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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19화


1154화

마법진은 황녀궁에 설치하기로 했다.

전적으로 황제의 결정이었다.

“네가 할마마마를 뵙고 싶을 때 언제든 다녀오너라.”

이어진 그의 말은 황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

사실 이건 그리 쉽게 결론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검후의 존재가 아직 알려져선 안 되는 만큼, 마법진의 존재를 숨길 수 있어야 했다. 게다가 이 마법진을 통해 적이 숨어들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특히 마지막 문제를 생각하면 황제가 주로 머무르는 장소들은 모두 제외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황제는 이런 모든 문제를 뒤로 미뤘다.

아무렴 검후와 은색 기사단, 그리고 무려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 머무는 저택이 그리 쉽게 적의 손에 떨어질 리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느새 고급 재료를 쏟아부어 마법진을 완성한 라미아는 마법진을 통제할 수 있는 한 뼘 길이의 황금 조각상을 내어 주며 말했다.

“여기에 마법진의 통제권이 없는 것도 아니니, 여차하면 이쪽에서 공간 이동을 막으면 돼요.”

그러더니 완성된 마법진에 미스릴을 부었다.

마법진의 존재를 숨기는 동시에, 제국의 마법진 해석 시도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혹시라도 미스릴 코팅이 벗겨지는 순간 퓽~인 것입니다, 폐하.”

“명예 후작 부인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크흠.”

부정하는 황제지만, 뭘 생각했는지야 보지 않아도 뻔한 일 아닌가. 국가 예산을 몽땅 털어서라도 사고 싶은 기술이 황녀궁에 설치되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수식이 복잡하고 어려워도 마법이라는 테두리에 들어 있는 이상, 연구를 하면 어찌어찌 사용하는 일도 불가능한 건 아닐 터였다. 하나, 지금 미스릴 봉인과 함께 이어진 라미아의 경고 덕에 그 가능성은 보기 좋게 막혀 버렸다.

이드는 섭섭한 기색이 역력한 황제에게 말했다.

“이 마법을 제국에 알려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니, 부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폐하께만 말씀드리자면, 사실 이건 혼돈의 파편을 쫓는 과정에서 얻은 단서를 응용한 기술입니다. 당연히 저희도 그 영향이 어떨지 알 수 없어, 수시로 그 부분을 살피며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데 만약 그런 기술을 개인도 아닌, 제국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사용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구려.”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걱정 마시오. 앞으로 마법진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 두겠소.”

혼돈의 파편과 관련되었다는 말 때문일까.

미스릴로 봉인된 마법진을 바라보는 황제의 시선이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수식을 알아낼 마음은 확실히 접은 모양이었다.

“마법진 설치도 끝났으니,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모두 이쪽에 서 주세요.”

이어 라미아의 부름에 사람들이 마법진을 중심으로 둘러섰다. 그리고 공간 이동이 발동되자, 저마다 익숙한 느낌을 받으며 황녀궁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저택에 도착한 황제가 라미아를 잡고 말했다.

“나중에라도 꼭, 명예 후작 부인을 황실 마법사로 모시고 싶소이다.”

공간 이동을 막는 황궁의 방어막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버렸기 때문일까.

폭탄이 될지 모를 마법진을 포기한 대신, 라미아를 탐내는 황제였다.

“검후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들어가시죠.”

그리고 그걸 본 이드가 황제의 등을 떠밀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그렇지, 허락도 없이 남의 마누라를 빼내려고 하다니! 황제가 아니었으면 그냥 확!’

그런 속내를 감춘 채.


그간의 오해를 푼 덕분인지, 검후 옆으로 모여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전보다 한층 더 편안해져 있었다.

어쩌면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날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던 중, 이드가 꺼낸 말에 황제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스 왕국의・・・・・・ 블레인 자작령, 말이오?”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블레인 자작령은 마스 왕국 내에서도 저 끝자락에 붙은 작은 촌구석에 불과했다. 특산물은커녕 뭐 하나 특별할 게 없는 곳이니 제국의 황제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부터는 똑똑하게 기억하게 될 터였다.

지도를 펼친 이드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짚었다.

“이곳이 블레인 자작령입니다.”

“그러니까 명예 후작의 말은, 여기에 영혼의 관이 있다는 것이오? 확실하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사람을 보내 두었으니, 조만간 연락도 올 것이고요.”

라울에게 정보를 얻은 후, 검은 돌과 전 트와이스 소속의 기사들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지금도 은밀하게 자작령을 뒤지는 중이리라.

“흐음…….”

하지만 이드의 확답에도 황제는 묵묵히 지도만 노려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가락을 이용해 안티로스에서 시작해 블레인 자작령에 이르는 선을 하나 그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습격 사건을 일으킨 도망자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군. 명예 후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금선탈각. 그러니까, 습격이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을 떠넘기려 한 걸 겁니다.”

“미완의 마탑이 습격 사건의 범인은 아니라는 말이구려.”

“어떤 멍청이가 저렇게 대놓고 자신들의 은신처를 드러내려 하겠습니까. 아무리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마법사라도 그런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겠죠.”

심지어 습격 사건엔 마법사도 끼어 있지 않았다. 이건 이미 앞서 황궁에서도 나왔던 말이었다.

그에 황제가 입술을 적시고는 조금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소드 팰러스를 습격 사건의 범인으로 보고 있소.”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짐작’에 불과하겠지만, 이쪽은 ‘확신’이었다. 그렇게 답하려는데, 검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섰다.

“황제 말을 제대로 하세요. 소드 팰러스가 아니라 삼검왕이겠죠. 소드 팰러스는 내 거처입니다. 무엇보다 아직도 소드 팰러스를 사랑하는 무인과 기사들이 많습니다. 지금 황제의 그 말은 그들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하세요.”

“….할마마마..”

“틀렸습니까?”

“……주의하겠습니다.”

설마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야단을 칠 줄은 몰랐나 보다. 더구나 딸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황제의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하나 아무리 봐도 노여움 때문은 아닌 듯했다.

황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인지 헛기침을 하고는 급히 말을 돌렸다.

“목적지를 알았으니, 이제 마스의 방해는 무시하고 빠르게 추적하도록 명해야겠소. 한데, 명예 후작이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무례하지만, 토벌을 좀 더 서둘러 주시기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혼돈의 파편에 대해서 털어놓았기 때문인지, 이드는 별 망설임 없이 저택 지하에 비올라가 붙들고 있을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 말했다.

미완의 마탑과 혼돈의 파편이 바이트 타블렛으로 무엇을 꾀하는지와 이틀 전 있었던 바이트 타블렛의 변화에 관해서도 말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저희만으로 영혼의 관에 돌입하려 했지만, 마침 이렇게 기회가 생겼기에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드의 말에 황제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그에 이드가 여유롭게 기다릴 무렵, 어느 순간 황제의 입이 다시 열렸다.

“……좋소. 마스와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 재촉해 보겠소. 다른 꿍꿍이가 있는 삼검왕이 직접 나선 만큼, 뭐라도 건질 게 있을 거요.”

그렇지 않고서야 안티로스에서 사고를 친 뒤 굳이 그리로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희 쪽에서도 영혼의 관이 확인되는 대로 정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좋소. 한데, 명예 후작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구한 것이오? 우리 쪽에선 정신의 관에서 사로잡은 마법사들을 데리고 있음에도 얻지 못했거늘.” 

“하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검후와 힐끗 눈을 마주친 이드는 어색하게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속으로 라울을 욕했다.

‘황제와 손을 잡았다면서 대체 왜 왜 이 정보를 넘겨주지 않은 거야. 그랬으면 토벌도 더 빨리 시작되었을 텐데.’

사실 라울 입장에선 황제보다 검후와 이드에게 더 잘 보여야 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정보 우위를 주고자 배려한 셈이었다.

물론 말하지 않는 이상 알 리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뒤, 황제와 황녀가 돌아갔다.

새로 깔린 마법진이 있기에 이제부턴 이드나 일리나가 직접 나서서 호위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지하실로 함께 내려가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끝이었다.

이드는 조금 전까지 황제 일행이 있던 곳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토벌 계획이 잡히면, 영혼의 관과 혼돈의 파편 쪽에서도 뭔가 반응이 생기겠지?”

“그거야 얼마나 빨리 시작되느냐에 따라 달렸죠.’

토벌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준비해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막상 말이 나오고도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경우에 따라선 제국의 토벌대를 두고 영혼의 관에 먼저 쳐들어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 토벌대는 높은 확률로 폐허가 된 빈집만 구경하게 될 테지.

그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황제가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는 게 이드의 솔직한 바람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래 보여도 제국의 황제답게 과감해야 할 땐 과감할 줄 아니까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배신감과 섭섭함에 황제를 멀리하려던 사람의 말이었다.

이래서 가족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날.

이드는 라울의 입을 통해 검후의 말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어전회의를 주최한 황제가 그 자리에서 토벌 준비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습격자들의 목적지가 블레인 자작 영지라는 사실과 함께, 그곳에 영혼의 관이 있다는 제보를 확인 중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블레인 자작령에 대해서는 명예 후작님께서 알려 주셨겠지요?”

“그렇긴 한데, 저렇게 출처도 없이 정보만 딱 밝혀도 괜찮은 겁니까?”

“무려 제국의 황제께서 내리신 명령입니다. 감히 누가 그 출처를 의심하겠습니까. 그저 은밀한 정보통이 있나 보다 하고 두려워하겠지요.”

그럴 만도 했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황제의 눈이 언제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이런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황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밝히신 겁니까?”

“반대로 묻죠. 왜 황제께 블레인 자작령에 대해 밝히지 않은 겁니까?”

“귀한 것일수록 한 번에 내어놓으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무엇보다 그 정보는 이미 검후님과 명예 후작님께 드린 것이 아닙니까. 저희 바벨은 상도의가 있는 곳입니다.”

이드는 그 말에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도의라니.

그럼 납치, 감금은 물론이고 뒤를 잡힐 것 같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은색 기사단을 공격했던 조직은 또 누구란 말인가.

“웃기지도 않는 말은 그만하고, 오늘은 또 무슨 일입니까.”

빨리 용건을 밝히고 돌아가라는 티를 숨기지 않는 이드였다. 하나 그런 태도에 라울은 오히려 느긋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뱅커올슨과 이베인이 옮겨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제 있었던 심문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말입니다.”

“실패한 거 아니었습니까?”

지하 감옥을 나서기 전까지 봤던 모습을 생각하면 실패가 확실해 보였는데 말이다.

“・・・・・・ 이대로 돌아가야겠군요.’

“레오날도 후작께 들어도 되는 일입니다. 괜히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보세요.”

“..소드 팰러스랍니다.”

“……음?”

“소드 팰러스에서 무도를 접했답니다. 놀랍지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라울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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