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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3화


510화

채채챙-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하얀 달빛과 붉은 불빛을 받은 검광이 사방에서 번뜩였다. 호위들의 얼굴에 긴장과 여유가 동시에 흘렀다. 그것은 타르코지도 마찬가지였다.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마스터 검사도 해약이 없으면 피할 수 없는 수면향에도 잠들지 않았단 말이지.’

타르코지는 이드에 대한 큰 경계심이 일었다. 수면향을 어떻게 피했을까 싶었다.

사실 수면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수면향을 피할 방법은 많았다. 또 수면향이 마스터의 검사를 모두 재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이 세상 최고의 무기는 수면향이었을 것이다. 수면향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막 경지에 진입한 마스터까지였다. 그 이상의 인물들은 내공을 사용해서 충분히 수면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타르코지와 호위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긴장했다.

‘아니, 어쩌면 엘프가 미리 알아채고 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엘프라면 수면향을 피할 약초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정령을 사용해서 연기를 피할 수도 있다.”

엘프의 감각은 인간보다 수 배 뛰어나다. 그런 감각이라면 자다가도 수면향을 느끼고 깨어났을 수가 있다.

타르코지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처럼 위험한 판돈이 걸린 일에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조급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깨어 있었군.”

천막 밖에서 환한 주변을 돌아보던 이드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데 어떻게 편하게 자겠습니까.”

대답하는 목소리가 지금 상황과 다르게 가벼웠다.

타르코지는 그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자지 않았던 모양이지.”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요. 시끄러워서 깼다고.”

·무슨 자신감이냐? 지금 주변 상황이 보이지 않나?”

“글쎄요. 보이긴 하지만 허수아비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던가요?”

느긋한 이드의 말에 주변에 검을 뽑아 들고 있던 호위들이 으르렁거렸다. 이드의 한마디에 그들은 검을 들고 있는 허수아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타르코지의 명령이 없는 상황에서 이드에게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드는 그 모양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 말을 잘못했네요. 허수아비가 아니라, 개네요. 주인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에서 개로 명칭이 바뀐 그들은 허수아비보다 개라는 말이 더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 어린 노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그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타르코지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만!”

“상단주님. 지금 저놈이…………….”

호위가 반발했다. 하지만 타르코지가 그를 보며 눈을 부라리자 바로 꼬리를 내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드가 한마디를 더했다.

“개 맞네. 훈련 잘된 개!”

“이익!”

순간 뒤로 물러서던 호위가 이를 갈았지만 다시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이드의 평가가 나름대로 정확했던 것이다.

타르코지는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작게 흘리고는 말했다.

“쓸데없는 도발은 그만하고, 자네도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이드는 타르코지의 말에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당연히 자신과 에단은 죽이고 일리나를 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말이 나온 것이다.

“일리나였던가? 그녀를 나에게 넘기게. 그렇다면 자네와 다른 일행의 안전은 내가 보장하겠네.”

그때 일리나가 천막에서 나오며 기분이 상한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뜻과는 상관없이 날 거래 재료로 쓰다니. 불쾌하군요.”

꿀꺽!

순간 여기저기서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한 달빛과 춤추는 검광 아래 환상처럼 떠오른 일리나의 아름다움에 취한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어질 약탈과 전투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리나를 바라보는 호위들의 시선에는 욕심이 가득했다.

타르코지는 그런 호위들의 모습에 눈을 부라리다 홀린 듯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어째서 귀족들이 국법으로 금지하는 노예를 사고팔고, 그중에서도 엘프가 나오면 혈안이 되어 서로 사려고 하는지 알겠다. 저 여인만은 절대 내가 차지하고 말겠다.’

타르코지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이드와 에단을 살려 주겠다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이유도 일리나에게 최대한 반감을 적게 주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틀어진 상황이다 보니 아무런 소용 없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아니요. 난 당신을 보호하려고 이러는 거라오. 힌 상단의 성공을 보았으니 제국에 들어가면 많은 귀족들이 당신을 노릴 거요. 지금 당신과 함께 다니고 있는 저런 자들은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없소. 내가 당신을 보호해 주겠소.”

타르코지는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건넸다.

어느새 천막에서 나온 에단이 타르코지의 말을 일축했다.

“아주 지랄이 풍년이다! 개소리가 수준급이야!”

“닥쳐! 난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너희 같은 천것들로는 그녀를 지켜 줄 수 없다.”

타르코지는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지 절박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순간 에단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제국이 완벽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에단이었다. 제국법이 일리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 일리나를 노린다면 고작 모지 상단의 주인 정도 신분으로는 그녀를 지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고작해야 강도 놈이 지켜 준다 만다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타르코지는 가슴을 찌르는 에단의 말에 울컥했다. 욕심나는 여자 앞에서 강도라는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무엇보다 실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은 고스란히 분노가 되어 나왔다.

“이놈 감히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저놈을 죽여!”

타르코지의 분노 어린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한 명이 튀어나갔다. 이드의 ‘개’ 발언에 나섰던 호위였다.

“흐랍!”

안정된 자세와 검세를 통한 찌르기였다. 보통 병사라면 꼼작도 하지 못하고 심장을 내주었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상대는 에단이었다. 비록 이드에게 수건을 잘 말리지 못한다고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상단의 호위에게 밀릴 실력은 아니었다.

치지지지징!

에단은 반쯤 뽑아 든 검으로 찔러 들어오는 검을 흘려 낸 후 그 반동을 이용해서 발검하며 상대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자 땅을 구르던 호위는 그르럭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다가 그대로 죽어 버렸다.

동료가 죽어 나가자 살벌하긴 하지만 차분하게 이야기가 오가던 공간이 차갑게 얼어 붙어버렸다. 번들거리던 욕망이 가득하던 호위들의 눈에 맹렬한 살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타르코지가 그 속에서 마지막이라는 듯 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일행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됐어.”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요. 공격을 명령한 건 당신이고, 에단은 그에 대한 반격을 했을 뿐이죠.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된 것은 당연히 당신 탓이고.”

“……”

타르코지는 이드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드의 말대로 먼저 공격을 명령한 것은 자신이었다. 타르코지는 이대로라면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막다른 골목이란 걸 안다면 반응이 바뀌겠지.’

까딱까딱.

타르코지가 어깨 위로 손을 올려 뒤에 있는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호위들 사이로 두 명의 마법사가 모습을 보였다.

“해라.”

간단한 타르코지의 명령에 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땅에 지팡이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앞서 코시를 상대로 시험했던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침묵의 언어.”

“고요의 바람.”

츄화아아압!

야영지 주변 일곱 개의 포인트가 빛나면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테스트 때와 달리 중형 마나석 네 개를 박아 넣은 마법진은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마법진이 성공적으로 작동하자 타르코지를 비롯해서 이드를 포위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안도와 닮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지는 타르코지의 말에 힘이 더해졌다.

“마나 고정 마법진이다. 이 안에서는 마나를 이용한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내 쉽게 말해 주마. 네 본래 실력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검을 휘두르는 일반 병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녀를 넘겨라. 그러면 그녀도 살고, 너도 살 것이다!”

그러나 이드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일리나의 어깨에 올라앉아 있던 라미아가 말했다.

[마나 고정 마법진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언뜻 보기에 마나 억제 마법진을 살짝 변형해서 만들어 낸 것 같아요.]

“마나 억제 마법진이라……………”

이드가 라미아의 말을 받아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걸 타르코지가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이면서 들어 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그럼 이야기가 빠르지. 마나 고정 마법진은 마나 억제 마법진을 발전시킨 것이다. 마인드 로드를 통해서 정밀한 마나 컨트롤이 가능해진 기사의 마나도 이 마법진으로 봉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지금은 마나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그녀를 내게 넘겨라!”

마법진의 백업을 받은 타르코지의 말은 이제 확실한 명령조다.

하지만 이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운용되는 내력을 확인하고는 이번에도 그의 말을 무시하고 라미아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타르코지를 향해 말했다.

“미친놈. 강도가 자기 여자 내놓으란다고 내주는 상등신이 어디 있냐? 미친 소리 좀 작작하시지?”

그러자 옆에 있던 에단이 낄낄거리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웃음소리를 따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타르코지가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여전히 탐욕과 욕정만이 가득 일렁이고 있었다.

“저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고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오. 급이 맞지 않는 자들과는 상종을 말고 이리 오시오.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소.” 그러자 일리나 역시 이드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존경받는 남편을 두고 강도를 따라가는 바보 같은 여자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답니다.”

으드득!

타르코지가 부서질 듯 이를 갈았다. 그리고 마법사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며 호위들을 향해 손짓했다. 

“좋다. 그럼 강도답게 힘으로 당신을 가지지! 여자만 내게 데려오고 나머지는 갈기갈기 찢어 버려라!” 

으아아악!

명령이 떨어지자 고삐 풀린 소처럼 호위들이 뛰쳐나가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에 이드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의 뒤로 일리나가 에단을 지키고 섰다. 마법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지에 들어선 두 사람과 달리 에단의 마나는 굳어 버린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잘 봐. 이게 지금 네가 익히고 있는 수건 털기의 실전 버전이니까!”

이드는 말과 함께 그를 찔러 오는 세 자루의 검신을 향해 일라이저를 휘둘렀다. 허공을 미끄러진 일라이져는 세 자루의 검신을 끈끈하게 한데 모아 묶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날뛰는 힘을 한데 모아 섞고, 공중으로 휘몰아쳐 튕겨 냈다.

챠라라랑!

순간 세 자루의 검은 주인의 손을 거부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 검수는 순식간에 빈손의 무방비가 되었고, 그 사이로 일라이져가 그어졌다.

“커흑!”

세 남자가 피가 뿜어지는 목을 잡고 넘어갔다.

이드는 슬쩍 한 발 물러서 피를 피하고는 말했다.

“그럼 시범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물러선 한 걸음을 다시 앞으로 나서며 뻗은 이드의 주먹에서는 검은 철황포(鐵荒砲)가 뻗어나갔다.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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