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01화
1037화
즈즈즈즉.
뛰쳐나가려는 마력과 그걸 막는 마력이 엇갈리며 스파크가 튄다.
“아쉽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취소시켰을 텐데.”
라미아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콘티에롬의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그 요동치는 모습이, 마치 당장이라도 그물을 찢고 달아나려는 물고기 같았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마법 때문에 애를 먹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마법력에 있어서만큼은 드래곤과 동급인 라미아다. 그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레이드론의 모든 마법적 지식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응용력이나 운용 능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세상에 그녀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없을 거라는 건 누가 뭐래도 확실했다. 하지만 이 장담도 한 가지 전제를 바꾸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 전제란 바로 마법을 이루는 기본 틀이었다.
마법의 갈래는 무공만큼이나 실로 다양하다. 아니, 오히려 무공보다 더 복잡하고 기괴한 분야가 마법이다.
하지만 마법 역시 그 근간이 되는 핵심은 하나다.
라미아가 뛰어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그녀의 마법은 정통 마법과 그에서 갈라져 나온 이론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이에 속하지 않는 경우에는 라미아도 자신이 최고라고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즉, 지금까지 연구된 적 없는 현상과 이론을 통해 탄생한 마법 말이다.
물론 기존의 지식이 도움 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래의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보를 쌓고자 하면, 그 연구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당장 지금 라미아가 애를 먹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일반적인 공간 이동의 마법. 그러니까 텔레포트, 워프, 블링크, 게이트 등이라면 라미아가 벌써 해체해서 목적지까지 알아냈을 터다.
그러나 지금 빛 덩이로 변한 공간 이동의 마법은 기존의 것들과 획을 달리했다. 그 근본을 미완의 마탑의 초인 마법에 둔 것부터가 그러했다. 거기에 랜달이 콘티에롬을 통해 새롭게 배열한, 미지에 가까운 마법인 것이다.
물론 라미아가 생명의 관에서 획득한 바이트 타블렛과 비올라를 통해 초인 마법에 대해 연구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기존 마법만큼 통달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시간까지 촉박했으니 아쉽게도 콘티에롬의 마법이 발동하기 전에 취소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지금으로선 발동과 동시에 라미아가 예비로 마련했던 그물을 통해 공간 이동을 막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이드가 메르시오를 몰아붙이고 있어요.’
곁에 있던 일리나가 힘내라는 듯 말했지만, 라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콘티에롬을 깨우고 마나를 주입한 건 메르시오가 맞지만, 마법이 이미 발동된 상태에요. 지금 메르시오를 잡아도 마법이 해제되진 않아요.”
“……라미아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요?”
발동된 마법을 취소할 수도 없고, 이드가 메르시오를 잡아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요란하게 스파크가 튈 정도로 마나를 소모해 가며 콘티에롬을 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라미아의 눈이 반달이 되었다.
“자신 있다고 장담해 놓고 다 놓치면 좀 그렇잖아요. 하나라도 남겨 보려고요.”
“가능해요?”
“조금 무리가 가지만, 충분히요.”
“이드는 라미아가 무리하는 걸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요?”
“나 말고 저쪽이요. 아무래도 힘으로 당기면 좁은 구멍을 통과하는 쪽이 아픈 법이잖아요.”
“그럼 괜찮네요. 힘내요.”
라미아가 힘든 것이 아니라는 걸 알자 바로 입장을 바꾸는 일리나다. 그 모습에 주변을 지키고 있던 은색 기사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름답고, 친절한 인물이라고만 여겼던 일리나의 새로운 일면을 본 듯해서다.
쿠쿠쿵!
“큽!”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하늘에서 터진 충격파가 온몸을 두드리자 기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별똥별이 남긴 듯 허공을 가로지르며 흩어지는 광인멸혼류의 빛 무리와, 그 뒤로 등허리의 절반이 끊어져 추락 중인 신랑의 모습이었다.
이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뿌드득.
메르시오의 가죽과 근육, 뼈까지 가르던 감각이 선명하다. 이번엔 빗나가지 않고 모든 공력이 온전히 메르시오를 파괴했다.
지금 꼴을 보면 중상을 넘어 치명상이다. 하지만 시간만 있으면 저런 육체의 상처쯤은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심지어 차원의 인이 흡수한 신체까지 회복해서 나타난 걸 봐라. 그로 인한 힘의 손실은 있지만, 끊어진 신체를 생각하면 싼 대가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싸움도 메르시오가 성급히 나선 덕에 쉽게 승기를 잡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좀 더 회복에 힘썼다면 그 손실된 힘마저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욱 메르시오를 놔줄 생각이 없는 이드였다.
‘또 놓치면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번에 확실히 처리해야 해.’
혼돈의 파편이 몇이나 남았는지 모른다. 이드가 봉인시킨 자들도 있지만, 멀쩡히 활동하는 혼돈의 파편이 있는 만큼 그 역시 해방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혼돈의 파편 여섯이 모두 활동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중을 위해 지금 하나라도 줄여 둘 필요가 있다.
특히 혼돈의 파편 중에서도 신체를 이용한 전투 능력이 뛰어난 메르시오는 꼭 미리 처리해 둬야 할 자 중 하나였다.
거기에.
‘메르시오를 처리하면 그간 꽁꽁 숨어 있던 혼돈의 파편의 흔적이 나타나겠지.’
마탑을 오가며 열심히 일을 꾸미던 메르시오가 사라진다면, 다른 누군가 그 일을 이어 가야 한다. 그리고 메르시오가 하던 일인 만큼 그 누군가는 또 다른 혼돈의 파편일 확률이 매우 높다.
즉, 그 말은 지금처럼 마탑의 뒤를 캐다 보면 또 다른 혼돈의 파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죽어!”
살기가 흐르는 목소리가 들린 순간, 이드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쯔즈즈즉.
대신 뇌령이 번득이며 이드가 지난 흔적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끝, 뇌령전궁보로 하늘의 땅처럼 달려 내려온 이드가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메르시오에게 조금이라도 여유를 줘선 안 된다.
핑-
일라이져의 검신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강사들이 뿜어졌다. 본래는 피처럼 붉어야 할 강사지만, 광인멸혼류의 내력 덕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그물처럼 보였다.
당연히 색만 달라진 건 아니다. 빛의 성질을 띤 광인멸혼류의 영향을 받아 강사 하나하나가 몇 배나 날카로워졌다.
“크아아악!”
그 예기로 메르시오가 발버둥처럼 온몸으로 쏘아 낸 은의 송곳니를 잘라 버리고는, 그대로 그 커다란 덩치의 전신을 옭아맸다. 그 순간.
“차원의 인아. 식사 시간이다.”
향기를 담은 검 끝에서 난화십이식의 정수, 백화난무가 펼쳐졌다. 그 모습은 일리나의 그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쓰는 방법은 조금 달랐다.
촤르르륵!
일종의 범위 공격의 개념에 더 어울리는 백화난무를 채찍처럼 움직여, 상처가 더욱 깊어진 메르시오의 등허리를 노린 것이다.
한 장, 한 장의 꽃잎이 날을 세운 백화난무는 마치 전기톱이 나무를 자르듯 피와 살점을 날리며 순식간에 메르시오의 등허리를 잘라 갔다.
당연히 두 동강 나게 생긴 메르시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탐스러운 백색의 털을 고슴도치처럼 세워 수라삼검의 그물을 찢으려고도 하고, 이드를 노리고 바람과 불의 브레스를 뿜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이드의 뇌령전궁보에 모두 무위로 돌아갈 뿐이다.
“끄아아악! 나 메르시오는! 이대로! 끝나진! 않는다! 절대로!”
그러던 메르시오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의 하울링과는 달랐다. 보면 이미 등허리가 반 이상 잘린 상태다. 심지어 척추까지 절단되었다. 아무리 질기고 단단해도, 생물의 신체, 검강을 견디진 못하는 것이다.
결국 메르시오의 선택은 신랑의 형태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결심과 동시에 그물에 걸려 고통에 몸부림치던 신랑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듯 보일 뿐이었다. 신랑을 대신한 그 자리엔 웨어울프 형태의 메르시오가 있었다.
모습을 바꾼 덕분인지 그 많던 치명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쁜 숨과 흘러내리는 땀을 볼 때, 온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숨이 달린 상황에 컨디션을 챙길 여유가 어디 있나. 메르시오는 바로 빠져나갈 틈을 찾아 움직였다.
다만 그에게 불행한 사실은, 그보다 이드의 움직임이 먼저였다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이드 역시 웨어울프로의 변신은 계속 머리에 담아 두고 있던 참이었다. 이드는 초식의 치밀성이 느슨해졌다는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초식을 변형시켰다.
수라만마무의 초식에 풍화를 담은 것이다.
위위윙!
바람에 날린 실이 헝클어지듯 뒤죽박죽으로 변하던 강사가 바람의 길을 따라 흐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그와 함께 드러난 메르시오. 이드는 상처가 말끔히 사라진 모습에 한 번 놀라고, 거친 숨과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면 확실하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헛짓이 아니다.
“아직 도망가지 못하다니. 너무 느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다. 말과 함께 이드의 손가락이 피아노 연주자의 그것처럼 꿈틀거렸다.
피피피핑!
그에 원을 그리던 강사들이 순식간에 메르시오를 향해 조여들었다. 아무리 메르시오가 다치고 힘이 떨어져도 강사 한 줄을 감당하지 못할까. 당연히 그의 손에 강사가 끊어졌다. 하지만 그 모습에 이드는 오히려 흡족해했다.
방금의 공격은 메르시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 목적이었던 것.
‘역시 회복된 건 겉모습뿐이야.’
확신과 동시에 이드가 주먹을 말아 쥐며, 메르시오를 향해 원의 고리를 조였다. 마치 사냥꾼이 놓은 덫과 같은 모습. 그에 놀란 메르시오는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드는 그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 능력이 있었다. 이드는 메르시오가 뛰어오르기 전 그의 머리를 내려쳐 점프를 막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강사의 고리가 메르시오를 조였다.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에서 왼쪽 허벅지를 향해 비스듬한 형태로, 그곳에 신랑일 때 이드가 남긴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걱.
아무래도 웨어울프의 신체는 신랑일 때보다 약할 수밖에 없나 보다. 수천 가닥의 강사가 모인 빛의 고리가 조여들자 메르시오의 신체는 버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뼈가 갈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미 신랑일 때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멀쩡히 서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혼돈의 파편이 절대 일반적인 생물이 아니라는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딴 재미없는 싸움에서 끝이 날 줄이야. 빌어먹게 재수 없군.”
털썩.
털썩.
한탄과 같은 말과 함께 메르시오가 쓰러졌다. 둘로 나뉜 몸이 따로따로 쓰러졌다.
파아아앙-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라미아가 있는 곳에서도 빛이 솟아올랐다.
“저기도 결과가 나온 모양이네. 못 막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