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14화
1149화
다음 날, 검후가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경계를 서는 이들을 제외한 그녀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복장을 한 상태였다.
평상시의 차림새를 하고 오라는 검후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검이 없으면 허전한 기사들이 아니던가.
절그럭.
누구 하나의 몸에서 쇳소리가 나자, 동료들이 귀신처럼 반응했다.
그중 한 명이 소리가 난 기사의 치마를 들추자 갈색의 단단한 허벅지에 묶인 검이 드러났다.
“뭐야, 너. 명령은 어쩌고 검을 들고 온 거야!”
“그치마안~ 검이 없으면 너무 허전하단 말이야.”
“애냐? 애착인형 대신도 아니고.”
“씨잉~ 그럼 넌, 뭐 달라? 만년 처진 엉덩이가 언제 그렇게 올라온 건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목된 기사의 치마가 훌러덩 뒤집어졌다. 그러자 엉덩이 위에 붙어 있는 단검 두 자루가 나타났다. 그건 시작이었다. 마치 옷 벗기기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치마가 뒤집어지고, 서로의 옷을 벗겨 댔다.
조금이라도 평소 체형과 다르다 싶은 곳에는 여지없이 날붙이가 숨겨져 있었다.
어느 기사는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 아래 장검을 숨겨 두고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살색과 은색이 난무하는 난장판이랄까.
만에 하나 은색 기사단을 선망하는 젊은 기사들이 이 꼴을 봤다면 어땠을까?
“어떤 남자라도 기가 막혀서 오만 정이 떨어지겠다. 정렬하지 못해, 이 바보들아!”
그 모습을 본 스폴이 버럭 고함을 쳤다.
샤샤샥.
그녀의 등장에 기사들은 순식간에 복장을 정돈하고 칼같이 각을 잡아 도열했다. 말괄량이처럼 난동을 부리던 모습이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스폴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쪽 옆으로 자리했다.
곧이어 쉴라를 대동한 검후가 나타났다.
꾸미지 않아 수수하지만, 그럼에도 하나같이 아름다울 정도의 젊음이 묻어났다.
그런 자신의 기사들을 찬찬히 살피던 검후가 이내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간 힘들었을 텐데,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것 같아 보기 좋구나.”
마치 조금 전 기사들의 장난을 아는 듯한 검후의 말에 몇몇이 얼굴을 붉혔다.
“어젯밤, 누가 저택을 방문했는지는 너희들도 알 테지. 그래. 나는 황제와 그간의 오해를 풀었단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너희의 공이 실로 크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담담히 감사를 전달하는 검후에 좀 전과는 다른 이유로 기사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기쁨이고, 감격이었다.
“오늘 너희들을 모이게 한 것도 그 때문이란다. 그간 저택에만 숨어 있느라 갑갑했지? 오늘부터는 그럴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마침 날씨도 딱 좋으니, 마음껏 나가서 즐기고 오거라.”
“지금 이 시간부터 외출 금지를 일부 해제한다!”
검후의 말을 간단히 보충한 쉴라는 외출했을 때의 주의사항들을 이어 말했다.
이런저런 것들이 있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은색 기사단 소속의 기사라는 사실을 숨길 것.
이러는 이유는 검후가 아직 전면에 나설 생각이 없어서였다. 또 삼검왕에게 정보가 새서 좋을 게 없기도 하고.
그럼에도 기사들에게 외출을 허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황제와 화해를 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이제 대부분의 문제는 황제의 힘을 무기 삼아 덮어 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검후가 그간 고생한 자신의 기사들에게 외출을 허락한 것이다.
검후는 즐거워하는 기사들을 지켜보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빈자리를 채운 쉴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주의사항은 확실히 지키고,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우~~ 통금이라니! 저희가 애들도 아니고 너무합니다!”
“거부는 없다. 무조건 밤이 되기 전이니까, 명심해!”
작은 반항이 있었지만, 쉴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 포기한 기사들은 결국 조금이라도 더 긴 외출 시간 확보를 위해 서둘러 저택을 빠져나갔다.
“좋은 일 했어.”
창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본 이드가 말했다.
그러자 검후가 그 옆으로 다가서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 아이들, 제가 사라진 후 발이 부르트도록 전 대륙을 뒤지고 다녔어요. 그 고생을 제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앞으로 더 많은 걸 해 줄 생각이에요.”
“흐음. 그럼 은색 기사단이 오색 기사단 앞에 놓이는 건가?”
“저 아이들이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죠.
아주 대놓고 편애를 공언하는 검후다.
그녀도 사람인 이상, 모두가 포기한 시점에 자신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 기사들이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그걸 떠나서도 고생한 만큼 대가를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검후의 편애는 편애가 아닌 상이었다. 공과에 대한 상벌이 분명할 때야말로 노력과 고생이 빛을 발하게 되는 법이다.
과연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까.
아무렴 검후의 선물인데 절대 평범하지는 않으리라.
그 결과야 어떻든 은색 기사단이 굉장히 큰 기회를 얻게 된 건 확실해 보였다.
“훌륭한 주군이네. 그럼 선물 준비 잘하고. 나는 나가 볼 테니까.”
이드는 칭찬과 함께 돌아섰다.
“이드 님도 나가신다고요?”
“응. 라미아와 며칠이나 나갔다 왔잖아. 일리나와도 시간을 좀 보내야 공평하지.”
“아, 그럼 저도 같이…………”
어깨 너머로 탈탈 손을 흔들어 보인 이드는 이어지는 검후의 말은 무시했다.
‘하긴, 오죽하면 저러겠어. 그렇게 오래 감금되어 있다가 나왔는데 또 저택에만 머물고 있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부 데이트에 꼽사리 끼려 하다니. 최악이었다. 그 외출의 끝에 있는 건 서로에게 불행한 결과뿐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심심하면 쉴라라도 붙들고 나가 보든가.”
그래도 불쌍한 마음에 한 마디 해 줬지만, 검후의 안색은 더욱 칙칙해질 뿐이었다.
“단장은….식사를 가지고 지하실로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
설마 비올라의 식사인가?
그 두 사람, 소드 팰러스에서 있었던 데이트를 마지막으로 끝난 게 아니었나?
상상도 하지 못한 충격적인 소식에 이드는 하마터면 발을 삐끗해서 그 자리에 넘어질 뻔했다.
화르르륵.
기분 나쁠 정도로 습도가 높은 지하실.
라이트 마법 대신 빛을 밝히고 있는 횃불 위로 천장에 맺혀 있던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푸스스스
하지만 횃불 아래 모여 있는 사람 중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한곳을 향해 있었다.
바로 넓은 침상에 누워 있는 남자, 그리고 그 머리맡에서 눈을 감고 선 여자였다.
남자가 누워 있는 침상은 특이했다.
돌 재질의 그것은 사지를 벌린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남자가 그 위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그 눈은 반쯤 풀어진 데다 입에서는 진득한 침마저 흘러내려 절대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남자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은 이 방에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방의 목적 자체가 남자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니까.
당장 벽면 한쪽에 걸려 있는 목적 불명의 흉흉한 날붙이와 집게, 그리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건과 물그릇은 보는 것만으로 소름을 돋게 만든다. 그러나 이 방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흉흉한 날붙이도 남자를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게 된 레오날도 후작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곳을 함께 찾은 한 쌍의 남녀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삼십 분이 넘었습니다.
레오날도 후작의 눈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여성을 향했다. 그녀가 저 자리에 선 지도 삼십 분. 그러나 죄인의 입은 여전히 열릴 기미가 없다.
그나마 근육이 끊어지고, 뼈를 긁어 내도 태연해 보이던 모습과 달리 지금은 전신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정도가 달라진 점일까.
“아무래도 이대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약을 조금 더 써보는 게 어떤가?”
그러자 레오날도 후작의 눈길을 받은 세모꼴의 눈을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지금도 한계입니다. 명령하신다면 더 쓸 수는 있사오나, 자칫 죄인의 뇌가 일부 녹아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럼 조금 쉬어 회복시킨 뒤 강한 걸 쓰는 건?”
“위험도는 같습니다.’
이래저래 결국 어렵다는 소리. 레오날도 후작이 혀를 찼다.
“결국 약도 소용없다는 소리로구나.”
“소인의 능력이 미천하여…… 송구하옵니다.”
“네 탓이 아니다. 휴우~ 결국 어쩔 수 없는 건가.”
세모꼴 눈을 한 남자가 한발 물러서자, 실눈에 웃는 인상을 한 남자가 다가섰다. 그는 그 서글서글한 이미지와 달리 이 지하실에서 심문과 고문 등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이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는 남자였다.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휴・・・・・・ 결국 정신계 마법뿐인가. 하지만 그조차 통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끝인데 말이지.”
“송구합니다. 제가 좀 더 실력이 좋았더라면 입을 열게 만들었을 텐데.”
“자네 실력이 좋다는 건 내가 알아. 오히려 비정상인 건 저놈이지. 분명 정상이 아니야.”
사건이 사건이기에 레오날도 후작도 전날 고문 현장에 함께했다. 그곳에서 본 건 어떤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는 울펜의 모습이었다.
레오날도 후작이 느끼기에 그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 비틀린 부분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아. 하지만 시간이 없네. 무려 폐하를 습격한 사건이 아닌가.”
무슨 방법으로 고문을 견디고 있는지 따위를 느긋하게 알아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결국 울펜의 머리를 잡고 있던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잠시 숨을 가다듬던 그녀는 레오날도 후작 앞으로 와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제초인기인 꿈의 속삭임으로는 죄인의 입을 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수고했네.”
레오날드 후작은 내심 정신계 마법의 사용을 결정하고 어떤 마법사에게 부탁할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울펜의 옆으로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던 중, 문득 한 사람이 떠오른 후작은 급히 여자를 향해 돌아섰다.
“라라 경. 혹시 자네보다 강력한 초인기라면, 이자의 입을 열 수 있을 것 같은가?”
“확답하긴 어려우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신중하려는 초인 라라의 대답에 레오날도 후작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약사와 라라 경은 조금 더 이곳에 머물려 추계 내 급히 만나 봐야 할 사람이 생겼네.”
그와 함께 다른 사람이 뭐라 묻기도 전에 지하실을 뛰쳐나가는 레오날도 후작이었다.
그런 그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황제의 집무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