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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20화


1155화

멀쩡한 무공을 배워 놓고 무도를 익혔다고 외치는 뻔뻔한 놈들.

초인을 갈아 넣는 던전에서의 첫 만남 이후, 그 연결 고리가 이어진 발라파루로 쫓아갔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쥐도 새도 모르게 아나크렌에 숨어 황제의 목숨을 노렸다.

그런데 이제는 소드 팰러스까지 더해지게 생긴 것이다.

기가 찰 일이다.

대륙 모든 무인과 기사들이 모여드는 무공의 요람에서 무도를 배웠다니.

기사의 성지에 삼검왕에 이어 무도라는 이상한 놈들까지 들어앉았으니, 소드 팰러스를 아끼는 검후로서는 땅을 칠 일이다.

“그래서, 그놈은 카논무파와 어떻게 이어졌답니까?”

“카논무파? 무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기들끼리는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무공을 갈고 닦는 소드 팰러스에서 감히 ‘무도’는 어림도 없는 일. 무공을 살짝 비틀어 카논식이라고 우기는 도둑놈들이니, 카논무파도 과분하오.”

그 말대로, 이드로서는 사실 ‘카논무파’도 많이 참은 거다. 멀쩡한 남의 무공을 들고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다니, 중원이었다면 사생결단을 낼 만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개같은 무공 위조범’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이후에도 황제를 비롯한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릴 것 같아서 참았다. 황제를 앞에 두고 차마 계속 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깔끔하게 ‘카논식 무공이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냔 말이다.

지금 대륙에 퍼진 모든 무공이 이드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이드는 그런 무공들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미친놈들은 진정 얼굴도 두꺼웠다. 누가 봐도 이드가 전한 ‘무공’에 기초해 만든 이론을 가지고 ‘무공’이 아닌 ‘무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좋게 볼 수가 없을 수밖에.

아무렴 내가 스스로 베푸는 것과 허락 없이 훔쳐 가서 주인 행세까지 하는 건 달라도 한참 다르지 않은가.

“과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명예 후작께선 불편할 만하시겠군요. 마법사들만 해도 지적 재산권 싸움이 마탑 간의 문제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마법사의 지적 재산권 분쟁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충분히 내용이 짐작되어 이드는 간단히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그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카논무파의 주장은 마법이라는 큰 틀 안에서의 지적 재산권 주장이 아니라, 마법 그 자체가 자신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셈이었다. “비슷하오.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하려던 말이나 마저 해 보시오. 소드 팰러스에서 어떻게 카논무파와 이어진 거요? 울펜이 사실 카논인이었기라도 한 거요?”

검후를 부를까 고민하던 이드는 내심 고개를 젓고는 라울의 대답을 재촉했다.

이어진 라울의 말은 이랬다.

다행히도 울펜이 아나크렌 제국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여느 귀족들처럼 어린 나이부터 검을 배웠고, 무공을 익히기 위해 소드 팰러스를 찾았다.

안타까운 점은 그에겐 무공에 대한 재능이 모자랐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듣지 않아도 알겠군. 존 워스겠지.”

“하하하. 너무 뻔했지요?”

카논무파에 존 워스가 관련되어 있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나도 비슷한 사연을 들어 보았기 때문이오. 피나는 노력에도 보답받지 못한 기사. 무공을 익히기엔 늦은 나이. 그때 손을 뻗어 준 사람까지 거의 똑같은 유형이지 않소?”

“황혼의 기사, 이베인 말이군요.”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베인을 넘겨받은 후 조사를 했을 것이다. 아무렴 혼돈의 파편 관련자인데, 허술하게 처리할 순 없었겠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늦어도 사흘 안에 그 두 사람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가까이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과연 자작이 자신할 만하군.”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자신만만한 라울. 어디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초인이라도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나 저렇게 자랑하면서도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로 봐선 쉽게 들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잠시 옆으로 샌 이야기는 금세 다시 돌아왔다.

“그럼 이번 황제 습격 사건의 배후가 존 워스로 확정된 거요?”

만약 그렇게 되면 존 워스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황제도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서 소드 팰러스를 공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제의 목숨을 노리다니, 토벌에서 아군을 공격한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아쉽게도 라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쉽게도 존 워스와 울펜의 관계성은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울펜은 존 워스를 통해 카논무파를 알았을 뿐, 이후 카논무파의 검을 익히고 그들과 함께하게 된 과정에 존 워스가 관여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존 워스가 연결해 준 집단이 황제를 습격했지 않소?”

다른 사건과 달리 역모에 관해서는 정확한 증거도 필요 없다. 정황 증거만 있다면 일단 잡아들인 후 조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삼검왕을 치기엔 부족합니다. 더욱이 소드 팰러스에는 카논무파와 비슷한 모임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다. 각국과 힘 있는 가문이 소드 팰러스의 무공을 재조립해서 자신들만의 무공을 만든 것처럼, 소드 팰러스에는 새로운 무공을 창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이베인을 넘기면 어떨 것 같소?”

“그렇게 한다면 당장은 문제가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존 워스를 좀 더 확실하게 엮을 수는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제국도 아니고 카논의 인물이 끼게 되면 정치적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서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래선 곤란하지요.”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것이 정치다.

없는 일을 만들거나, 뻔한 사실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정치가들의 주업이었고,

그런 만큼, 그 속에 이베인을 던졌다가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확신하기 어렵다.

“레오날도 후작에게만 슬쩍 흘리시죠?”

“후작에게 말이오?”

“황제의 두뇌잖습니까. 그라면 이베인을 정치적으로 잘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저희가 입만 살아 나불대는 여우 놈들을 직접 상대할 필요 없지요.”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과연 사람을 많이 부려 본 사람다운 생각이랄까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날도 후작에는 내가 말하도록 하겠소. 그럼 심문은 끝이 난 거요?”

“그렇습니다. 지킬 비밀이 없는 만큼, 울펜이란 자도 전처럼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못할 겁니다.”

본래 사람은 지킬 것이 있을 때 강한 법.

아마 이후에는 시사이판이 없어도 울펜의 입을 열게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으리라.

오늘 밤엔 황제의 방문이 약속되어 있지 않지만, 황녀는 언제나처럼 올 터였다.

그러니 그녀를 통해 이베인의 존재를 알리면 될 것이다.

“잘됐군. 그럼 자작도 온 김에, 어제 듣지 못했던 뱅커올슨과 이베인에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좀 들어봅시다.”

“하하하. 이거 어쩌지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검후님은 어디 계십니까?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리를 뜨려는지 라울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뗐다. 힘으로 막으려면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만 이드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좋소.”

“……”

“대신 버서커만큼이나 바벨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될 거요.”

지나가듯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라울을 주저앉히기엔 충분했다.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의 입에서 앞뒤 설명도 없이 세 명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애셔 밴, 스윔 브로우슨, 네이탠 스로우.”

“그게 다 누구요?”

“이베인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 저희 쪽에서 추려 낸, 카논무파로 짐작되는 인물입니다.”

이리저리 빼던 모습과 달리 너무나 쉽게 열린 라울의 입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버서커와 바벨이라는 단어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겠지.

그나저나 아직 입을 열지 않은 이베인을 두고서 카논무파를 추려 내다니, 이게 어딜 봐서 민망해할 정보란 말인가.

“참나, 아예 카논무파 소속을 잡은 후에 알려 줄 생각이었던 거요?”

“그래야 균형이 맞을 테니까요. 그보다, 버서커만큼 중요한 정보라는 것이 뭡니까?”

번뜩이는 눈을 한 라울이 사냥을 나온 늑대처럼 몸을 앞으로 숙인다.

라울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에 들으라는 식으로 말해 볼까 싶었던 이드는 그 절실한 모습에 그런 생각을 지우고 말았다.

능글맞은 밉상이지만 초인과 바벨에 대해서는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완의 마탑에서 제일 애지중지하는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거요.”

“물론입니다. 세 개의 관에 하나씩 있고, 그중 하나는 명예 후작께서 탈취해서 가지고 계시지요. 그 때문에 탑주의 애간장이 녹아 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압니다.”

“허 참. 마탑 안에 바벨의 인간이라도 있는 거요?”

“정신의 관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관으로 넘어 가면서 박아 뒀던 라인이 모두 끊어진 상태입니다.”

“아깝군.”

아무래도 라울이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 아는 정보는 생명의 관에서 탈취한 것까지가 전부인 모양이었다.

그 후 가지고 있던 바이트 타블렛을 탑주에게 내어 주고, 정신의 관에 있던 바이트 타블렛을 탈취한 사실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하긴, 보통은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할 거라고는 여기지 않을 테니까.

더욱이 정신의 관에는 탑주가 직접 나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 봤자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그러나저러나 해도 세 개의 바이트 타블렛 진품 중 하나가 이드의 손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바이트 타블렛에 관한 겁니까?”

“카논에 있던 우리가 왜 공간 이동까지 이용해서 급히 돌아왔다고 생각하오?”

“명예 후작께서 바이트 타블렛을 거론한 것을 보면, 그 때문인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건 셋이 같이 있지 않은 이상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힘든 것으로 압니다만.’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서 꽤나 자세하게 알고 있는 라울이었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소.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오. 며칠 전 바이트 타블렛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났고, 라미아는 그 이유를 바이트 타블렛이 합쳐지려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공명 때문으로 단정하고 있소.”

“음…… 복제는 있을 수 없고, 예비도 말이 안 되는데.”

혼잣말과 함께 연신 고개를 흔드는 라울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드는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당장은 알 수 없소. 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동의합니다.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되려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맞소. 그것이 완성되어선 곤란하오. 여러 가지로.”

“그 역시 인정합니다. 바벨에서는 초인 마법의 완성을 바라지 않습니다.”

초인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초인의 가치는 하락한다.

그나마도 마탑의 초인 마법에 관련해 그 정도 염려일 뿐, 그 뒤에 숨은 혼돈의 파편의 목적은 더욱 위험하다.

“그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단독으로 영혼의 관에 돌입할 생각을 했소. 하지만 며칠 전 황제 폐하를 뵙고는 생각을 바꿨지.”

“・・・・・・ 토벌을 서둘러야겠군요.”

“음, 황제 폐하께서 움직이려 하시니, 거기에 바벨이 협력한다면 더 빠르게 시작할 수 있을 거요.”

“전력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이드와 라울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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