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83화
820화
감시병 한둘 죽었다고 사람을 불러 모으지는 않았을 터.
“혹시 감시자가 전부……?”
“그렇소. 모두 죽었소.”
록마틴 후작의 긍정에 질문을 던진 남자가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쯧, 발각됐나 보군요.”
“아깝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전쟁을 치르다 보면 비일비재한 일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별거 아닌 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막사에 모인 대부분의 생각이기도 했다. 죽어 버린 감시자야 아깝지만, 누군가의 말대로 늘 있는 일이니까.
그건 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드는 감시조의 죽음보다는 정신의 관에서 그들을 일소하며 보인 전투 의지에 신경이 쓰였다.
‘예상대로 도망가지 않을 모양이네. 아니다. 도망가지 못하는 건가? 역시 바이트 타블렛 때문이겠지.’
물론 적의 함정일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도 있지만, 정말 함정이라면 오히려 감시조를 죽이지 않고 두었을 것이기 때문에 정신의 관의 전투 의지는 확실하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전쟁을 준비할 때 아군의 전략 전술의 노출을 막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 아군의 작전이나 계획이 적에게 알려져서야, 싸우기 전에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정신의 관 마법사들이 토벌대와 싸우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가장 먼저 자신들을 감시하는 감시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수순에 비해서 록마틴 후작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용기사와 함께 자주 싸움에 나서는 그라면 익숙한 일일 텐데 말이다.
‘뭐가 있나?’
토벌대 안에서 눈치 볼 사람이 없는 이드는 떠오른 의문을 속에 담아 두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후작님의 얼굴이 좋지 않으신데, 혹시 감시자 말고 다른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있습니다. 연락이 끊어진 것에 대한 확인을 겸해서 추가로 보낸 기사급 감시자들의 연락도 마찬가지로 끊어져서 그렇습니다.
“어허, 심각하게 말씀하셔서 놀랐습니다. 결국 같은 일이 아닙니까.”
이드의 질문에 긴장하고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곧 별거 아닌 듯 웃어넘겼다.
그러나 몇몇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그들처럼 웃지 못했다. 그것은 이드도 마찬가지였다.
록마틴 후작의 말 속에 든 기사급 감시자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기사급이란 단순히 기사를 감시자로 썼다는 말이 아니라, 감시자가 기사급의 실력까지 갖춘 감시계의 전문가들임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기사급이라면 무인은 물론 초인도 포함된 것이겠습니다?”
이드가 확인차 물었다.
“그렇습니다. 최소 검기를 뿜을 수 있는 기사 수준의 실력자들입니다. 그리고 일정 거리를 두고 마법사들도 배치했지만, 그들 역시도 실종된 상태입니다.”
“철저하군요. 실력 좋은 감시자를 잃은 것도 아깝고.”
“끄으응.”
이드의 말에 록마틴 후작이 앓는 소리를 냈다.
누구보다 수준급 감시자의 희소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준급 감시자는 좋은 기사 이상으로 만들어 내기 힘든 존재였다.
완벽한 이론과 체계적인 수련법을 통해 만들어진 기사와 달리, 감시자는 그 역할의 특성상 수많은 실전을 겪으며 살아남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뛰어난 스파이면서 동시에 실력 좋은 저격수 같은 자다. 단순히 기계적인 훈련이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과 같은 촉을 가진 자들.
정말 아까운 인재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감시자들까지 잡아 낼 정도로 철저하게 주변을 정리한다는 것은 토벌대에 대한 대비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 되겠군요.”
그렇다면 록마틴 후작이 사람들을 불러 모을 만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 속에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한 남자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럼 놈들이 우리가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출정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말이 아닙니까? 저희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순간 이드는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정신의 관이 토벌대의 목표를 지금에서야 알았다니?
그러자 여기저기서 어이없는 웃음이 샜다. 하지만 모두 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새끼가! 토벌대가 출발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야, 헛소리는!”
빠악!
“끄어억!”
볼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성난 얼굴로 말을 꺼낸 남자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찼다.
“기사단까지 몰고 나왔으면 제발 공부 좀 해라. 어전 회의에서도 그러더니 또 그러느냐? 이 그레센 대륙에서 우리 토벌대가 출정했다는 걸 모르는 것은 귀머거리나 갓난아기뿐일 텐데. 설마 정신의 관에 있는 놈들이 지들이 목표였다는 것을 몰랐을 것 같아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해?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전투가 코앞이다, 응?!”
한바탕 열을 낸 남자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 가슴을 쳤다. 하지만 성질 급해 보이는 남자도 이드와 황녀, 록마틴 후작이 보는 앞이라 차마 더 하지는 못하고 주먹만 부들거렸다.
정강이를 감싸고 있던 남자는 그제야 사태를 이해하고는 조용히 사람들 틈에 섞여 한쪽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기사단장 말대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데. 이 일을 어쩌나?’
남자는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이미 그를 잊은 사람들은 진중하게 회의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적의 준비가 철저하다면 이쪽도 그에 맞춰야 했다. 적의 방패가 단단한 만큼 이쪽도 방패를 뚫을 수 있는 날카로운 창이 필요했다.
아군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괜히 적의 함정에 맨발로 달려들어 의미 없는 피해를 입는 일은 피해야 했다. 숲의 공포이자 최상위 포식자인 오우거도 오크를 코너로 몰았다고 방심하다가는 도끼에 대가리가 깨지는 것처럼 세상일에 절대는 없다. 전투에 방심은 숫자의 힘을 충분히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또 전력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아군의 방심을 경계해야 할 때라는 것을 록마틴 후작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일단 토벌대가 치털링 영지에서 재정비를 한 후 전방위 압박으로……”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이동 속도를 높여서 놈들이 완벽하게 대비하기 전에 쳐야 합니다.”
“그것도 좋지만 시간이 모자랍니다. 우리보다는 정신의 관에 가까운 치털링의 병력을 움직이는 것이・・・・・・”
사람들이 제각각 의견을 내어 놓기 시작했다.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비슷한 것이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 제각각 충분히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차분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은 록마틴 후작이 이드와 황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러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과연, 황녀 전하와 명예 후작님의 고견을 듣지 않을 수 없지요.”
이드는 사람들이 말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자 황녀에게 먼저 발언하도록 했다.
“저는 모든 분들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를 고를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계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론 자작의 말씀처럼 토벌대의 속도도 높여야 하고, 투페이터 백작의 말씀처럼 전투 전에 체력을 회복시키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재정비도 필요하며, 베리건 자작의 말씀처럼 적이 대비할 시간을 빼앗기 위해 치털링으로 하여금 먼저 움직이게 할 필요도 있겠지요.”
황녀가 사람들의 이름을 들며 그들의 의견을 한데 모았다.
“하하하, 황녀 전하의 고견이 옳습니다.”
“암요. 황녀 전하의 지혜야말로 현자의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이 꺼내 놓은 의견을 그냥 넘기지 않고 언급하는 황녀의 태도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드는 황녀를 향해 폭풍 칭찬을 쏟아 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저것이 바로 황제가 원하던 장면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구나, 황제의 목적은 기사들의 지지였으니, 이건 보너스이려나?’
그냥 두었다가는 이대로 파티까지 달릴 것 같다. 록마틴 후작이 나서 분위기를 안정시키고는 이드를 보며 물었다.
“황녀 전하의 고견을 들었으니, 이제 명예 후작의 의견을 들어 보도록 합시다.”
록마틴 후작의 말에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그때까지 한발 물러선 태도이던 모이엔까지 그렇지 않은 척하며 눈을 번뜩였다.
이드는 수백의 적을 앞에 둔 것과는 다르지만, 묘하게 비슷한 시선에 헛기침했다.
“큼, 황녀 전하께서 중요한 말씀은 이미 모두 하셨으니 제가 따로 더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저들에게 당해 잃어버린 감시조를 다시 보내는 일입니다. 이대로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서 싸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매우 옳은 의견이오. 나도 명예 후작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라오.”
이드의 대답에 록마틴 후작이 매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토벌대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가장 빨리 처리해야 할일을 말해서 그런 듯했다.
“한데 기사급 감시자도 당한 마당에, 다시 보낸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록마틴 후작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것이라면 다른 사람보다 록마틴 후작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소득 없는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을 수도 없는 일이오. 마음 같아서는 적당한 인원이 감시조를 대신해 준다면 좋겠지만…….”
록마틴 후작은 말과 함께 감시조로 파견되어도 적의 손에 당하지 않을 ‘적당한’ 기사단의 주인들을 바라보았지만, 모두 그의 눈을 피하기만 했다. 위험도 위험이지만, 괜히 본 게임 전에 힘을 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 좋은 일 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본심이었다.
록마틴 후작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실망스러운 한편 아쉬웠다.
에잉.’ ‘누구하나 솔선수범하여 나서는 자가 없다니. 제국의 기사도가 언제 이렇게 각박해진 것인지…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프랑 기사단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와이번을 타는 용기사는 너무 눈에 띄었다. 갈 곳 없이 허공을 헤매던 록마틴 후작과 이드의 눈이 마주쳤다.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이드에 이번엔 록마틴 후작이 먼저 눈을 돌렸다. 황녀의 호위를 맡은 아이넬 기사단을 감시조로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가겠다면 말려야 할 판이다. 황녀가 기사단에 끼어 갈지 모르니까.
“제가 정신의 관 감시 임무를 맡고 싶습니다.”
“젠장, 불길한 예감은 꼭・・・・・・”
“네?”
“크흠! 아니, 다른 생각을 하던 중이라 말이 헛나갔네.”
“그렇군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지만 이드는 가볍게 넘기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명예 후작이 감시 임무를 맡겠단 말이오?”
“예. 아무래도 일반 감시자들을 써서는 피해만 늘어날 테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죠.”
“그 조치가 명예 후작일 것이고. 하지만 명예 후작에겐 황녀 전하의 호위라는 중요한 임무가 있지 않소?”
이드는 록마틴 후작이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것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야 아이넬 기사단의 임무지요. 제가 나서는 것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질 때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 아내를 황녀 전하 곁에 남겨 둘 것입니다.”
“잠깐만, 잠깐만, 지금 뭔가 묘하게 어긋나는 듯한데. 설마 아이넬 기사단은 두고 명예 후작만 움직이겠다는 말씀이오?”
“당연하지 않습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전장보다 위험한 곳에 황녀 전하를 모셔 갈 턱이 없지요.”
“허허…… 이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