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76화
1012화
이동은 라미아의 마법으로 단숨에 해결했다.
“이동하기 좋은 좌표를 구해 뒀죠.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어떻게 그 고생을 해요.”
그렇게 공간 이동한 일행이 나타난 곳은 쉐어 가든에서 성인 여성의 걸음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장소였다.
잠시 후 성문에 도착하자 이들을 알아본 병사가 알은척했다.
“다시 온 걸 보니, 재미있는 의뢰가 없었던 모양이오? 통과.”
말을 하는 중에도 일리나와 쉴라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많고 많은 방문자 중에서 어떻게 일행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병사 덕분에 간단히 성문을 통과한 이드 일행은 곧장 빌려 둔 식당의 별채로 향했다.
그들이 별채에 도착하자, 검은 돌의 요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보고를 시작했다.
에린은 그 속에서 필요한 것만을 골라 다시 이드에게 전달했다.
“타란 백작과 수도 기사단장이 23분 전에 내성에 들었고, 나머지는 성문 앞에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숙소를 구하기 위해 나선 기사 중 정체불명의 짐 상자를 가진 이들이 있어 감시 중이라고 합니다.”
“짐 상자? 그걸 감시하는 이유가 있나?”
이드가 물었다. 검은 돌이 확실히 이드의 부하가 되겠다는 맹세를 하면서 이드의 말도 짧아져 있었다.
이드에게 반말은 아랫사람을 향한 말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친근함의 표시기도 하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바꿀 생각은 없었건만, 스톤과 에린이 적극적으로 원했다.
에단은 둘째 치고, 은색 기사단의 핵심 기사인 스폴이 반말을 듣고 있는데, 자신들이 존대를 받기는 조심스럽단다.
“현장에서 피오 단장은 짐 상자라고 발언했지만, 감시자들에 따르면 단순한 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게 현재 짐 상자의 위치입니다.”
말과 함께 에린이 내놓은 대략적인 지도에는, 내성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점이 빙 둘러 위치하고 있었다.
짐 상자의 위치였다.
누가 봐도 의도한 배치였다. 저 위치들이 숙소라면 더더욱 이상하다.
한 일행인 만큼 가까이 잡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이건 확실히 에린 양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장소들이 계산에 의한 거라면, 마법적인 요소 때문일 거예요.
쉴라와 라미아의 말이었다.
“마법적인 요소라면, 우리도 생각하고 있던 그거?”
이드들은 검후를 구출하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써야 할 문제가 ‘비상시 검후를 빼돌릴 수단이라고 보았다. 쉐어 가든이 공격받자마자 저들이 검후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켜 버리면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이드가 당장 쉐어 가든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네. 그거. 공간 이동의 대비책.’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라미아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너도 불가능하다고 한 거잖아.”
마스의 마법이 라미아보다 낫다니.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마법은 드래곤의 것이니까.
“거짓말하지 마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완벽할 수 없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한 적은 없다고요.”
“이거나 그거나.”
“완전 다르거든요! 그리고 이건 마법 수준 이전의 문제라고요. 마스에서 저렇게 자신 있게 움직인 걸 보면, 파라켈 후작의 협조를 받은 게 분명해요.”
“후작의 협조를 받으면 뭐가 달라?”
“다르죠. 후작을 통하면 비상시 내성이 어떻게 움직일지 환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저와 마스는 문제를 알고 문제를 푸느냐, 모르고 푸느냐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요. 마법 이전에 정보에서 부족하단 말이죠.”
・・・죄송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난데없이 튄 불똥에 에린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사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일리나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두 사람의 장난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일리나! 이거 장난 아니에요! 이드가 내 마법 실력을 의심하잖아요!”
그러자 라미아가 발끈해서는 투덜거렸다.
그에 이드가 두 손을 포개며 말했다.
“자, 인정, 내가 실수했어. 그러니 네가 좀 움직여 줘라.”
“진심이 좀 모자란 것 같지만. 뭐・・・・・・ 이번엔 이렇게 넘어갈게요. 뭘 해 달라고요?”
“짐 상자 말이야.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니, 확실히 확인해 봐야지. 답을 알면 역으로 문제도 알아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드의 이마에 쪽 하고 입맞춤을 하는 라미아였다.
“맞아요. 알 수 있죠. 나도 참,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게 전부 내 마법이 마스보다 못하다고 한 이드 때문이에요. 괜히 흥분해 가지고.”
“아이고, 알았습니다. 알았으니까. 직접 가 볼래?”
“당연히 가야죠. 하는 김에 마스에서 준비한 물건에도 살짝 손을 보면 좋을 테고요.”
“그런 거지. 에린, 안내할 사람을 불러라.”
쿵짝 쿵짝 순식간에 진행된 이야기다. 그 진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에린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네,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니. 에린은 여기서 정보를 정해 줘. 짐 상자 쪽은 나와 라미아가 가 볼 테니까.”
그러자 이드 어깨에 올라 있던 라미아가 푸드득거렸다.
“이드도 같이 가려고요?”
“응. 직접 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거기에 네가 확인하는 동안 내가 다른 짐이 있는 곳에 가 있으면 시간 절약도 되잖아.”
이드가 있는 곳이라면 바로 공간 이동이 가능한 라미아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면 좋죠. 최소 절반은 확인해야 확실한 견적이 나올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라미아. 결론이 나온 듯하자, 에린이 대기 중인 요원 중 하나를 불렀다.
“짐 상자의 위치까지 안내할 요원입니다.”
“그럼 안내를 부탁하지.”
“충!”
대답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바람처럼 별채를 나서는 요원의 뒤를 따라 이드도 소리 없이 거리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별채가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사라진 이드와 교차하듯, 내성의 상황에 대한 보고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내성으로 들어선 타란 백작과 기사들은 크지 않은 접객실로 안내되었다.
브리더는 그 후 내성의 하인을 불러 몇 가지 명령을 내리고는 타란 백작과 마주 앉았다.
“접객실이 아담하군.”
내성의 크기에 비하면 작은 접객실은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한 듯 내성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일부러 이런 위치로 안내한 것이 분명했지만, 브리더 자작은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내성의 특성상, 이렇게 꾸미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워서 말입니다. 아, 그리고 마법사에게 일러 수도의 후작님께 타란 백작님의 일에 대한 확인을 거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네. 어차피 그러기로 하고 들어온 것이 아니던가.”
“하하하. 과연 호탕하십니다. 그럼 후작님의 확인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쉐어 가든에 방문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수도에서 이리 급하게 달려올 일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군요.”
“나보단 후작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이 좋지 않겠소?”
“확인은 어디까지나 절차일 뿐입니다. 타란 백작님의 말씀을 어떻게 의심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어떤 일이든 후작님이 결정하신 일이라면 따를 것입니다. 그리 맹세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의 충성이 과연 마스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후작이나 바벨을 향한 것인지 궁금하구려. 자작.’
충성에 대해 말하는 브리더 자작을 내심 비웃은 타란 백작의 시선이 그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을 향했다.
산악처럼 단단해 보이는 어깨와 두꺼운 목. 거기에 고집 있는 사각 턱.
외모만 보면 피나는 무공수련을 거친 기사로밖에 볼 수 없는 자들.
그러나 저들도 이곳에 있는 이상, 분명 초인이리라.
타란 백작의 시선에 브리더 자작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습니다. 피더스 남작과 위리더 남작입니다. 후작님께서 저보다 믿고 아끼며 키우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비밀을 지킬 이들이지요.”
“과연 그래 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니, 후작님의 확인을 받은 다음 이야기를 하십시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차라도 드시며 기다리시죠.”
쪼르륵.
잔에 떨어지는 찻물에 차향이 은은히 퍼졌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의 후작과 통신을 마친 듯, 마법사가 방으로 들어와 후작의 말을 전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마스와 쉐어 가든을 위협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이는 믿을 수 있는 과정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이에 나는 왕실과 상의하여 급히 타란 백작과 타란 기사단, 수도 기사단을 급파한다. 이에 브리더 자작은 타란 백작의 명령에 따라 줄 것을 명한다.”
“음・・・・・・ 정체불명의 위협이라. 후작님의 말씀은 그것이 끝인가?”
“네, 그렇습니다.”
“으음.”
마법사를 내보낸 브리더 자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후작의 전언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외부의 위협에 왕실이 나설 수도 있고, 주변 영주들이 나설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곳엔 검후가 있다. 그런데도 후작님께서 타란 백작과 기사단의 입성을 허락하셨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쉐어 가든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고 후작이 나서서 거부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의문이 일어도 이미 확인이 끝난 일이다.
“그럼 이제 밖에서 대기 중인 기사들에게 문을 열어 주겠소? 밤을 새워 가며 달려와 많이 피곤할 테니, 빨리 쉬게 해 주고 싶구려.”
이젠 타란 백작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물론입니다. 다만, 수가 많아 모든 기사들을 수용할 수 없음은 양해해 주십시오. 그렇다고 내성에 있는 기사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이오. 자네는 피오 단장에게 가서 내성 안과 밖의 숙소에 머물 기사들을 나누라 말하게.”
타란 백작이 뒤에 있는 기사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브리더 자작도 더 미루지 못하고 기사를 불러 내성에 들 기사들의 수를 알리고 내성의 문을 열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타란 백작과 마주 앉았다. 그런 브리더 자작의 표정은 한층 날카로워져 있었다.
“정체불명의 적이 누구인지, 또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마스와 쉐어 가든을 위협한다면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후작님의 명령이시니까요. 다만 타란 백작님과 기사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조심을 부탁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오?”
“저희가 타란 백작님과 기사들에게 내어 드릴 수 있는 내성의 구역은 한정될 것입니다. 그 외의 구역에 대한 출입은 절대 삼가십시오.”
외부인에 대한 출입 제한 구역.
그건 다른 영주의 성이나 왕궁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
가족들, 특히 갓난아이나 결혼하지 않은 딸이 머무는 곳, 혹은 가문의 중요한 물건을 둔 곳이 주로 그렇다.
“특히 내성의 이쪽 절반은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단히 선을 긋는 브리더 자작의 말에 타란 백작과 구른 단장의 눈 깊은 곳에 사냥꾼의 그것을 닮은 빛이 번뜩였다.
‘저곳이구나. 저기에 검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