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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0화


507화

[이게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어요.]

일리나의 어깨에 올라앉은 라미아가 말했다. 이드와 일리나의 머리와 어깨를 오가는 그녀는 요즘 일리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이드에 대한 이야기와 지구에서 보고 들었던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꺼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벌레가 꼬인 거지.”

이드의 말에 한순간 벌레와 같은 레벨로 떨어진 타르코지였다.

“아무래도 일락 부지부장을 너무 믿었던 모양입니다. 설마 이렇게 입이 가볍고 사람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일락이 마련한 교통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게을렀던 것 같습니다.”

에단은 정말 면목이 없다는 듯 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드는 에단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괜찮아. 귀찮을 뿐이지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더구나 일락이 내민 교통편을 받은 것도 나고. 신경 쓸 것 없어.”

에단은 자신의 몸을 일으키는 이드의 손에 고개를 들었지만 내심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이드는 괜찮다고 해도 에단 자신은 그렇지가 못했다. 임무 중일 때는 자신의 파트너가 마차를 몰고 돌아와도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딱 두 번 얼굴을 마주친 인물이 수배해 준 교통편을 아무런 의심 없이 덥석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서 저 개망나니 같은 상단주와 엮이는 결과가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몇 번이나 존경한다고, 영웅이라고 칭송했던 마인드 마스터 본인 앞에서 말이다.

얼굴이 화끈거려 이드와 라미아, 일리나를 볼 자신이 없었다.

가장 면목이 없던 것은 그로 인한 피해를 일리나와 이드가 가장 크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빌어먹을 상단주 놈이 끈질기게 일리나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내가 완전히 정신 줄을 놓고 있었구나. 긴장이 너무 풀렸어.”


사실, 일락이 알았다면 억울해 가슴을 칠 일이었다.

그는 정말 정해진 규율대로 일을 처리하고 처벌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서류까지 모두 준비해 둔 상태였다. 지부장의 결재만이 남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임시지만 제리가 부하들을 데려가는 일을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부장의 힘이 크고, 무엇보다 지금은 하이탈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그들을 내준 것이었다.

일락도 설마 그 사이에 영주가 죽고 영주성이 무너지는 대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서 정신없이 바빠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로비를 받은 지부장이 그들을 풀어 주고, 동시에 하이탈의 출입 제한이 풀릴 거라고는 더더욱이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야, 이 미친놈아?!”

그로 인해서 제리 용병대가 하이탈을 떠났다는 말에 제대로 뚜껑 열린 일락이 지부장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진 실력에 비해서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용병대라고 하겠다.


이드가 그냥 넘기자고 했지만 에단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고생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감히 이드를 기만한 것은 절대 참을 수가 없는 에단이었다. 이 문제는 이드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덤벼든 것과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좀 더 감정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원래 감정 문제가 제일 골치 아프고 오래가는 법이다.

“아닙니다. 이런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맡겨 주시면 이번 일에 대해서 제가 확실하게 항의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에단은 이빨을 단단히 물고서 말했다.

실제로 이후 에단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용병길드에 항의한 덕분에 일락이 모진 고초를 겪은 후 지부장은 용병길드로 잡혀 와서 지부장과 용병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형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그가 더 곤란하게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성격으로 보이지 않던데요.”

일리나가 집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타르코지의 눈을 떠올리며 말했다.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

이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리나의 시선에 가볍게 웃으며 무서운 말을 한다. “뭐, 그때는 모조리 밟아 버리고 떠나면 되니까 걱정 말아요. 하하………. 윽!”

순간 어느새 다가온 라미아의 날개가 이드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퍽!

[너무 과격하잖아요. 이럴 때 장난이 치고 싶어요?]

이드는 라미아의 잔소리에 장난스럽게 살짝 혀를 빼물었다.

분명 그녀의 말대로 장난 섞인 말이지만 100% 장난은 아니었다. 정말 일리나를 노리고 다가오는 상대라면 철저하게 밟아 줄 생각이었다. ‘감히 누굴 건드려?”


은밀하게 마차를 탈출한 제리는 자신의 용병대가 기다리는 상행의 제일 끝을 향해 최근 들어 가장 빠른 속도로, 제일 열심히 달리는 중이었다. 

“씩씩………… 빌어먹을 놈. 머리가 돌이야? 씩씩・・・・・・ 난 나서지 않겠다고 한 걸 벌써 잊어 먹은 거야, 뭐야!”

제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던 타르코지의 모습에 짜증이 솟았다. 그 일만 아니라면 이번 상행에 섞여서 제법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겨우 상행을 쫓아와서 얻은 것이라고는 작은 돈주머니가 다였다. 그것도 열어 보니 골덴도 아니고 실링만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천하의 구두쇠 같으니!”

뒤늦게 상행에 따라붙은 제리 용병대는 상행의 가장 외곽에서 쉬고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상단주와 계약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제리는 차라리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떠나더라도 용병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빨리 짐 싸라! 바로 여길 뜬다!”

용병대는 제리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지시에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하이탈에서 만났던 엘프하고 검사가 여기 있다. 처벌받기로 한 용병들이 말짱한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 없잖아. 그러니 바로 여길 뜬다. 빨리 준비해!”

제리의 대답을 들은 용병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았다.

“크게 풀어 놓은 짐도 없습니다. 바로 준비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바로 상행에서 이탈한다.”

“그럼 어디로 갑니까?”

“일락 때문이라도 일리나스로 다시 돌아가진 못하니 아나크렌으로 가야지. 상행이 움직일 길은 내가 알아. 그걸 피해서 우리는 그 길을 우회한다. 그럼 출발!”

“출발!”

가장 앞서 상행과 떨어져 완전히 다른 길로 향하는 제리를 따라 다른 용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로 인해서 너희들이 고생하게 됐으니 공평하게 주고받은 거지. 나는 이제 너희들한테 감정 없다. 그러니 제발 아나크렌으로 가서는 서로 보지 말자!’

슬쩍 이드들이 있을 만한 곳을 돌아본 제리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타르코지가 분노에 몸을 바르르 떨다가 소리쳤다.

“그런 삼류 용병 새끼 하나도 제대로 못 잡아? 네놈들은 그러고도 꼬박꼬박 월급 받아가지! 당장 나가!”

그러자 그 앞에 서 있던 인물이 기다렸다는 듯 마차를 나가 버렸다. 타르코지의 독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타르코지는 그 모습조차 짜증 나고 분노가 치밀 뿐이었다.

“젠장. 밥벌레 같은 놈들. 고작 삼류 용병대 하나 못 잡아오면서 폼만 잡고 있지! 내 저것들을 이번 기회에 모조리 바꿔 버린다.”

이미 사라진 등을 향해 분노를 쏘아내던 타르코지는 당장 급한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실수다. 호감을 샀어야 하는데, 괜히 흥분해서는.”

타르코지는 자신의 실수에 후회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 일은 정말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전의 반응들로 봐서는 그들과의 관계 역시 이미 틀어졌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타르코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놓치면 언제 다시 엘프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희귀 약초를 재배해서 천하제일의 상단이 되는 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이것은 핑계였다. 타르코지는 그 아름다운 검은 머리의 요정을 가지고 싶었다. 자신의 손에 넣고 싶었다.

옆의 젊은 검사가 아내라고 소개했지만 그건 그리 큰일은 아니다. 그는 이미 임자가 있는 여성을 탐해 본 경험이 적잖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름다운 여성에게 다른 짝이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자신만의 것이 될 수만 있다면 그런 점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그녀만 자신의 것이 된다면 희귀 약초의 재배법은 자연적으로 손에 들어온다. 꼴란처럼 하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약초 재배 방법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일리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던 타르코지는 점점 더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래, 손에 넣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넣어야지.”

뭔가 결심한 타르코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밖을 향해 소리쳤다.

“코시! 코시 있으면 들어와라! 네게 시킬 일이 있다.”

삐걱-

다음 순간 마차의 문이 비죽이 열리고 그 사이로 코시의 머리가 들어왔다.

“뭐, 시킬 일 있으십니까?”

“그래, 그러니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아라.”

방금 그렇게 설쳐 놓고 또 무슨 일인가.

평소처럼 불평을 말하려던 코시였지만 어쩐지 서늘하고 묵직한 타르코지의 눈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마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그렇게 큰 소동이 일어날 뻔한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 상행이 다시 출발했다.

이드는 전날 일리나와 라미아가 말한 대로 에단에게 수건을 말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여러 가지 섬세한 마나 컨트롤이 수반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드는 마나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에단이라면 쉽게 기술을 익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드의 예상과 다르게 에단의 마나 컨트롤이 서툴렀다.

“차라리 좋은 기회다. 이 기회에 마나의 흐름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목표로 잡아. 그것만 완벽해져도 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거야.” 

“확실히 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에단은 조용히 입을 닫고서 젖은 수건을 열심히 털어 대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이거 끝나고 나면 빨래를 말리는 다른 방법으로 삼매진화의 수법을 알려 줄까?’

삼매진화는 내력의 속성을 변화, 유지, 순환시키는 기술이 절정에 이르러야 가능한 수법이었다. 그에 라미아가 은근히 그를 보며 눈을 흘겼다. 

[으이그,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요?]

‘괴롭히기는! 이것도 수련이라고. 방금 말했듯이 저것만 제대로 익혀도 그의 무공은 분명히 한 걸음 진보하게 될 거야. 그리고 저걸 봐서는 당분간 삼매진화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펑!

이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에단의 손에 들려 있던 수건이 길게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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