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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93화


830화

사삭. 사사삭.

알단테와 감시조는 풀잎을 밟는 소리까지 조심하며 움직였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동한 덕분에 삼십 분이 지났지만 이제 겨우 경로의 절반을 넘고 있었다.

하지만 감시조 중 그 누구의 얼굴에도 조급한 기색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이 목을 조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유 없이 조심하는 것도 아니었다. 합류를 약속한 치털링 감시조의 소식이 끊어진 상황은 확실히 이상했다.

찾지 못했다고, 흔적이 없다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더욱 두려워하며 눈을 빛내야 한다. 기사가 두려움을 이기고 버려야 하는 직업이라면 감시자는 두려움과 손잡고 그 속에서 눈뜰 정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도저히 손잡을 수 없는 두려움도 있는 법.

“저, 저…….”

“무슨 일이야?”

주변을 살피던 감시자 하나가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서는 말을 더듬자, 가장 가까이 있던 자가 같은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봤다. 우거져 어두운 나무 그림자 사이에 부유하고 있는 무언가. 똑바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데 초점이 어긋나면 뿌옇게 보이고, 뻣뻣하게 굳은 괴이한 자세로 천천히 날아오고 있는 그것.

“유…… 유…… 령?”

그래. 훌륭한 유령이시다.

때마침 그 말을 인증하듯 유령이 귀곡성 같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입을 뻐끔거리기까지 했다.

즈으아즈아아아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망자의 울부짖음.

하지만 실상은…….

“단장님, 조원들 발견했습니다. 조장님, 저 왔습니다.”

그렇다. 유령의 정체, 뻔한 상황이지만 벤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도 말도 감시조에는 유령의 그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모두 이드가 사용한 기살 때문이다. 보통 기살에는 이런 유령 특수 효과는 없다. 순수하게 생명, 내공, 마나 등으로 알려진 모든 기운을 지우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기척을 죽이는 것은 기살과는 조금 다른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드가 사용한 기살은 일반적인 그것과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살을 모르는 벤의 기운까지 같이 감춰야 했으니까. 이드가 벤까지 포함해서 일정 영역을 덮은 기살은 사실 기살이라는 개념만 빌려 왔다 뿐이지 은밀 기동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것이었다.

감시자, 암살자, 도둑 등의 소음에 민감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안다면 배우고 싶은 첫 번째 기술로 뽑힐 만한 것이었다. 

“으음.”

적을 썰 용기는 있어도, 유령은 무서워하는 두 사람의 호들갑에 조원들 모두가 유령을 보고는 긴장했다.

신비한 일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이 굴러다니는 그레센이지만 의외로 유령은 보기 쉽지 않은데, 신비와 함께 신의 은혜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확인되는 즉시 사제에 의해 퇴마되거나 저승으로 인도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거기다 사전 조사에 따르면 유령이 나타나는 숲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령이 나타났다. 그것도 괴이한 곡소리가 딱 봐도 악령 계열.

알단테와 적의 공격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르릉. 조원들이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다행히 셰이드 계열은 아닌 듯합니다. 공격할까요?”

셰이드는 유령보다는 어둠과 그림자의 속성을 가진 정신체로, 조원들 수준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악령과 같은 유령은 성수가 없어도 검기로 공략은 가능했다.

조원들이 유령을 보고도 두 사람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다. 사람들이 유령을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양심과 대항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기초한 것이니까.

적을 알고 죽일 수 있다면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따닥따닥・・・・・・ 무, 무서워…….”

뭐・・・・・・ 그런 점을 떠나서 그냥 유령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차는 있기 마련이니까.

알단테는 부하의 질문에 고민했다.

단순한 유령이나 악령이라면 처리는 쉽다. 조원들 모두 병사로 출발했지만, 오랜 시간 전장을 구르고 실전을 겪으며 주워 익힌 무공으로 미약하게 검기는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도 있다.

거기에 더 좋은 공격 방법도 가슴에 있다.

부스럭.

파이어 볼 스크롤. 자고로 정신체에는 검기보다 마법이 더 효과가 좋은 법. 하지만 문제는 효과에 따른 이펙트가 너무 크다는 것.

파이어 볼을 사용하는 순간 그 열과 폭음으로 어딘가 있을 적들도 알게 되고, 이드도 달려올 것이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것은 저 유령이 적의 공격인지, 아니면 조사에서 빠진 자연 발생한 유령인지에 대한 것.

“준비해라. 공격과 동시에 경계하며 후퇴한다.”

잠시 고민하던 알단테가 결정을 내리고는 스크롤을 꺼냈다.

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미 치털링 감시조의 연락이 끊어진 시점에서 나타난 유령은 적의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후의 움직임에 도움이 된다.

푸화확!

스크롤이 부욱 찢어지자 그 앞으로 꽃망울이 터지듯 불길이 뭉치며 유령을 향해 날았다.

으가가가가~

착각일까. 파이어 볼을 본 유령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유령이 다시 죽는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려는 찰나.

텁!

갑자기 튀어나온 하얀 손이 파이어 볼을 잡아 종이를 구겨 버리듯 소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손과 함께 이드가 기살을 거두며 나타났다.

“알단테 조장. 빠르고 과감한 결단은 좋았지만, 자기 조원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건 좀 심각하다 생각하는데.”

“조장님~ 어떻게 절 공격하실 수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벤이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콧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미, 미안하다. 영 흐릿하게 보여서. 거기다 허공을 날고 있어서 설마 넌 줄 몰랐다. 어떻게 날고 있는 거냐?” 

말 돌리기는, 이드는 노골적으로 벤의 눈길을 회피하는 알단테와 조원의 모습에 벤을 잡고 있던 내력을 풀었다.

땅에 발을 디딘 벤이 한 달간 했던 깁스가 풀린 사람처럼 굳은 몸을 풀었다.

이드가 그 모습을 보다 말했다.

“벤을 비행시킨 건 나다. 탐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지.”

“여기 오신 걸 보면 확실히 속도가 올라간 모양이군요.”

“조장이 붙여 준 벤의 활약이 컸지. 예상보다 눈이 더 좋아서 도움을 받았어. 탐색을 끝내고 그대로 전진할까 하다가 그렇게 되면 감시조와 너무 거리가 멀어질 것 같아서 방향을 돌렸지.”

그 말에 알단테는 이드와 벤이 반대쪽에서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희가 너무 느렸군요. 면목 없습니다.”

“아니, 내 쪽이 비정상적으로 빨랐을 뿐이지. 숲의 탐색이 얼마나 힘들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말은 할 필요 없다.”

오히려 느리긴커녕 7명으로 예상보다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럼 탐색에 대해서 보고하겠습니다. 출발지에서 현 위치에까지 특별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깨끗해. 벤이 이틀 전 세 명 정도가 이동한 흔적을 발견한 것이 다다. 아마 이틀 전에 협곡에 표식을 남기려고 들른거겠지.”

이드가 말하자 벤도 그런 흔적을 찾았다고 했다. 그것도 하루 전 것으로 예상되는 흔적.

즉, 감시조는 날마다 이동 루트를 바꿨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은 협곡으로 오지도 못했고,

“즉, 이동 중에 당한 건 아니라는 말인데, 발각되었거나, 은신처에서 꼼작할 수 없거나 둘 중 하나인가.”

이드가 정신의 관이 있는 방향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적에게 발각되었다면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사기를 떨어트릴 필요는 없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지금 더 가까이 접근하면 발각될 확률이 높습니다.”

“훗, 당연한 걸 묻는군. 정신의 관에서 감시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내가 온 이유가 저들의 방해를 꺾고 감시를 이어 가기 위해서가 아닌가. 감시조가 발각된 시점에서 토벌은 이미 시작된 거야. 다시 간다.”

“충.”

이드의 말에 조원들이 동시에 가슴을 두드렸다. 발각은 곧 전투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는 모습이 없다. 이미 이런 상황에 대해 숙지하고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행 감시조가 전멸한 상황에 다시 파견되는 감시조가 수 배 더 위험한 것은 상식이다.

이미 탐색을 끝낸 숲을 지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합류 지점에 도착한 이드와 감시조는 주변을 살피며 빠르게 나아갔다.

“여기서 여기까지는 오히려 적의 매복이나 흔적을 두기에 애매해서 안전할 것입니다.”

알단테와 조원들의 공통된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의 관은 생명의 관과 마찬가지로 작은 산을 뒤로하고 자리해 있었다. 다만 생명의 관처럼 산을 파내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작은 삼층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했다.

생명의 관에 비교할 것도 없이, 시골 영지에 위치한 영세 마탑보다 작다.

그냥 생활하는 거라면 몰라도 수많은 실험을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공간. 정신의 관에 있는 마법사가 혼자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정신의

관은 외부에 드러난 모습이 다가 아니다.

“진짜는 지하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보고를 받는 자리에 있던 마법사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감시조는 그런 정신의 관의 감시를 위해 정신의 관 뒤의 작은 산을 포함해서 목표를 원형으로 감싸는 형태로 숨어 감시하고 있었다.

은밀히 움직인 이드와 감시조는 정신의 관 뒷산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신의 관과는 일 킬로미터 거리.

알단테가 다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앞선 두 개 감시조가 잠복에 사용한 포인트를 제외하고 저희들이 자리할 포인트는 열두 곳. 우선은 단장님과 감시조가 거점 포인트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산에서 내려다보면 감시가 편할 것 같은데. 이미 사용되었겠지?”

이드의 질문에 알단테가 회심의 미소를 보였다.

“아닙니다. 작전부에서 저희 거점으로 준 포인트가 산의 중턱입니다. 단장님을 위해 아껴 둔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설마 그럴까마는. 나쁘지는 않군.”

“그럼 치털링 감시조의 주요 거점도 있겠지?”

경로상에 흔적이 없었으니,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곳이 바로 치털링 감시조가 주요 거점으로 사용하던 곳이 아니겠는가. “물론입니다.”

알단테가 정신의 관의 정면에서 좌측으로 56도 기울어진 지점의 숲 속을 찍었다.

“좋아. 그럼 자네는 나와 함께 그곳에 다녀오지. 나머지 조원들은 거점 포인트에 자리를 잡도록 하고.”

이드의 명령에 알단테가 즉시 조원들에게 할 일을 부여하고 조원들을 산으로 올려 보냈다.

이드는 알단테가 옆에 서자 치털링 감시조에서 사용하던 거점 포인트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만약 살아 있다면, 일분일초가 급박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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