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74화


511화

사람이 하늘을 날았다.

그것도 작은 아이가 아니라 건장하다 못해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하늘을 날았다. 보통 사람들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그럼 보통이 아니라면 가능한가. 그렇다. 일반적으로 마법이라고 부르는, 세상의 법칙을 뒤트는 방법을 이용하면 인간은 공중에 뜨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리고 정령을 소환해도 가능하다. 물론 이때는 꼭 바람의 정령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셋째로 극히 드물지만, 육체를 통해서 마나를 극도로 단련한 사람도 허공을 밟고 달리거나 공중에 뜰 수가 있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는 초인이라는 특이한 능력자들이 튀어나왔는데, 개중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초인들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의외로 기계의 도움 없이 인간의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마나라고 하는 신비한 세상의 이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나의 신비 없이는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다.

마나 고정 마법진은 이런 마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마나를 이용한 힘의 발현을 저지하는 마법진이었다. 당연히 이 마법진 안에서 인간은 어떠한 능력으로도 날 수 없다.

‘그런데 저놈은 왜 날고 있는 거야?”

타르코지는 뒷덜미를 스치는 섬뜩한 바람을 느끼며 떨었다. 그도 눈이 있어서 그가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맞아서 날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문제였다.

분명 마나를 고정시켜 뒀는데 저 젊은 놈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덩어리는 무엇이며, 그것을 얻어맞고 날아가는 저놈은 뭔가 말이다. ‘빌어먹을. 설마 저놈이 소드 마스터 상급이라는 말이냐! 그럴 리가 없다. 저 놈 나이가 얼마인데!’

타르코지가 의뢰해서 설치한 마법진은 소드 마스터 상급 이상의 경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그것만 해도 충분히 강력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위력이 강한 만큼 단점도 분명했다. 우선 마법진의 설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범위가 좁으며, 가동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 계산이 틀려서 상대방에 마법진의 한계를 넘어선 강자가 있을 경우, 오히려 이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게 될 위험 부담 또한 있다. 바로 지금의 이드처럼 말이다.


이드는 주변에 몰려든 호위들을 향한 손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와 모양새들이 이런 일을 한두 번 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드의 왼손에서는 끊임없이 철황권의 초식이 뿜어지며 호위들을 날려 버렸고, 오른손에 들린 일라이져는 한 번 휘두름에 어김없이 한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백 명이 넘는 호위 중 절반이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이드의 발밑에 하나둘 시체가 쌓이고, 어느새 호위들은 뒤로 물러서서는 앞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뭉쳐 있는 모습이 오합지졸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드는 이들을 살려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이드는 이자들이 천막으로 다가오면서 일리나를 두고 희롱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에 당연히 화가 나기도 했지만, 앞서 이들에게 잡힌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앞서 이들에게 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몇 명이나 희생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두 명은 아닐 것이다. 이드는 자신의 욕심과 필요에 의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그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는 저들을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물러선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드는 번개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번개를 닮은 진천일검을 뿜어냈다.

짜자자작!

“끄아아악!”

“아악!”

순식간에 일격의 범위 안에 들어 있던 여덟 명이 연기를 뿜으며 쓰러졌다.

타르코지는 이드에 의해서 허수아비처럼 이리저리 날아가고, 짚단처럼 넘어가는 호위들의 모습에 정신이 없었다. 그가 다급하게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마, 마법진! 마법진은 제대로 운용 중인가?”

그때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이드의 무서운 힘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으로 가동 중입니다.”

“그럼 저놈은 어떻게 저런 공격을 한단 말인가. 지금도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을 날리고 있어. 혹시 저것도 아티팩트를 이용한 것인가?”

타르코지는 자신의 팔목에 걸려 있는 팔찌형 아티팩트 두 개를 내어 보이며 물었다. 두 마법사는 팔찌를 바라보다 둘이 얼굴을 맞대고 수군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티팩트로는 저와 같이 교묘한 운용은 불가능합니다. 아마 본인의 실력이겠지요. 상대는 소드 마스터 상급의 실력자가 분명합니다.”

“저 어려 보이는 나이에 소드 마스터 상급이라니 놀라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저 검사의 공격이 마법진의 마나를 가를 때마다 마법진에 강한 부하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싸움이 계속될 경우 마법진이 부서질 수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말을 하는 중에도 이드를 두려움과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직접 마법진을 설치한 이들은 마법진의 고정된 마나를 흔들 만큼 촘촘히 압축된 마나의 형성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마법사는 땅에 박아 두었던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타르코지 님과 했던 계약은 마법진의 설치와 시동으로 끝이 났다고 판단됩니다.”

“계약 안에 타르코지 님과의 용병 계약은 없었기 때문에 필요 없는 싸움에 휘말리기 전에 그만 물러날까 합니다.”

이전부터 그랬지만 두 마법사가 번갈아 가면서 하는 말은 듣는 사람을 정신없게 만든다. 하지만 용케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타르코지가 놀라 말했다.

“이, 이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까지 거래를 한 것이 얼마인데…………….”

머리 좋은 마법사들이 자리를 뜨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

마법사들은 떨리는 타르코지의 눈을 보며 그의 생각을 긍정하는 답을 해 주었다.

“저희도 부디 타르코지 님이 무사히 생환하셔서, 저희와의 거래를 꾸준히 이어갔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럼 무사하시기를.”

찌지직-

마법사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뒤에 있던 마법사가 앞에 있는 마법사의 어깨를 잡고 손에 쥐고 있던 스크롤을 찢었다.

번쩍!

짧은 번쩍임과 함께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블링크였다. 그들은 겨우 시선이 닿는 곳에 모습을 보이더니 다시 한 번 빛과 함께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타르코지는 순식간에 사라진 마법사들의 모습에 아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내 그동안 퍼부어 준 돈이 얼마인데………….”

타르코지는 분노했다.

그러나 마법사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에 대한 대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사, 살려줘… “아악!”

그러는 사이에도 호위들이 죽어 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타르코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그는 지금 상황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이것은 너무 일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일반 용병과 마나를 다루는 소드 마스터와의 싸움은 원래 이런 것이다. 이것조차 이드가 수면향으로 잠든 주변 사람에게 혹시나 모를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범위를 최소로 한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범위가 큰 기술로 한 번에 정리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덜덜덜.

타르코지는 다리가 떨리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다.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자신이 구른 곳은 엄연히 상계지 이런 흉흉한 전장이 아니었다.

타르코지는 참다 못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기사단! 기사단은 아직이냐? 모지 기사단!”


“….저 인간도 이제 끝이구나.”

뒤에서 지켜보던 코시는 꼴깍 침을 삼키며 자세를 낮췄다.

‘일단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게 좋겠지?’

코시는 자세를 낮추고 상황을 지켜봤다. 두려움에 연신 기사단을 부르는 타르코지와 이러저리 날뛰며 이드의 칼에 죽어 나가는 호위들.

그리고 무서운 솜씨로 철저하게 목숨을 취하는 이드와 일리나.

“그러게 엘프가 있는 일행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하여간 인간이 욕심만 많아서는 말이야.”

엘프에게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인간 세상을 여행하는 엘프 중에는 절대 만만한 자가 없다. 엘프에 대해서 조금만 알아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욕심과 욕정에 눈이 뒤집힌 타르코지는 그 사실을 무시했고, 지금 그 결과가 눈앞에 있다.

“내 일도 아닌데 괜히 목숨을 걸 생각은 없단 말이지.”

코시는 이 자리에서 최대한 빠르게 멀어져 도망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살금살금.

코시가 앞의 상황을 살피며 마차의 그림자 사이로 몸을 숨기고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없다 싶어 휙 몸을 돌리는 순간.

퍽!

코시는 딱딱한 가죽 갑옷이 얼굴에 부딪치는 고통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코시는 얼굴을 감싸 쥔 채 겨우 눈을 뜨고 앞을 살폈다. 

“빌어먹을, 이게 왜 여기에……………”

그런 코시의 눈에 가죽갑옷에 새겨진 모지 상단의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갑옷을 입은 인물의 얼굴도.

“타르고…… 단장?”

따끔.

코시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그는 자신의 턱에 칼날이 와 닿는 것을 알았다. 날카롭게 날이 벼려진 칼날은 금세 피부를 베고 그 사이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조금만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판이라 코시의 몸이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 어딜 그렇게 조심히 가시나? 코시 보안 책임자.”

다시 이야기하지만 코시와 기사단의 사이는 별로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밀리는 듯해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네들을 부르기 위해서 움직이던 참이었네.”

코시의 대답을 들은 타르고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럼 우릴 찾았으니 다시 돌아갈까? 코시 보안 책임자.”

“그래야지. 그런데 아무런 대책 없이 이대로 가면 우리도 위험해. 상대는 강하다. 소드 마스터 상급이야.”

“알고 있다. 우리가 괜히 늦게 온 거라고 생각하나?”

생각해 보면 이미 벌써 도착해야 했던 모지 기사단이었다. 코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법이 있다고?”

“물론이다. 당장 나 혼자서도 저자의 상대는 가능하다. 나 역시 마법진의 영향에서 자유로우니까!”

‘이놈이 언제!’

코시는 내심 놀랐다. 타르고의 말은 스스로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허기사 그렇지 않고서야 이 일방적인 싸움에 쉽게 끼어들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거 축하할 일이구만! 다행이야, 다행. 상단주님의 큰 홍복이야!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이대로 주군께 돌아간다. 코시 보안 책임자는 주군 옆에서 그분을 지키고 있으면 된다.”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구만. 어서 돌아가세!”

코시는 새삼 자신에 찬 표정으로 칼날에서 떨어지기 위해 허리를 폈다. 하지만 칼날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따라 올라왔다. 대신 코시의 허리가 모두 펴지는 순간 그의 귓가로 타르고의 얼굴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경고하지. 혼자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주군의 곁에서 목숨 걸고 주군을 지켜라. 순간이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내가 네 목을 따줄 것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 기사단의 누가 나서도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 명심해라.”

“…..”

코시는 타르고의 협박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협박을 하는 그의 살기와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놈들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

다음 순간 코시의 목을 간질이던 칼이 떨어졌다. 코시는 손등으로 가슴까지 흐른 피를 닦았다. 타르고가 말했다.

“앞장서라. 너희들은 마차 위로!”

타르고는 코시의 등을 밀고는 그의 뒤에 도열한 모지 기사단의 단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옙!”

짧은 대답과 함께 마차 위로 뛰어올라 달려가는 그들의 손에는 언뜻 보기에 갈고리와 화살로 보이는 물건들이 들려 있었다.

코시는 그 모습에 순간 느껴지는 것이 있어 손뼉을 쳤다. 마차는 마법진의 외곽을 따라 놓여 있다. 당연히 마차 위는 마법진의 효과가 미치지 않는다. 그곳이라면 충분히 본신의 마나를 사용하면서 공격이 가능하다. 더구나 도구를 사용한다면 공격은 더욱 용이하다.

“역시, 든든하구만. 자, 가세!”

코시가 힘차게 싸움터를 향해 나아갔다.

타르고는 그런 코시의 뒤통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놈을 조만간 처리하긴 해야 할 텐데, 주군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군.’

과연 주군과 기사. 코시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은 군신간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