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652화


1087화

퍼블과 남자의 전투는 상당히 볼만했다.

이드의 눈으로 보기에도 말이다.

특히 퍼블이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사실 남자 검사의 검강은 특별할 게 없었다. 어차피 무공이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니까. 그에 반해 먼지를 털듯 검강을 털어서 지워 버리는 퍼블의 초인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공격력 또한 무시무시했다.

검사의 검강이 스쳤을 때 풀이 죽고 땅이 뒤집어진다면, 퍼블의 빗자루가 스친 자리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돌에 빗자루질을 하면 돌이, 나무에 빗자루질을 하면 나무줄기가 사라지며 쓰러졌다.

그런 모습에 이드는 눈을 떼기 힘들었다.

도대체 어떤 초인기를 가졌기에 저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일단 저것도 초인기는 맞는 거지?”

“저 넘실거리는 초인력을 보면 확실히요.”

라미아의 대답에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초인기가 다양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저걸 보니 새삼 실감이 나네.”

그간 검후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바벨은 물론이고 미완의 마탑과도 충돌하며 초인기는 볼 만큼 봤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오만이었던 모양이다. 

“같은 속성이라도 각성한 초인의 개성이나, 성향에 따라 발현 형태가 달라지니까요. 이론적으로 초인기의 숫자는 초인의 숫자와 동일해요.”

“알긴 했는데, 그간 제대로 실감을 못 했나 봐. 그나저나 저 초인기의 정체는 뭔 것 같아?”

“일단 흔한 발현이나 원소, 신체 계열이 아닌 건 확실해요. 공간 계열의 변형인 것 같은데.”

마법이라면 단번에 그 뼛속까지 꿰뚫어 볼 텐데, 전문 분야가 아닌 초인기라서인지 쉽게 단정 짓지 못하는 라미아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한편으로 그 이상의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그리 말했다. 강하다 싶으면 무심코 상대와의 싸움을 그려 보고 마는 투쟁 본능 말이다. 지금의 느낌도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

퍼블이 괜히 저런 모습과 빗자루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리라.

‘맞아. 저런 위력적인 초인기를 두고 굳이 빗자루를 사용할 이유가 없지.’

채찍, 창, 와이어, 추 등. 대충 떠오르는 무기들만 해도 저것보다는 훨씬 위력적이다. 초인기를 뺀 무기 자체의 위력만 따져도 그렇다. 창과 빗자루의 전투력 차이라니. 창에게 인격이 있다면 비교 자체를 거부했을 거다.

그럼에도 메이드 차림에 빗자루를 든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자 자연히 검사를 공격하던 퍼블의 모습이 떠올랐다.

먼지와 쓰레기에 대해 말하던 순간. 그러고 보면 검강을 부수던 때도 방어보다는 먼지는 터는 태도에 더 가까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순간 청소, 초인기, 빗자루, 메이드복이라는 요소가 하나로 뭉치며 이드의 입을 뚫고 나왔고,

“청소구나.”

“알았다. 청소에요.”

그건 라미아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흘러나온 같은 답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는 곧 비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저건 공간, 어둠, 불 등 최소 세 가지 이상의 속성이 겹치면서 속성보다는 개념에 가까워진 초인기에요.”

“그렇게 탄생한 개념이 청소, 퍼블은 지금 싸우는 게 아냐. 청소를 하는 거지. 검강, 돌, 흙, 나무 할 것 없이 빗자루가 쓸고 지나가면 사라지는 이유도 이 때문인 거고.”

그리고 청소 대상은 순전히 퍼블이 정하기 나름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소라는 개념에 검강이 쓸려 나갈 이유가 없다.

무공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검강이 한낱 먼지 취급을 받다니.

그 때 라미아가 갑자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우후후. 저 검사 말이에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해 보이던데. 퍼블이 그를 쓰레기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면 볼만하겠죠?” 

“너…… 사악해졌어.”

눈을 가늘게 뜬 이드가 두려운 눈으로 라미아를 보았다.

정말 그렇게 되면 아마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미쳐 날뛸 것이 분명했다.

‘그런 반응이 볼만한 거지만.’

이드는 혹하는 유혹을 빠르게 떨치고는 퍼블과 검사의 전투를 다시 살폈다. 두 사람의 전력은 어느 쪽이 우세하다 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했다. 기교적인 면에서는 검사가 뛰어났지만, 힘에서는 퍼블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전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청소라는 개념의 초인기는 분명 신기한 면이 있지만, 출력이 부족해서야 아무리 퍼블이 검강을 쓰레기로 여기더라도 청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버려야 하는 가구의 무게와 크기 때문에 빗자루로는 처리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데 그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게 바로 힘이다.

당장 이드가 빗자루를 쥐어 봐라. 가구가 아니라 저택이라도 쓸어버릴 수 있다. 물론 청소보다는 파괴의 개념이겠지만 말이다.

‘일단 저 강력한 초인력에 대한 답은 초인기의 정체보다는 간단하지.’

이드는 퍼블이 나서기 전, 저택 안에서 급격히 부풀어 오르던 초인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격체진력과 비슷한 형태로 다른 초인들의 초인력을 공유받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방법의 중심에는 라울이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괜히 그의 비서인 퍼블이 검사를 상대하기 위해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라울의 실력을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아쉽네.”

퍼블이 검사를 잘 상대하고 있으니, 굳이 라울이 나설 이유가 없다.

“그럴까요? 다르게 생각해 보면 퍼블이 저렇게 싸울 수 있는 이유 자체가 라울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그의 초인기도 퍼블처럼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지?”

“최소한 옆방에서 봤던 그 용도 불명의 물건은 전투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음, 인정.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아쉽긴 해. 어떻게든 몰아붙이면 더 나올 게 있을 것 같은데.”

깔끔하게 미련을 털지 못한 이드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는 검사를 쏘아보았다.

잘난 척은 있는 대로 해 놓고, 정작 힘을 써야 할 시점에는 퍼블에 막혀서 쩔쩔매고 있는 꼴이 한심한 것이다.

좀 더 제대로 된 실력자였다면 퍼블을 넘어서 라울의 주머니까지 털어 줬을 텐데.

만약 검사가 이런 이드의 평가를 들었다면 억울함에 울고 말았을 것이다.

이드의 박한 평가와 달리, 퍼블과 싸우고 있는 검사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결코 보잘것없지 않았다.

검강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은신술을 비롯해 소드 팰러스의 무공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무공 실력은 오히려 스폴보다도 살짝 우위에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닌 저 오색 기사단의 수석 기사보다 뛰어난 실력이라면, 어느 나라 어느 기사단을 가든 단장 자리를 얻어 낼 만한 실력이란 말이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은 그만한 실력자가 알려지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리라.

“아쉬워도 어떡해요?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게다가 위기 때 짠하고 나타나지는 못해도, 적들을 놓치지 않게 도와줄 수 있잖아요.” 라미아의 말에 이드는 아쉬워하면서도 인정했다.

“쩝, 어쩔 수 없지. 네 말대로 저 정도 실력자면 아는 게 제법 될 거야.”

아무렴 라울 쪽이 전력을 더 내놓지 않는다면 이대로 전투가 끝나고 물러나는 적을 막거나 잡을 수 없을 거다.

그때 이드가 적들의 퇴로를 막는다면 저들에 대한 지분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으리라.

결론이 나자 입을 다문 이드와 라미아는 정원의 싸움에 다시 집중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드가 고소를 머금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생전에 싸우면서 주변을 청소하는 모습은 처음이야. 싸움터가 저렇게 깨끗할 수 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걸.”

사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검사와 퍼블의 전투는 더 치열하고 격렬해졌다. 검사의 검은 성난 야수처럼 사나워졌고, 그에 맞서는 퍼블은 우직할 정도로 빗자루질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이 이어질수록 신기한 것이, 두 사람의 주변이 점점 깔끔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복원이나 정리가 아니라 쓰레기를 치워 버린다는 의미의 깔끔이지만, 좌우간 두 사람의 주변은 도저히 검강을 번뜩이는 싸움터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이드로서도 처음 보는 싸움의 현장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렇게 보는 재미가 있는 정원과 달리, 방어선은 급격히 사상자가 늘어나며 유혈이 낭자해졌다.

정원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점부터 전투가 격렬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이 싸우는 곳은 어디 변두리 영지의 영주 성이 아닌 제국의 수도 한복판이다.

언제까지 느긋하게 눈치를 보며 힘겨루기만을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목표를 이뤄야 했다.

더구나 원래 계획대로라면 은신술을 사용한 검사 손에 저택이 떨어졌어야 했겠지만, 퍼블에 붙잡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저들로서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이런 기색을 초인 측에서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개자식들의 마지막 발악이다!”

“이 악물고 견뎌! 여기서 죽는 놈은 내가 나중에 죽여 버리려니까!”

“동북쪽 부상자 발생! 지원 요청! 지원 요청!”

“명령이 내려졌다. 전원, 뒤로 물러서며 방어선을 보강하라! 이 싸움, 우리가 끝을 낸다!”

그러던 중에 터진 목소리가 결정적이었다.

“우오오오!”

“…….”

초인들의 사기는 오르고, 적의 사기는 내렸다.

그런 변화에 이드가 팔짱을 끼며 몸을 뒤로 쭉 뺐다. 아직 많이 남은 땅콩도 정리해서 아공간에 넣었다.

“이제 슬슬 끝나 가네.”

“나갈 준비 해야죠? 특히 저 검사는 무조건 잡아야 해요.”

“제일 중요한 사냥감인데, 당연히! 봐, 지금도 계속 보고 있잖아.”

“…..그건 지켜보는 게 아니라 싸움 구경하는 거잖아요.”

“이거나 그거나. 그게 그거지. 흐흐.

말은 바로 하자는 라미아에 곰처럼 씨익 웃어 보이던 이드. 그런 그의 고개가 어느 순간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끼이익.

잠시 후 옥상 문이 제발 기름칠 좀 해 달라는 듯 비명을 지르며 열리더니, 거기서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어라?”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얼굴만 봤지. 라울의 비서 중 하나야. 여긴 갑자기 무슨 일로 올라온 거지?”

그렇게 의문을 가진 사이.

여성은 이드가 걸터앉은 난간을 향해 곧장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멈춰 서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드?”

이드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라미아에 손을 흔들어 부정했다.

“아니, 아니야. 기살(氣)은 제대로 하고 있다고.”

“그럼 저 여자가 어떻게 우릴 찾은 건데요?”

“그런 거 아니야. 저 여자 눈을 봐. 저 눈에는 우리가 비치지 않아.”

놀라는 중에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 중인 이드였다.

그 말처럼 여성의 눈동자는 이드와 라미아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갑자기 왜 고개를 숙인 것일까. 종교 의식이라도 되나?

엉뚱한 의혹이 떠오르려는 순간, 여성의 입이 열렸다.

“라울 님의 말씀을 전달해드리기 위해 찾게 되었습니다. 명예 후작님.”

“……이드?”

“……기살은 진짜 제대로 하고 있는데…………….”

세상 억울한 심정의 이드였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