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02화
1137화
작은 새 한 마리가 하얀 창틀 위에 내려앉았다.
가끔 이곳에서 먹이를 얻어먹었음을 기억하는 녀석은 부리로 창을 두드렸다.
찰칵.
잠시 후 창문을 활짝 연 이드가 과자 몇 개를 내어 주었다.
“귀엽게 생겨 가지고. 너도 닭둘기구나?”
과자를 가져가지 않고 사람을 옆에 둔 채 태연히 쪼아 먹는 먹보 새.
그런 녀석의 머리를 톡톡 친 이드는 그제야 아침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창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뾰족하게 솟은 색색의 지붕은 아나크렌이나 일리나스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이었다.
마치 침엽수림 같은 건물의 형태는 눈이 많은 카논의 특징이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머리에 담고 있으려니, 욕실에서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드, 따뜻한 물이 도착했어요.”
“응, 알았어.”
현재 두 사람이 머무는 곳은 발라파루의 어느 고급 여관이었다.
피터가 멀쩡했다면 바벨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쉬고 있었겠지만, 엘라임 백작령으로 갈 때보다 길었던 비행의 후유증인지 쉽게 깨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급한 대로 사람들에게 물어 잡았다.
“지금쯤이면 피터 씨도 일어났겠죠?”
이드가 간단히 씻고 나오자, 라미아가 수건을 넘겨받아 아직 축축한 이드의 머리카락을 닦아 내며 말했다.
“아까 깨서 나가는 것 같던데.”
허겁지겁 여관을 달려 나가던 모습이 제법 볼만했다.
“지금쯤이면 바벨 지부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지 않으려나. 아니면 라울이라도 마주하고 있거나. 그러니 아침은 우리끼리 먹자. 이 집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니까.”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여관을 추천한 가장 강력한 이유였더랬다.
“좋아요. 식사 후에는 산책도 해요.”
“그러자.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오전 일정을 소화했다.
한편, 이드의 짐작대로 지부를 찾은 피터는 통신구에 떠오른 라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얼굴색이 영 좋지 않은데, 괜찮나?”
라울의 첫마디가 이러할 정도로, 두 볼이 홀쭉한 피터의 모습은 마치 병자 같았다.
“면목 없습니다. 기절하는 바람에 두 분을 직접 숙소로 안내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친분을 쌓아 그의 옆에 바벨의 사람을 두고, 바벨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등 차근차근 이드와의 거리를 좁히려는 계획이었으나 영 쉽지 않았다.
“그 꼴인 걸 보면 이번에도 고도에서 낙하했나 보지?”
“기절하기 전까지 기억으로는 그랬습니다.”
“엘라임 백작령으로 이동할 때도 그랬지만, 발라파루까지도 순식간이라. 공간 이동이 막혀 있는 동안에는 우리도 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흥미를 보이는 라울과 달리, 피터는 공포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안 그래도 지부장인 만큼 장거리 이동도 심심치 않은데, 그때마다 이 고생을 하라고?
‘……그냥 은퇴할까?’
그런 충동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라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나저나 엘라임 백작령에서 자네가 요청한 건 말이야. 결과가 나왔네.”
말과 함께 대기 중이던 요원으로부터 잘 정리된 서류가 전해졌다.
“벌써 말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후의 말인데, 무시할 수 없잖나.”
그런 인물을 일 년 동안이나 감금하고 있던 당사자가 할 말이라기엔 모순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더욱더 검후의 존재를 크게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말이 옳았네. 검후가 불러 준 자들 가운데 이미 네 명이 사망했어. 그중 백작이 하나, 자작이 셋인데・・・・・・ 보고된 바에 따르면 급사였다는군. 심지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었어.”
“우연은 아니겠죠?”
“훗, 전쟁 말고 이삼 일 사이에 귀족들이 이렇게 많이 죽은 건 최초일걸.”
마치 비웃는 것 같은 라울의 말을 들으며 피터는 급한 손길로 서류를 들추며 중요 부분들을 빠르게 훑어나갔다.
그가 바벨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동시에 카논 제국의 사람인 것 역시 분명한 사실.
자국에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증명하는 정보가 손에 들리자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요?”
“지금 자네가 알아 와야 할 일을 내게 묻는 건가?”
그 때문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라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 피터가 이마를 문질렀다.
슬쩍 옆을 보자 대기 중이던 요원도 몰래 한숨을 쉰다.
그 역시 카논이 고향인 사람이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귀에 라울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뭐,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통해 나온 결과가 있긴 하네. 듣기 즐거운 내용은 아니지만. 자네가 명예 후작에게 전해 주겠나?”
“……감사합니다.”
“일단 이건 지금까지 정보를 기준으로 한, 매우 극단적인 추리라는 점을 명심하고 전달해 주게. 우리가 보기에 이 죽음들이 뜻하는 것은…..”
“……전쟁입니다.”
피터가 바짝 마른 입술로 토해 낸 말.
“그건 또 굉장히 피비린내 나는 소리로군요.”
라미아와 나란히 앉아 있던 이드는 등을 의자에 붙이고 팔짱을 꼈다.
과연 추천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산책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한데 이후 듣게 된 소리가 이런 거라니.
“산뜻하던 기분이 와장창 무너지네요.”
탁자에 올라온 서류를 살피며 라미아가 혀를 차자, 피터가 푹 하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피터 씨가 죄송할 일은 아니고요. 그런 결론이 나온 이유가 뭐랍니까?”
이드가 본 라울은 결코 어설프게 말을 뱉을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전쟁’이라는 결론을 냈다면 분명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엘라임 백작을 포함, 살해당하거나 급사한 인물은 하나같이 온건한 주장을 펼치셨습니다. 무공을 받아들이는 것이 늦었던 만큼, 평소 제국의 힘을 기르는 데 주력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전쟁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면 가장 걸리적거리는 인물들이라는 소리군요.’
“네. 그와 함께, 최근 몇 년 사이 카논의 전력이 상승했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이상한 겁니까? 사망한 귀족들의 주장 역시 제국의 힘을 기르자는 것이었다면서요.”
“그렇기는 한데, 그 오름세가 평균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그 대답에 이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확대하고, 국내의 반대 세력을 제거한다.
우연이 겹쳤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분명 상황만 놓고 보면 전쟁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누구의 주도로, 또 어느 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피터도 그에 대해서는 답을 가져오지 못했다.
라울이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피터는 목이 타는 듯 차를 물처럼 들이켰다.
그런 그를 흘끗 본 이드는 서류를 살피던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그 사이 그녀는 서류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어때?”
“피터 씨가 말했던 내용 그대로네요. 전쟁이라는 말도 충분히 나올 만하고. 그런데, 이 흐름 속에 존 워스가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어쩌다 보니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튀어나오는 지경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둘은 존 워스를 쫓아 여기까지 달려왔음을 상기시키는 라미아의 발언이었다.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이드가 마음으로 물었다.
-그렇기는 한데, 게르만과의 계약 때문이라면? 과거에도 그런 적 있잖아.
카논에서 시작되어 대륙 단위로까지 번질 뻔한 전쟁.
그걸 중간에서 끊어 낸 인물이 바로 이드였다.
-그건 이드가 올 줄 몰랐기 때문이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드가 돌아왔고, 메르시오는 소멸했어요. 게다가 별이 낳은 초인들은 혼돈의 파편만 보면 미쳐 날뛰고 있죠.
・・・거기다 아직 드래곤을 막고 있는 혼돈의 파편이 모두 돌아온 것도 아니고 말이지.
-네. 게르만의 계약보다 더 급한 일들이 한둘도 아닌데, 혼돈의 파편이 굳이 전쟁을 꾸밀 이유가 있을까요?
혼돈의 파편에게 게르만과의 계약은 중요도 면에서 한발 뒤로 밀리는 일이었다.
사실 이드와 초인, 그리고 드래곤들이 빠지고 나면 게르만과의 계약이야 한 달이면 완성할 수도 있었다. 그런 힘을 가진 존재들이 바로 혼돈의 파편이지 않던가.
ᅳ확실히 그렇기는 해. 하지만 반대로 전쟁을 눈가림용으로 쓸 수도 있는 거니까. 단정하지는 말자. 이드는 혼수모어(混水摸漁)를 떠올렸다.
물을 흐려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인데, 인간사에 전쟁만큼 세상을 어지럽힐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특히 그와 함께 떠오른 것이 바로 마스와 아나크렌의 마찰이었다.
마스의 싸움꾼 기질이야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순순히 문을 열어 주고서 갑자기 온갖 트집을 잡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일까?
분명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카논에서 일어난 귀족들의 급사가 마스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면, 너무 확대해석일까?
-그거야말로 더 두고 봐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이드의 마음을 전해 받고 결론을 내 버리는 라미아의 말에 이드는 비스듬히 웃었다.
-역시 그렇지?
이 문제고, 저 문제고 간에 어느 하나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없었다.
그러니만큼 결국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일단 정보 수집과 분석은 라울에게 맡기고, 피터 씨.”
“네? 네!”
갑자기 침묵하고 눈만 마주치는 두 사람에 알아서 입을 닫고 있던 피터가 급히 대답했다.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장례식에 참석할 준비나 하죠. 그쪽으로도 나올 정보는 적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네,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니 오늘 중으로 엘라임 백작의 죽음이 황궁에 알려지고, 장례식장도 삼 일 후면 차려질 거라고 합니다.”
지부만 들른 것이 아니라, 엘라임 백작 가문의 정보까지 알아 온 모양이었다.
비록 멀미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일 처리는 꼼꼼했다.
“그럼 우린 그동안 쉬면서 기다리면 되는 건가.”
“알아보니까 근처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던데, 거기 구경이나 갈까요?”
갑자기 비어 버린 사흘이 휴가처럼 느껴진 이드와 라미아였다.
안티로스에서 여기 발라파루까지. 쉬지도 않고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런 피로를 풀어내듯 두 사람은 수도에 있는 유명한 유적에도 들르고,
“유적이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고작 오백 년짜리네요.”
맛집에도 들렀으며,
“이 집 좋은데? 아공간에 아직 자리 남았지? 이거 좀 챙겨 두자.”
야시장도 구경했다.
“우리 내일은 여기 살롱에 가 봐요. 카논은 살롱에 좋은 술이 많대요.”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의 휴가는 이틀째 갑자기 날아온 소식에 끝이 나고 말았다.
검왕이 움직인다는 소리에 이런저런 이유로 방해를 놓던 마스도 알아서 진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검후와 황제의 만남도 정해진 날. 둥둥. 둥.
비올라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날아왔다.
정신의 관에서 빼앗은 바이트 타블렛이 갑자기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