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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60화


996화

“적색 기사단이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록마틴 후작이 말했다. 그에 라발이 이드에게 잘 보이려는 듯 급히 자세와 표정을 고치다가 내심 쓰게 웃었다.

검후 구출에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겼는데.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자신과 적색 기사단의 역할도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닌데 말이다.

핵심은 삼검왕에 대한 견제였다.

이드는 모이엔이 죽고, 청색 기사단이 전멸한 상태인 만큼 삼검왕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까진 청색과 황색 기사단이 삼검왕을 지지하면서 그쪽에 힘이 실렸지만, 이번에 청색 기사단이 전멸한 만큼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삼검왕은 이런 변화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응당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혼돈의 파편 중 하나로 강한 의심이 드는 존 워스를 놓쳤다.

이드는 그가 소드 팰러스로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라미아와 내기도 한 거다.

애초에 질 것 같았으면 내기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연락은 어떨까?

존 워스가 직접 복귀하지 않더라도 마법이나, 편지를 통한 연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드가 우려한 부분도 이것이다.

이를 통해 소드 팰러스에 남은 두 검왕이 던전에 있던 사건을 알게 될 경우, 가만히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물론 대놓고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적색 기사단을 먼저 공격한 것도 그들이고, 존 워스는 변장한 상태로 마탑과 손을 잡고 초인파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이는 절대 외부에 알릴 수 없는 비밀이었다.

사실 먼저 공격하고 공격받았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흔히 남을 죽일 땐 너도 죽을 생각을 하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입장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오히려 얌전히 죽지 않으면 괘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리라.

삼검왕이 그런 가치관은 아닐지라도 청색 기사단이 전멸한 이상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물리적인 타격을 주는 게 아니라도, 삼검왕의 위치를 이용한 우회적인 공격 방법도 많다.

이드는 이때 가장 위험한 것이 흑색 기사단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은색 기사단이나 적색 기사단은 이드를 따라 작전에 나서면 끝이지만, 흑색 기사단은 적진 한가운데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적색 기사단을 소드 팰러스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아무렴 승전식 중에는 삼검왕도 바로 움직이긴 힘들 것이고, 승전식이 끝난 후 적색 기사단이 복귀한 후라면 쏟아지는 관심 때문에라도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땐 흑색 기사단과 적색 기사단이 힘을 합치고 있을 테니, 어지간히 위험한 임무나 함정이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건 이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쉴라와 라발, 스폴은 물론이고 나중에 합류한 황녀까지 그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 검후 구출에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도 라발이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검후님을 무사히 구출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삼검왕의 견제, 잘 부탁해요.’

짧은 눈빛이 교차하고, 이드가 말했다.

“은색 기사단의 힘을 빌리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인데, 어떻게 적색 기사단까지 움직이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도 적색 기사단이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을 테고요.”

“그렇군요.”

록마틴 후작은 쉽게 납득했다.

어차피 적색 기사단은 소드 팰러스 소속, 록마틴 후작이 함부로 부릴 수 있는 기사단이 아니었다.

록마틴 후작이 물러선 이상, 이제 이드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조심을 당부하는 황녀의 배웅을 받으며 이드와 은색 기사단은 진지를 나섰다. 토벌대보다 한발 먼저 떠난 것이다.

“일단 진지에서 충분히 거리를 두죠. 저쪽으로 가요.’

라미아가 선두에서 방향을 잡은 이드들이 향한 곳은 붕괴된 던전 너머, 레이논 산맥 방향이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이드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토벌 중에 제대로 쌓지 못한 이드와의 친분을 뒤늦게라도 쌓아 보려 했던 계획이 눈뜨자마자 몽땅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쉽군. 아쉬워. 이렇게 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그건 벤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 주변에 모여 있던 일리나스의 귀족 중 하나가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일리나스엔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백작님.”

주변 반응과 다른 말을 꺼내는 남자. 그에 사람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확인한 벤텀의 입가에도 히죽 하고 웃음이 떠오른다.

“후후후. 자네 생각도 그렇지?”

“당연합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저희에겐 이그렌 경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중간에 껄끄럽던 사무엘도 마침 던전에서 실종된 덕분에 이그렌 경과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고 말이야. 만에 하나라도 사무엘 그자가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벤텀은 이전 사무엘과 같은 위치에서 이그렌을 중간에 두고 자기 위상을 높일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당연합니다. 그자가 초인도 아니고, 무슨 수로 저 땅속에서 기어 나오겠습니까.”

“그렇지. 이젠 그저 이그렌 경이 잘해 주길 바라면서, 시온 자작가에 지원이나 빵빵하게 해 주자고.”

“이미 준비 중입니다.”

“그런가. 하하하.”

그 말에 기분 좋게 웃는 벤텀.

하지만 그는 이드가 이런 모습을 노리고서 일부러 이그렌을 함께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과연 알까?


진지를 나선 이드들은 오래도록 달렸다.

토벌대도 진지를 떠났을 시간. 주변 언덕에 시선이 가려지는 넓은 공터가 나오자 라미아가 일행들을 멈춰 세웠다.

“여기가 적당할 것 같아요.”

“그럼 마침 점심때니까. 먹고 움직일까?”

이드의 말과 함께 금방 음식들이 차려졌다. 묘하게 몸에 익은 행동들이, 아무래도 검후를 모시며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듯하다.

거기에 기사이기 전에 여성의 섬세함이 더해지자 가볍게 소풍을 온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검후가 괜히 은색 기사단을 아낀 게 아닌 것 같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둘러앉은 식사 자리에서다.

딱딱해진 빵을 수프에 적셔 꼭꼭 씹어 삼킨 쉴라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런데 정말 이 인원으로 공간 이동이 가능한가요?”

“에이, 절 못 믿는 거예요?”

개구리처럼 볼을 부풀리며 내뱉는 라미아의 말에 그런 게 아니라며 손을 젓는 쉴라다.

“그냥, 아무래도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장거리 이동은 차원진의 영향이 더욱 크다고 알고 있어서.”

그녀의 걱정도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의 걱정에는 무엇보다 차원진의 영향이 컸다.

차원진은 아직도 전혀 진정되는 기미가 없다. 공간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마법 통신도 쉽지 않은 상태다.

당장 마법 통신만 해도 투입되는 코스트는 두 배, 비용은 세 배 비싸진 상태다.

공간 이동의 경우는 그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마탑에서도 아직 안정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저 가까운 거리에 한 쌍의 대응 마법진을 만들어 사용할 뿐, 장거리 공간 이동은 시도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민들은 알지도 못하는 일이지만, 은색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쉴라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보니 더욱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쉴라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미아는 팔랑팔랑 가볍게 손을 흔들 뿐이었다.

“전혀~ 걱정할 것 없다니까요. 무너지는 던전에서 토벌대를 이동시킨 사람이 바로 나라고요.” “그렇지만 그건 단거리잖습니까.”

쉴라가 답하기 전에 끼어드는 스폴.

“스폴 경도 걱정되나 봐요?”

“당연합니다. 저도 같이 가니까요.”

“어휴, 마법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래서 힘들죠.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요. 그때 토벌대를 이동시킨 건 차원진 상황에서 장거리 이동하는 것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고요. 던전을 운용하는 마나에, 각 개인이 뿜어내는 마나, 거기에 싸움으로 인해서 붕괴되는 마나까지. 나니까 모두 구출한 거지, 보통 마법사면 어림도 없어요.”

그때 상황이 생각난 듯 잔뜩 우쭐한 라미아에 스폴이 새삼 손뼉을 친다.

“그러고 보니 그때 토벌대 마법사님들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긴 했었죠.”

“그러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거기다 공간 이동이 아니면 에단이 있는 곳까지 어떻게 가려고요? 하루 이틀 거리도 아니고.”

과연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다. 초인파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이상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할 입장으로서 공간 이동은 최선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다시 묻는 것은 그녀가 많은 기사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그녀는 또 생각했다. 과연 안전하지 않으면 이드와 일리나가 함께하는 공간 이동을 라미아가 시도나 했을까를 말이다. 

“휴우~”

어차피 선택지는 한정된 상황이다.

쉴라는 결국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다행히 식사는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후 모두가 물러선 상태에서 라미아가 공터에 섰다. 공간 이동을 위한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서다.

“매직 핸드. 매직 라이트.

곧이어 보이지 않는 손과 함께 빛이 쏘아지며 공터에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실력이 좋아요. 설마 쉐어가든 턱밑까지 추적해 낼 줄이야.”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중 스폴이 문득 말을 꺼냈다. 이드가 거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허술한 면이 있긴 해도 충분히 믿을 만하지.”

에단이 들었으면 기뻐했을 만한 평가다.

“하지만 마지막엔 놓쳤죠.”

“뭐, 그렇긴 하지만. 하하.’

검후 구출이 결정된 전날 밤이다.

구출 작전을 시작하기 전, 에단과 연락을 시도했다. 추적 중 마스로 이동 중이라는 에단의 말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마침, 탑주를 통해 알게 된 정보가 바로 마스의 쉐어가든이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닿은 에단은 쉐어가든을 가까이 두고서 추적에 실패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를 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해 주실 줄은…….”

조금 위축된 목소리가 말과 달리 연락하기 전에 어떻게든 추적을 이어 가려 수를 내려 했던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딱 적당한 시점에 연락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괜히 끊어진 흔적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들쑤시다 쉐어가든에 발각되어 적의

경계만 사는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르니까.

“적당한 은신처를 구해. 우리가 갈 테니까.”

“우리라고 하시면 누가…….”

“나머지 이야기는 가서 하지.”

“이드님?”

아마 통신이 끊어진 직후부터 적당한 은신처와 함께 대응 마법진을 설치할 곳을 찾아내느라 동분서주하느라 제법 진땀을 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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