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48화
884화
토벌대는 바로 3층 문으로 향했다.
모이엔이 필요 이상으로 힘을 내 준 덕분에 골렘들이 모조리 몰려와 따로 더 처리할 골렘이 없었던 것.
거기에 골렘이 움직이기 때문인지 1층과 달리 2층엔 함정도 없었다.
확인을 위해 기사들이 쉬는 동안 마법사, 그리고 감지에 특화된 초인기를 가진 초인이 구석구석을 뒤져 확인한 사실이다.
마법사들이 나서서 3층의 문을 열었다. 두꺼운 철문이지만 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정신의 관 입구도 그랬고, 2층의 입구도 그랬다. 그렇다고 아무나 열고 들 수 있는 자동문은 아니지만, 뭐랄까. 침입자를 막는 것보다는 던전 안에 집중한 느낌이랄까?
슈아아악~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압력 밥솥에서 뿜어지는 증기 같았다.
몰랐으면 적지 않은 화상을 입었을 열기. 하지만 다행히도 여기에 대해선 정보가 있어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과 초인들이 쏟아지는 열기에서 토벌대를 지켰다. 한차례 뜨거운 열기가 빠져나가자 드러난 3층의 내부는 온통 붉은 세상이었다.
단순히 색이 붉은 것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중간중간 솟아 있는 수십 개의 돌탑을 중심으로 붉은 불길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살라만다의 둥지랬나. 이름은 잘 지었네. 어울려.”
“정말이요. 돌탑을 도는 불길이 귀여운 살라만다를 닮았어요.”
일리나의 말이다. 정령과 친한 엘프이니 할 수 있는 말이지. 토벌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지옥이 따로 없다.
불의 정령과 계약한 이드만이 일리나의 말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귀엽다는 말은 이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그때 이드와 나란히 서서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방 안을 살피던 황녀가 말했다. “2층과 달리 3층은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명예 후작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스폴이 그런 황녀 옆에서 황녀가 불길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느라 고생 중이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니, 단정 짓기는 이르겠지요.”
1층은 큰 변화가 없었고, 2층에서는 대대적인 물량전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3층의 상태를 확신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었다.
“그나저나 3층은 마법사와 초인들이 고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거리를 지켜 주십시오. 황녀 전하. 위험하다니까요. 단장님도 좀 말려 주십시오!”
스폴이 말을 하다 말고 사정을 한다. 그러면서 황녀의 손을 마치 야생마의 고삐처럼 단단히 쥐었다.
“하하하. 지금도 스폴 경이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거리만 유지하면 딱히 위험할 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슬그머니 스폴의 눈을 피한 이드가 마법사들과 초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사를 중심으로 마법사와 초인들이 딱 선을 그은 듯 나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에 있는 기사들이 마치 완충지대 같다.
“3층 공략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스폴의 말대로, 록마틴 후작과 토벌대의 지휘부는 3층에 대한 공략을 마법사와 초인에 한정했다.
어차피 기사가 들어가 봤자 잘 타지 않는 장작이 될 뿐이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 낼 수 있는 기사도, 뜨거운 열기와 불길을 막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다만 문제라면 3층 공략이 예정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녀 전하와 초인들을 앞에 두고 못 한다 말할 수는 없지.’
삼조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있는 5클래스 마법사, 메이슨이 힐끗 초인들이 있는 곳을 돌아보고서 목에 힘을 주고 나섰다.
“불길을 걷어 낼 아티팩트는 현재 지상에서 제작 중이지만, 직접 본 화력이 생각보다 약하니. 제 선에서 해결이 가능할 듯합니다.”
그러자 경쟁하듯 초인들 쪽에서도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삼조의 초인들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로, 이름은.
“케일럽 경이었던가요?”
“영광입니다. 명예 후작님. 메이슨 마법사의 말처럼 저만한 화력이라면 저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흐음.”
이드가 서로를 견제하는 두 사람을 보며 턱을 쓸었다. 원래 계획은 마법사와 초인 양측에서 힘을 합쳐 공략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하는 것으로 봐서 협력은 물 건너간 듯하다. 메이슨의 말대로 완전히 준비되지 않아서일 터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괜히 끌어 올린 사기만 떨어질 뿐,
“그럼 두 분이 반으로 나눠서 해결하면 되겠군요.”
프리실라는 저 안에 있는 19개의 돌탑을 파괴하면 불길이 없어질 거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돌탑이 불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봉인된, 화염 초인기를 각성한 초인이 불길을 만들고 있는 것.
“맡겨 주십시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또한 무고한 초인 동지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아무래도 초인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서인가. 케일럽이 강한 열의를 보였다. 이드의 허락 아래 두 사람은 각자 준비를 마치고 곧장 3층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푸르르륵!
동시에 조용하던 불길이 침입자를 확인한 야생마처럼 강렬하게 타오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프로텍트 프롬 파이어! 프로즌 쉴드! 에어로 월!”
메이슨은 세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바람으로 직접적인 불길을 막고, 이차로 냉기로 불길을 밀어내고, 삼차로 열기를 막았다.
그러자 지지 않겠다는 듯 케일럽이 두 주먹을 부딪쳤다.
쿵!
그러자 도저히 사람의 몸에서 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두 주먹을 시작으로 그의 몸이 돌로 변했다. 마치 작은 스톤 골렘을 보는 것 같았다. 돌은 불에 탈 일이 없고, 무게에서 나오는 파괴력도 크다. 과연 자신 있게 나설 만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이드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몸은 돌이라서 타지 않는다지만 걸치고 있는 옷과 갑옷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게요. 불에 타지 않게 마법이 걸린 것도 아닌 것 같고, 매번 옷이 상하면 갈아입는 거 아닐까요?”
“그렇겠지? 갑자기 영화 속 히어로들이 생각나네.”
어떤 상황에서도 상하지 않는 히어로들의 옷. 어쩌면 히어로 본인보다 더 튼튼해 보이는 옷들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슈퍼맨의 얇은 쫄쫄이다. 슈퍼맨과 함께 불 속과 물속은 물론 우주까지 나가지만, 상하는 꼴을 보기가 힘들다.
특히 가장 이드를 어처구니없게 만든 것은 총탄도 견디던 옷이 병원 의료 가위에 가볍게 잘리는 장면에서였다. 의료 가위가 무슨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명품도 아니고!
“또, 또 그런다. 영화는 그냥 영화로 즐기라고요.”
“영화는 영화지. 그런데 지금 눈앞에 일은 실제 상황이잖아.”
아닌 게 아니라 조금만 달리 보면 현재 초인들은 영화 속 히어로들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오랜만에 라미아의 말문이 막혔다. 그에 일리나가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어차피 그런 문제는 케일럽 경이 돌아 나오면 자연히 알게 되지 않겠어요?”
과연 그렇다. 설마 그의 옷과 갑옷이 슈퍼맨의 쫄쫄이와 같은 물건은 아닐 테니 말이다.
엉뚱한 주제로 수다를 떠는 사이.
야생마 같던 불길은 더 강해져 있었다. 이제는 야생마가 아니라 그리즐리 베어가 난동을 부리는 것 같다.
돌탑을 돌던 불길의 굵기도 꽃뱀에서 아나콘다 급으로 굵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콰아아아~
두 침입자를 향해 불길이 집중되어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파랗게 변한 두 줄기 불길은 마치 제트기의 엔진을 연상시켰다. 그런 엔진 뒤에 서면 과연 어떻게 될까?
사실 그건 해 볼 필요도 없다. 당연히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는 것 확정이니까.
그럼 마법사와 초인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지금 여기 있다.
“크읏! 배리어!”
큰 압력에 갈대처럼 휘청이던 메이슨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리며 배리어를 더해 겨우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배리어에 가해지는 압력은 어쩔 수 없어 엎드린 중에도 바닥을 긁으며 뒤로 밀려갔다.
스트렝스로 힘을 더해 버티면 좋겠지만. 5클래스 마법사인 그에게 4가지 마법을 중첩하는 것도 아슬아슬한 한계였다.
거기에 화력이 강해지면서 화염을 막아 내는 것조차 한계에 가까운 상태가 아닌가.
“빌어먹을!”
다음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메이슨이 욕설과 함께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쪽은 틀렸네.”
이드는 에어 건에 굴러가는 먼지처럼 바닥을 구르는 메이슨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겼다. 저대로 조금만 더 두면 유지하던 마법이 흩어지며 숯이 되어 버릴 것이 뻔했으니까.
“그아아압!”
메이슨이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본 케일롭은 호기롭게 기합을 지르며 성큼 발을 내디뎠다.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흐흐흐. 야리야리한 마법사 따위가 설 수 있는 전장이 아니란 말씀이야.’
죽어도 마법사 따위에 지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승부가 날 줄이야.
콰아아아아~
하지만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메이슨을 향하던 불길이 그에게 더해진 것인지 은은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가 스톤 자이언트라고 이름 붙인 초인기를 사용하면서 열기를 느낀 적은 처음이다.
‘좋지 않다.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좋겠어.”
순간 용암 속에 녹아내리는 돌이 떠오른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알려 오는 본능의 신호다.
케일롭은 손발에 힘을 더했다.
덕분에 케일롭은 잠시 후 첫 번째 돌탑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안에 마법사들에게 납치당한 초인이 들었다 생각하니 절로 이가 갈리고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부웅!
붉은 불길 속에서 케일롭의 팔이 휘둘러졌다. 스톤 자이언트로 변한 그의 팔은 두 배나 굵었고, 동일한 크기의 돌보다 세 배 이상 무거웠다.
질량과 속도는 곧 힘이다.
콰드드득!
단 두 번. 양손을 번갈아 휘두른 케일롭의 손에 돌탑이 무너졌다. 동시에 무너진 돌탑 안에서 빽빽한 마법진에 둘러싸인,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나타났다.
“……”
아니다. 미라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 그걸 알아차리고 말을 걸려는 찰나였다.
파스스슷.
한순간 생명이 다해 진짜 미라가 되어 버린 그가 바짝 마른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기사가 되어 이보다 잔인한 모습도 많이 보았지만, 같은 초인이라서일까. 그 순간이 유독 마음에 와 박혔다.
“뿌드득, 개 같은 마법사 놈들에게 확실히 복수해 줄 테니. 편히 쉬어라.”
동시에 갑자기 힘이 났다. 분노는 훌륭한 동력원이니까.
쿵쿵쿵!
더해진 힘으로 케일롭이 전차처럼 다음 돌탑을 들이받았다.
콰앙!
케일롭은 쉼 없이 일곱 개의 돌탑을 부숴 버렸다. 말 그대로 돌탑을 자갈 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어차피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할 수도 없으니. 분노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이놈의 불길은 이상하게도 돌탑이 줄어들수록, 케일롭이 안으로 전진할수록 강력해졌다.
‘불길을 만드는 초인이 줄면 불길도 줄어야지! 이건 사기라고!’
당장이라도 몸이 녹을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문 케일롭이 다음 돌탑을 향해 억지로 달려갔다. 이드와 황녀 앞에서 장담해 둔 것이 있는데, 자존심상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는 고집이었다.
“슬슬 한계네.”
그러나 숨기려고 애쓴 것이 허무하게도 이드의 눈에는 케일롭의 상태가 훤히 보였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열독과 그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생기의 흐름이 기감에 잡혔고, 부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중심이 눈에 와 박혔기 때문이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