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97화
1132화
뱅커올슨 영지와 엘라임 영지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전 사무엘 영지보다도 더.
무슨 말이고 하니, 이동해야 할 거리가 길어진 만큼, 이전보다 더 높이 올라갈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팟! 팟! 파팟!
“와! 왓! 우어!”
블링크를 통해 쉼 없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자, 그 속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피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발밑으로 멀어지는 땅에 오금이 저렸다.
“갑자기 냉기가 사라졌네?”
미리부터 일행을 호신강기로 보호 중이던 이드가 말했다.
“지금 막 중간권 계면을 통과했거든요. 여기부터는 열권이니, 올라갈수록 기온이 높아질 거예요.”
이후 블링크를 끝낸 라미아가 다시 말했다.
“현재 지상과 구십 킬로미터 떨어진 상공에 도착했어요.’
“방향 유도는 이번에도 부탁할게.”
“떨어트리지나 말아요.”
“떨어지지도 않을 거면서.”
이드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라미아를 뒤에서 단단히 끌어안았다.
보는 눈만 없다면 이전처럼 골렘을 넣어 두고 모습을 바꾸면 편할 텐데.
이드는 그러지 못하는 원인을 돌아보았다.
“피터?”
직전까지 호들갑을 떨던 피터는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까마득히 펼쳐진 대지와 머리 위로 펼쳐진 우주에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드가 몇 번을 더 부르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피터!”
“예옛! 아! 죄송합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설마 날아간다는 게 이런 의미일 줄이야. 굉장합니다. 대단해요!”
“기뻐하는 건 좋은데, 아직 나는 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예? 이렇게 높이 올라와 있는데요?”
“정확히는 떠 있는 거죠. 나는 건 지금부터. 그러니까 잘 견디고 있으세요. 내가 단단히 잡고 있으니,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말과 함께 무형의 기운이 피터의 온몸을 단단히 옭아맸다.
그리고 그 직후 시작된 비행, 뇌룡노도.
갑자기 전신을 조이는 힘에 콜록 하고 기침을 하던 피터는 순간 눈에 보이던 모든 것들이 뒤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아찔하게 밀려오는 속도감.
그는 절로 입을 따악 벌릴 수밖에 없었다.
몸에 느껴지는 압력은 둘째 문제였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미친 속도감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이었다.
이건 고통을 참는 훈련으로도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 멀리 펼쳐지는 오로라 현상을 눈에 넣을 정신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이드의 그림자를 타고 느꼈던 고통이 떠올랐다.
그때도 몸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더랬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괴로움은 그때의 힘듦을 가뿐하게 넘는다.
“이,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아아아아아악!!!!”
눈을 감아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에 피터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이드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미 음속을 넘은 속도에 뒤로 밀려났으므로.
이름 모를 산허리에 올라선 이드가 아래에 자리한 땅을 내려다보았다.
“저기가 엘라인 영지라는 거지?”
“일단 지도상으로는요. 피터 씨가 확인을 해 주면 정확하겠지만, 상태가 저래서야.”
그런 두 사람의 뒤.
그들과 함께 도착한 피터가 하얗게 눈을 뒤집은 채 기절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입가에 그득한 구토의 흔적까지. 이드는 그런 피터를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림자를 다루는 모습은 딱 암살자인데 저렇게 현기증이 심해서 일은 제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잘했으니까 지부장까지 올랐겠죠. 거기다 멀미가 있는 사람도 직접 운전하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잖아요.”
“……”
엘라임 영지를 내려다보던 이드는 결국 잠시 후 직접 피터를 깨웠다. 알아서 깨길 기다렸지만, 이미 도착하고 한 시간이 넘었다.
해가 지고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성안으로 들어가야 편히 쉴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서 이드는 대충 구토의 흔적을 지운 뒤 단중혈을 꾸욱 눌렀다.
“케헥~ 헥헥! 커커컥. 커커커커컥!!”
번쩍 눈을 뜨고 깨어난 피터는 곧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목을 잡았다.
이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준비한 포션을 넘겨 주고는 말했다.
“너무 심하게 소리를 질러서 목이 상했어요. 포션으로 상처는 치료되겠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잘못하면 목소리가 바뀔 거예요. 거칠게.”
“……”
피터는 입을 뻥긋거리다 이마를 부여잡았다.
‘내가 그렇게 심하게 비명을 질렀다고?’
지나친 어지러움에 기억마저 사라진 피터였다.
하긴, 어차피 좋은 기억도 아닌데 사라지면 어떤가.
이드는 피터를 일으켜 세워 산 아래 있는 영지를 보게 했다.
“지도를 보면 맞는 것 같은데, 피터 씨의 확인이 필요해서요. 엘라임 영지 맞습니까?”
“커…….”
끄덕끄덕.
무심코 말을 하려던 피터는 이상한 쇳소리에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좋군요. 바로 내려가죠. 성문이 닫히기 전에.”
피터의 답을 들은 이드는 라미아와 함께 성큼성큼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피터가 무척 핼쑥해진 얼굴로 뒤따랐다.
꾸루루룩.
비어 버린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신분 확인을 마치고 성안으로 들어온 이드는 가장 먼저 식당을 찾았다.
꾸루루루루룩!
한숨 돌리는 것도 그렇지만, 저렇게 요란하게 울어 대는 피터의 배꼽시계를 외면한 채 바로 백작을 찾기는 민망했기 때문이다.
밥 시간이 지났음에도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은 많았다.
“상인이 많은 건 뱅커올슨과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네요. 훨씬 활기차요.’
과연 그녀의 말대로 대부분의 손님이 용병과 상인이었다.
라미아가 감상을 말하자, 피터가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가리켰다.
엘라임 백작과 그의 영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보자…… 엘라임 영지는 사하로부터 넘어오는 몬스터를 막는 삼차 저지선의 핵심으로, 전투에 필요한 대량의 식량과 물자를 비축하고 있다. 영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잘 훈련되어 있으며, 백작은 이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일 차 저지선으로 나가 직접 몬스터와 전투를 치른다.”
“황족이면서 스스로 험한 일에 앞장서는 인물이라 백작이 유명한 이유가 그 때문이로군요?”
내용을 들은 이드가 묻자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족으로 누리기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소드 마스터가 되어 제국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인물이라. 분명 존경받을 만한 요소다. 또한 기사로서도 올바른 행동이었다.
그런 사람이 파티를 열면 분명 귀족이란 귀족은 다 모여들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곧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덕분에 늦은 점심으로 배를 채운 일행은 곧바로 백장이 머무는 내성을 향했다.
“으으으?”
피터가 이런 어중간한 시간에 방문해도 괜찮은지를 물었지만, 검후의 이름을 짊어진 이드와 라미아는 당당했다.
“정지! 용무를 밝히시오!”
하나 그 당당함은 딱 내성 정문에서 막혔다.
당당함만으로는 성문을 넘을 수 없었지만, 이드와 라미아가 뿜어내는 심상치 않은 기도를 감지한 기사가 나선 덕분에 집사를 만날 수는 있었다. 해서 이드가 그에게 검후의 이름을 적어 넣은 편지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바로 백작과 인사하는 건 무리였다. 이어진 집사의 말 때문이었다.
“백작님께서는 수련 중이실 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십니다. 수련이 끝난 후 백작님께 편지를 전달하겠습니다. 그 후 허락이 떨어진다면 백작님을 만나 뵐 수 있을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결국 이드와 일행은 접객실로 안내되었다.
도착해 보니 이미 접객실의 다른 방에도 백작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가득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네요.”
문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둘러본 라미아가 말했다.
“그러게. 편지만 전하고 내일 방문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잘 자고 있다가 불려 올지도 모르죠.
검후가 아끼는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엘라임 백작도 검후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리라. 하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예상이었다.
딱히 편지에 명예 후작이 대리로 전달해 주는 거라고 적지도 않았으니까.
이드는 검후가 아끼는 제자와 그런 부담스러운 만남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부디 좋은 인연이 되어야 할 텐데.”
“검후와 우리, 둘 중 어느 쪽이요?”
“당연히 검후가 우선이지.”
귓가에 속삭이는 라미아에 음흉하게 웃어 보이는 이드였다.
그 후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드는 명상을 시작했고, 라미아는 마법 수식을 꺼내 들었으며, 피터는 따끈한 차를 조금씩 마셨다. 따뜻한 차가 목에 좋다는 말을 듣고 실천 중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또 한 시간이 흘렀다.
접객실의 방은 비긴커녕 오히려 더더욱 가득해졌다.
어느새 해도 산 너머로 사라지고, 곳곳에 마법 등불이 켜졌다.
그때, 명상 중이던 이드가 혀를 차며 눈을 떴다.
“이거, 아무래도 백작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겠는걸.”
“왜요? 아…….”
“으으?”
“성안의 기류가 심상치 않네요. 살기가 솟아오르고 있어요.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요. 이 정도 숫자인 걸 보면, 아무래도 기사들인 것 같은데.”
백작이 머무는 성에서 기사들이 살기를 비출 이유가 무엇일까.
“으으으!”
피터가 급히 종이에 글을 휘갈겼다.
[백작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곧 알게 되겠죠. 그중 일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거든요.”
살기를 감지한 순간 열린 기감을 통해 성안의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이드였다.
콰당!
아니나 다를까.
곧 접객실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며 병사들과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각 방에 대기 중인 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끌어내라!”
“어이쿠! 이게 무슨 일이오.”
“난 백작님을 뵈러 온 손님이오! 이 무슨 무례란 말이오!”
당혹, 분노, 두려움.
삼박자가 잘 버무려진 반응들이 쏟아졌다.
곧이어 이드 일행이 머물고 있는 방의 문을 열고 기사가 나타났다.
“이 방은 세 명인가. 모두 밖으로 나와라.”
눈에 살기가 흐르는 기사가 위압감을 조성하며 명령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겁먹을 사람은 이 방에 아무도 없었다.
“으…… 그으음. 무슨.. 일. 이. 오?”
피터가 일어나 물었다.
목이 좋지 않았지만, 으으 거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억지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덕분에 철판을 긁어 대는 기괴한 목소리가 기사를 놀라게 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이지, 무슨 일이냐고?”
자신이 놀랐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건지, 아니면 이미 분노한 상태였던 건지 기사가 당장 피터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카락을 잡고 끌어내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동작.
짧은 순간 이드의 눈치를 본 피터는 슬쩍 몸을 틀어 기사의 손을 피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이. 그렇게 화낼. 일. 이오? 백작, 님의, 기사가. 이리. 경박. 해도 되는 거요?”
제법 점잖게 따져 묻는 피터. 그러나 그 목소리 때문에 대단히 기괴하게 들렸다.
“여기 수상한 놈들이 있다! 백작님을 시해한 놈들과 한패로 보인다!”
즉, 기사가 이렇게 외친 데는 분명 피터의 탓이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