 이동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둔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호기심 많은 인간들이 한가득 몰려들 테니까.

라미아가 나간 후 이드는 아이넬 기사단 안에서 비올라를 어떤 위치에 두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일리나는 그 옆에서 이드와 자신의 검을 손질했다.

“그런데 황녀와 아이넬 기사단의 훈련은 언제까지 계속할 거예요?”

“당연히 도착할 때 까지 해야죠. 틈틈이 쉬지 않고 해도 아직 한참 모자란 훈련량이니까요.”

어서 빨리 훈련이 끝나고 자신의 기사단에 방문해 주기를 기다리는 코넬리온 자작이 들었다면 배신감에 검을 들고 달려들 만한 말을 태연하게 하는 이드였다.

“그보다 일리나는 어때요? 기사단을 지휘하는 일은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아직 많이 서툴러요.”

“그 정도면 됐어요. 스폴 경이 있으니까 어려운 건 없을 거예요.”

기사단 안에서 일리나의 진짜 역할은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과 강적이 출현했을 경우 그의 상대이니까. 지휘까지 능숙할 필요는 없다.

이드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리나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매번 하는 말이라서 식상할 수 있지만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일리나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정말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거예요.”

“힘든 일을 함께하는 건 당신의 반쪽으로서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이드의 고맙다는 말은 전혀 식상하지 않아요. 내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에요.”

“고마워요. 혹시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요.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무조건이라는 말처럼 함부로 뱉어서 피를 볼 말이 없지만 이드는 거침이 없었다. 아름답고, 마음 착한 이 엘프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드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일리나가 말했다.

“그럼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어요. 앞으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고맙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 주면 좋겠어요.”

“하하하, 그 정도야・・・・・・ 그런데 라미아에게도 해야 되는 거죠?”

이드는 얼굴에 열기가 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일리나에게만 사랑한다고 말했다가는 라미아의 후환이 두렵다.

일리나는 그런 이드의 모습에 큰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숙여 이드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날.

이드는 아이넬 기사단과 황녀 앞에서 새롭게 기사단에 추가된 비올라를 소개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