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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66화


1101화

마스에 관해 어찌 생각하냐 물으면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비슷하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들이받는 싸움꾼. 사람으로 치면 급한 성격에 힘만 믿고 날뛰는 인물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 이미지도 나라의 일을 다루는 윗선으로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한 싸움꾼에서 눈치 좋고 약삭빠른 싸움꾼이 되는 거다.

실제로 마스는 대륙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세 제국을 제외하고 정보 수집 능력이 가장 뛰어났다.

하긴 싸움을 해도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간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그런 눈치가 없다면 뒷골목에서도, 국제 관계에서도 결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좋아하는 싸움을 위해서라도 평소 귀를 활짝 열어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마스는 처음 제국의 요청을 받고 상당히 놀랐다.

다른 곳도 아닌 저 아나크렌이 자국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협조 요청을 한 데다, 자신들은 청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니.

사실이면 제국 쪽 라인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가짜라도 제국이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는 뜻. 결국 어느 쪽이든 좋을 게 없었다.

그에 답을 미루고 재빨리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제국이 전해 온 정보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쉽게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지나가던 개도 믿지 않을 소립니다.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맙니까. 그 먼 길을 이동하는 동안 도망자 하나 잡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럼 제국이 꾸민 일이라는 건데. 이건 이것대로 말이 안 되잖습니까. 제국이 뭐가 아쉬워서요.”

“그렇기는 하지요.”

“이유가 왜 없습니까? 명분이 되지 않습니까. 제국이 우리를 칠 명분이!”

수염을 푸르르 떨며 고성을 지르는 어느 신하의 주장이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오늘도 불려 나온 늙은 재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분, 좋지. 그런데 제국이 명분까지 만들어 우리를 쳐서 뭘 얻는단 말인가? 폐하께서 들으시기에 죄송한 말이네만, 우리 마스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오늘도 어김없이 손에는 담배를 쥐었고, 여전히 가래 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명한 것은 늙고 주름진 입가에 어린 비웃음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국왕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자국이 형편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재상의 모습에 국왕이나 다른 신하들 어느 누구도 놀라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뼈를 때리는 진실이긴 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며, 그럼에도 그가 마스를 제 목숨처럼 사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즉,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재상은 그런 나라의 척박함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이끌어 온 장본인 중 하나였다.

이런 재상의 말이니, 아무리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신하라도 슬그머니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크흐흠.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럴 수도. 아니, 그리고 우리 마스가 어때서 그러십니까? 이만하면 충분히 탐나는 땅인데.”

“클클클. 그렇다고 하세.”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소박하게 웃은 노재상이 습관처럼 담배를 빨아들였다.

담배가 붉게 타들어 가며 잠시 침묵이 스치고.

그사이 생각을 정리한 국왕이 입을 열었다.

“영혼의 관이면 어떤가?”

“영혼의 관…… 입니까?”

“그래, 이 땅 자체는 별 볼 것 없어도, 미완의 마탑이라면 제국이 노릴 만하지 않겠나?”

“폐하께선 제국에서 이 땅에 영혼의 관이 있음을 알아차렸다고 보시는군요.”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제법 높지 않나? 제국에는 토벌 중에 생포된 자들도 있으니까.”

하나하나 말을 이어 가는 중에 국왕의 눈은 점점 깊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말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 시야가 좁아지고 편협해지는 상태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세상에 발표한 건 아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미완의 마탑을 품에 안은 마스다.

하나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이 모르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비밀이 새어 나갈까 봐 걱정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신하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탑 쪽에서 새어 나갔을 수도 있었다. 국왕 스스로가 말했듯 제국에 생포된 마탑의 마법사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을 통해 마스가 마탑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까지는 아닐지언정, 영혼의 관의 위치 정도를 알아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마스의 고위관료들만 해도 마탑과 협의를 끝낸 이후, 실은 마지막 남은 영혼의 관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땅에 뿌리박고 있음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런 갑작스러운 사실에 당시 국왕과 국무대신의 분노는 상당했다. 오죽하면 협의가 파기될 뻔했다.

아무렴 국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땅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인 자들이 있음을 알았으니, 노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순간만은 제국 황제의 기분을 깊이 공감했을 정도랄까?

그나마 제국보다 나은 점이라면 마스의 초인들을 연구 재료로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우리 마스를 두려워하거나, 존경하기 때문은 아니겠지. 그래도 아무렴 어떠랴.’ 엄밀히 말하면 미완의 마탑에게 가장 중요한 영혼의 관에 대한 보안을 위해서이리라.

어쨌든 마스의 국왕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이유가 되었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점점 제 생각을 확신해 가는 국왕에 노재상은 묵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완의 마탑에 대해서는 황제가 직접 토벌을 선언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치기 위해서라면 이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어째서? 영혼의 관은 제국이 아닌 우리 땅에 있는데.”

“그래도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편을 들면, 그 순간 지금까지 마탑이 저지른 모든 사건이 마스의 책임이 됩니다. 물론 그 대상이 제국뿐이고, 평기사들뿐이라면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지금 당장 미완의 마탑이 마스의 그늘 아래로 들어왔음을 세상에 발표하지 못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해서 토벌에 대한 열기가 식고, 마탑에 대한 관심도 옅어지면 각국과 협의를 통해 해결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그때쯤엔 마탑도 미완이 아닌 당당한 이름을 달게 될 것이고, 그리하면 정보에 밝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같은 단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 알기로 제국은 미완의 마탑에 대한 토벌을 끝낸 게 아니야. 경의 말은 그걸 알고도 아니라는 것이겠지?”

“토벌이 끝나지 않았고, 내부에 존 워스라는 골칫덩이를 끌어안은 지금, 문제를 굳이 더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지요. 제가 볼 때 최소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것입니다.”

“국경을 넘은 도망자들도?”

마치 확인하듯 묻는 국왕에 고개를 끄덕인 재상.

그에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자 중 하나가 그게 말이 되냐며 나섰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안티로스에서 발터 백작의 저택을 노린단 말입니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이 아닙니까?”

응당 이것이 제국의 협조 요청을 의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재상의 말을 부정하는 그의 질문이 오히려 핵심을 짚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부정적인 얼굴을 하고 있던 국왕과 몇몇 눈치 빠른 신하들의 얼굴에 번뜩 놀란 기색이 어렸다.

“설마 경은 삼검왕이 이번 일을 벌였다고 여기는 것인가?”

“설마라고 하시지만, 사실상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뼛속까지 제국의 기사들이야.”

“동시에 대단한 야심가들이기도 함을 폐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저 때가 된 것일 뿐인 게지요.

“때라・・・・・・ 그래, 마침 검후가 수련을 떠났다지.”

국왕은 회의실의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거기엔 마스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 전투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하나 정작 국왕은 그걸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색에 빠졌던 국왕의 시선이 다시 재상을 향했을 때, 그의 눈은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경은 최대한 빨리 검왕과 연락을 해 보게. 그의 속셈을 알아야겠어.”

“하면 제국의 요청은 어찌할까요?”

“……열어 줘. 다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날짜는 하루 뒤로 잡고, 그 숫자 역시 최소로. 무엇보다 우리 기사단도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강조하라.” 

“즉시 시행하겠나이다.”

“정교하게 움직이게. 어쩌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국의 팔다리를 끊을 기회일지도 몰라.”

“국왕 전하께 영광을’

신하들은 재차 당부하는 국왕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떠오른 것을 보고 신나게 답했다. 과연 싸움꾼답게 싸움의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신하들이 우르르 회의실을 나설 때, 국왕은 한쪽을 향해 은밀한 손짓으로 한 사람을 불렀다.

“하명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그래, 넌 회의실을 나가면 곧장 마탑 놈들에게 알려라. 제국이 온다고. 그러니 살고 싶다면 쉼 없이 노력해서 완성된 초인 마법을 내 앞으로 가져오라 일러.”

나지막하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야수의 야성처럼 진득한 위협이 배여 있었다.

“충.”

명령을 받은 남자는 짧은 복창과 함께 소리 없이 회의실을 나섰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가고, 혼자 회의실에 남은 국왕은 다시 천장의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재상의 말대로만 된다면, 우리 마스는 저 브레이먼 대전 때처럼 제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삼검왕이 반기를 들면 틀림없이 많은 기사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중 적지 않은 수가 삼검왕을 따르리라.

검후라는 큰 변수가 있지만, 저 삼검왕이 그에 대한 대비도 없이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터.

그렇게 제국의 가장 큰 전력이 떨어져 나갈 때, 우리가 초인 마법을 완성해 모든 초인들을 끌어안게 된다면.

“크하하하하하!”

무공을 통해 대륙 최강이 된 아나크렌과 같은 길을 걷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왕은 당장이라도 제국이 된 마스의 모습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이다.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이유는.


일리나와 외박을 하고 돌아온 다음 날.

이드는 카논 행 준비를 마쳤음을 밝혔다.

그에 대해 쉴라가 많은 고민을 가진 듯 보였지만, 자신을 대신해 남아 줄 일리나와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대비책까지 알려 주자 곧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대범한 그녀라도 검후의 보호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까다롭고, 걱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이드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럼 두 분만 다녀오시는 거로군요.”

“그게 가장 빠르니까요. 몸을 빼기도 좋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드에게 카논은 적진이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탈출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했다.

“아무튼 큰일은 없을 겁니다. 일단 바벨의 도움도 있을 테고.”

“그럼 큰 문제 없이 돌아오시면, 다시 토벌이 시작될 즈음이겠군요.”

끄덕.

이드는 쉴라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마지막 토벌이죠.”

설마 황제와 라울이 그런 걸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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