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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71화


1007화

“예상 도착 시간보다 좀 많이 빠르군요.”

에린의 짐작에 의하면 오늘 자정쯤이었으니, 그보다 무려 여섯 시간이나 빠른 도착이다.

이런 이드의 말을 질책으로 여긴 듯 에린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 마법과 신성력은 물론이고, 말까지 바꿔 가며 쉬지 않고 달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스의 욕심을 얕봤던 것 같습니다.” 

“사과할 일은 아니오.”

이드가 손을 내저었다.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다. 미행을 붙여 실시간으로 감시한 것도 아닌데, 중간에 일어나는 일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 일로 잘못을 묻는 것은 바보짓이다.

“그럼 현재 타란 기사단의 위치가?”

펄럭.

마스 동부가 그려진 지도가 펼쳐지고, 그중 한 부분에 에린의 손가락이 내리꽂혔다. 쉐어 가든과 이웃 영지 사이의 한가운데다.

“쉐어 가든에서 20킬로 떨어진 곳으로, 사냥꾼들이 가끔 들를 뿐 주변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숨어 기다리기 딱 좋겠군. 타란 백작과 수도 기사단은 당연히 도착 전일 테고?”

타란 기사단과 타란 백작이 쉐어 가든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하루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타란 백작 쪽도 타란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말을 바꾸며 미친 듯이 달리면 도착 시간이 좁혀지긴 하겠지만, 아무리 빨라도 시간 차이를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네. 말을 바꿔 가며 달리는 것을 전제로, 내일 2시 정도면 합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후 하루를 쉰 다음 작전을 시작할 테지요.”

질문과 동시에 막힘없이 술술 말을 이어가는 에린이다. 하지만 도착 시간을 틀렸기 때문인가. 조금 움츠러든 기색으로 말을 더했다.

“다만 마스에서 생각 이상으로 적극적이기 때문에 언제든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드는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도착하면 뭐 하나? 며칠을 달려 기진맥진한 상태일 텐데. 그 상태로 어디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는가. 하루를 쉬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속전속결도 중요하지만, 속도만 따지다가 실수하여 실패하면 그것만 한 낭패도 없다.

타란 백작이란 자가 풋내기라면 몰라도, 국경을 지키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을 테니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물론, 검후를 노리는 같은 경쟁자 입장에서 기뻐할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드 입장에서는 어떤 수단을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 쉐어 가든보다 타란 백작이 검후를 빼낸 후 그를 상대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최소한 그들에겐 검후를 갑자기 빼돌릴 방법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차원진이 일어난 것이 참 고맙단 말이지.’

잠시 그런 잡념을 떠올리던 이드는 곧 고개를 들어 쉴라를 보았다. 말없이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드가 에린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마스의 움직임에 맞춰서 움직입시다. 그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이 타란 기사단에 대한 감시인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위치를 파악한 즉시 감시를 붙였습니다. 다만 들키지 않게 거리를 두고 있어서 자세한 정보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더 접근시킬까요?” 

“그 정도면 적당하오.’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검은 돌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들의 야영지에 숨어드는 걸 맘 편히 두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

하다못해 저택이나 성에 머물고 있다면 하인으로 변장해서 숨어들었을 테지만……

거기에 이번 작전의 책임자인 타란 백작이 도착하지 않은 시점에 애써 접근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고급 정보도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인 것이다.

“오늘은 우리도 그만 돌아가죠.”

내성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더 없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에린이 감시 인원의 스케줄을 조종하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드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다 스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면 볼수록 에린 양의 능력은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런 모습도 명예 후작님께서 믿고 맡겨 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스톤의 말에 말없이 빙긋 웃음으로 답하는 이드.

무언가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던 스톤은 조금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설마 에린만 빼 가고 싶다는 의미인 걸까?’

특히 이드 아래로 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친 적이 있던 스톤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에겐 이렇다 저렇다 할 답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뜬금없이 에린의 칭찬이라니 말이다. 

‘눈치 없이 먼저 받아 달라고 요청을 드려야 하나?’

아무래도 하던 일이 일이라,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던 스톤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런 스톤의 모습을 힐끗 확인한 이드의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에린은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아 돌아왔고, 이드가 일행과 함께 식당을 막 나갔을 때였다. 

“오호~!”

갑자기 멈춰 선 이드가 흥미롭다는 듯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던 식당은 귀족을 위한 별채를 가지고 있을 만큼 큰 곳으로, 대로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로에는 당연히 수많은 사람과 마차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 정신없는 가운데 중 이드의 시선이 향한 곳은 커다란 가방을 멘 채 움직이고 있는 다섯 명의 상인들이었다.

“……진짜 오호, 네요.”

이어 이드의 시선을 쫓은 라미아의 눈도 동그래졌다.

“뛰어난 실력자들이로군요.”

“음.”

그 뒤로 이어진 반응도 하나같이 심상치는 않았다.

당연했다. 분명 하고 있는 꼴은 상인인데, 내부에 숨긴 힘은 최소 소드 마스터 급.

그 실력을 가지고 상인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기사나 상급 용병 일만 해도 돈을 봇짐 상인보다 수십 배는 더 벌 수 있는데 말이다.

“저쪽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적당히 눈들 돌려요.’

“검후님과 관계된 자들일까요?”

“아니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죠.”

이건 에린이 따로 분석하고 뭐고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빤한 일이다.

이드의 말에 재빨리 주변을 살핀 쉴라는 저들과 비슷하게 변장을 하고 움직이는 두 개 무리를 더 발견해 냈다.

“세 팀. 보이는 것만 셋이니, 인원이 제법 될 것 같습니다.”

“여섯입니다. 저들보다 앞쪽에 둘, 대로 뒤 좁은 골목 안에 하나가 더 있어요. 거기에 저 실력자들이 모두 초인.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없군요.”

“초인파. 바벨의 초인들이로군요. 마스의 움직임을 알았을까요?”

“그랬다면 차라리 방을 뺐겠죠. 적의 홈그라운드에서 고생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보다는 마탑과 소드 팰러스의 공격에 대한 예방 조치일 겁니다.”

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는 이드의 말에 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드의 말이 현 상황에 가장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때 두 사람의 곁으로 스톤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사람을 붙일까요?”

“음・・・・・・ 타란 기사단과 비슷한 느낌으로 붙여 보죠. 내성으로 들어가는 것만 확인해 주세요. 정문 말고 다른 출입구가 있을까 싶어서 붙이는 거니까 너무 다가갈 필요는 없습니다.”

뻔히 보이는 저들의 정체에 고개를 흔들려던 이드가 급히 마음을 바꿔 말했다.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정문 말고 다른 루트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감시를 붙이는 것이 힘든 일도 아니고, 혹시라도 정문 이외의 출입구를 발견하면 좋은 일이니까.

“조치하겠습니다.”

이드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스톤이 일행에서 빠졌다.

극히 조용하고 은밀한 움직임에 사람들은 그가 옆을 지나가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저희도 남을까요?”

“아니, 우리는 돌아간다. 다른 출입구가 나타나도 오늘 당장 무슨 일을 한 건 아니니까.”

스폴의 말에 고개를 저은 이드가 쉐어 가든의 성문을 향해 걸었다.

그런 이드의 머리에서 푸드득 하고 라미아가 날아올랐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 쉐어 가든 상공을 한 바퀴 돌고는 이드의 머리 위에서 비행을 이어 갔다.


결론적으로 다른 출입구는 없었다.

감시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해가 진 후 보는 사람이 없는 어둠을 틈타 정문을 통해 내성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원했던 소득은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감시를 한 덕분에 그날 하루 내성에 보충된 인원이 30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소 소드 마스터 급의 인원이 30명. 제법 실력 좋은 기사단 한 개 전력입니다.”

소드 마스터, 능숙한 검기 사용자들.

에단이 한숨을 쉬듯 말하자 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것도 오늘 모인 전력만 세서 그렇지. 이 전날 낀 녀석들이 더 있는지, 혹은 앞으로 합류할 사람들이 더 있는지 몰라. 거기에 내성 안에 있는 전력도 생각해야 해..”

“과연 바벨. 이만한 전력을 이렇게 쉽게 움직이다니. 저력이 있어요.”

“당연하지. 전 대륙 초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초거대 조직이야. 이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일 거라고.”

오히려 이 정도도 하지 못하면 바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바벨이 힘이 없다면 아무리 초인들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다 해도, 초인들은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다는 것은 아니다. 바벨의 힘이 막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박해받던 초인이라는 명분을 보고 각국이 존재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바벨이 선을 넘을 경우, 아무리 바벨이라도 그 존립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의 근원은 소드 팰러스, 규모 면에서는 그들이 바벨보다 못할지 몰라도, 소드 팰러스가 가진 힘 역시 절대 바벨의 아래는 아니다.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드가 밝은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타란 백작과 수도 기사단의 위치는 확인되었습니까?”

그에 기다렸다는 듯 에린이 지도 한 곳에 점을 찍었다.

“현재 위치입니다. 예상대로 마법과 신성력으로 지친 말을 회복시키고, 한계에 이른 말은 바꿔 가며 달린 것 같습니다. 2시 경이면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전날의 실수를 만회했다 여긴 것인지 활짝 어깨를 편 에린의 목소리에 힘이 있다.

“그럼 감시조는 좀 더 뒤로 물리죠. 아무래도 실력자가 합류하면 발각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녀석들이 밤에 행동할지 모르니, 특히 유의해 줬으면 좋겠군요.’

“조치하겠습니다.”

에린이 이드의 말을 쪽지에 받아 적고는 밖으로 전달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턱을 괴었다.

일리나가 그 모습을 보다 흘러내린 이드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 중이에요?”

“과연 타란 백작이 어떤 방식으로 검후를 탈취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요.”

“답은요?”

“몇 가지 떠 오르는 건 있지만, 이거다 싶은 건 없어요. 분석과 예측은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대신 무작정 힘 밀기로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은 확실할 것 같아요.”

두 개 기사단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힘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너무 빈약한 전력이다.

특히 쉐어 가든은 성이다. 문을 걸어 잠글 경우 외성도 문제고, 그 안의 내성은 더 큰 문제다.

무엇보다 내성 안에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때문에 이드도 이러고 있는 것이고.

이드가 어디 힘이 없어 이렇게 기다리고 있겠는가.

“그럼 우린 그들이 준비한 사이를 파고들고요.”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어부지리를 얻으려면 계획이 너무 타이트하면 안 되겠죠. 아직 도착도 하지 않은 타란 백작에겐 미안하지만, 고생 좀 하라고 하죠.”

그 말과 함께 에린을 향해 돌아 앉은 이드.

“우리가 어제 확인한 바벨의 보충 전력에 대해서 마스에선 아직 모르겠죠?”

“네. 모르고 있습니다.”

“좋네요. 알려 주죠. 까딱하면 놓칠지 모르니 서두르라고.

씨익.

이드의 입가에 불행을 선물하는 악마의 그것과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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