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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40화


976화

“위치를 잡아낸 거야?”

이드가 난간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잡긴 했는데, 소용없어요. 곧 이동할 것 같으니까.”

라미아가 답하며 다가왔다. 그러자 그 주변으로 초인들이 호위하듯 붙어 선다.

그런 그들의 뒤로는 몸을 피했던 마법사들과 소수의 인공 초인들이 쓰러져 있고, 초인들이 그들의 숨을 끊어 내고 있다.

위층의 마법사들이 이드를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아래층에 있던 마법사들이 초인들과 라미아를 노리다 오히려 당한 것이다. 라미아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대천사 라미아의 은혜를 충전하고 발동시켰을 뿐이다. 덕분에 초인들이 원래 힘을 회복했다.

그들은 몇 남지 않은 마법사들과 인공 초인들로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초인들은 오히려 쌓였던 울분에 말벌처럼 달려들었고, 마법사들과 인공 초인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걸레짝으로 변했다. 자진해서 라미아를 호위하고 나선 것은 그런 초인들 중에서도 실력과 명성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모두 초인기가 봉인당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진절머리 나도록 경험했다.

때문에 반대로 그런 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고, 딜레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라미아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이 이 던전에서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라미아가 필요하다. 그것이 오조 조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물론 라미아에게 있어서는 전혀 필요 없는 호위였다. 자신보다 한참 약한 호위라니. 어디 호위가 신경 쓰여 제대로 싸울 수나 있는가 말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떨어지라고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두었다. 이런 사소한 문제보다 더 급한 일도 있고,

“이동할 것 같다니?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거야?”

위치뿐 아니라 목표 대상의 의사까지 알아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걸어서 움직이는 것까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마법을 사용한 공간 이동은 오히려 알기 쉽죠. 마나가 움직이거든요.”

말과 함께 주문의 그릇을 보여 주는 라미아다.

살덩이를 담은 주문의 그릇 표면 한 점을 향해 마나가 기이할 정도로 뭉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머릿속에 근질거리는 이드다. 주입된 지식이 자극받아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드는 복잡한 생각 대신 바로 라미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물으면 간단한 것을 굳이 끙끙거리며 지식을 퍼 올릴 이유가 없다.

게다가 궁금한 점도 있었다.

“이게 공간 이동을 하려는 거라고?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마법이 아니잖아?”

준비는 오래 걸려도 발동은 빠른 것이 바로 공간 이동 마법의 특징이다.

“혼자라면 그렇죠. 커스 체이서에 걸리는 마나 저항값을 봐서는 한 사람이 이동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또 마법사들인가?”

“그보다는 좀 덩치가 큰 물건일 가능성이 커요. 자, 이제 선택해요. 이동하게 내버려 둔 뒤에 도착지의 위치를 알아낼까요? 아니면….”

“아니면?”

“이쪽으로 목적지를 바꿔치기할까요?”

“그런 것도 가능해?”

생각지 못한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드다. 공간 이동 마법은 애초에 마법 발동 자체가 잘못되지 않는 이상, 중간에 장소 변경 등을 손쓸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는 불가능하지만, 이 살덩이가 있어서 가능해요.’

“그렇단 말이지. 그럼 목적지를 이쪽으로 돌려.”

탑주가 죽기 직전의 부관주를 납치해 가면서까지 맡긴 물건이다. 이드가 판단하기에 그 물건은 부관주가 이동하면 알게 될 미완의 마탑의 거점보다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이드가 결정을 내리자 라미아가 주문의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릇의 형태를 띠고 있던 주문이 넓게 펼쳐지며 거대한 마법진으로 변해 살덩이에 마나를 주입했다. 꿈틀꿈틀.

강력한 마나의 주입에 살덩이가 부르르 떨며 부풀어 올랐다.

그것을 본 라미아가 말했다.

“준비해요. 5초 후에 이동해 올 거예요.’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존 워스를 힐긋 돌아보았다.

그러자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상황을 살피던 초인 중 하나가 이드의 눈길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중요한 일이신 듯한데, 허락하신다면 존 워스의 목은 저희가 베어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짧은 한숨을 쉰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마지막 목을 베기 전에 그가 끝까지 숨기고 있는 초인기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지금은 곧 등장할 부관주를 맞이할 때다.

“와요!”

부풀어 오르던 살덩이가 주입된 마나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순간, 마법진 위로 공간 이동의 마법광이 번뜩이고.

쿵.

다음 순간 단단하고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분리 작업은 까다로웠다.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되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강제로 지맥과 분리할 경우 충격이 갈 수 있었다.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분리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대신 그렇게 시간이 걸린 덕분에 해더웨이는 지하 깊은 곳에서 탑주와 침입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탑주가 사라진 후, 처음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였다. 곧 탑주와 침입자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한 충격파가 바이트 타블렛이 있는 이곳까지 밀려왔다. 단순히 충격파지만 이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정신의 관은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었고, 그중 바이트 타블렛이 있는 최하층에 대한 보호는 특히 대단해서 드래곤의 브레스에도 뚫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런 충격이 전해진다면….. 저 깊은 지하, 보호 마법의 경계에서는 도대체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과 동시에 해더웨이는 본능적으로 분리 작업을 서둘렀다.

누구보다 탑주를 따르고 믿는 그였지만, 바로 그 탑주와 이렇게 싸울 수 있는 침입자에 대한 불길한 본능이 시끄럽게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건 어쩌면 이드에게 죽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것에 대해 이드에게 전혀 고맙지 않은 해더웨이다. 

“예상보다 강력한 명예 후작의 힘에 정체불명의 침입자까지. 마탑의 위기다.”

그렇게 서둘러 바이트 타블렛을 지맥에서 분리한 직후다.

쿠구구궁!

묵직한 진동과 함께 석실이 흔들리며 돌가루가 떨어졌다.

해더웨이는 서둘러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그는 처음의 계획을 버리고 단숨에 정신의 관 밖으로 이동할 생각을 했다. 정신의 관 내에서의 이동은 현재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 덕분에 공간 이동 마법의 구축에 시간이 소모되었고,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

라미아의 커스 체이서 마법이 해더웨이의 써클을 타고 넘어와 공간 이동 마법을 오염시켰다.

“뭐, 뭐냐!”

생각도 못 한 현상에 해더웨이가 기겁했지만, 이미 발동을 시작한 공간 이동 마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공간 이동의 마법광이 번뜩인 직후, 더 이상 최하층에는 해더웨이의 머리통도, 바이트 타블렛도 없었다. 오로지 최하층을 가득 메운 복잡한 마법진과 바이트 타블렛이 놓여 있던 웅장한 제단이 다였다.

퍼걱.

그리고 수분 뒤, 텅 빈 최하층의 바닥이 무너지고 그 속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왔다.

공간 이동이 끝난 순간, 해더웨이는 최고로 긴장했다. 그는 공간 이동 직전 일어난 현상을 똑똑히 기억했다. 믿을 수 없지만, 누군가 자신의 공간 이동에 개입한 것이다.

강제적이었으니 절대 좋은 의도는 아니었을 터.

공간 이동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자신과 바이트 타블렛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보호 마법으로 요새를 만든 해더웨이는 그제야 자신이 이동된 곳을 확인했다.

“휴, 아직 던전 안인가?”

“그래. 던전 안이다.”

그리고 눈에 익은 석실에 마음 한편 안심하려는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머리통을 내리누르는 발이 있었다.

“부, 분명 보호 마법을 아홉 겹이나 둘렀는데……. 그걸 뚫고?!”

“굳이 그걸 다 뚫을 필요 있나.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들어와 있으면 되는걸.”

묘하게 귀에 익은 목소리에 오싹한 전율을 느끼며 시선을 돌리는 해더웨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의지만 있으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머리까지 움직인다.

“며, 명예 후작?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설마 후작 부인이 날 이리 부른 건가?”

“당신이 도망가니 쫓아온 건데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그나저나, 도망갔던 게 미안했나 봐? 이런 선물도 들고 오고. 이거 바이트 타블렛 맞지?” 

이드는 이게 왠 떡이냐는 표정으로 바이트 타블렛을 슬금슬금 쓰다듬었다.

공간 이동 전, 함께 이동하려던 물건이 중요할 것 같다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설마 바이트 타블렛이었을 줄이야. 그것도 형태가 조금 다른 것이, 거래로 넘긴 생명의 관 표가 아니라 정신의 관표 바이트 타블렛인 것 같지 않은가. 라미아의 기쁨에 찬 환호성을 봐도 확실한 것 같다.

“선물은 잘 받도록 하지.”

“이건 안 돼! 이 개자식아!”

발악하듯 소리치는 해더웨이. 동시에 머리통에서 돋아난 촉수의 끝에서 마법이 번뜩이며 이드를 향한다.

“돼!”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이드가 발에 힘을 줬다.

퍼석!

발끝에서 일어난 전사경에 이드가 밟고 있는 머리통 일부가 부서지고, 회오리처럼 퍼져 나가는 전사경이 머리 가죽을 찢어발기는 것도 모자라 꿈틀거리는 촉수 끝까지 전달되며 터지기 직전의 마법이 그대로 폭발해 버린다.

이드는 그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손대고 있던 바이트 타블렛을 라미아에게 던졌다.

해더웨이가 요새처럼 둘러놓은 마법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바이트 타블렛이 닿자 마법들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이드가 바이트 타블렛을 던지는 순간 그 표면에 철황기를 둘러 두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귀중한 물건이 망가지도록 그냥 던질까.

“선물이니까 보관 잘 부탁해.”

“당연하죠!”

라미아가 날아오는 바이트 타블렛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쳤고, 그 앞에 검은 아공간의 구멍이 생겨나 바이트 타블렛을 삼켰다.

“끄아아악! 당장 내놓지 못하겠느냐!”

그 모습에 해더웨이가 다시 발작을 시작했다. 탑주의 명령도 있지만, 그 이전에 바이트 타블렛이야말로 그들 미완의 마탑의 정수이자, 마법사들의 피와 땀이 깃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걸 두 눈 뜨고 빼앗기는 상황이니,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사라진 물건 이야기는 그만하고, 당신은 나하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하지만 아무리 눈이 돌아가면 뭐하나. 해더웨이가 뭘 하고 싶어도, 이드의 발에 밟혀 있는 상황이 변하는 건 아니다.

“징하구만, 그 와중에 또 초인들의 뇌를 집어넣고 있네.”

퓨퓨

이드는 지력을 뿜어 초인들의 뇌를 파괴했다.

이것이 피해자들을 위한 일이란 것을 알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거칠게 해더웨이의 뇌를 머리통에서 끄집어냈다.

“추, 춥다. 추워.”

“나약한 놈. 겨우 그 정도로……..쭛, 됐다.”

이드는 다시 덜덜 떨어대는 목소리에 혀를 차고는 해더웨이의 뇌를 장력을 뿜어 부숴 버렸다.

이번엔 놓치지 않은 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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