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03화
1138화
연락은 한참 저녁 식사 중일 때 도착했다.
따악.
갑자기 식사를 멈춘 라미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 일어난 마나 파동이 식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렸다.
“왜 그래?”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드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라미아는 대답 대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일반 통신구의 사 분의 일 크기의 그것은 현재 클럽의 조명이라도 양 격렬하게 깜빡거리며 존재감을 과시 중이었다.
라미아가 사람들의 시선을 가린 것이 아마 이 때문인 모양이었다.
“누군데 그렇게 요란해?”
“비올라요. 바이트 타블렛 연구 때문에 따로 열어 둔 채널이 있었거든요.”
과연 바이트 타블렛 관련이라면 식사하다 말고 통신구를 꺼낼 만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잖아?”
“연구에 빠져서 정신없었겠죠. 일단 연결할게요.”
말과 함께 마나가 주입되고 통신이 연결된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연결이 느린 겁니까! 얼마나 큰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냐고요!”
늦어 봐야 얼마나 늦었다고 그걸 기다리지 못한 비올라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퍼졌다.
이드는 찌잉 하고 울리는 귀를 문지르며 통신구 너머를 노려보았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소리만 지르지 말고 말을 해야지! 아니, 일단 그 전에 뒤로 좀 가라. 지금 여기선 네 입안에 낀 고기 조각밖에 안 보인다고.”
“터헙.”
아무리 뻔뻔한 비올라도 음식물 낀 입속까지 공개하긴 민망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통신구에 침을 튀기던 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 통신구를 닦는 모습에 이어 헛기침과 함께 비올라의 얼굴이 제대로 나타났다.
“그래서, 무슨 일로 이렇게 호들갑인데? 바이트 타블렛 관련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 채널을 열지도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절대 호들갑이 아닙니다. 보세요. 바이트 타블렛이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영상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돌연 바이트 타블렛의 모습이 나타났다.
“저건!”
그와 함께 이드와 라미아의 몸이 통신구를 향해 기울었다.
두웅, 두웅, 두웅.
통신구 너머까지 들려오는 묵직한 울림. 그건 심장 박동과도 비슷했다. 거기에 마나 광마저 은은히 어려 있는 모습은 분명 두 사람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과연 비올라가 호들갑을 떨 만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라면 자신보다는 라미아가 전문이다. 이드가 돌아보자 라미아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결계는 작동 중인가요?”
“2차 결계까지는 계속 유지 중이었고, 이상 반응이 시작된 즉시 3차 결계까지 발동시켜 완벽하게 공간을 단절해 둔 상태입니다.”
“결계가 마지막으로 열린 건 언제죠?”
“54시간 전, 제가 마지막으로 출입했을 때입니다. 이상 반응은 3시간 전부터 시작되었고요.”
질문과 함께 즉시 튀어나오는 대답.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드는 거기서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기가 막힌 심정이 되었다.
“54시간? 이틀 넘게 지하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말이야? 너, 밥은 안 먹어? 똥도 안 싸?”
그러고 보니 영양 부족 때문인가, 두피 탄력의 저하로 인해 비올라의 머리 반짝임이 약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드의 이런 반응은 라미아와 비올라에게 똑같이 무시되었다. 둘에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3시간이 넘었는데도 반응이 멈추지 않는다. 라..”
“3시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 봤지만, 반응을 멈추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실패는 당연해요. 지금 현상은 아마 외부 변원에 대한 공명 때문일 테니까요.”
“어~ 탑주가 바이트 타블렛을 회수하려고 했을 때를 말하는 거지?”
이보다 앞서 딱 한 번, 바이트 타블렛의 이상 반응이 있었다. 이드는 당시를 기억해 내고 한 말이었지만, 라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많이 달라요. 이럴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가서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면 카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선 손을 떼야 했다.
존 워스에 이어지는 선을 찾아내는 일, 그리고 바이트 타블렛의 이상 반응. 둘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 이드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서 피터 씨에게 간단히 사정 설명만 하고 출발하자. 어차피 이제 여기 일은 우리가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래요. 비올라도 들었죠? 곧 갈 테니, 현 상태만 유지해 줘요.”
“설마 7・・・・・・ 일 동안이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비올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연구에 미쳐 있다지만, 그도 귀가 있다. 이드가 저택을 출발해 며칠 만에 카논에 도착했는지 들었다는 뜻이다.
당장 라미아에게 통신을 연결하기 전까지의 3시간 동안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모자라고 무력한지 절절히 깨닫지 않았던가. 그 무력감을 7일 동안이나 참고 있어야 한다니. 끔찍했다.
“설마요. 많이 걸려도 한 시간이면 도착해요.”
“하, 한 시간? 그게 가능한 겁니까? 발라파루에 있으시지 않습니까.”
과장 한 스푼 더하면 대륙의 끝과 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차원진이 일어나기 전, 멀쩡히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던 때에도 한 시간에 이동하는 건 분명히 말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라미아는 그저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통신을 끊을 뿐이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본 이드가 혀를 찼다.
“사람 궁금하게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어차피 길어야 한 시간인데. 이 정도면 저녁 식사를 방해한 벌로는 적당하잖아요.”
“난 모르겠다.”
이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요리가 남았지만, 아쉽게도 오늘 식사는 여기서 끝이다. 계산을 마친 두 사람은 여관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피터도 일찍 여관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피터 씨. 발라파루의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안티로스에 급한 일이 생겨서 우린 그쪽으로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네?! ……네에.”
돌아오자마자 이드가 떨어트린 날벼락은 피터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막을 수 없는 일임을 깨달은 그는 곧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내가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분들도 아니고.’
거기에 라울에게 따로 연락까지 하겠다니 자세한 사정을 물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드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피터에게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라미아와 함께 돌아섰다.
여관을 나선 두 사람은 곧장 성문을 지나 발라파루에서 멀어졌다.
라미아가 자신한 대로 한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대형 마법진이 필요한데, 이런 눈에 띄는 작업을 하기엔 발라바루를 지키고 있는 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해서 발라파루 외곽으로 나온 두 사람은 곧 마법진을 설치하기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파앙!
크고 작은 돌과 이름 모를 잡초, 그리고 조금 울퉁불퉁한 지면은 이드의 손짓 한 번에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이윽고 라미아가 그 위에 미스릴 가루를 뿌렸다.
“기대하세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공간 이동을 경험하게 해 줄 테니까요.”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인 연구 결과를 써먹을 기회에 신이 난 라미아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미스릴 가루가 가지런히 내려앉더니, 곧 지름 삼십 미터짜리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달빛에 반짝이며 사방을 나는 미스릴 사이에 선 라미아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나는 팔과 종아리의 매끈한 살결이라니. 이드는 한쪽에 얌전히 앉아 아내의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 기억을 영상으로 따로 남기기로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마법진이 완성되자 그 가운데 선 라미아가 연기를 마친 배우처럼 두 팔을 펼쳐 보였다.
“짜란~ 완성입니다! 빨리 와요!”
그리고는 손을 흔드는 모습에 이드는 새삼 흐뭇해하며 마법진 안으로 들어섰다.
“왜 그렇게 웃어요?”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이 마법진을 쓰면 안티로스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야?”
“정확히는 저택 지하에 있는 대응 마법진으로 가는 거죠. 한 번에 슈웅, 하고.”
“그래. 그럼 슈웅, 하고 가 보자. 슬슬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비올라가 눈 빠지게 기다리겠다.”
“북쪽 하늘에서 나와 시간을 가르는 칼. 해와 달을 건너는 다리 가운데 선 이의 눈을 가리고, 암흑에서 나와 빛을 가르노니. 그 그림자가 시간을 가르노라. 벤디드론!”
이드의 재촉에 라미아가 주문을 외우고 마법을 발동하는 순간.
쑤우욱.
빛나던 마법진이 한순간 검게 물들고, 그곳에서 일어난 어둠이 두 사람을 휘감고서 하늘로 사라졌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진 땅에는 미스릴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았다.
컴컴한 지하실.
콰직.
잘 관리된 덕분인지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도 나지 않는 장소. 갑작스레 그곳의 한쪽 공간이 조각나더니, 곧 와르르 무너지며 두 사람을 토해 냈다.
그러나 공간은 순식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라미아는 그걸 보고는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고 웃었다.
“어때요? 굉장하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이드는 그런 라미아의 모습이 칭찬을 바라는 것임을 알았지만, 그런데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칭찬을 하려 해도 뭘 알아야 하지. 눈을 좀 길게 깜빡인 찰나 이미 이동이 끝나 있는데,
솔직히 이드 입장에선 지금과 이전의 공간 이동 사이의 차이를 말로 설명하기가 퍽 어려웠다.
몸으로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도 라미아의 취향은 아니리라.
“뭐, 그래도 확실히 빠르고 편하긴 했어. 그건 인정.”
“칫. 됐으니까, 가요.”
말과 함께 팩 고개를 돌리는 라미아. 이드는 얼른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지하실 안쪽으로 향했다.
바로 비올라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임시 연구실이 있는 곳. 당연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2차 결계는 기본에, 안에 있는 비올라가 3차 결계까지 올렸을 테니 그냥은 절대 열리지 않을 문이지만.
그르릉.
라미아에겐 해당 사항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손을 대기도 전에 문이 그녀를 알아본 듯 자동으로 자기 몸을 열어젖혔다.
“제가 잠가 둔 문인데, 그것도 못 열면 죽을 때가 된 거죠.”
“허~ 딱 한 시간이 되는 때 도착하셨군요. 공간 이동인 겁니까? 차원진을 극복할 방법을 찾으신 거지요?”
마치 죽은 부모님이 살아 돌아온 듯 환호하는 비올라였다. 모르긴 몰라도,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저택과 발라파루의 거리를 어떻게 좁혔을까를 고민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드와 라미아가 급히 돌아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다른 이야기는 바이트 타블렛부터 해결하고 나서 할 테니까, 저기서 기다려요.
“넵.”
거절은 거절한다는 일방적인 말투로 비올라를 밀어낸 라미아는 즉시 바이트 타블렛에 붙어 섰다.
그와 함께 미리 준비된 여러 가지 장비들이 잘 갖춰진 수술방처럼 일사분란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드가 그런 라미아의 어깨 너머로 물었다.
“어때? 멈출 수 있겠어?”
“충분해요. 10분 안에 해결할게요!”
그리고 다음 순간, 라미아의 손끝에서 열 줄기 찬란한 마나 광이 바이트 타블렛으로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