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84화
821화
이드는 고민하는 록마틴 후작의 모습에 빙그레 웃었다.
‘고민하는 척하기는 어차피 허락할 거면서.’
나름 고민은 있겠지만, 저 고민하는 얼굴 뒤에서는 냉정히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을 것이고, 계산이 끝나면 허락할 것이다.
자신이 감시조에 합류하면 감시조의 피해도 줄고, 추가 정보를 획득할 가능성도 올라간다.
황녀의 곁에는 아이넬 기사단과 일리나가 있고, 토벌대가 보호하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정신의 관에서 나온 적들과 이드가 싸우게 될 경우인데.
‘명예 후작의 실력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탈출할 수 있겠지. 오히려 저들이 가진 진짜 카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고.’
생각을 마친 록마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명예 후작이 감시조를 맡아 주시오.”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드는 괜한 공명심에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뜻을 록마틴 후작 등에게 확실히 전했다. 혹시나 쓸데없이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인간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나설 사람은 아무리 막아도 나서게 되어 있는 법.
“명예 후작께서 직접 행차하시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저희 기사단에서 감시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사를 파견하겠습니다.”
아까부터 탐색하듯 이드를 살피고 있던 모이엔이 말했다.
“음, 그 일에 관해서는 명예 후작이 결정하시오. 지금부터 감시조에 대한 권한은 명예 후작에게 있으니까.”
파견하는 것까지는 록마틴 후작의 권한이지만, 이후는 온전히 이드를 믿고 전부 맡긴다는 뜻이다. 이드에게 믿음과 함께 최대한의 권한을 준 것. 이드는 록마틴 후작의 배려에 가볍게 예를 표하고는 모이엔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이드를 돕겠다는 듯 세상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점처럼 찍어 놓은 그의 눈동자는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번들거렸다.
도대체 저런 눈의 뭘 보고 믿으라고?
“모이엔 단장님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시나 정찰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은 기사가 함께하는 건 감시조 전체를 위험하게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청색 기사단의 기사를 데려간다면 아이넬 기사단 기사들이 크게 서운해할 것입니다.”
“허허허, 옳소, 옳아. 기사들이 또 그런 면에서는 속이 좁지요.”
“록마틴 후작님, 그건 속이 좁은 것이 아니라 자존심 문제입니다. 자신들의 단장이 타 기사단의 기사를 쓰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어디겠습니까.”
록마틴 후작의 말에 볼에 상처가 있는 남자가 기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모두 기사 수업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그의 말에 쉽게 공감이 갔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모이엔도 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말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군요. 어떻게든 돕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아쉬울 것 같았으면 록마틴 후작이 말할 때 나서지, 이제 와서 아쉽다면 그 말을 어떻게 믿나.
하지만 아쉽다는 말은 진심인 것 같다. 이드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모이엔의 눈을 외면하고는 감시조의 일정에 대해서 확인했다.
“감시조의 출발은 언제입니까?”
감시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서두르는 것이 좋다. 겨우 달려갔는데, 저쪽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내일 오후에 출발하면 되겠네.”
오늘 당장 달려 나가라고 할 줄 알았던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록마틴 후작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 테니까.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소이다.”
록마틴 후작은 사람들을 돌려보내며, 황녀와 이드에게 따로 말했다.
“명예 후작에게는 내일 소개하겠지만, 가장 실력이 뛰어난 감시조를 편성해 두도록 할 테니, 부디 잘 부탁하겠네. 그리고 명예 후작이 없는 동안 아이넬 기사단의 위치를 토벌대 중앙으로 바꾸도록 하겠네. 그동안 황녀 전하께서도 기사단 방문를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요. 기사단 방문은 계속하겠어요. 토벌대 안에서 위험은 없을 테니까요. 소검후님도 함께해 주시고 있고요.”
과연 토벌대를 믿을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아직 적의 본거지와 거리가 멀어 공격받은 일도 없고.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다만, 상황이 바뀐다면 제 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록마틴 후작님은 토벌대의 최고 지휘관이시니까요.”
황녀는 록마틴 후작의 지휘권을 존중했다.
이드와 황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자 쉴라가 두 사람 옆으로 다가왔다.
“설마 이드 님께서 감시조에 자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 당혹스러웠어요.”
이드는 쉴라의 말투에 담긴 은근한 원망에 머쓱하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하, 미안해요. 하지만 감시조 일은 저도 듣고 나서 알았으니까요.”
“알죠. 그런데 이드 님이 직접 감시조로 나서실 필요가 있으셨나요?”
이드의 정체를 아는 쉴라의 입장에서는 이드의 감시조 활동이 전력의 낭비를 넘어서는 최악의 비효율로 느껴질 만했다.
하지만 이드도 생각 없이 감시조에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드는 끼리끼리 모여 웃고 떠들며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쉴라 경이 보기엔 어떤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전쟁이 아니라 소풍을 나온 것 같지 않아요? 쉴라 경도 저와 함께 직접 생명의 관에 가 봤으니 느꼈겠지만, 미완의 마탑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죠. 이대로 가면 상상 이상의 피해가 생길 겁니다.”
“…….”
쉴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부관주를 제외한 생명의 관의 전력은 크게 대단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느낀 것에는 이드가 던져 넣은 네이팜의 공이 컸다. 가장 성가셨을 마법사 전력을 입구에서 대부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또 비올라의 협력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쉴라가 직접 검을 뽑아 들고 나섰던 몇 번의 전투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
다만 그런 중에도 생명의 관. 그 끝에서 만났던 생명의 관의 부관주.
그의 마법은 지금 생각해도 그녀가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솔직하게 감당 불가다. 은색 기사단의 전력을 가지고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지.’
이드는 대답이 없는 쉴라의 모습에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의 관은 예전에 우리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고 당했지만, 정신의 관은 다르죠. 철저히 준비했고 생명의 관의 부관주와 같은 강자가 최소 둘 이상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소드 팰러스와 초인파 양측이 후원하던 곳인 만큼, 그런 정신의 관과 싸워서 소드 팰러스와 초인파가 피해를 입는 것은 자업자득으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기사들은 아니죠. 저들은 긴장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과 명예 후작님이 감시조에 자원한 것이 무슨 상관인가요?”
“증인이 되려고요. 정신의 관에 어마어마한 전력이 모였고, 굉장히 위험한 곳이라고 경고해야죠. 그게 감시조의 역할이니까요.”
“단순히 그 때문이라면 꼭 이드 님이 나서지 않아도 될 텐데요.”
언질을 해 주었다면 자신이 나섰을 거라는 투로 쉴라가 말했다.
“고맙지만, 쉴라 경보다는 내가 나아요. 아무래도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아니겠어요.”
거기에 이미 결정 난 일을 바꿀 수도 없다.
“휴~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저 혼자 편하게 있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부디 조심하세요. 정신의 관에 이드 님을 해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변수는 항상 있으니까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쉴라 경도 중요한 일이 있잖아요. 청색 기사단과 초인파, 그리고 게일 경까지. 잘 살펴 줘요.”
뒤에 가서 목소리를 낮춘 이드의 말에 쉴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테니 믿어 주세요.”
이드는 믿음직한 쉴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떨어졌다.
여유가 철철 넘치는 토벌대에서 은밀하게 가장 바쁜 사람이 그녀였으니, 오래 잡고 있기도 미안했다.
“검후님이 돌아오시면 은색 기사단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꼭 말씀드려야겠어요.”
이드는 조용한 황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넬 기사단의 막사로 향했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아이넬 기사단의 막사였지만, 록마틴 후작의 소집으로 오늘은 한산했다.
그런 막사를 향해 다가가는 이드의 눈에 아이넬 기사단의 막사를 떠나는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사무엘 백작?”
이드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이드의 기감이 잠수함의 소나처럼 뻗어 나가 멀어지는 남성의 내력을 순식간에 읽어냈다.
그가 사무엘 백작 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인간이 무슨 일로?”
“아는 사람인가요?”
“황녀 전하께서 멀리해야 할 부류 중 하나입니다.”
간단하게 대답한 이드가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넬 기사단의 막사는 크게 다섯 개로 분류되어 있었다.
우선 가장 중요하고 가장 화려한 황녀의 막사. 그리고 이드와 라미아들이 사용하는 막사. 마지막으로 아직 잠자리를 함께하기에는 불편한 아이넬 기사단의 세 개조가 사용하는 막사다.
이드는 그 중 사무엘 백작이 나간 것으로 짐작되는 자신의 막사로 들어섰다.
막사 안에는 일리나와 스폴, 이그렌이 쉬고 있다가 이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반겼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오다 보니까 사무엘 백작이 다녀간 것 같던데?”
“보셨군요.”
이그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널 보려고 온 거야? 무슨 일로?”
생각해 보니 의미 없는 질문이다. 사무엘 백작이 아이넬 기사단에서 만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거기다 이드를 포함해서 토벌대의 인사들이 모두 록마틴 후작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시점에서 말이다.
“어이없는 말만 하고 갔습니다. 단장님께 일리나스 기사단에도 황녀 전하께서 방문할 수 있도록 부탁드려 달라고 하더군요.”
“흥!”
순간 다시 들어도 기가 찬다는 듯 스폴이 찬바람 쌩쌩 부는 비웃음을 흘렸다.
이드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진심으로 그런 부탁을 한 건 아니겠지? 당장 제국의 기사단도 다 돌아보기 힘들 것 같은데, 타국의 기사단을 방문할 여유가 어디 있다고? 거기다 아무리 같은 토벌대라도 타국의 기사들이 황녀를 둘러싸게 둘 수는 없는 일이잖아.”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진담인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아버지 일로 저와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한 짓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그렌이 자신의 잘못인 양 고개를 숙였다.
“아니, 네가 죄송할 건 없지. 그 작자가 미친 거지.”
이드는 쯧쯧 혀를 차고는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사무엘 백작, 확실히 처리할 거지?”
“네. 이번 일도 그렇고・・・・・・ 시간이 갈수록 결심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좋아.”
그 말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의 눈에 한쪽에 놓여 있는 부서진 파츠아머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