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58화
994화
끼야호~ 회의가 멈췄다.
난데없이 들린 방정맞은 환호성 때문이다.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그 속에 담긴 기쁨과 감격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전해진다. 이 정도의 감정 전달력이면 음유 시인이나 가수를 해도 크게 성공할 것 같다.
“누군지 몰라도 점잖지 못하게.”
“전우와 함께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은 모양인데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하하하.”
“쉴라 단장의 목소리 같기도 합니다만, 제 착각이겠지요?”
평소 청력이 예민한 누군가의 말에 여기저기서 비웃음이 터진다.
“그걸 말이라고요! 도대체 쉴라 단장님 같은 분을 어디에 가져다 붙이시는 겁니까!”
거기에 기사의 표본같이 생긴 쉴라의 팬이 발끈하기까지 하자 말을 꺼낸 남자가 목을 움츠렸다.
“크크큭. 그만들 하십시다. 오늘 술자리엔 은색 기사단의 여기사들도 함께하고 있으니, 그중 하나겠지요. 이거, 말하고 보니 밖에서 은색 기사단과 친분을 쌓고 있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던 회의를 빨리 끝내도록 하시지요?”
“크흠. 그러시지요.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래도 누군가 덕에 어수선해지는 장내는 곧 정리되었다.
혼자 일어서 있던 토리빈 마법사는 대화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혀를 찼다. 나이 때문인지 부쩍 이런 일이 잦아진 까닭이다.
반대로 사람들은 몰래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마법사답게 전문적이고, 그런 만큼 복잡하게 이어지는 긴 설명에 머리가 복잡해지려던 참이었으니까.
“굳이 더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이미 충분히 토리빈 마법사님의 주장을 이해했습니다. 이대로 토벌대가 철수할 경우 땅속 전리품을 모두 빼앗긴다는 말씀 아닙니까.”
누군가 말을 꺼낸 덕에 무슨 이야기 중인지 생각이 난 듯 토리빈 마법사가 무릎을 쳤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레센에 이번 토벌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자리만 비워 보십시오. 당장 각국의 도굴꾼들이 모여들어 두더지처럼 땅을 파 댈 겁니다. 그리고는 전리품과 자료들을 훔쳐 가겠지요. 비록 제국의 힘이 강하다고 하나, 그 많은 도둑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그 도굴꾼을 각국에서…….”
“발언에 조심해 주세요. 토리빈 마법사.”
점점 열이 올라 선을 넘는 발언에 조용히 앉아 있던 황녀가 끼어들었다.
그에 뒤늦게 아차 싶었던 토리빈 마법사가 재빨리 사과했다.
“큼. 열이 올라서 그만, 실례를 범했습니다.”
“가까운 막사에 타국의 분들이 계신 만큼 조심해 주십시오. 다른 분들도요.”
재차 주의를 당부하는 황녀의 당부에 늘어졌던 마음을 다잡는 사람들이다. 굳이 저들에게 알려서 좋을 게 없는 내용이니까 말이다. 그 뒤 토리빈 마법사의 발언을 토대로, 그 주제에 관한 회의가 이어졌다.
애초에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발굴을 시작하든, 경비를 서든 황제 앞에서 벌어지는 승전식에 빠져야 하는데, 그 자리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 문제는 황제 폐하의 명을 기다리는 것으로 합시다.”
지루한 눈치 싸움 끝에 결론이 나자 오직 토리빈 마법사만이 만족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의견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승전식엔 관심이 없어 진지에 남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밝혀 두었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전장 정리에 관한 주요 안건이 모두 해결되자 록마틴 후작이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다.
“크흠. 그럼 이제 미루고 있던 문제를 논의해 봅시다.”
“그・・・・・・ 웨어울프를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거대한 늑대로 변하던.”
“그러나 놈에 대한 것은 이곳이 아니라 황제 폐하께서 직접 논하실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만.”
한 사람이 난감한 듯 말했다.
사건의 크기로 보면 그의 말이 옳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온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잴 수 없는, 메르시오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당연히 그러실 것이오. 하지만 그 전에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한 나와 여러분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명하셨소.”
황제의 의중을 먼저 말한 뒤 잠시 말을 끊은 록마틴 후작은 속이 타는 듯 와인을 단번에 마셔 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선 주요 대신들이 이 웨어울프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실 것을 염려하셨소.”
씁쓸한 표정이 된 록마틴 후작.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으니까.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나 인정하는 최강의 제국이 웨어울프 한 마리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 말이다.
“이거, 차라리 드래곤이 난동을 부린 거면 마음이 편했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크하하하. 맞습니다. 맞아요.”
한숨 같은 농담에 와 하고 웃음들이 쏟아졌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드래곤이면 설명이 필요 없다. 거의 백 년간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드래곤이지만, 세상 사람 누구도 그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 늑대로 변신하는 웨어울프?
그런 건 없다. 듣도 보도 못했다.
까마득한 과거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는 그에 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때다. 조용히 앉아 있던 황녀가 눈을 뜨고 주변을 살핀 것은.
그녀는 사실 이 자리가 아니라 이드의 막사에 함께 하고 싶었다.
거기서 이드가 어떤 모험을 했고, 어떤 존재와 싸웠으며, 상대는 얼마나 강했는지 등등. 정말 묻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다.
거기에 피곤하다고 하면 이 자리를 피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제국 황녀로서는 철없는 행동이지만 뭐, 어떤가? 매번 그런 것도 아니고, 가끔인데.
그녀가 없으면 안 되는 자리도 아니고.
그럼에도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이드에게 미리 부탁을 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것을 들어주기에 적절한 때인 것 같았다.
“메르시오.”
“예?”
“여러분들께서 말씀하기는 웨어울프 말입니다. 메르시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짧은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머리를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황녀의 말에 대한 이해가 끝난 순간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하, 하면! 황녀 전하께선 그, 그 메르시오라는 웨어울프가 어떤 존재인지 아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끄덕.
“황제 폐하께서는……………?”
급히 묻는 록마틴 후작. 아무래도 메르시오에 대한 궁금증보다 황제가 아는지에 대한 여부가 더 중요한 듯하다.
그에 황녀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당연히 따로 말씀드렸어요.”
“그럼 저희들에게도 들려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대체 그 괴물이 어떤 존재인지…… 도대체 황녀 전하께선 어떻게 알게 되신 것입니까.”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목이라도 잡아 흔들 것 같다.
황녀는 길게 끌지 않고 그들의 호기심을 풀어 주기로 했다.
“그 이름의 출처는 명예 후작입니다. 혹시 혼돈의 파편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를 가진 분이 있으신가요?”
“명예 후작이 메르시오를 어떻게?”
“혼돈의 파편이라니・・・・・・ 토리빈 마법사님?”
“모르네, 황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그런 단어에 관한 기록은 본 적이 없어.”
서로를 돌아보며 아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소란스러운 모습에 록마틴 후작이 나섰다.
“진정들 하고, 황녀 전하의 말씀을 더 들어 봅시다.”
“감사합니다.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거의 백 년 전, 대륙 전쟁으로 번질 뻔한 제국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 이 전쟁은 아는 분이 있으시군요.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의문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참으로 이상하게 시작해서, 이상하게 끝났으니까요. 혼돈의 파편은 바로 이 전쟁을 일으킨 원인입니다. 당시 그들은 카논 제국에 숨어 암약하고 있었지요. 아,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범한 존재는 아니랍니다. 평범한 존재가 백 년이 넘어 아직까지 살아 있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러자 토리빈 마법사가 호기심 어린 표정과 함께 믿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나섰다.
“그럼 메르시오라는 이름의 웨어울프가 그 혼돈의 파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참고로 혼돈의 파편은 메르시오 하나가 아니라 모두 여섯입니다.”
“크흐. 믿고 싶지 않군요. 저런 괴물이 여섯이나 더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건 명예 후작께 사실 관계를 확인해 봐야 할 일입니다.”
즉, 이드가 했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을까.
당장 메르시오가 자신의 영지를 공격해 오면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다섯이나 더 있단다.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심은 접어 두세요. 혼돈의 파편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니까. 해당 정보는 이번 사건 전까지 황실의 기밀로서 보관되던 것이니까요.”
황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의심할 사람은 없다.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후우~”
고개를 젓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때, 그중 하나가 번쩍 고개를 들어서는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는 명예 후작님께 직접 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진정하게. 명예 후작을 대신해 황녀 전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나. 명예 후작에겐 나중에 들어도 되는 일이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또 어딨습니까?”
“우선 황녀 전하의 말씀부터 더 듣고 말하시게.”
“끄응.”
불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진정이 되자 황녀가 말을 이었다.
이드가 그녀에게 공개를 부탁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어차피 개인 사정을 제외하면 몇 가지 없었으니까. 그에 따라 황녀는 혼돈의 파편에 대한 자료 일부와 이드 일가의 목적이 혼돈의 파편에 있음을 대신 밝혔다. 혼돈의 파편에 대한 정보도 제국에 기록된 자료를 기준으로, 그 이상의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설마 명예 후작께서 하시는 일이 혼돈의 파편을 쫓는 것이었다니.”
“이 때문에 명예 후작께서 정식 작위를 거부하셨던 것이군요.”
“백 년 전 마인드 마스터 때의 악연이라니, 거기에 그 악종이 제국에 숨어 일을 꾸미고 있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황제가 작위를 내릴 때 이드가 일부 거부했음을 알고 있다.
그때는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납득이 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선대에 만들어진 원한이란다. 거기에 제국과도 관련된
사람들은 이 문제가 절대 가볍지 않음을 알았다. 제국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과거에도 대륙을 전쟁으로 몰고 갈 뻔했던 존재들이 더 큰 힘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금이라고 그들의 목적이 달라졌을까. 록마틴 후작은 이제 말릴 수도 없을 정도로 소란스러워진 막사 안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 문제가 쉽지 않겠구나.’
이번 회의를 통해 이드를 제국의 품으로 끌어안을 논의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튀어나온 메르시오와 혼돈의 파편이라니.
이 문제는 이드를 제국인으로 만드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중요했다. 지금 이드를 제국인으로 만들자는 문제를 꺼내 봤자 이야기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혼돈의 파편이란 존재가 있고, 이드가 그들을 쫓는 이상, 이드와 사이가 더욱더 벌어질 수 있는 일을 함부로 진행하기 조심스럽다는 점도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