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00화
1036화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트로피라고 하더니, 그게 콘티에롬이었나?
묻는다고 답할 리 없는 메르시오가 피칠갑을 한 얼굴로 흐흐 웃는다. 참으로 주먹을 부르는 낯짝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드의 손이 움찔거렸지만, 그보다 먼저 일리나와 쉴라가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검이 메르시오의 등을 노린 것이다.
짜자자작!
“크흡.”
하지만 앞서와 달리 두 사람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공격이 닿기도 전 메르시오가 검기를 손톱으로 찢어발겼기 때문이다. 놈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거리를 벌렸을 때다.
라미아가 다급히 이드를 불렀다.
“이드, 공간 이동이에요!”
“뭐?”
여긴 결계로 막혀 있는데 누가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드가 반응한 순간, 허공의 메르시오에게서 두 줄기 음험한 송곳니가 기다렸다는 듯 쏘아져 나왔다.
퓨퓻!
송곳니가 노리는 것은 바로 아래 있는 일리나와 쉴라. 그에 두 사람이 검을 들었지만, 그보다 이드의 손이 더 빨랐다.
짜자작.
퍼퍽.
두 줄기 혈광이 번뜩이며 송곳니를 요격한 것. 메르시오의 공격이 기감에 잡힌 순간 이드가 혈뇌천강지를 쏘아 낸 것이다.
하나 두 사람에게 발목이 잡혔던 것에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메르시오가 특별히 신경을 쓴 듯, 혈뇌천강지에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암경이 두 사람을 향해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위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검이 번뜩였다. 둘은 동일한 분영화의 검형을 허공에 만들어 냈고, 그에 부딪힌 암경은 나뭇가지에 스친 바람처럼
흩어졌다.
다만 문제라면 같은 초식임에도 일리나와 쉴라의 분영화에는 힘과 초식 숙련도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한 줄기 암경이 늙은 뱀처럼 쉴라의 머리에 떨어졌고,
치이잉!
옆에서 날아든 검날이 아슬아슬하게 남은 암경을 받아 냈다.
“일리나 님께 많이 배운 줄 알았더니. 아직 깨달음이 부족하구나.”
쉴라의 머리 위로 검의 우산을 드리우며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검후였다. 좀 전 위험하다 소리친 목소리의 주인도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아무리 일, 이 차로 힘이 줄었다지만 무려 메르시오의 공격이다. 그걸 내공이 봉인된 검후가 온전히 막을 수 있었을까.
결국 파르르 떨리는 팔이 툭 떨어지고, 검후가 휘청였다. 그러자 쉴라가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아직 그렇게 움직이시면 위험합니다.”
“네가 위험했잖니.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법이란다. 그래도. 끄으응. 확실히 무리긴 했나 봐.”
어디 단순히 ‘무리’ 정도로 끝날 일인가. 웃는 얼굴과 달리 파랗게 질려 가는 검후다.
그에 쉴라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니고 있던 포션을 검후의 입에 물려 주며 한숨을 포옥 내쉰다.
그런 두 사람 옆으로, 다시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일리나가 검을 들고 섰다.
하지만 아쉽게도 메르시오는 한 번 더 허공을 박차고 올라가 버린 상태다. 이드는 세 사람에게 자신 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이를 갈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일리나가 크게 상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녀는 아니지만, 검후가 다치기도 했고.
어쩌면 랜달에게 일어나는 일도 이것까지 노리고 벌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장 메르시오를 추적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누른 이드가 빠르게 랜달과 콘티에롬을 살폈다.
처음의 모습 그대로 콘티에롬 위에 쓰러져 있는 랜달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어째서’를 연발하는 중이었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콘티에롬이 다른 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범용도 아니고 오직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런 게 생판 모르는 놈의 말을 들으면, 놀람은 둘째치고 허탈함과 배신감이 엄청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이드는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메르시오 놈. 마탑에 할 일 없이 드나든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저거, 공간 이동이라고?”
고개도 돌리지 않는 이드의 물음에 라미아가 답했다.
“지금 콘티에롬이 뿜어내고 있는 파동이 아까와 비슷해요. 거기에 메르시오의 마나가 주입되어서 그런지 에너지도 커요. 저렇게 이동하면 무조건 초장거리예요.”
“차원진이 있는데도?”
“그 부분은 초인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저도 장담하기 힘드네요. 하지만 저 늑대가 그런 세심한 것까지 따질 것 같아요?”
그 저돌적인 움직임을 떠올린 이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갈지는 당연히 알 수 없을 테고, 랜달만 끌어내면?”
“이미 셋이 한 덩이에요. 하나만 떼어 내는 건 어려워요.’
“칫, 그럼 결계는?”
“지금 여기로 간 것 같은데요.’
그 말과 함께 위를 향한 라미아의 손가락.
“결계 강도가 어떤데?”“애초에 목적이 공간 차단이다 보니, 강도를 기대하면 불쌍해져요.”
간단히 말해 툭 치면 퍽 하고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푹 하고 한숨을 내쉰 이드가 팔을 붕붕 휘둘러 어깨를 풀었다.
“그럼 일단 라미아가 알아서 조치해 줘. 그 사이 메르시오를 처리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지만, 아니면.”
“최대한 막아 볼게요. 그리고 최악이라도 한쪽은 남길 테니 맡겨 둬요.
간단히 답하는 라미아다.
그러나 그녀가 할 일은 가벼운 대답만큼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마법 발동은 매우 정교한 작업으로, 작은 간섭에도 생각보다 쉽게 무산되거나 오류가 난다. 다만, 반대로 정교하기 때문에 일정 단계를 지나면 어지간한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데 지금 콘티에롬의 마법은 흔들리지 않는 단계를 넘어, 완성된 채 발동만 기다리는 상태다. 당연히 막기가 매우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부탁해. 일리나도 같이 부탁할게요.”
이드는 어느새 옆으로 다가선 일리나에게도 말을 남기고는 로켓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팔랑.
그 자리로 떨어지는 옷소매를 일리나가 잡아챘다. 싸움 중에 너덜너덜해진 부분을 이드가 뜯어 버린 것이다.
손에 든 소매를 잠시 보던 일리나가 어서 움직이자는 생각에 고개를 들 때였다.
다급한 발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은색 기사단이 있었다. 발걸음을 서두르던 그녀들은 곧 검후를 발견한 듯, 달리던 모습 그대로 두 팔을 벌리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검후님. 검후님이 돌아오셨다!”
“주군!”
“야호~! 바보짓 하던 놈들은 이제 다 죽었어!”
“호호호호. 모두 여전히 건강한 것 같아서 좋구나.”
그런 모습에 검후가 반가운 미소를 지었지만, 쉴라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감쌌다.
“하아~ 저 바보들의 교정은 나중에 철저히 하겠습니다. 라미아 님은 바로 작업을 시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바보들이지만 손이 늘었으니, 외부의 방해는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든든하네요. 그럼 부탁해요.”
그 말과 함께 웃으며 돌아선 라미아가 앞으로 검지와 중지를 세워 뻗었다. 그 끝에서 발출된 마나가 4중의 입체 마법진이 되었다. 그리곤 메르시오가 만들어 낸 가시의 언덕과 콘티에롬, 랜달을 감싸고서 회전을 시작했다.
마치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깎아 내듯이 말이다.
메르시오를 따라 허공을 차고 오른 이드, 그런 그의 눈에 시퍼렇게 빛나는 손으로 결계를 두드리는 메르시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함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최대 출력을 뿜으며 선명히 나타나는 결계의 마법진과 소음.
끼이이이-
그건 마치 감당하기 힘든 힘에 비틀린 쇠가 지르는 비명 같았다.
라미아의 말처럼 마법진의 강도는 기대 이하였다. 당장 한 번만이라도 더 충격이 가해지면 무너질 것 같았다.
당연히 그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는 이드였다. 그는 즉시 어검의 무리를 쫓아 일라이져를 날려 메르시오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는 동시에 스스로는 12대식 광인멸혼류를 몸에 뒤집어썼다.
스팟-
순간 전신에서 빛을 뿜은 이드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 메르시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철황권의 초식을 파도처럼 쏟아 냈다.
쿠르르르릉.
본래도 그 힘이 강력한 철황권인데, 가히 빛과 같은 속도가 더해졌다. 그 힘은 마치 해일과 같이 메르시오를 휩쓸어 결계에서 한참 뒤로 떠밀어 버렸다.
“지겨운 놈. 적당히 만족하고 떨어지란 말이다!”
방어를 단단히 한 채 공격을 견디고 멈춰선 메르시오는 으르렁거리더니, 곧 신랑으로 변하며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결계의 상부를 노리겠다는 의도가 분명한 움직임. 녀석은 당장 자신과의 싸움보다 랜달의 탈출을 우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드로서는 당연히 그 모습을 보고 있어 줄 생각이 없었다. 잠깐이라도 랜달을 자신보다 우선한 것은 분명한 메르시오의 오판이다. 턱.
공중을 날던 일라이져가 이드의 손에 돌아오고, 그가 일라이져를 앞으로 뻗었다. 직후 이드의 모습이 흔들리는 것처럼 미약하게 뿌옇게 보인다 싶더니.
스팟.
번쩍이는 빛과 함께 이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마치 레일건처럼 보이지 않는 속도로 앞으로 쏘아져 나간 것이다.
그 모습에 메르시오가 황급히 화염을 쏟아 냈고.
이드는 광인멸혼류의 빛무리로 화염을 막았다. 그와 함께 흩어지는 빛을 대신해 일라이져의 끝에서 뽀얀 우윳빛의 무형대천강이 솟아나 신랑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얕았나?”
이드가 혀를 찼다.
스스로보다 목적을 우선한 것인지, 아니면 오만에서 나온 행동인지 알 수 없지만, 드물게 큰 빈틈이 드러난 순간인데. 아쉬웠다.
“크아아악.”
그러나 아쉬워하는 이드와 달리 메르시오는 큰 부상에 주둥이를 쩍 벌리고 있었다. 머리를 노린 공격이 그 아래에 적중하며 목과 앞다리 사이를 갈라, 앞다리가 덜렁거릴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휘릭.
첫 공격은 아쉽게 얕았지만, 두 번째 찬스를 날리고 싶지 않은 이드는 즉시 몸을 뒤집으며 일라이져를 던졌다.
광인멸혼류의 빛무리를 머금은 일라이져는 그대로 메르시오의 등을 관통하며 빠져나왔다.
그에 이드는 살짝 놀랐다.
방금의 일격은 허초였다. 이어질 진초를 위한.
한데 메르시오가 그 허초를 맞아 버린 것이다. 분명 중상이지만, 녀석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나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그아아아!”
마치 포효하듯 고개를 치켜든 메르시오의 이마에 솟은 뿔이 뽑혀 나가며 폭죽처럼 터져, 아슬아슬 견디고 있던 결계를 부숴 버린 것이다. 앞선 일격과 같이 자신보다 결계의 파괴를 우선한 모습.
혼돈의 파편인 메르시오가 어째서 랜달과 콘티에롬에 저토록 집착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였다.
파아아앗!
아니나 다를까. 라미아와 랜달이 있던 곳에서 강렬한 섬광이 터졌다. 방금 전 랜달이 콘티에롬을 타고 탈출할 때 보였던 빛보다 족히 10배는 강렬한 광량.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빛 덩이를 휘감아 잡고 있는 마법진이 보인다. 당연히 라미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