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654화


1089화

쿠콰콰콰!

두 번. 연이어진 충격에 대기가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미쳐 날뛴다.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 공기층 너머 저 뒤로 밀려나는 적 검사가 보였지만, 바로 따라붙지 않았다.

대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결계와 엉망이 된 정원을 살폈다.

“쯧쯧. 난리네, 난리야.”

“우웨엑~~!”

“쿨럭쿨럭.”

저 멀리 굴러간 조경수는 둘째 치고, 내장까지 뒤흔든 기파에 내상을 입은 듯 토하거나 휘청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에 라미아가 양심도 없다며 말했다.

-저 꼴을 만든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데요.

그 말대로였다. 첫 충격파가 산들바람이라면, 뒤이은 것은 1급짜리 태풍이었다. 얼마나 강했으면 전투까지 멈추고 저 꼴들을 하고 있을까.

사실, 날벼락처럼 짜릿한 첫 충격파에 방어선을 사이에 둔 이들도 힐끔힐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덕에 붉은 번개에 갈라진 하늘이 붉은 손톱에 찢겨 무너지는 것도 보았다.

그에 대한 감상은 하나였다고 한다.

‘쓰벌~ X됐네.’

귀보다 몸으로 먼저 들리는 폭음. 무시무시한 기운을 감지하고 비명을 지르는 감각. 그 속에서 곧 들이칠 충격에 대비했지만, 그럼에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다행이라면 그 덕분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맥없이 목숨을 잃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과, 잠깐이지만 전투가 멈췄다는 거다.

그리고ᅳ

“……”

사사사삭ᅳ

살기가 꺼지지 않은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던 적과 아군은 한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어선을 밀어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눈먼 불똥에 맞아 개죽음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아니면 생존 본능인 걸까?

하긴, 어느 쪽이면 어떤가. 덕분에 살았으니 된 거지.


이드도 그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눈치 빨라서 좋네.”

난간에 선 이드의 옷깃은 평온했다. 지상보다 더 미쳐 날뛰는 기파가 알아서 피해 가는 듯 보였다.

-눈치보다는 생존 기술이라는 좋은 말로 표현해 줘요.

“굳이? 그나저나 진짜 제법이잖아.”

이드는 충격을 해소하고서 자신을 노려보는 적에 대한 감상을 짧게 늘어놓았다.

-쉴라 단장보다?

“어, 강해.”

오색 기사단의 상위 호환이라고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몇 수 차이가 아니다. 싸울 경우, 감추고 있는 수가 없다면 쉴라가 확실히 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검법이 뛰어나. 대문파의 것이라도 해도 될 정도야.”

이드의 공격을 막아 낸 검막은 절정의 환검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청성파의 청운적하검을 떠올리게 했다.

검법에 깃든 검의를 비롯해 검로 등 많은 면에서 청운적하검보다 모자라긴 하지만, 그럼에도 수백 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다듬어진 청운적하검을 연상시킨 것만으로도 훌륭했다.

게다가 당장 이드의 연계식을 쉬이 막아 냈다는 건, 검법뿐 아니라 그 주인 된 검사 역시 뛰어난 강자라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이드가 쉴라보다 강하다 단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당연히 상대 검사가 이드의 전력을 막아 낸 것은 아니다.

적에 대한 호기심도 그렇지만, 저택 안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라울 때문에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너무 강한 힘은 때론 쓸데없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다 빼더라도 상대 검사가 누구나 인정할 강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쉴라 단장이 들으면 실망할 것 같네요.

쉴라와 제법 친분을 쌓은 라미아의 말에 이드가 피식하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라미아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이드가 본 쉴라는 그렇게 말랑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될걸. 특히 삼검왕이 키운 것으로 보이는 기사가 자신보다 강한 걸 알면 어떻게든 뛰어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수련할 거라고 봐.”

단순히 누가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쉴라 입장에선 자신을 가르친 검후와 상대 기사를 만들어 낸 삼검왕의 대리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대리전의 전초전에서 그녀가 패한 것이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드의 눈이니, 의심할 수도 없다.

검후를 끔찍이 존경하는 쉴라 입장에선 아마 이보다 큰 문제는 없으리라.

라미아는 이런 이드의 말에 푸욱 하고 한숨을 쉬었다.

-제발, 적당히 참아 주세요. 지금도 쉬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수련 중인데, 여기서 더 자극제를 투여하면 약물 과다로 쓰러질지도 모른다고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쓰러질지도 몰랐다. 현재 쉴라는 검후로부터 직접 난화십이식을 전수받고 있었다.

누구보다 검후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쉴라에게 이보다 더한 자극제는 없는 상황.

그에 잠까지 줄이고 있는데, 눈앞의 상대에 대한 정보까지 더해진다면?

이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검후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어. 그보다, 상태는?”

-결계는 다시 안정화됐어요. 아까 이상의 충격이 아니면 붕괴되진 않을 거예요.

“깨질 것 같으면 아쉬운 쪽이 알아서 틀어막겠지.”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드도 아쉬운 쪽에 속한다. 상대 검사를 바로 따라붙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정도로.

-그렇다고 너무 기분 내지 말아요.

“걱정 마. 얼마 만에 보는 상승 검법인데. 나도 제대로 구경은 해야지.”

그러니 적당히 할 거다. 결계가 붕괴되지 않는 선에서 느긋하게 말이다.

슥슥.

양쪽 눈가를 가볍게 문지른 이드가 적 검사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런 이드의 얼굴은 눈매가 사나운 중년의 사내로 변해 있었다.

정체를 숨기는 것으로는 가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다. 드러냄으로써 숨긴다고 할까?

가려진 얼굴이라면 이런저런 짐작이 가능하지만, 얼굴이 드러난 상태라면 쓸데없는 의심을 피할 수 있다.

거기에 달라진 것은 얼굴뿐이 아니다.

츠츠츳-

이드가 내뻗은 검 끝에서 뿜어진 세 줄기 번개. 이는 수라삼검이면서 수라삼검이 아니었다.

수라삼검은 난화십이식만큼은 아니지만 이드의 무공으로 제법 알려진 편이다.

무인에게 특정 무공은 때로는 얼굴 이상의 신분 증명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정체를 숨기려면 필히 무공도 바꿔야 한다.

그에 이드는 즉석에서 수라삼검의 기본 무리와 검식을 재조정해 풀어냈다.

사실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버거운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을 태연히 실행해 낸 셈이다.

과장 좀 보태면 즉석에서 새로운 무공을 만든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정도로 상식을 파괴하는 짓이었다.

그런 상식 파괴에도 불구하고 더 어이없는 것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나온 무공이 제대로 된 위력까지 가졌다는 점이다.

즉, 이드의 공격을 마주한 상대 검사도 절대 쉽게 보지 못할 공격이란 뜻이다.

이윽고 검사가 검을 손에 들자 거대한 검형이 나타났다.

그것은 곧이어 열두 자루의 검으로 쪼개졌다. 그리곤 붉은 번개를 막으며 그 흐름을 타고 이드에게 거슬러 올라왔다.

치명적일 수 있는 카운터지만, 상대를 평가하는 이드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화경의 응용도 제법이네.’

분명 뛰어나지만 결국 ‘제법’인 정도다.

이드가 뒤꿈치에 힘을 주는 순간 그의 신형이 주욱 밀려 올라갔다. 강물을 타고 흐르는 나룻배처럼 공간을 가르는 이드의 신형에 그 곁을 스친 검형이 길을 잃고 이드의 발밑을 받치듯 맴돈다.

부운귀령보. ‘제법’ 수준이 아닌, 화경의 정화가 담긴 보법의 힘이다.

그렇게 좋은 이동 편을 구한 이드는 적의 제공권을 넘어 들며 혈산검을 뿌렸다. 붉은 노을을 닮은 검식은 수라삼검의 토대가 된 두 검공 중 하나로, 그 살기가 수라삼검에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라삼검과 달리 그레센으로 돌아온 후 한 번도 내보인 적이 없는 검법이었다.

‘환검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그물이기도 하지.’

점이 아닌 공간을 공략하는 혈산검.

“치잇!”

과연 적 검사도 이번엔 역공이나 방어보다는 회피를 선택했다.

파파팟.

검사가 혈산검의 검망 밖으로 미끄러진다.

한데 단순히 일직선이 아니다. 어지럽게 방위를 밟는 법에 따른 움직임.

이드는 혈산검을 혈하검으로 연결하며 검사를 몰아붙였다. 그와 함께 검사의 보법에 관심을 보였다.

보법을 밟은 검사가 빠른 이동뿐 아니라, 중간중간 제공권 자체를 이탈하려는 듯 공간 속으로 녹아들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가 은밀히 저택에 침입을 시도하던 바로 그 기술이다.

이드의 가진 부운귀령보와 달리 보법만의 공능은 아니지만, 그 발상이 비슷하다는 점에 크게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하. 누군지 몰라도 아이디어 좋네. 허공을 땅처럼 달리게 만들다니.”

처음 검을 타고 나타난 모습에 어검비행인 줄 알았고, 뒤이어 허공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절정의 허공답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검을 나누고 보니, 그런 고절한 무경이 아니었다.

마법이 내장된 아티팩트를 통해 하늘을 날고, 달리고 있었던 거다. 찰나의 순간 검사의 발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변화를 보면 확실했다. -점프, 에어플롯, 프리즈의 세 가지 마법이 연속으로 순환되고 있네요. 그런데 저렇게 사용이 격렬하면 금방 수명이 다하겠는데요. 거기에 아티팩트의 수명까지 헤아린 라미아의 설명까지 더해지면 다시 볼 필요도 없다.

보법에 숨은 트릭을 발견한 순간 이드는 검사의 보법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트릭도 트릭이지만, 보법에 대한 파악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이드의 관심은 오로지 검사의 검법에 있었다.

“자, 자. 어서 알고 있는 걸 풀어내라고, 바닥을 보자!”

촤르르륵.

이드는 마치 양을 몰 듯 변형된 수라삼검와 혈산검, 혈하검을 사용하며 적 검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내도록 몰아붙였다.

같은 검식이 나올 수 없도록 매순간 달라지는 공격.

“이런 미친! 왜 당신 같은 무인이 여기 있는 거요! 초인도 아니면서!”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결국 견디지 못한 검사의 입이 열렸다.

진땀을 뻘뻘 흘리는 검사, 허미트는 턱 밑까지 차오른 숨만큼이나 마음이 답답했다.

어째서 저런 놀라운 기사가 초인들과 함께 있는 것인가.

자신이 받은 정보에 저와 같은 자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렇게 정신없이 몰아붙이면서도 아직 여유가 있는 상대의 실력이 문제였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대물 확보는 실패다.

아니, 대물 확보뿐 아니라 기사단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기사단만이라도 복귀시켜야 한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주군을 위해서라도.’

허미트는 은밀히 퇴각 신호를 보내며 이 감당 불가의 적을 노려보았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