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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6화


493화

사람이 싸우게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죽이는 데에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의외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 물론,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의도치 않게 상대를 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때도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동기가 필요하고,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의 감정이 고조되고, 서로 격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런 몇 가지 부분이 전제되었을 때 사람은 상대를 죽이게 된다.

이런 요소들을 뭉뚱그려 분위기라고도 말한다.

흔히 ‘상대를 죽일 분위기다.’라고 말했을 때의 ‘분위기’가 바로 이것이다. 어떠한 일을 계기로 삼아 상대에 대한 증오를 태워 살기를 띠는 것. 괜히 전쟁에 앞서 사령관이나 상사가 앞에 나서서 연설을 하여 병사들을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다. 병사들에게 전투 의욕을 심고, 싸워야 할 동기를 주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하의 투기를 심어 상대와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분위기가 잡히지 않으면 상대를 죽이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한창 전투 의욕을 고취시켰는데, 양측 군사들 사이에 피에로가 나타나 양측의 병사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면?

서로 마주 보고 껄껄 웃으며 한참 동안 같은 감정을 공유한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바로 창칼을 들 수 있을까? 좋은 지휘관이라면 차라리 이들을 쉬게 하고, 하루 이틀 빡센 훈련으로 그때의 기억을 날려 버린 후에 전투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지휘관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 상대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군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드도 같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상대를 죽일 수는 없었다. 감정 없이 상대를 죽이는 것은,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살수밖에 없다. 그리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재미로써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그저 살인마일 뿐이다.

이드가 하이탈 자작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은 분노와 약간의 호기심이었다. 강해지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행위,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과 분노,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얼마나 강해졌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이온의 예상대로 하이탈 자작이 에단을 노리고서 자신과 일리나를 공격한다면 그 감정을 연료로 상대를 불태워 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이 지금 빗나가고 말았다.

분명 에단을 노리고서 욕망을 태워야 할 하이탈 자작이 오히려 호감을 앞세우며 파이온 잡는 일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드가 공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이거 혹시 파이온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요, 마스터?”

하이탈 자작은 도움 요청과 함께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일행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는 천천히 나누기로 하고서 저녁식사 시간까지 쉴 수 있는 방을 안내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어’ 하며 끌려가던 에단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혹시 있을지 모를 귀를 조심하며 이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후후. 네가 보기엔 그때 파이온이 거짓말을 한 것 같았어?”

이드는 픽 웃으며 되물었다.

그 말에 에단은 잠시 이드를 멀뚱히 바라보다 대답과 함께 눈을 돌렸다.

·제가 헛소리를 들었나 싶어 해 본 말입니다. 크흠.”

“그나저나, 네 초인기로 본 자작은 어때?”

“마스터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파이온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그의 기운은 탁해서 깊이를 알 수 없고, 너무 무겁게 느껴졌거든.”

에단은 이드의 말을 들으며 얼굴을 찡그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 건 검은 뱀입니다.”

자작에 대한 에단의 감상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뱀이요?”

“그렇습니다. 정말 새까만 뱀이었습니다. 그것도 배불리 먹이를 먹어서 배가 든든한 놈입니다.”

이드는 먹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벤이라는 산적인가?”

파이온이 말했던 두 산적의 이름이 티티와 벤이었다.

“글쎄요. 파이온의 이야기 흐름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어떨지는 모르죠. 무엇보다 흡수가 빠릅니다. 아마 이대로 삼 일 정도가 지난

후에 봤다면 자작의 색깔 안에 다른 색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에단은 검은 뱀의 가슴부터 아랫배까지 연기처럼 하늘거리던 하늘색 기운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파이온의 말이 사실이라는 말이네요.]

“그렇겠지.”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미아가 파닥이며 이드의 머리까지 날아갔다.

[이제 어쩔 거예요, 이드? 정말 파이온이라도 찾으러 갈 생각이에요?]

라미아의 물음에 이드가 픽 웃어 버렸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런 장난을 쳤다가는 파이온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으니 그만두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자작이 무슨 생각인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정말 에단과 내 실력을 가지고 파이온을 찾을 생각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지.”

조심스러운 이드의 발언에 에단이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덮쳐 버리는 건 어떨까요? 마스터. 굳이 자작의 생각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에단의 과감한 발언에 라미아가 놀랐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였다.

[우와, 과격하다. 언제 그렇게 대담해졌데요, 에단?]

하지만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에단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말이었다. 이쪽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의 생각이나 작전을 알 필요가 없다. 그냥 힘으로 모두 부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이드는 그 일이 가능한 힘을 가진 인물이다.

무엇보다 에단으로서는 포식자와 같은 위험인물을 최대한 빠르게 치워 버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살아 있을지 모를 사람부터 찾아본 후에 생각해 볼 문제야.”

만약 파이온과 함께 산적 일을 하던 사람 중 하나라도 찾게 된다면 자작이 먼저 달려들어 올 것이다.


“으아아아악! 이런 빌어먹을!”

와장창!

제리는 씩씩거리며 앉아 있던 탁자를 뒤집어엎어 버렸다. 순식간에 바닥이 난장판으로 변하며 깨진 그릇들이 여기저기 튀었다. 투둑투둑.

톰은 자신의 발 앞으로 굴러온 그릇 조각을 발로 밟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씨, 이 용병단도 이제 끝인가?”

그때 제리가 다시 소리쳤다.

“도대체 저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손해가 얼마야!”

제리는 불같은 눈으로 앓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누워 있는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이드에게 나가떨어졌던 용병들로, 길드의 부지부장인 일락이 확실한 징계를 이드에게 약속했던 자들이었다.

일락은 정말 이드의 부탁대로 길드 차원의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용병대의 대장인 제리는 그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용병들은 자신들을 지켜 줄 수 없는 용병대를 믿지 않는다. 제리가 용병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길드에 잡혀 있는 용병들을 빼내 와야 했다. 상대가 만만하다면 엘프의 존재와 상관없이 해결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상대의 실력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그 인원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건을 완전히 무마할 정도의 돈은 없다.

제리는 지부장을 찾아가 남은 돈을 그에게 안겨 주고 부상이 심한 놈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길드에서 사비를 들여서까지 그들을 치료하지는 않기 때문에 용병단에서 치료해서 길드로 보내겠다고 약속하고서 데려온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은 길드도 부상병을 데려가지 못한다. 그만큼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다. 그 시간 동안 사건을 무마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길드와 용병들이 서로 한쪽 눈을 감아주는 사건 해결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법도 치료 기간 안에 돈을 구할 수 있는 용병단이나 실행할 수 있었다. 제리의 용병단은 이번 사고로 거의 모든 용병들을 잃었다.

일을 해야 돈이 생기는데, 일을 할 전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야, 톰! 해결한다면서! 도대체 언제 해결되는 건데!”

제리는 화를 내다가 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제는 끝이라고 발작 하는 제리를 달래며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톰이었기 때문에, 제리는 마음 편하게 그에게 책임을 던져 버린 것이다. 

‘에라이, 빨간 문어새끼! 되게 쨍쨍거리네.’

얼굴을 구기고 있던 톰은 제리의 고함에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이, 대장. 일이 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요. 좀 느긋하게 기다려 보세요. 좋은 소식이 곧………..

“야, 이 새끼야. 느긋하게는 무슨 느긋하게야. 일락 그놈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남은 놈들은 당장이라도 사냥터로 끌려가게 생겼단 말이야. 그놈들 확보 못 하면 우리 용병단은 끝이라고! 끝! 알아? 이 새끼야!”

잔뜩 핏대를 새우며 고함치는 제리의 머리가 열기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꼭 빨간 문어의 머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덕분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를 빨간 문어라고 조롱하기를 즐겼다.

“당연하죠!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확실한 방법을 써 놨다구요.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진정 좀 해 봐요. 대장!”

“이 새끼가 근데. 아까 전부터 뭘 계속………….”

똑똑−

다시 제리가 발악하려는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히려 난장판인 방 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확실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제리가 순간 입을 닫았고, 톰은 바로 문으로 달려갔다.

톰이 문을 열자 그 앞에는 땡그란 눈을 가진 극히 평범한 인상의 용병이 서 있었다. 그는 방 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보더니 한심한 표정으로 피식 웃고는 톰의 귓가에 몇 마디를 속삭여 주었다. 그 모습에 울컥한 제리였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가 톰이 말한 좋은 소식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재수 없는 왕눈깔 새끼!”

왕눈깔은 상대의 별명이다. 그는 하이탈 안의 소식에 대해서만은 용병길드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잠시 후 톰과의 이야기를 마친 그가 톰에게서 돈이 든 주머니를 받아 들더니 한 번 더 제리를 향해 비웃어 주고는 돌아 나섰다. 

“일 잘 해결해라. 빨간 문어!”

이 한마디를 남겨 두고서 말이다.

가장 싫어하는 한마디에 제리가 발작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톰의 말이 빨랐다.

“이…..”

“찾았습니다. 해결 방법!”

순간 제리는 톰의 말을 들을 것인가 왕눈깔에게 욕을 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 잠시 갈등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정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확실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왕눈깔 정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묻잖아, 이 새끼야. 저 왕눈깔 정보는 30%가 헛소문이잖아!”

“그래도 지금은 왕눈깔보다 믿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돈 나올 구멍이 없는데. 톰은 이 소리만 질러 대는 빨간 문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뭐야?”

“왕눈깔 정보로는 그 재앙 덩어리 엘프 년놈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놈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순간 제리의 붉은 머리가 더 붉어지고 흉터가 도드라지며 목에 핏대가 솟았지만, 그는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 블랙리스트면 더 문제잖아. 그게 어떻게 좋은 소식이야? 무슨 해결 방법이냐고?”

“물론, 여기까지는 나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블랙리스트의 집 안에서 지금 영주가 살벌하게 찾고 있는 산적 놈의 모습이 보였답니다.”

“ . . . . . . !”

순간 제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소식임과 동시에 지금 상황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특급 정보를 왜 자작에게 안 팔고 이쪽으로 가져와? 왕눈깔 그놈이 미쳤냐? 이거 독약 아냐?” 

“그게… ᆞ가까이서 직접 확인한 건 아니랍니다. 뭣보다 블랙리스트하고 엮이면 골치 아프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랬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용병들은 대부분 좋게 끝나는 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제리는 거기까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리는 붉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제 색을 찾을 때까지 생각을 하더니 무겁게 말했다.

“……이 정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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