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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17화


1152화

다각다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 한 대가 황궁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성문을 지키는 기사 앞에 멈춰 선 마부가 황금으로 된 패와 서류 한 장을 내보이자, 기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통과!”

기사의 외침에 성문을 막아서고 있던 병사들이 비켜나고,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별다른 검문 없이 이어진 말발굽 소리에 이드가 물었다.

“안을 확인하지 않는군요?”

“황제 폐하의 허락이 있을 때만 움직이는 마차이기 때문입니다.”

레오날도 후작이 간단히 답했다.

황궁에 출입하려 하면 아무리 고위 귀족가의 마차라도 그 내부를 간단하게나마 확인한다. 분명 그와 비교하면 특혜랄 수도 있었다. 하나 애초에 이 마차가 황제의 소유라면 검사하지 않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평범한 외관과 달리 마차 내부는 하나같이 최고급이었다.

그 예상치 못한 화려함에 처음 마차에 올랐을 땐 이드도 제법 놀랐더랬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최고급 사슴 가죽에 다시 몸을 기댔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라울과 시사이판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왔다.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라울과 극도로 긴장한 시사이판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그중 단연 이드의 관심을 끄는 존재는 바로 시사이판이었다.

정신계 초인이라며 데려온 이가 다름 아닌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드가 경험하기로 그의 초인기는 분명 내공과 신체 능력에 대한 봉인이었다.

해서 이드가 의문을 표시했고, 그 말을 들은 레오날도 후작 역시 자연스레 설명을 요구했다.

그에 대한 라울의 대답은 실로 간단했다.

“시사이판의 초인기는 정신적인 부분에도 유효합니다.”

“라울 자작. 이건 이야기가 다릅니다. 저희가 필요한 건 배신자의 머리에 든 정보를 꺼내 줄 사람이지, 정신을 가둬서 바보로 만드는 고문관이 아닙니다.”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아무렴 제가 생각 없이 그를 데려왔을까요. 사실, 후작님께서 원하는 초인기를 쓰는 이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가 지금 라일론 제국 서쪽 끝에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말이 좋아 서쪽 끝이지, 대륙의 끝과 끝이나 다름없다. 공간 이동이 막힌 지금이라면 쉬지 않고 말을 달려도 최소한이 반년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오.”

레오날도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배신자가 혹시 더 있을지 모른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반년 이상이나 두고 보라는 말을 차마 어떻게 황제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이자가 필요한 겁니다. 제가 굳이 후작님을 속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저 지켜봐 주십시오.”

아무렴 별것도 아닌 인간이 저리 말했다면 어디서 헛소리냐며 쫓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바벨의 라울이 하는 말이었다.

입을 앙다문 채 라울의 눈을 노려보던 레오날도 후작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시사이판이 아니면 반년을 기다리거나, 정신계 마법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니 말이다.

“부디 제국을 상대로 허언을 한 것이 아니길 바라오.”

“물론입니다.”

레오날도 후작의 경고에 라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무렴 검후를 납치, 감금한 대담한 인간이 그 정도에 움츠러들까. 게다가 저 미소는 분명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최소한 이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한 마차가 멈췄다. 화려한 외관과 달리 짙은 그림자를 가진 건물의 후문 앞이었다.

“이쪽입니다.”

레오날도 후작이 앞장서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 뒤에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그것은 매우 길게 이어졌다. 대충 지하 3층의 깊이.

그 끝에 도착한 이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하 감옥이 이렇게 깊은 이유가 있습니까?”

“원래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법에 초인기에 대한 방비까지 이리저리 더하다 보니, 지금처럼 깊어지게 되었지요.”

다시 말해 침입자의 능력이 좋아진 만큼, 자연스럽게 보안에 더 신경 쓰게 되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이 정도 깊이라면 최소 35개 이상의 방어층을 설치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글쎄요. 과연 끝없이 다양한 초인기를 그것만으로 다 막을 수 있을까요.”

갑자기 끼어드는 라울.

이드는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라울과 레오날도 후작에 내심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의 관계랄까. 아니다. 그보다는 경찰과 범인의 관계가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라울의 도발을 침착하게 참아 넘긴 레오날도 후작은 이어서 지하 감옥으로 안내했다.

깊은 지하에 있음에도 감옥은 의외로 음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건 아니다.

깨끗해 보이는 것과 달리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개의 방을 지나자 두 명의 기사가 지키고 있는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레오날도 후작을 본 기사들이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다디달면서도 씁쓸한, 기묘한 향이 쏟아져 나왔다.

“……독특하군요. 마약입니까?”

킁킁 냄새를 맡은 이드의 말에 레오날도 후작이 안심하라며 설명했다.

“마약의 일종이긴 합니다만, 향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당연히 걱정한 건 아닙니다.”

마약이 아니라 독약을 사발로 들이켜도 중독되지 않을 것인데 걱정할 이유가 없다.

“휴우~”

물론 그렇지 못한 시사이판 같은 경우는 참았던 숨을 몰래 뱉어 냈다.

이드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의외로 넓었고, 사람도 많았다. 바닥에 피가 뿌려져 있진 않았지만, 한쪽에 걸려 있는 기괴한 도구들에서 쎄한 느낌이 들었다.

‘일리나를 먼저 돌려보내길 잘했네.’

내심 자신의 결정을 칭찬한 이드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레오날도 후작의 등장에 급히 일어난 세 명의 남녀와 정신을 잃은 상태로 침상에 묶여 있는 남자.

‘저자가 울펜이라는 배신자겠군.’

이드가 남자에게 다가서자 인상 좋은 남자와 여자가 움찔했다. 그러나 곧 조용히 이어지는 레오날도 후작의 손짓을 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덕분에 이드는 아무런 방해 없이 울펜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문을 진행하면서도 잘 관리했는지 상처 없이 깨끗한 육신에는 진득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제가 먼저 이자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생명과 정신만 제대로 붙어 있다면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전권을 내어 주다시피 한 레오날도 후작이다.

그에 옆으로 물러났던 세 남녀의 눈이 경악으로 떨렸다.

무려 저 레오날도 후작이 말을 조심하고, 목숨만 붙여 달라는 말과 함께 배신자를 간단히 넘기는 상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레오날도 후작은 이미 이드에게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는 상태였다.

정작 이드는 자신에게 모여든 시선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서 울펜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근골의 상태부터 시작해, 혈도와 기맥, 상중하 삼단전의 상태와 단전에 웅크리고 있는 내공의 질과 성향. 그리고 고문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에 따라 독맥과 그 주변의 척추 신경까지.

어찌 보면 돈 내고도 받을 수 없는 최고의 건강 검진을 받는 셈이었다.

문제라면 이 검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울펜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라는 점일까.

그렇게 장장 30분을 들여 꼼꼼히 울펜의 상태를 살핀 이드가 손을 털고 침상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손을 닦으시면 됩니다.”

그러자 세모꼴의 눈을 한 약사가 상쾌한 향이 나는 수건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이드는 작게 감사를 표하고는 손을 닦으며 말했다.

“일단 고통을 느끼지 않아 고문이 통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해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역시?”

“네. 무공으로 감각을 차단한 겁니다. 극소량의 내공으로 목 아래쪽 신경 다발만 차단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단전의 내공을 쓸 필요도 없어서 내공 금제도 통하지 않았을 겁니다.”

“과연 내공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어떻게 고통을 참는 것인가 했더니 그런 방법이.”

“후작님. 이러면 심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드는 레오날도 후작 옆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남자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라울 옆으로 다가섰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명예 후작님 아니고서야 누가 의식도 없는 자를 잠시 살피는 것으로 비장의 수법까지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이드는 척하고 엄지를 들어 보이는 라울의 손을 밀어 내고는 전음을 사용했다.

-칭찬은 그 정도로 하고, 뱅커올슨과 이베인에 대한 일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전음 때문일까.

갑자기 떠오른 질문이 아님을 알아차린 라울도 속삭이듯 답했다.

“뱅커올슨에 대한 심문은 끝났습니다. 이베인의 경우는 회복을 우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만?”

-이베인을 다시 봐야겠습니다. 그가 힘들다면 뱅커올슨이라도.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그에 맞춰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드는 눈꼬리를 살살 말아 올리는 라울을 말없이 노려보다 짧은 전음을 보냈다.

ᅳ저자에게서 무도의 흔적을 찾은 것 같아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드는 조금 전, 울펜의 기맥과 삼단전의 상태를 확인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탄탄한 기맥과 하단전은 여느 기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기사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상단전에 잡음과 같은 것이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드는 상중하단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곳 누구에게도 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드에게서 시작되어 대륙에 퍼진 무공의 원류는 정명한 정공이었다.

정공의 특징은 느리지만 꾸준하다는 점이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때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중단전이 열리고, 상단의 개발이 시작되게 된다.

검후만 해도 중단전이 열렸으며, 상단전도 개발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검후와 같은 경지에 오른 것도 아닌 울펜이, 중단전도 열지 못한 상태로 상단전이 개발된 것은 분명히 이상했다. 더욱이 상단전이 정상적으로 개발된 것 같지도 않았다.

굳이 잡음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울펜의 상단전은 ‘개발되었다기보다는 ‘자극되었다고 보는 쪽이 더 옳은 상태라고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이드는 얼마 전에 확인한 적이 있었다. 바로 이베인의 몸에서였다.

하지만 그때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베인의 경지는 검왕에 비교할 만큼 높았기 때문에, 상단전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스피츠하비터의 핵으로 사용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상단전이 어떤 이상 상태에 빠져 있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당시에는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울펜의 상태를 살피고 보니, 그때 이베인의 상태가 자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무도라면…… 하! 이거 아무래도 바벨이 얼마나 빠른지 알려드릴 기회가 될 것 같군요.”

장난스럽게 답하는 라울이지만, 그 눈에서는 전혀 장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이드도 마찬가지.

-기대하죠.

설마 카논에서 찾던 무도가 여기서 나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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