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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53화


989화

메르시오가 두른 화염의 방어력은 강력하다. 오죽하면 미스릴마저 가르는 검강으로 베어도 꺼지지 않을 수준이다.

그러나 불꽃의 안쪽까지 그런 방어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뿌드득. 와드드득.

목을 조이는 고리의 압력이 높아져 갔다. 뼈가 갈리고, 근육이 짜부라지는 소리가 섬뜩하다.

“캥!”

물어뜯으려 쩍 벌어진 주둥이에서 갯과 특유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와 함께 부서진 뼛조각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과연 메르시오랄까.

그러는 중에도 놈은 이드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목덜미를 잡혀서인지 더 지독하게 노려 온다. 그런다 한들 이미 목줄이 채워진 맹수가 두려울 것이 무언가. 태주묵혼을 전신에 두른 이드의 손짓은 느렸지만 여유가 있었다. 터턱!

이드의 손에 메르시오의 위턱과 아래턱이 잡혔다.

그러자 강철도 깎아 낼 듯 살벌한 삭풍이 휘몰아쳤다. 녀석의 송곳니 위로 검강처럼 솟은, 특유의 은빛 마나의 예기와 함께. 그러나 아무리 살벌한 삭풍도 빛보다 빠를까.

지나는 빛도 멈춰 세워 어둠으로 바꾸는 태주묵혼 앞에 삭풍은 산들바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송곳니에 솟은 검강 같은 예기는?

“사람을 무는 개는 벌을 받아야지.”

텁!

번뜩이는 예기가 어떻게 하기도 전, 이드는 쩍 벌어진 주둥이를 강제로 닫아 버렸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턱을 누른 이드의 손이 잡은 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날 정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드와 눈이 마주친 순간, 메르시오의 두 눈에 붉은 열기가 어렸다. 그러자 이드는 턱을 잡은 손을 그대로 꺾어 버렸다.

찌지직, 근육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발 늦게 발사된 스칼렛 버스터의 열선이 멀쩡한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메르시오는 죽지 않았다.

바닥에 처박혀 이드에게 밟힌 머리와 달리, 거대한 몸은 여전히 이드를 향해 달려들며 화염을 뿜으려 했다. 그에 이드가 허공을 밀 듯 손을 밀었다. 처처처척!

그러자 메르시오의 목을 조이던 고리가 여러 개로 늘어나며 몸통까지 조였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확실했다.

맹렬히 일어서던 화염이 힘을 쓰지 못하고, 바닥을 차던 네 발은 힘없이 늘어졌다. 마나와 신경을 단번에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모두 원원대멸력 봉의 고리가 가진 공능이었다.

그 모습에 내심 작은 한숨을 내쉬는 이드다.

원원대멸력이라는 목줄이 가진 힘은 강력하지만, 사용하기는 좀 번거로웠다. 그걸 상대에게 걸기까지가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싸움에 미친 메르시오.

승부에 대한 본능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이 예민하다. 처음부터 원원대멸력을 꺼내 들었다면 절대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드가 태주묵혼의 힘을 끈질기게 정면으로 부딪쳐 방심을 끌어내고, 중간에 탑주와 베리타스가 끼어들고, 마지막으로 공간 분쇄라는 상황까지 펼쳐져 가능했다.

“후~”

자신도 모르게 나온 한숨.

이드는 푹 하고 웃고 말았다. 놓치지 않을까 맘을 졸였는데, 막상 이렇게 잡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래도 걸렸다. 그렇지? 너 하나 잡는 데 거의 백 년이 걸렸으니 말이야.”

“크르르르,”

주둥이를 밟혀서 그런지 답이 없다. 그저 입에서 피거품만 흘릴 뿐.

그러나 그런 메르시오의 상태를 보고도 이드는 여유롭지 않았다. 

“쯧, 시간도 별로 없지만.”

슬쩍 고개를 든 이드가 결계를 살폈다. 어느새 결계 안의 마나는 한계치까지 거칠어져 있었고, 균열이 가득하던 결계는 이제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당장이라도 공간 분쇄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어쩔 수 없지. 적으로서 나도 존중해 주고 싶지만, 이렇게 나오는데 어쩔 수 없다고.”

이후 상황에 대한 책임 소재를 확실히 밝힌 이드가 메르시오의 턱을 다시 잡았다. 화염이 반응하지만, 이미 목줄에 걸려 제힘을 쓰지 못하니 소용이 없다.

가죽을 파고든 이드의 손에 뜨거운 근육과 함께 단단한 턱뼈가 잡혔다.

다음 순간.

“우랴압!”

대대적인 기합과 함께 메르시오를 들어 올려 패대기치는 이드였다.

“무, 무슨!”

얼마나 놀랐는지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메르시오가 당혹해 소리칠 정도. 그 반응에 이드는 비시시 웃으며 허리를 꺾었다.

쿠쿠쿵!

이 자리에 유도 관계자가 있었으면 훌륭한 메치기라고 감탄했을 거다.

메르시오를 메친 바닥이 내려앉고, 사방이 들썩이며 먼지가 일어났다.

모르긴 몰라도 몸속 뼈마디 하나는 더 부러지고, 내장에 구멍 하나는 더 났을 충격량.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이드는 돌에 빨래를 내려치듯, 멈추지 않고 메르시오를 내리쳤다.

결계가 있는 게 다행인 순간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 바닥이 통째로 내려앉았을 테니.

그러나 진짜 대단한 건 메르시오를 메치는 이드의 근력이었다.

메르시오에 비하면 작디작은 저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숨었을까. 아무리 이드의 뼈와 근육이 환골탈태를 넘어선 단계에 있다고 해도, 메르시오를 휘두르는 근력은 그것을 초월한 수준인데 말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원원대멸력에 있다.

물론 근육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 메르시오를 들어 올리고 휘두르는 것은 모두 물리력이 아니라 원원대멸력을 의념으로 움직여 벌인 일이었다. 일종의 이기어강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물론 이해만 쉽지, 납득까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내력으로 메르시오를 들어 올리는 것도 근력으로 그리하는 것만큼이나 고개가 저어질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하나 단순히 내력만 많아서는 상대를 이렇듯 쥐락펴락할 수 없다. 즉, 힘 못지않은 섬세한 컨트롤은 필수다.

메르시오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 봉과 해의 힘을 교묘하게 교차시켜 충격이 온전히 메르시오에 가도록 조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순 근력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내력의 운용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굳이 이런 방법을 택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쾅쾅쾅쾅!

저기 멀리서 느껴지는 탑주에게 하는 무력시위임과 동시에.

“크어어어!”

메르시오의 자존심과 오만함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메르시오가 언제 이렇게 휘둘려 본 적이 있겠는가.

물론 그 외에 하나의 노림수가 더 있지만, 그건 잠시 후의 일이고.

“휴우~ 땀나네. 어때, 이제 이야기할 생각이 들어?”

“크….르르르르.”

“쯧,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그렇게 죽어가는 척하는 건 늑대답지 않다고 대답할 머리도 있잖아.”

퍼퍽!

말과 함께 이드가 발출한 지력이 메르시오의 양쪽 어깨를 꿰뚫는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번뜩이는 눈이 나타나고, 그 눈은 곧 온전한 늑대 머리로 변해 솟아올랐다.

다만 원원대멸력 때문인가. 크기는 처음 봤을 때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노란 눈이 번뜩이며 이드를 향했다.

‘젠장. 눈빛 좋네.’

그 눈빛에 내심 실망하는 이드다. 걸레처럼 패대기치며 그렇게 자존심을 짓밟았는데, 전혀 분노한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냉정하다.

이러면 우연이라도 정보를 획득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일단 태연히 행동하는 이드다.

“거, 눈빛 한 번 살벌하네.”

“어쭙잖은 연기는 집어치워라. 원하는 게 뭐냐?”

“초인. 폭주. 별의 의지.”

“크흐흐흐. 멍청한 질문이군.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을 텐데?”

“……나머지 혼돈의 파편과 드래곤들의 행방.’

“그래. 그런 걸 물어야지. 하지만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차원의 인의 주인이여. 더 이상 날 모욕하지 마라.”

“멍청한 게 누군데 죽이고 살리는 건 승자의 권리, 야!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말하는 중에 어깨 안으로 사라져 버리는 머리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드다.

다 죽어 가는 놈에게 무시를 당하다니. 하지만 속은 그보다 다른 문제 때문에 더 좋지 못한 이드다.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 노림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행동으로만 봐서는 살기를 포기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돈의 파편도 패턴이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은 저런 모습을 보이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고문을 해 볼 수도 있으나, 어쩐지 소용없을 듯하다. 차라리 전투 중이었을 때가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더 쉬웠을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일단 천천히 생각 좀 해 보자. 하는 김에 여기서도 좀 나가고.”

라미아에겐 바로 나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변했다. 공간 분쇄가 시작되기 전에 메르시오를 잡았으니, 굳이 이 위험한 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분명 라미아의 말에 따르면 12대 식 정도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다고 했었다.

이드가 메르시오를 허공에 띄웠다. 그의 몸을 제압하고 있는 것은 원원대멸력. 분명 12대 식이다.

부웅!

이드와 원원대멸력을 이어 주는 내력의 흐름을 따라 허공을 가로지르는 메르시오.

놈이 그대로 결계의 벽에 충돌한다.

쩌릉!

사실 원원대멸력의 공격력은 높지 않다. 애초에 공격기라기보다는 상대를 제압하는 용도인 데다, 현재 그 힘조차 내부의 메르시오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원원대멸력에는 강력한 반탄력이 깃들어 있다. 적을 봉쇄하기 위한 힘 중 하나다.

거기에 패대기칠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틈을 만들어 결계에 접촉시키는 메르시오.

그가 딱 힘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활활 타오르는 화염과 그의 존재 자체는 공간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강력하다.

충분히 포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동시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르시오에 대해 강압을 보여 준 것이기도 하다.

자신을 모욕하지 말고 깨끗이 죽여 달라고 하지만, 어찌 대우할지는 어디까지나 승자인 이드의 권한이다.

할 때까지 해 보고 정 안 되면 그때 죽여 줄 생각이다.

물론 그 전에 이 공간 분쇄의 영향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지만 말이다.

떵! 떠렁!

이드는 메르시오를 매단 원원대멸력을 마치 유성추처럼 다루었다.

다른 무공처럼 깊이 수련한 것은 아니지만, 유성추도 18반 병기의 하나로서 기본은 한다.

거기에 만류귀종이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처음엔 뜸하던 결계를 두드리는 종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찌르르르릉!

마치 이른 아침,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의 종소리처럼.

“끄아아악! 저주받아라! 차원의 인의 주인!”

그리고 소리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메르시오의 목청도 같이 터졌다.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원독에 가득한 목소리다.

역시 종족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만물은 매 앞에 평등한가 싶은 깨달음에 닿으려는 순간.

푸르륵.

메르시오의 양어깨에 솟아난 두 개의 머리에서 청백 화염이 피어오르더니, 목뼈가 부러진 머리의 입에서 휘몰아치는 삭풍에 흘러들어 화염의 폭풍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드가 계속 모른 척했다면 어떤 식으로 기습했을지가 예상되는 모습이다.

지금도 그 목표가 이드인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하나 메르시오에겐 유감스럽게도 화염의 폭풍이 완성되는 것보다 이드가 움직이는 것이 먼저였다.

“적극 협조에 감사한다. 이 자식아!”

단숨에 메르시오를 결계 반대쪽 끝까지 날려 보낸 이드.

그리고 다음 순간, 밀려난 만큼 빠르게 날아오는 메르시오는 말 그대로 생체 미사일과 같았다. 그것도 화염의 폭풍이라는 멋진 폭탄을 머금은. 빠가각!

그 때문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두드린 덕분인가. 충돌의 소리부터 다르다.

검게 변한 결계에 한 줄기 하얀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곳으로 메르시오가 머금은 화염 폭풍이 쏟아져 들어갔다.

공간 분쇄가 시작된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건 분명 폭음이었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공간이 갈라지며 지르는 듯한 비명이 피부와 뼈를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건 부서지는 거울 같았다. 혹은 불타 일그러지는 사진 같기도 했다.

그 압력이 이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순간.

하얀 균열을 기준으로 무너지던 공간이 둘로 나뉘었다. 그중 절반은 이드에게 향했고, 나머지 절반은 화염의 폭풍을 타고 메르시오의 머리를 향해 달려들더니.

퍼억!

터져 버렸다. 메르시오의 머리와 함께.

“아악! 이런 젠장!”

다만 비명은 메르시오가 아닌 이드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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