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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92화


1227화

파팟.

도망치듯 레어로 향했던 이드와 라미아가 돌아왔다.

이런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스폴이었다. 눈을 껌뻑거리던 그녀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벌써 돌아오신 거예요? 이렇게 빨리?”

“빨랐나?”

“빠르죠.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못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해는 아직도 열심히 하늘을 등반 중이었다.

그에 이드는 어깨를 움츠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신이라고 이렇게 빨리 돌아오게 될 줄 알았겠는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꾸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그렇게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말이지…………… 설마 레어가 그런 상태일 줄 알았겠냐고.’

지금 막 다녀온 레어를 떠올린 이드가 한숨을 쉬었다.

그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된 스폴이 반응했다.

“표정이 영 좋지 않으신데. 혹시 레어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못 볼 걸 봤다든가.”

・과연 레어에서 못 볼 꼴이 뭐가 있을 거라고 저렇게 묻는 걸까.

엉뚱한 질문에 이드는 결국 픽 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스폴 주변으로 누군가를 찾으며 말했다.

“못 볼 꼴은 아니었고, 충격적인 걸 보긴 했지. 레어 상태가 많이 좋지 않더라고.”

“흐음? 도둑맞은 것보다 더 좋지 않을 게 있어요?”

“볼래요?”

파아앗.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스폴의 반응에 라미아가 나섰다. 펼쳐 보인 그녀의 손 위로 반딧불처럼 빛이 반짝이더니, 곧 하나의 영상이 만들어졌다. 그건 안쪽이 캄캄한 어둠으로 채워진 깊은 동굴이었다. 직접 가 보지 않고도 단숨에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레어는 이상하게도 한쪽이 훤하게 뚫려 있어 외부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중이었다.

“이거・・・・・・ 구멍이에요?”

입구라고 하기엔 너무 클 뿐 아니라 위치도 생뚱맞다.

“좀 크죠? 보이는 대로 레어의 30%가 통째로 날아갔어요.”

별거 아닌 듯 산뜻하게 답하는 라미아에 스폴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집의 30%라면 도저히 ‘구멍 따위’라고 말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지 않은가. 이건 차라리 ‘붕괴’ 쪽에 더 가까웠다.

“혼돈의 파편이……”

“스케스틱이에요.”

“……아니고요?”

이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스폴에 본인도 기가 막힌다는 양 고개를 흔들었다.

“스케스틱이야. 날아가 버린 레어 주변으로 브레스의 흔적이 진득하게 남았더라고. 그것도 그린 일족의 것이.”

“그럼・・・・・・ 스케스틱 님이겠네요.”

현재 그레센에 돌아온 드래곤이라고는 스케스틱 뿐이고, 그는 그린의 일족이다.

“뭐, 덕분에 우린 편해졌지.”

“네?”

“아무것도 아냐.”

물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이드와 라미아가 이처럼 서둘러 레어를 다녀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혹시나 남아 있을 범죄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방문한 레어는 한쪽이 통째로 날아간 상태였고, 사방엔 브레스의 여파가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었다.

브레스란 드래곤이 가진 아주 강력한 공격 수단 중 하나이다. 그 정체는 마나의 폭풍 같은 거라,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마나로 이루어진 건 특히나 더 멀쩡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이드와 라미아의 범행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스케스틱의 브레스에 대지에 남아 있던 마나는 오염되었고, 땅에 살던 정령도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핵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과도 비슷하달까.

마나에 둔감한 생명체라면 상관이 없지만, 마나로 숨 쉬는 정령과 같은 입장에선 그야말로 용암이 끓어 오르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좌우간.

이런 덕분에 이드와 라미아는 할 일을 덜었고, 그대로 복귀해 버린 것이다.

정말 혼돈의 파편이 다녀간 곳이라면 혹시나 하며 살펴보기라도 했겠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니까.

“과격하네요. 레어를 부수다니. 그래도 스케스틱 님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에요.”

“이게 이해가 된다고?”

“되죠. 집이 두 개나 털렸는데, 저라도 화가 폭발할 거 같은데요?”

이드는 이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반응의 스폴에 레어를 가리켰다.

“화를 내는 건 문제가 아니지. 그런데, 화가 난다고 남의 집을 부수면 이상한 거 아냐?”

“남의 집이니까 맘 편하게 부순 거잖아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내 집을 왜 부숴요?”

이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 눈빛. 절대 농담이 아니다. 평소 행동을 보고 평범하지 않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기준이 일반인과 다를 줄이야.

“그건 그렇다 치고, 스케스틱이 어딨는지 알아?”

“흠,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테라스로 가시는 것 같았어요. 차와 과자가 가득 쌓인 접시를 가지고.”

“알았어.”

답을 들은 이드는 라미아와 함께 곧장 테라스로 향했다.

레어를 파괴한 범인이 스케스틱임은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하기 위해 확인을 해 두는 편이 좋았다.

무엇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라일로시드가의 레어를 날려 버린 건지가 궁금했다.

레어가 털린 건 털린거고, 파괴는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찾아간 스케스틱의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차후에 라일로시드가가 돌아오면 보상하면 됩니다.’

“라일로시드가가 화내는 건 괜찮아요?”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어차피 적에게 알려졌고, 도둑까지 든 레어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라일로시드가가 돌아와도 그 레어를 다시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그러는 것처럼.”

보상했다고 했지만, 저 말에 따르면 라일로시드가가 보상을 내놓으라고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그나마 스폴과 같은 이유가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랄까.

“그래도 저런 상태를 만들어 놓고 오셨다면, 우리에겐 미리 말해 주셔도 좋았을 텐데요.”

그랬다면 굳이 서둘러 레어로 달려가는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됐습니다.”

그렇게 이드가 몸을 돌리려 하자 스케스틱이 서둘러 말을 꺼내며 이드를 잡아 세웠다.

“이후 이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계획이라…… 당연히 혼돈의 파편에 관한 거겠죠?”

“이 세상에 문제는 오직 그놈들뿐이죠.’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스케스틱을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굳이 동석할 이유가 없는 라미아는 자연히 먼저 돌아나갔다. 저대로 일리나와 검후가 있는 연무장으로 향할 것이다. 레어의 붕괴라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을 테니.

쪼르르륵,

이드가 자리에 앉자 스케스틱이 차를 따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차를 버리는 듯한 행동이었건만, 찻물이 탁자에 닿기 전 갑자기 찻잔이 나타났다. 좀 전까지 저택 주방에 있던 물건이었다. 과연 드래곤, 마법을 숨 쉬듯 쉽게 사용한다.

이드는 스케스틱이 따라 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잠깐 할 말을 정리했다. 사실 계획을 묻는 스케스틱의 말은 이드에게도 다시 한번 스스로의 생각을 다듬어 볼 기회였다.

현재까지 혼돈의 파편이 남긴 흔적만을 쫓아 열심히 달렸지만, 되돌아보면 이리저리 중구난방으로 움직였을 뿐, 계획이라고 할 건 딱히 없었다. 

‘어쩔 수 없기는 했지. 혼돈의 파편이 어디에 어떻게 손을 댔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하물며 어디에 틀어박혀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계획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존재.

그것이 바로 현재 혼돈의 파편을 가리키는 가장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드였다. 그나마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던 존 워스도 두 눈 뜨고 놓치지 않았던가.

어디 그가 계획이 없어서 잡지 못했던 존재였던가.

이드는 자신이 그레센으로 돌아온 순간부터의 일을 다시 한번 간추렸다. 그중 혼돈의 파편과 조그만 관계라도 있는 일이라면 모두 설명했다. 당시의 상황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 같은 것들. 그리고서 결론을 내듯 말했다.

“가장 문제는, 혼돈의 파편들에 구심점이나 본거지 같은 개념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결과를 보면 이놈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떠돌 뿐이라는 거죠.”

“우리 일족이 중간계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르군요.’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혼돈의 파편이 드래곤과의 맹약을 무시하고 움직였다면, 초인의 존재가 있다 해도 과연 이 세계가 무사했을지 확신할 수가 없는 일이다.

또 혼돈의 파편이 굳이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저들이 카논 안에서 오로지 카논의 발전과 대륙 정복을 위해 힘을 썼다면? 그 역시 그레센의 정세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다.

초인을 포함해 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혼돈의 파편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이 빠졌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이 꼭 나쁘다고 할 수만도 없으리라.

“사실 지금 하고 있는 건 술래잡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놈들이 있을 만한 곳, 관련되었을 것 같은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현재로선 놈들의 꼬리를 잡을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장 냄새가 나는 곳은 미완의 마탑이죠.”

미완의 마탑에 대한 공략.

그것이 현재 이드가 가진 계획 전부였다. 하지만 스케스틱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그 방증으로, 이드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쉬지 않고 씹어 대던 과자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이전 로드께서 이드에게 보냈던 아티팩트는 어땠습니까?”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이제는 혼돈의 파편이 존 워스처럼 또 정체를 숨기고 있어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죠. 문제는 아티팩트의 효과 범위가 넓지 않다는 겁니다.”

넓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작은 영지도 아니고, 이 넓은 그레센 안에 숨어 있는 혼돈의 파편을 찾으려면 범위가 너무 좁았다.

더욱이 사용횟수에 제한이 있는 물건을 사용하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로드가 돌아와 이 아티팩트를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면 또 다르겠지만..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혼돈의 파편을 특정하는 물건을 만들기가 그렇게 쉬울 것 같았으면, 라미아도 벌써 궁리해 냈을 테니. 

“그럼 카논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방법이 없다는 얘길 할 때, 스케스틱이 갑자기 카논을 들먹였다. 그에 이드는 왠지 등골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카논이・・・・・・ 어떻다는 겁니까?”

“혼돈의 파편과 게르만, 그들 계약의 핵심 중 하나가 카논이지 않습니까. 카논이 혼돈의 파편의 본거지는 되지는 못하더라도, 약점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카논을 공격하자는 말입니까?”

“계약을 수호할 생각이 있다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만들자.

스케스틱의 말은 결국 그것이었다. 혼돈의 파편을 불러내기 위한 전쟁.

이드는 무겁게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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