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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10화


1145화

공간 이동과 차원진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누구보다 황녀가 이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라미아가 차원진를 극복해 낸 방법을 노골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안전성에 대한 보장만 된다면 제국 차원에서 큰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제국의 황녀인 만큼 그녀도 아는 것이다.

공간 이동이 불안정한 지금, 안전한 공간 이동 방법을 확보하는 것이 제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말이다.

그런 만큼 제국이 내놓을 대가도 보통이 아닐 테지만, 이드와 라미아는 그에 대한 대답을 미뤘다.

이드와 함께 사용할 정도로 안전성을 확보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차원진 극복 방법의 출처가 혼돈의 파편이 만든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라미아와 이드라면 대부분의 문제는 즉각 처리가 가능하지만, 제국에서 폭넓게 사용된다면 수습하기는 어렵게 된다. 이런 설명에도 황녀는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돌아갔다.

그녀의 귀갓길에는 이드가 나섰다. 아무렴 다친 일리나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방심하다가 또 당하고 싶지도 않았고, 황녀를 데리고 방문한 황궁은 조용했다.

“황제께서 아직 습격 사실을 크게 알리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도망간 적을 쫓는 것보다 배신자를 잡아내는 일과 내부 동향을 살피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물론 평소와 같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큰 소란이 없다는 것뿐이지, 황궁의 경비는 전시 체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황녀궁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드는 그들의 모습에 과연 이대로 황녀를 귀가시켜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데려갈 수도 없는 일.

결국 잠시의 고민 끝에 황녀의 안전귀가를 끝낸 이드는 이유도 모르고 구르게 될 관계자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저택으로 돌아오자 라미아와 일리나가 그를 반겼다.

“다른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오늘 습격에 대해서 논의 중이에요.”

과연 아까 잠시 이야기하고 끝낼 일이 아니긴 했다.

황제에 대한 습격은 그만큼 중대사였다. 특히 제국의 가장 큰 어른인 검후에게는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은 답도 없는, 골치 아프기만 한 일.

이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말했다.

“그럼 그쪽은 그냥 두고, 우리만 내려갈까?”

“네. 지금쯤이면 준비도 다 됐을 거예요.’

앞장서는 라미아를 따라 이드와 일리나는 지하에 있는 비올라의 연구실로 향했다.

다시 들렀을 땐 공명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을 당시와는 다른 의미로 정신없는 상태였다.

용도 불명의 도구들도 여기저기 나온 데다, 마나석은 허공을 날고 있으며, 그 중심에 있는 바이트 타블렛 앞에선 비올라가 뭔가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이드 일행이 들어선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저게 그거야?”

이드는 그런 비올라의 머리 너머, 바이트 타블렛 위에서 녹은 초콜릿처럼 꿈틀거리며 반죽되고 있는 마나석을 바라보았다.

“맞아요, 공명 반응 해석 모듈. 일명 데이터 추출기!”

“음. 그러니까 저걸 이용하면 공명 반응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단 말이지.”

“최소한의 답을 얻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2차 결계를 넘어서 공명이 일어난 건 가볍게 볼 게 아니라고요.”

라미아가 마치 범인을 노려보는 형사처럼 데이터 추출기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런 한편, 이드는 팔짱을 끼고서 그 모습을 살폈다.

자신이 지원 요청에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사이, 라미아는 공명 현상에 대한 단순 수습뿐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해서까지 염두에 두고서 비올라에게 일을 맡긴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라미아가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럼, 공명 현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건가요?”

그때, 옆에서 일리나가 물었다. 아무래도 이드가 없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기에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절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과 같은 정도로는 다시 발생하지 않을 거예요. 공명이 생기는 구역을 구조적으로 분리해 뒀거든요.”

그렇게 안심되는 답을 내놓은 라미아는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비올라의 등을 두드렸다.

“헉! 언제 오셨습니까?”

“한참 전에요. 추출기 상태는 어때요?”

“으흐흐흐. 최곱니다. 곧 작업이 완료되는데도 예상되는 데이터 손실률이 2%를 넘지 않고 있습니다.”

진행 상황을 묻자 언제 화들짝 놀랐냐 싶게 헤벌쭉 웃는 비올라였다.

그에게 있어 바이트 타블렛의 새로운 면을 접하는 건 술꾼이 명주를 얻는 이상의 기쁨인 것이 확실했다.

그의 대답에 라미아는 연구실 한쪽에 추출기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원래라면 매우 정밀한 작업인 만큼 다양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녀는 이런 문제를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이라는 최상급의 재료를 대량 투입하는 것으로 해결해 버렸다.

그렇게 연구실 한쪽에 뻔쩍뻔쩍한 마법진이 완성된 직후.

비올라가 변태처럼 웃으며 소리쳤다.

“우히히히. 됐습니다. 끝났어요! 마법 역사상 최초로 상차원 교감 신호 추출에 성공했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작업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해 버린 비올라였다.

하지만 그런 비올라를 바라보는 라미아의 표정은 퉁명스럽기만 했다.

“신난 중에 미안한데, 그거 인간 세상에선 처음일지 몰라도 마법 역사상 처음은 아니에요. 고대에도 써먹었고, 드래곤도 필요하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고요. 그러니 소리는 그만 지르고 추출기나 빨리 내놔요.”

“……꼭 그렇게 초를 치셔야 합니까.”

인간사에 드래곤이 끼어드는 것 자체가 반칙이라고요.

그렇게 구시렁거린 비올라가 곧 라미아의 손에 무언가를 올려 두었다.

꽈배기 모양으로 변해 버린 추출기였다.

그에 라미아가 곧장 준비한 마법진에 넣고는 마나를 주입했다.

스르륵 스르륵.

그러자 꼬여 있던 추출기가 풀어지며 하나의 원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원 안에서 눈에 보이는 규칙적인 파동이 발생했다.

바이트 타블렛의 공명 현상이 분석 가능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다.

라미아가 자세히 살피기 시작하자, 비올라가 재빨리 그 옆으로 다가가 눈을 번뜩였다.

이드와 일리나는 말없이 그 작업이 끝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라미아의 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녀가 추출기의 원에서 눈을 뗀 건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였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어요.”

“이제 끝난 거야? 결과가 나왔어?”

그새 의자에 앉아 있던 이드와 일리나가 바로 일어났다. 라미아는 마법진에 주입하던 마나를 끊고 말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쥐어진 추출기는 자연히 다시 꽈배기 형태로 돌아간 상태였다.

“결과가 나오긴 했는데. 듣기 좋진 않겠네요. 아무래도 이번 공명, 바이트 타블렛을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인 듯해요.”

그 말에 이드와 일리나가 서로를 돌아보고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 개의 바이트 타블렛 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요?”

“혹시 예비용을 들고 있었다거나?”

“설마요. 바이트 타블렛 같이 특별한 의미가 깃든 아티팩트의 진품은 오로지 하나뿐이에요. 그런 게 있을 수 없죠. 애초에 그랬으면 탑주가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거래에 나섰겠어요?”

“그럼 복제나 대체품은?”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애초에 아티팩트는 그렇게 턱턱 찍어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요.”

계속해서 바이트 타블렛의 특이성을 강조하는 라미아의 말에 이드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모습이 되었다.

“그럼 예비품도, 복제품도 없이 무슨 수로 바이트 타블렛을 하나로 묶는단 말이야. 혹시 바이트 타블렛 두 개를 하나로 묶는다는 건 아닐 테지?”

“당연히 아니죠. 현재로선 저도 확답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이번 공명 현상이 상차원 교감 신호로 발산된 원인은 분명해요. 바이트 타블렛이 상차원에 접속한 영향이거든요.”

그와 함께 다시 한번 복제는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는 라미아다. 아무리 같은 걸 만들어 봤자, 그건 껍데기만 비슷한 다른 물건이란 말과 함께. 

“그럼 결국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는 거잖아.”

“그러니까요.”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결과에 이드 일행은 힘이 빠진 채 그 자리에 둘러앉았다.

미완의 마탑의 사정을 알 수도 없으니, 당장 이렇다 할 결론은 없는 셈이었다.

‘답 없는 습격 사건을 피해 왔더니, 여기도 답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어쩌다 사방에 이런 지뢰가 가득하게 되었는지.

이드는 끙끙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런 이드는 물론이고, 일리나와 심지어 비올라까지 누구 하나 라미아의 추출기가 내놓은 분석 결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라미아를, 또 그녀의 마법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영혼의 관에 대한 토벌을 서둘러야 하려나.”

“어쩌면 토벌대와 별개로, 이드와 저희만이라도 먼저 돌입해야 할지도 몰라요.”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라면 아직 영혼의 관의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 라울이 내놓은 정보가 있긴 하지만, 그도 아직 확인 작업 중이었다.

“우리 기사들이건 토벌이건, 결국 시간이 문제라는 말인데. 라미아?”

“아직은 여유 있어요. 데이터에 섞여 있는 불협화음의 상태를 봐선, 당장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에요.”

그래도 일단 공명이 일어날 정도로 성공적인 시작이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어느 순간 작업 진행이 갑자기 빨리질 수도 있었다.

물론 미완의 마탑쪽 역시 아무리 서두르고 싶어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내일 황제가 오면 가급적 영혼의 관에 대한 토벌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해야겠어.”

더불어 혼돈의 파편의 문제에 대해 손을 잡기로 한 바벨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말이다.

아무렴 미완의 마탑에서 나온 초인 마법이 관련된 만큼 바벨에서도 가만히 있기는 힘들 터였다.

그들 아래서 지원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던 미완의 마탑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음은 이제 그들도 잘 알 테니 말이다. 

“그럼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일단의 마무리를 한 뒤, 비올라는 오늘도 연구실에 남아 라미아가 넘겨준 자료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어쩌면 자료를 모두 외우고 이해하기 전까진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이드는 라미아와 일리나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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