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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45화


881화

던전은 위험한 곳이다. 온갖 해괴한 이유로 그것을 만드는 몇몇 변태들을 제외하고, 던전이란 들어오지 말라고. 자신의 은신처라고. 허락 없이 발을 들이면 죽여 버리겠다고 만든 곳이다.

위험이 빈틈없이 똬리를 튼 곳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던전이라 하면 뼈다귀를 향해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보물을 떠올리며 침을 흘린다.

던전의 위험한 함정도, 보물의 유무도 확인하지 않고서.

모두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국이 이번 토벌에 타국의 외교관과 그들을 보호할 기사의 참가를 허락한 것은 누가 봐도 호의였다. 보물이 있을지 없을지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던전과 달리, 미완의 마탑 소속 정신의 관이라는 이름의 던전에는 다른 건 몰라도 귀중한 연구 자료들이 수두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법사들에게, 그리고 국력을 기르기 위해 애쓰는 국가에 있어서 천금과도 같은 가치이다.

때문에 보통은 이런 일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한다. 이렇게 숨겨 둔 비밀이 국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나크렌 제국의 황제는 과감히 이 토벌에 타국의 참가를 허락했다. 미완의 마탑이라는 자들의 악행을 알린다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여러 가지가 있다 해도, 그리고 발견되는 연구 자료의 공유는 없다는 전제를 세우긴 했어도 이는 통 큰 결단임은 분명했다.

파격적인 호의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그런 호의를 보인 황제의 딸이 함께하고 있다. 그 앞에서 토벌대에 힘을 보태라는 말을 거절하기는 어렵다.

밥값은 아니라도, 관람료 정도는 내야 했다. 그리고 이왕 거절할 수 없을 때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외교관으로서 그런 눈치는 기본이다.

“제 호위 중 제이콥 경이 가장 실력이 뛰어납니다.”

“제이콥 버킷이 명예 후작님께 인사드립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름이 불린 기사가 기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나섰다. 마법사도 그렇지만, 기사 역시 이런 모험은 로망이다.

토벌대의 전투에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느라 힘들던 참이었다.

“그럼 저희도………..”

“윌리엄 경의 실력이 가장…….”

“크루레인 공관의 제일 기사인…..”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대동한 기사들 중 가장 실력이 빼어난 기사를 내놓았다. 거부하는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반겼다. 모두 제이콥과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감사한 일입니다.”

이드가 흐뭇하게 웃으며 기사들을 살폈다. 모두 소드 마스터 상급의 기사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벽을 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레이트 소드 초급. 외교관의 호위 기사를 하기에는 과분한 전력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레이트 소드 초급의 기사 하나로 뭘 꾸미겠는가. 그저 던전을 살피고, 제국의 전력을 파악하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이드의 손에 들어온 잘 드는 칼일 뿐이다.

외교관들에게 기사들을 뜯어 낸 이드는 토벌대에 소속된 기사들 중 실력자를 뽑아 냈다.


이드가 보기에 2층의 핵심은 골렘이다.

고통도 느끼지 않고, 단단하며 숫자도 많다. 잘 훈련된 군대 같다. 재질까지 생각하면 움직이는 성벽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러니 가까이서 봤자 싸울 수 있는 기사는 한정되고, 그러다 보니 단단한 벽에 부딪혀 사상자만 생긴다.

“성을 공략하려면 성문을 열어야지.”

그리고 문이 없으면? 성벽을 무너트리고 새로 만들면 된다.

그렇게 구멍 숭숭 뚫린 벽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법.

이드는 단단한 성벽에 구멍을 낼 수십 자루의 창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앞에 강력한 굴착 드릴이 되어 줄 실력자를 배치했다. 

“마법사의 공격이 끝나는 순간 돌격을 시작한다. 마법사는 준비된 공격 신호에 따라 적 선두의 골렘을 공격한다. 준비!”

“준비!”

쿵! 쿵!

이드는 가장 선두에 섰다. 기사들이 발을 굴렀다.

그때 이드의 사인을 받은 라미아의 신호에 따라 마법사들이 일제히 준비한 마법들을 쏟아 냈다.

퍼퍼퍼펑!

화염과 폭발, 빛과 바람.

마법사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고 애용하는 공격마법들이다. 미리 약속된 속성의 마법들이 휘몰아치며 폭발했다.

그리고 폭발이 다 끝나기도 전,

“돌격!”

정신없는 폭발음을 뚫고서 이드의 음성이 또렷하게 기사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망설이는 기사는 없었다.

“돌격!”

“으아아아아!”

기사들이 폭발 사이로 뛰어들었다.

선두의 골렘이 폭발에 부서지고, 그 충격에 골렘들의 방어진이 살짝 흔들린 시점을 노린 돌격이었다.

무극검강의 은빛 검강이 무형극의 초식으로 수없이 분열하며 전방을 찔렀다.

콰르르르륵!

분쇄기에 갈리는 콩을 본 일이 있나? 무형극의 검강 앞에 있는 골렘들이 딱 그랬다. 은빛 검강이 닿은 골렘들이 순식간이 산산조각 났다.

어차피 기사들의 검기와 검강에도 부서지던 골렘들이다. 딱히 특별한 건 없다.

문제는 규모다. 이드의 일 검에 나란히 선 네 기의 골렘이 동시에 타격을 받았고.

뒤이어 깊이 찌른 일 검에 선두에 선 골렘의 뒤에 있던 열기의 골렘들이 단숨에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던 것이다.

“과연 명예 후작님의 검은!”

“허…….”

순간 뒤에서 감탄과 함께 묘하게 허탈한 숨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황녀와 기사들의 것이었다.

특히 기사들은 이드가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실력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놀람과 허탈함에 잠시 주춤한 것이었다. 

“대형이 흐트러집니다. 집중하세요!”

그때 주춤하는 기사들을 다잡는 일리나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에 기사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전투 중에 딴생각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기사는 없다. 그들은 오히려 이드의 모습을 눈에 새기듯 최대한 가까이 붙으려 했다.

그런 기사들을 뒤에 달고, 이드는 순식간에 골렘의 벽을 관통해 버렸다.

탁!

갑자기 환하게 트이는 전방에 발을 디딘 이드가 돌아서며 외쳤다.

“분열하라!”

순간 이드의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그가 만든 길을 넓히는 것과 동시에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분열하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드보다는 늦었지만, 곧 골렘의 벽을 관통한 기사들의 복창과 함께 단단히 뭉쳐진 골렘들이 바둑판 위의 바둑알처럼 분리되어 나누어졌다.

한데 뭉친 골렘은 그 강력한 방어력 때문에 상대하기 힘들지만, 분리된 골렘은 전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만만했다.

거기에 굴착 드릴이 되어 주었던 기사들이 뛰어들어 기사들을 돕기 시작하자 전황은 빠르게 기울었다. 가장 먼저 골렘을 처리한 기사들이 다른 기사들을 돕고, 그것이 반복되자 기사들의 전력의 전력과 숫자가 압도적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던 것.

“대단하세요. 정말 말씀처럼 됐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녀가 흥분에 양 볼을 붉히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 눈에는 당장이라도 저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실로 엄청난 속도로 전투와 전장에 익숙해지고 있는 황녀였다.

과연 검후의 혈족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직 보호 없이 두기에는 불안한 점이 많아 기사들과 작전에 투입하지는 못하고 일리나와 함께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2층은 별일 없으면 이대로 끝나겠네요.”

어쩌면 이대로 3층이 아니라 4층까지 열 수도 있다. 스스로 경계하자 말한 황녀지만 전장의 열기에 흥분을 누르기 힘들어 보인다.

이드는 그런 황녀의 말에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긁었다.

“어험. 황녀 전하.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요?”

“그런 건 아지만, 뭐랄까요. 묘하게 결말의 상황에 그런 말을 하면 꼭 사건이 발생하게 되더군요.”

“어머, 호호호. 명예 후작님도 그런 속설을 믿으시나 보군요.”

“속설이라.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위를 보시겠습니까? 저걸 보면 단순 속설로 치부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위? 아앗! 저건 아까 그 거미 골렘?”

이드가 가리킨 2층의 천장. 거기에는 아까 청색 기사단이 상대했던 것과 같은 형태에 색깔만 다른 거미 골렘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1층에 비해 2층 천장이 유독 높다 했는데, 바로 저 거미 골렘들 때문인 듯했다.

거미의 장점이라면 누가 뭐래도 거미줄과 벽과 천장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능력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을 포기할 것 같았으면 거미 형태의 골렘을 만들 필요도 없다.

“설마 진짜로? 흡!”

황녀가 급히 입을 막지만, 이미 뒤늦은 일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거미 골렘들은 슬금슬금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토벌대 위로 이동 중이다.

‘잘 만들었네’

그 큰 몸집에 거꾸로 이동하는데 소리 없이 자연스러운 것도 대단하고, 그 거체가 매달려 있는데 부서지지 않는 천장도 대단했다.

어쩌면 이 정신의 관에 드워프가 노예로 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저대로 떨어지거나 아까처럼 화염이라도 뿜으면 위험한 것 아닌가요?”

마법사들이 보고 공격하면 좋겠지만, 1층과 2층의 천장의 높이 차이 때문에 마법사들의 위치에서는 거미들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위험합니다. 그러니 기사들이 당하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죠?”

“싸우고 있는 기사들을 부르실 건가요?”

청색 기사단도 고전하던 골렘들이라서일까. 황녀는 현재 전력으로는 약하다 생각한 듯했다. 현재 그녀의 주변에 있는 전력은 이드와 일리나, 그리고 아이넬 기사단 절반이 전부였으니까.

당연하게도 이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괜히 잘 싸우고 있는 흐름을 깰 필요는 없다.

“설마요. 잘 싸우고 있는 기사들을 부를 수는 없지요.”

“그럼 아이넬 기사단만으로 저들을 상대할 건가요?”

조금 떨리긴 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황녀는 검을 꽉 잡으며 각오를 다졌다.

그 모습에 이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의욕만 앞선 아가씨 같으니라고.

“설마요. 아이넬 기사단의 임무는 황녀 전하를 지키는 것. 무엇보다 고작 골렘을 상대하는 데 아이넬 기사단이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일리나와 저, 이렇게 둘만 움직이면 됩니다.”

“하지만 청색 기사단도 애를 먹은 골렘이잖아요.”

“그건 청색 기사단이라서 그런 것이고. 저와 일리나는 다르답니다.”

즉, 두 사람은 그 자체로 청색 기사단 급. 아니, 그 이상의 전력이라는 말과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넬 기사단의 기사들의 눈에 살짝 믿을 수 없다는 부정의 감정이 떠올랐다.

훈련을 받으며 이드가 강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두 사람으로 청색 기사단 급의 전력을 발휘한다니.

이드는 쉽게 믿지 못하는 황녀와 아이넬 기사단을 두고 일리나와 함께 처리할 골렘들을 살폈다.

마침 골렘들은 두 방향에서 접근 중이었다.

한쪽은 화염골렘과 거미 골렘 다섯 마리. 다른 한쪽은 거미 골렘 서른 마리.

일리나에게 화염골렘의 처리를 맡겨 소검후의 이름을 더 높여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이쪽 화염 골렘과 다섯 마리를 처리할 테니, 일리나는 저쪽을 맡아 줘요.”

“알았어요.”

“어려운 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요.”

이드의 당부에 일히나는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동시에 둘은 골렘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휑하니 사라진 두 사람을 대신에.

“끼이이익!”

요란한 비명 소리와 함께 2층의 천장에서 비가 내렸다. 산산이 부서진 골렘의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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