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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61화


1096화

직접 물어보자니?

이 무슨 산골 코흘리개나 할 소리란 말인가.

마스가 그렇게 친절하고 정직한 나라였던가? 아니, 심지어 마스가 아니라 신성 국가라도 자기들 불리한 일에는 응당 거짓말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또 시작이냐는 얼굴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머리 좋으면 다야?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새벽까지 마신 술이 더 취하는 것 같네. 저게 뭔 뜬구름 잡는 소리냐?’

그렇다고 저 레오날도 후작이 헛소리를 할 리는 없고.

사람들이 조용히 그를 노려보는 가운데, 귀족들 사이에서 성격 급하기로 손에 꼽히는 인물 중 하나인 티그릭 백작이 답답함을 못 참고 나섰다.

“후작께서는 마스가 바보도 아니고, 묻는다고 고분고분 정직하게 밝힐 거라고 여기시는 건 아니겠지요?”

“후훗, 진실과 거짓. 그게 중요합니까?”

“그럼,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까?”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더 중히 여길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제국의 이익이지요. 즉, 진실과 거짓에 상관없이 우린 저들로부터 제국에 이익이 되는 말을 들으면 된다는 겁니다.”

티그릭 백작은 가슴을 쳤다. 결국 마스로부터 원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거참, 쉬운 말 어렵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문제가 그 원하는 답을 어떻게 듣느냐는 거 아닙니까!”

목소리를 높이며 괴로워하는 티그릭 백작에 지켜보던 신하들이 내심 혀를 찼다.

‘쯧쯧, 저럴 줄 알았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혓바닥에 가시가 돋기라도 하냐!’ 레오날도 후작을 노려보는 귀족들의 눈이 한층 싸늘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레오날도 후작은 황제를 보며 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존경하옵는 폐하. 부디 불확실한 일보다는 제국의 이익을 우선하시옵소서. 저 죄인들을 잡는 것도 중하지만,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돌아올 득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국의 이익이라.”

“그렇습니다. 당장 죄인들을 발견하더라도 생포가 가능할지, 또 그 배후를 캐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에 비해 저들이 마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존경하옵는 폐하를 비롯하여 여기 계신 많은 분이 똑똑히 보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저라면 마스에 죄인들의 생포에 협조를 요청할 것입니다.”

“마스에서 거부하면?”

“후훗. 싸움꾼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이는 입이 아닌 행동으로 말하는 진실인 거지요.”

“흐음. 과연.

조금 복잡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이에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의 생각이 깊어졌다.

마스에서 길을 열면 그대로 안에 들어가 살피면 될 일이고, 싸우자면 그 자체가 진실을 인정하는 바가 된다.

그때, 여태껏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발터가 발언권을 얻었다.

토벌 중 발생했던 존 워스의 사건에 이어, 저택을 습격당한 일까지. 연이은 대형 사건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등장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우선 이번 사건으로 또 황제 폐하와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백작이 마음 쓸 일이 아니오. 그런 소리 말고, 하고자 하는 말을 하시오.”

“맞습니다. 피해자가 불편할 필요 없지요.”

황제와 대신들의 위로에 발터는 감사를 표했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단단한 힘이 깃든 저음이 흘러나와 사람들을 집중케 했다.

“제가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바는, 일을 순서대로 해결해 가자는 것입니다. 마스와의 전쟁을 두려워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전쟁이 하루 이틀 만에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당장 죄인들도 아직 제국 땅에서 도망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발터 백작은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수도의 방어 체계부터 손봐야지요. 안티로스에 기사단급 전력이 소리 없이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이 황궁을 노리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지금 가장 급한 것은 황제 폐하의 안위일 것입니다.”

순간 신하들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과연 발터의 말대로 그 부분을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했는데, 마스라는 이름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가장 중요한 일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 폐하.”

“송구합니다, 황제 폐하.”

벌떡 일어나 허리를 접는 신하들에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그대들이나 나나 정신없지 않았나. 그리고 그 일은 이미 레오날도 후작이 처리하고 있기도 하고.”

이어진 황제의 말에 놀란 신하들이 레오날도 후작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이제 시작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번 기회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바꿔 놓을 것입니다.”

“……칫.”

능청스럽게 웃는 레오날도 후작을 몇몇 신하들이 질투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수도의 방어 체계를 바꾼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집 열쇠를 넘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인데, 그런 큰일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결정되었단다.

레오날도 후작에 대한 황제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험. 방어 체계는 레오날도 후작께서 손보신다고 하니 넘어가고. 그럼 다음은 무어요?”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라면 당연히 내부의 단속일 것입니다. 바로 존 워스 경에 대한 일이지요.”

발터는 말과 함께 회의실 한쪽을 노려보았다.

그곳엔 존 워스의 이름이 나온 순간,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비추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평소 소드 팰러스와 삼검왕을 지지하던 자들로, 존 워스에 대한 사건 진행을 막고 있는 원인이었다.

“한때 제국 내 모든 기사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지금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함은 물론, 토벌해야 할 적과 손을 잡아 제국의 귀중한 기사들을 해했습니다. 이런 중죄를 지은 자를 벌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앞두고 군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크흠. 그 건은 사실 관계에 대해 좀 더 확실한 조사가 필요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성급히 처리하면 내부 정리가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만드는 꼴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 아직 일방적인 주장이 아닙니까. 존 워스 경의 말씀도 들어 봐야지요.”

언제나처럼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문제는 그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오?”

“…..”

“진정 억울하다면 그는 왜 당당히 나서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오?”

“말조심하십시오. 숨어 있다니요! 그분은 수련 중이라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 것뿐입니다!”

“이런 판국에 수련이란 말로 대충 넘어가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존 워스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이처럼 말의 꼬리를 잡아 늘어지면서 그날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이 보통의 흐름이었다.

하나 오늘은 달랐다.

평소 황제와 함께 묵묵한 눈으로 논쟁을 지켜만 보던 레오날도 후작이 나선 것이다.

“이런, 이런, 이래서야 끝이 없겠습니다. 폐하, 이 사건에 대해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려. 말해 보시오.”

“양측의 의견 모두 타당하나, 사실 증거가 확실한 발터 백작의 주장에 좀 더 힘이 실리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또 전쟁을 앞두고 기강을 다잡기 위해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도 분명하지요. 문제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를 수련이 끝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니…………” 

“하니?”

“마지막으로 존 워스 경이 직접 결백을 밝힐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그때까지 나서지 않는다면 추후 다시 논의할 것을 전제로 그의 처벌을 결정함이 어떠실지요?”

그렇게 되면 일개 소문 정도와는 규모가 달라진다.

황제가 처벌을 결정하는 순간, 이는 세상에 공표되어 사실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자, 잠깐…….”

“존 워스 경이 어디서 수련을 하는지는 몰라도, 세상에 퍼진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나서지 않겠습니까?”

순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검왕의 지지자들이 더 참지 못하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드르르륵-

“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죄를 임시로 결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추후에 다시 논해?

결백을 밝히기 위해 돌아와?

그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이를 갈았다.

그들에게 진정한 죄의 유무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그저 이 문제를 논란으로 남기는 것이다.

어차피 사실이 확인되어도 제국은 존 워스를 죽이지 못한다. 그의 명성이 쇠해도, 그가 살아 있는 한 제국의 힘이 되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존 워스의 죄에 대한 처벌을 황제가 임의로 결정해 버리면, 존 워스와 함께 삼검왕의 명성도 땅에 떨어진다. 

“그만!”

하지만 그 반박은 손바닥을 보이는 황제의 단호한 한마디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존 워스를 옹호하고 있지만, 엄연히 제국의 귀족이자 황제의 신하였다.

즉, 그들에겐 황제의 결정을 되돌리거나 막을 힘이 없었다.

‘젠장, 틀렸다. 황제께서 작심을 하셨어.’

‘검왕이라면 몰라도, 우리로서는 폐하의 결정을 막을 수 없다. 검왕이 이 자리에 있어야 했어!’

‘검왕님을 어찌 볼지 눈앞이 캄캄하군.’

황제의 얼굴을 본 그들은 이미 결과를 직감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황제의 지엄한 명령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발터는 그런 모습을 냉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겨우 하나 끝났군.’

명예 후작과 라울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황제에게 고한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 듯했다.

기쁨은 없었다. 어차피 겨우 이런 일로 소드 팰러스가 무너지진 않을 테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검왕 쪽에서 다시 명분을 만들어 줬다는 점일까.

‘부디 라울이 놈들과 검왕의 관계를 밝혀내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무리 검왕이라도, 몰래 키운 기사단을 이용해 안티로스에서 벌인 사건이 밝혀지면 결코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황제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일인 만큼, 소드 팰러스에는 존 워스의 문제보다 더욱 치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검왕의 낯짝이나 보러 가 볼까. 제법 볼만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분노로 구겨져 있을 검왕의 얼굴을 상상한 것일까.

차갑던 발터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석에서 이런저런 모습을 모두 내려다본 황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새벽에 자신을 찾아왔던 황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발터와 같은 말을 하면서 애원하듯 말했었다.

“아바마마, 할마마마가 그립지 않으신가요? 우리 아나크렌에는 아직 할마마마가 필요한 것 같아요.”

황제는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갑자기 사라진 검후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황녀가 최근에 조용하다고 하던가.

‘아무래도 황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구나.’


그리고 이날, 황궁 회의실에서 일어난 일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라울과 검은 돌을 통해 이드에게 전달되었지만. 

“검왕이 한 방 먹었네.”

감상은 짧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카논에 가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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