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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34화


970화

통로 안 토벌대는 황홀한 표정으로 이드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해요. 굉장해요. 너무 굉장해요!”

특히 그 중 황녀는 두 눈에서 별빛이 흘러나올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하지만 편하게 구경하는 사람들은 단장급 이상의 각 조 주요 인물들뿐, 그 뒤에 있는 일반기사들은 구경하기 위해 목을 길게 뺐다. 심지어 그런 자리마저도 차지하기 위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돌아가면서 좀 봅시다.”

“마법사님들, 우리도 좀 볼 방법 없습니까?”

“아쉽지만 일루젼 마법을 사용하기엔 마나가 너무 거칠어져 있습니다.”

“이 기막힌 전투를 소리만 들어야 한다니! 이 무슨 저주받을 경우란 말이야!”

물론 거기에도 끼지 못한 기사들은 뒤에서 그저 한탄하는 신세지만 말이다.

“위험한데.”

그런 후위의 기사들에 상관없이 쉴라는 걱정스런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에 스폴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아닌데요? 명예 후작님이 차분하게 밀어붙이고 계시잖아요.”

“아니, 이 통로 말이야. 아까 광선의 충격에 흔들렸던 것 알잖아.”

“확실히 제법 흔들렸죠.”

아까의 충격이란 검계를 뚫은 광선이 벽을 때렸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만, 스폴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무너질까 걱정하시는 거라면 정말이지 쓸데없다 싶은데요. 여기 엄청 튼튼하잖아요.”

“…경은 적의 소굴에 대한 믿음이 쓸데없이 대단하군.”

“눈으로 보고 경험한 걸 말하는 것뿐입니다.”

확실히 스폴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앞선 공략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던전의 붕괴는 없었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면 좋겠지만…….”

쉽게 걱정을 거두지 못하는 쉴라다.

마침 타이밍 좋게 통로가 또 흔들렸다. 앞서보단 그 충격도 작았고, 통로는 튼튼했다. 그래서 스폴도 곧 쉴라의 걱정을 잊고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붕괴를 염두에 둔 건 쉴라뿐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해더웨이가 이드의 검계를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돌연 부상과 함께 나타났다.

해더웨이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그가 이동할 장소를 예측하고, 또 어떤 방법으로 그를 공격했는지 의문과 호기심을 불태울 때.

반짝.

이드의 손길을 따라 석실 가득 별이 반짝였다. 자세히 보면 그건 검강이었다. 모양뿐 아니라 크기까지 물방울처럼 작고 희미한!

도대체 무슨 수로 저런 것이 가능한가. 검기 발출의 원리는 어떤 무공이든 같은데, 저건 도저히 같은 원리에서 나온 것 같지가 않았다. 그에 기사들이 마치 분석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보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돌연 물방울이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별똥별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해더웨이.

차라라락.

그에 해더웨이의 머리에 있던 모든 안테나가 일어났다. 빛이 안테나를 이으며 후광처럼 번져 나왔다.

해더웨이의 무거운 머리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지팡이는 초인기의 사용을 보조하고 증폭하는 기능도 있었다. 저 후광을 연상케 하는 빛은 그와 같은 기능이 전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표시였다.

슈슈슈슉.

뒤이어 해더웨이의 머릿속에서 아홉 개의 광구가 튀어나왔는데, 그 표면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쉴라는 순간 오싹한 느낌을 받고 본능적으로 외쳤다.

“모든 조원은 방어 진형으로 충격에 대비하라!”

갑작스럽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기백이 깃든 명령에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아홉 광구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광선이 쏘아졌다. 광선의 숫자는 별똥별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별똥별이 순식간에 요격되었다.

이에 이드가 무형기류를 통해 광선을 막고, 검계를 끌어와 다시 해더웨이를 가두려 했다.

그러자 이번엔 허공에서 불길을 두른 악마의 뿔이 튀어나와 검계를 파괴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이드와 해더웨이의 공방.

힘도 힘이지만, 화려하고 기괴했다. 빗나간 공격이 사방을 두드리고, 파괴된 힘의 파편에 석실이 형태를 잃어 갔다.

그중 몇 개의 광선에 통로 입구를 막고 있던 보호 마법이 파괴되었다. 자연스레 통로 안은 우수수 떨어지는 돌가루로 엉망이 되어 갔다. 그 속에서 쉴라가 크게 소리치며 황녀를 찾았다.

“푸후~ 무사하십니까. 황녀 전하.”

“전 괜찮아요. 소검후님께서 소드 배리어로 지켜 주셨어요.”

그 말대로 황녀는 지금도 일리나가 만들어 낸 검막 안에 있었다. 덕분에 돌가루도 먼지도 뒤집어쓰지 않았다.

“그렇군요. 소검후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황녀의 무사를 확인한 쉴라가 조원들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중심을 잡지 못한 몇이 쓰러지고, 떨어지는 돌에 맞은 기사는 있지만, 부상이라고 할 정도로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쉴라가 방어를 명령한 영향이 컸다. 부상자가 없음을 확인한 쉴라가 통로 밖을 향했다.

퍼퍼퍼펑!

그곳에서는 여전히 폭음과 폭발이 이어진다. 하나하나가 무시하지 못할 충격으로 통로를 흔든다.

거기에 드물게 통로 안으로 빗나간 공격이 튀어 들어오기도 한다. 방향을 잃은 힘의 파편이기에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 나서 어렵지 않게 처리하고는 있지만, 역시 안전한 상황은 아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겠습니다. 명예 후작님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뒤로 후퇴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들어온 입구가 막혔습니다.”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모든 길이 바뀌는 것은 아닐 테니,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됩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황녀가 묘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안전을 위해 자리를 피해야 하지만, 책 속에서나 볼 법한 전투를 더 이상 보지 못함이 아쉬운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쉴라가 조금 냉정하게 현실을 알렸다.

“황녀 전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남아 있으면 명예 후작님께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휴~ 안전은 둘째치고라도, 짐이 될 수는 없죠. 쉴라 조장님의 말씀대로 물러나야겠네요.”

“지금부터 벽을 뚫는다. 필요한 마법과 초인기를 가진 사람은 나서라!”

쉴라가 목소리를 높일 때였다.

타탁.

“벽은 제가 뚫어 드리겠습니다.”

꾸준히 일행에 신경을 쓰고 있던 이드가 통로 입구에 나타났다. 동시에 검 끝이 수십 개의 원을 한순간에 그려 냈다.

원은 파문처럼 퍼져 나가며 통로의 벽을 타고 흘렀다. 마치 토벌대를 제가 알아서 피하는 듯하다.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벽을 타고 달린 비혼화가 통로를 막고 있는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푸스스스-

그 직후 벽이 2미터 깊이로 모래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드가 만들어 낸 원은 수십 개. 벽엔 순식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반대쪽 빈 공간까지 새로운 통로가 생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탈출하지 못하도록 해더웨이와 마법사들이 꾸며 놓은 조치는 비혼의 칼날에 종잇장처럼 찢긴 지 오래다.

“삼 조부터 통로를 통해 이동을 시작한다!”

통로가 생기자 쉴라가 망설임 없이 후퇴를 명령했다. 그리고 삼조 후방에 황녀와 소검후를 배치했고, 일 조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제일 뒤에 선 쉴라가 이드에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통로 안으로 사라졌다.

물론 그땐 이미 이드가 통로 입구에서 사라진 후 해더웨이와 싸우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쉴라는 이드가 보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모두 사라진 통로 입구에 다시 이드가 발을 디디고 섰다.

“모두 잘 빠져나간 것 같네.”

그리고 모두 사라진 통로 입구에 바람처럼 나타난 이드가 통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서 뿜어진 철황포에 통로가 와르르 무너졌다.

“뒤는 이걸로 막았고.”

“어리석은 짓이군요. 스스로 도망갈 수 있는 길을 부수다니요.”

뿌연 폭연이 바람의 칼날에 쪼개지고 그 사이에서 해더웨이가 날아 나왔다. 그는 통로를 부순 이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황녀가 포함된 토벌조는 마탑의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서라도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마법사의 말을 믿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

해더웨이에게는 그렇게만 보였다.

그러나 돌아선 이드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착각하면 곤란한데. 난 도망갈 통로를 부순 게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 토벌대가 돌아오지 못하도록 통로를 파괴한 것이오.”

“과연 이해했습니다. 필요 없는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로군요.”

“이번에도 틀렸소. 희생자가 아니라 목격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거요.’

“목격자? 무엇에 대한 목격자 말입니까?”

“별거 없소. 이런 힘자랑 말이오.”

말은 별거 없다는데, 정말 별거 없는 게 아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어느새 이드는 해더웨이의 코앞에 있었다.

지금까지 이드가 보이던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초인기를 통해 엘프를 뛰어넘는 동체 시력이 반응 속도를 가진 해더웨이다. 그래서 마법사의 한계를 넘어 이드와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해더웨이도 이드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아니, 이동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드가 두 발을 멈추는 순간 이드가 움직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한 순간.

쩌억!

이드가 해더웨이의 얼굴에 금령단천장을 박아 넣었다. 초인기로 단단해진 뼈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고, 살과 근육이 터지고, 눈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내부는 더 심각하다. 금령단천장의 경력이 단백질 조직을 곤죽으로 만들며 뇌를 향해 질주했다.

베일록은 혹이 부서지자 초인 마법을 잃었다. 해더웨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순간 해더웨이는 위기를 인식하고 강력한 공간 유리라는 초인기를 사용했다. 공간과 공간을 분리시켜 공격이 전달되지 못하게 하는 초인기로, 해더웨이가 가진 초인기 중 가장 단단하다. 문제는 그 범위가 좁다는 것.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뇌만 멀쩡하면 되니까. 다음 순간 공간 유리가 금령단천장을 막았다. 하지만 그 폭발에 안면과 목이 날아갔다. 머리를 잃은 육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육체 따위 다시 만들면 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과 힘이 담긴 두뇌다.

“이미 인간이 아니군.”

파괴된 인체 조직이 꿈틀거리며 커지는 모습을 본 이드는 혐오감이 들었다. 제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간은 많이 봤지만, 이처럼 갈아 끼우는 부품으로 여기는 경우는 또 처음이다. 더 이상은 기분 나빠서 못 봐 주고 있겠다.

해더웨이도 그런 기색을 느낀 듯했다.

그의 머리통이 갑자기 수십 개로 늘어났다. 진짜를 분간할 수 없는 분신술.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강해진 것입니까?”

동시에 입도 없이 잘도 말을 걸어온다.

그에 이드가 손을 흔들어 그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교정했다.

“틀렸소.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오. 일리나와 싸울 때의 당신처럼.”

“어째서?”

“간단하지. 내 힘을 보는 눈이 많아서 좋을 게 없어서 말이오. 물론 당신을 포함해서.”

그런 의미에서 끝을 보자.

광인멸혼류

파앗.

석실이 빛으로 가득 차며 빛에 닿은 해더웨이의 머리통들이 소리 없이 부서졌다.

압도적인 힘, 일방적인 폭력.

해더웨이의 그 큰 두뇌는 순간 생각을 멈추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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