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51화
1186화
마탑에 대한 자존심이 밀어 올린 대답일까.
예상하지 못한 복잡한 요구일 텐데도 당당하게 대답이 나왔다.
파파팟.
타란 백작이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두네르가 복잡한 수인을 교차하는 동시에 스펠을 외웠다.
익히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고속 스펠. 그로 인해 두네르의 입에서는 언어가 아닌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가 났다. 이윽고 주문이 완성되는 순간, 반응은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란 백작의 요구에 대한 두네르의 답은 단순한 자존심이 아닌, 마탑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었다.
“어헉.”
“왜 그래. 괜찮나?”
가장 먼저 반응이 나온 곳은 적으로 정해진 타란 기사단 소속 기사들이었다. ‘과연 너희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기사들이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소리를 내며 휘청거린 것이다.
그에 마주 서 있던 수도 기사단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다 주춤하고 멈춰 섰다.
“허응!!”
그리고 이내 민망한 신음과 함께 묘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정수리를 통해 부어지는 힘이 온몸을 채우는, 생경하면서도 특별한 감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기사 중 감각이 예민한 몇은 말하기 힘든 황홀감에 자신도 모르게 절정에 올라 사정까지 해 버리기도 했다.
이런 자세한 사정까진 알지 못했지만, 확실히 무언가 변화가 찾아온 모습에 타란 백작은 두네르를 찾았다.
“마법사?”
“성공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마법사가 아니라 두네르입니다.”
“피오 단장, 확인하도록.”
타란 백작이 제 이름을 밝히는 두네르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채 명령하자, 피오 단장과 구른 단장이 움직였다.
두 사람은 마치 신참 기사처럼 직접 뛰어다니며 기사들의 상태를 살폈다.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인 만큼, 자신이 거느린 부하 기사에 대해서 잘 알았기에 파악은 더 쉬웠다. 거기에 기사들의 답도 듣고, 간단한 위력 시험까지 더해 각자 힘이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를 확인했다.
“효과가 없지는 않아.”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타란 백작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마탑은 거짓을 고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아니나, 불안정하다.”
타란 백작은 두네르를 노려보았다.
마탑은 초인들의 초인기를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에 마스는 제국과 바벨을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하고 마탑을 택했다. 그리고, 당장 결과만 놓고 보면 마탑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타란 백작이 보기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금 확인한 바로는 적국의 경우 초인기의 위력이 절반 이하로 감소했으며, 아군의 경우 반대로 초인기의 위력이 50% 가량 증가했다. 하나 이 수치는 최저치였다. 비록 한 명뿐이긴 하지만, 적으로 지정된 어느 기사의 경우 탈진 직전까지 힘이 빨려 있었다.
즉, 개개인에 따라 마법이 발현되는 강도가 너무 들쭉날쭉했다.
“저래선 쓸 수 없어.”
물론 진짜 못 쓴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확인된 최소치가 절반의 50%다. 기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 못해 경악스러운 수치다.
초인의 초인기를 외부에서 강제한다. 이건 정신의 관에서도 확인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건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든 준비를 마친 마법진 위에서 일어난 일.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영혼의 관과는 같은 영지 안에 있긴 하지만 거리상으로는 한참 떨어져 있었으며, 미리 마법진을 설치한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상황을 모르는 초인 입장에서는 날벼락과 같은 현상을 만들었는데, 그런데도 훌륭히 성공해 냈다. 그런 만큼 그것이 쓸모가 없을 수가 있나.
하지만 현재 타란 백작의 판단 기준은 한없이 보수적이었다.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선 위력이 일정해야 한다. 하나 저래선 지휘관의 통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그의 말대로, 자고로 전쟁에 쓰이는 병기란 언제나 일정한 위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기사들의 경지도 딱딱 나눠 놓지 않았던가. 두네르 역시 그런 점을 알고 있기에 타란 백작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이유보단 타란 백작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알아차린 탓이다. 저렇게 불쾌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모를 수가 있나.
“해당 문제는 마탑에서도 인지하고 있으며, 길어도 수일 안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글쎄. 과연 어떨까. 할 수 있다. 말은 누구나 하지. 나는 결과를 보고 싶다. 거기에 문제는 더 있다. 마법이 사용된 후, 아군 기사들의 몸이 굳었다. 전쟁터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건 살아 있는 표적이 되는 바와 같다. 나는 마스의 기사들을 살아 있는 과녁으로 만드는 일을 허락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법의 문제가 아니라, 부여된 힘에 적응하지 못한 기사들의 문제입니다. 몇 번 경험하고 나면 금방 적응을….”
타란 백작의 지적을 억지라 생각하며 설득하려던 두네르는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을 흘리는 상대의 모습에 조용히 입을 닫았다.
“헛소리는 다 떠들었나?”
“훗, 다행히 최소한의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아는 모양이야. 방금 그 헛소리는 못 들은 셈 쳐 줄 테니 잘 들어라. 마스의 기사들이 굳어 버린 것은 적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법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 마법사 나부랭이!”
“큭…… 실례했습니다.”
“큭.
마스는 마탑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두네르는 그런 마탑 영혼의 관 부관주를 바로 옆에서 모시는 주요 마법사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어떠한 직책도, 작위도 없는 평민일 뿐이다.
감히 백작 앞에서 허락도 없이 반론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
타란 백작은 고개를 숙인 두네르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마탑의 말이야 듣지 않아도 뻔하다. 너희들의 마법은 완벽하다. 그 말을 하고 싶겠지. 하지만 헤이스트에 기사가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스트렝스의 힘을 기사가 감당하지 못해 휘청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나는 없으니, 있다면 답해 보라.”
“……”
두네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실 타란 백작의 주장은 틀렸다. 마법을 접한 적 없이 검을 잡은 초보의 경우,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놀라 사고가 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기사의 경우에는 타란 백작의 말이 옳았다.
그리고, 지금 실험에 동원된 기사들은 하나같이 경험이 쌓이고 쌓인 노련한 기사들도, 마법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주춤한 자들도 아니었다. 이건 마법의 종류가 다르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전자나 사용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부담이 걸린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다행히 헛소리를 더 지껄일 정도로 뻔뻔하진 않은 것 같구나.”
타란 백작은 입술을 깨물고만 있는 상대를 보다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 중인 기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의 속은 편치 못했다.
마탑이 자신하는 마법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허점이라고 잡기는 했지만, 과연 왕과 다른 대신들도 그것을 허점이라고 여겨 줄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마탑이 주장한 마법이 실존하고, 그 위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뻔히 보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두네르의 처음 주장처럼 완벽하지 않은 점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면 쉽게 해결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스는 이미 제국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을 빼기 전이라면 몰라도, 빼서 휘두른 이상 제국과의 문제를 없던 일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스에서는 이보다 더한 문제가 있는 마법이라도 써야 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무리 급했다고 하나, 어떻게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부터 벌였단 말인가.’
타란 백작은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음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경우라면 어떻게 변명이나 괴변이라도 늘어놓으며 피해 보겠지만, 이번 일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하필 합류한 검왕 때문에 뒤를 쳤으니.’
예고 없는 기습.
그것도 같은 편인 척하다가 등 뒤에서 칼을 찔렀다.
제국 쪽 기사에 부상자가 제법 나왔다. 사망자는 없다. 오히려 검왕의 존재로 인해 당시 검을 들어 영혼의 관이 드러나는 걸 막아선 마스의 기사들 절반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운이 좋아 제국에 큰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무마시켜도 문제다. 제국과 바벨에선 끝까지 마탑을 토벌하려 할 것인데. 마스 입장에선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의 완성을 코앞에 둔 이 거대한 위업이 마스의 것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라니.
과연 왕과 대신 중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선 나조차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으니, 말 다 했지.’
있는 트집 없는 트집 다 잡아 놓은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변경백으로 끊임없이 싸워온 타란 백작 입장에서도 분명 눈앞의 결과는 탐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잠시 말이 없던 타란 백작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물었다.
“마법의 효과는 언제까지 지속되지?”
“한번 발동된 마법은 범위와 대상자의 숫자에 따라 변동되지만, 오백 미만이 대상일 경우 약 한 시간을 한계로 보고 있습니다.”
“오백 미만에 한 시간이라. 그 이상은?”
“마법은 발동할 수 있지만, 대상자에 저항력이 생겨나서 위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저항력?”
“그렇습니다. 기사들이 마법에 대항하는 항마력과 같은 개념입니다.”
“내가 전해 듣기로는 모든 초인의 초인기를 조율할 수 있다고 했다던데. 그럼 그 말도 틀린 것이 아닌가?”
“흐흐, 그래, 두네르라고 했던가. 그대에게 물어 무엇할까.
“죄송합니다.”
두네르는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죄의 말을 했다.
그제서야 타란 백작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탑이 가진 마법의 존재와 위력은 확인했다. 나 타란 백작은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본다.”
“……네? 하지만 방금 말씀은………..”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니까. 더욱이 그대들 마탑이나, 우리 마스나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