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95화
1230화
문이 열리고 두 기사가 들어왔다.
바인과 해쉬였다.
“복장에 신경을 쓴 건가?”
이드가 이렇게 말할 만큼 두 사람의 차림새는 반듯했다. 기사의 정복을 떠올릴 정도로 품위가 있는 옷을 똑같이 맞춰 입은 것이다. 그에 라울이 답했다.
“제가 신경을 좀 썼습니다. 명예 후작님을 봐서 말이죠.”
“두 사람을 차려 입히는 것과 내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 전에, 굳이 저럴 필요가·
“있지요. 면접은 첫인상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사람 다 은색 기사단에 들어가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드는 입맛을 다셨다.
자신만만한 라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말 중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첫인상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렇게 한번 굳어진 이미지를 고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게 아니라도 잘 차려입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나저나, 너무 긴장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검후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바인과 해쉬의 얼굴이 딱딱하다 못해 퍼렇게 질려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극도로 긴장한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톤 자작에 의해 기사 작위가 회수되고, 자신에게 제안을 받을 때도 나름대로 의연하던 모습은 착각인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모습은 이드가 이해해야 했다.
여자의 몸으로 기사의 작위를 받은 사람이 검후를 만난다는 건, 그만큼 꿈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면 신을 만난 사제의 기분이랄까?
문제는 두 사람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 앞에 있는 검후는 신처럼 무한히 자애롭지 않다.
오히려 자신들이 허술하고 빈틈 있는 모습을 보이면, 그에 실망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다. 바인과 해쉬는 그런 악몽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현재 두 사람의 몸에는 그런 생각이 만든 긴장감이 꽉 차 있었다.
그야말로 이드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랄까. 문이 열린 순간부터 두 사람의 눈은 오직 검후만을 향해 있었다.
“미천한 무인 해쉬가 검후님께 인사드립니다.”
“미천한 무인 바인이 인사드립니다. 검후님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인형처럼 딱딱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지는 않았다.
‘무인이라.’
바인과 해쉬는 스스로를 ‘무인’이라고 말했다.
이전엔 기사였지만, 지금은 기사 작위가 회수된 평민이다. 하지만 여전히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으며, 기사도를 지키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본인들을 그리 칭한 것이다.
“어서 오라. 바인 경, 해쉬 경.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아는 기사들이라고 들었다. 그대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가, 감사합니다.”
검후의 말에 감동한 것일까. 아니면 이제 더 이상 기사가 아닌 그녀들을 기사 취급해 주었기 때문일까.
퍼렇게 질려 있던 얼굴이 대번에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 붉은색을 가져다 색칠하면 멋진 석양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 그대들은 정의로운 선택을 한, 기사 중의 기사다.”
“…… “
연이어지는 칭찬 세례에 바인과 해쉬는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보면 전력으로 달리고 온 줄 알 것 같다.
이대로면 진짜 기절하는 게 아닐까.
이드는 감히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불쌍해 검후에게 눈치를 줬다.
딱 봐도 두 사람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검후였기에, 괜히 어린 기사들 그만 괴롭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검후라고 온전히 장난에서만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특히 그녀의 발언은 정녕 진심이었다. ‘현명한 기사’라는 말은 장난으로 쓸 만한 표현이 아니었다.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 이 두 기사는 이드의 손을 잡았다. 검후 역시 바인과 해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 들은 바 있기에 두 사람의 선택이 진정으로 현명했다고 여겼다.
검후는 젊다 못해 아직 어린 두 기사의 뒤에서 눈치를 주는 이드의 모습이 흐뭇했다.
‘이드님을 선택하고, 그의 눈에 들었다는 것. 그것이 너희들의 가장 큰 복이구나.’
이드가 아니었다면 두 기사가 자신 앞에 설 기회를 얻지는 못했을 거다.
뭐, 따지고 보면 사실 애초에 이드가 아니었다면 그곳의 기사직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겠지만, 하나 그렇다고 한들, 두 사람이 톤 자작의 기사로 계속 있었다면 과연 그 미래가 밝았을까?
검후는 아니라는 쪽에 자신의 돈주머니를 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이드가 두 사람을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를 들었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자신의 기사를 절대 그렇게 쓰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다루는 인간 아래서는 기사 역시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 확인한 두 사람의 미모는 평균 이상이다. 과연 톤 자작이라는 자의 아들이 두 사람을 언제까지고 그냥 두었을까.
기사와 주인의 자식이 군신관계가 아닌 남녀 관계가 되었을 때, 그 끝은 대부분 좋지 못하다. 특히 기사 쪽이.
수많은 기사를 배출한 소드 팰러스의 주인으로서 검후는 그런 이야기를 수없이 보고 들었으며, 심지어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한 뒤에도, 사건의 당사자인 기사가 복귀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명예에 죽고 사는 기사에게 추문은 치명타이기 때문이었다.
바인과 해쉬는 어쩌면 이드를 선택함으로써 예정되어 있던 최악의 결과를 회피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후의 생각이 너무 길었다.
결국 이드는 참지 못하고 전음을 보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저 두 사람,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이런!’
스스로의 생각에 푹 빠졌던 검후는 그제야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바인과 해쉬를 보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대로 더 두었다가는 이드의 말처럼 정말 기절할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먼 길을 온 두 기사여.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라.”
“하아…… 검후님께서 그리 불러 주시는 것은 실로 과분한 일이오나, 현재 저희는 기사가 아닙니다. 다만 이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가졌던 꿈은 있습니다. 바로 영광스러운 은색 기사단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은색 기사단의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막혔던 숨이 터지듯 바인이 말을 쏟아 냈다. 숨은 거칠지만 매끄럽게 이어지는 말들이, 미리 준비라도 한 것 같았다.
이드 앞에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더니. 아무래도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편, 먼저 이드로부터 언질을 받았던 검후는 그와 같은 요청에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딱히 안광을 번뜩인 것이 아님에도 바인과 해쉬는 이를 꾹 깨물어 시선을 견뎠다.
“은색 기사단에는 이미 많은 이가 있지만, 훌륭한 기사들에 대해서는 언제든 자리가 남아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걸 내어 주지는 않지. 무엇이 옳은지 선택할 수 있는 그대들에게, 특별히 은색 기사단의 빈자리의 주인이 될 기회를 주겠다.”
“감사…… 합니다?”
검후의 말에 두 기사는 어리둥절해졌다. 이드가 말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쉽게 허락을 받을 수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병사도 아니고 기사다. 결코 아무에게나 허락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톤 자작이 어릴 때부터 여러모로 훈련했기에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바인과 해쉬였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저 도전할 기회뿐, 그대들을 은색 기사단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다. 그러니 벌써부터 감사해하지 말라.”
“그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절대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영광스러운 은색 기사단의 일원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바인과 해쉬가 굳은 의지를 다지며 가슴을 두드려 보였다.
꿈이요, 목표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걸까. 입단 실패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 진심인 듯, 한순간 긴장을 날려 버릴 정도의 투지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검후는 그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는 옆에 선 쉴라를 돌아보았다.
바인과 해쉬가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두 사람을 관찰 중이던 쉴라는 지금도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은색 기사단의 기사가 된다는 것은 그녀의 부하가 된다는 의미이자, 그녀가 챙겨야 할 동료가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지금까지 은색 기사단에 입단한 거의 모든 기사가 소드 팰러스의 졸업생이었지만, 두 사람은 다르다. 그런 이유로 쉴라는 두 사람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두 사람이 방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두 사람에 대한 쉴라의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좋은 기개다. 나도 부디 두 사람이 은색 기사단의 일원이 되길 바란다. 시험은 은색 기사단의 쉴라 단장이 할 것이다. 단장.’
“충! 은색 기사단 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험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하지만 먼 길을 달려온 기사들이다. 이틀의 휴식을 주어라. 그리고 그중 하루는, 스폴 경.”
“네. 검후 님.”
“그대가 두 사람의 검을 세워 주어라. 이 정도의 배려는 괜찮겠지, 쉴라 단장?”
“물론입니다.”
쉴라의 답과 함께 검후가 이 정도면 만족하느냐며 이드를 돌아보았다.
그에 이드는 살짝 고민이 되었다.
과연 스폴과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두 사람에 좋은 일일까? 종종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검후가 결정하고, 쉴라가 찬성한 일이다.
잠시 후, 스폴이 바인과 해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런 세 사람과 자리를 바꾸듯 스케스틱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따로 소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선 스케스틱은 라울을 보았고, 라울의 눈은 순간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의 초인기가 발동한 것이다.
이드는 그 순간 내심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을 보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던 라울이었다. 하지만 정작 라울 본인은 자신이 말하고도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대담하게도 드래곤을 상대로 대놓고 초인기를 발동할 리가 없으니까. 설마 초인기가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힘과 그 결이 다르다고 드래곤에게도 통할 거라는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꿈깨라고 말해 주고 싶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무례라면 무례이고, 우물 안 개구리라면 개구리라고 할 수 있는 라울의 행동을 스케스틱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당장 구름처럼 뿜어진 짙은 위엄이 스케스틱의 모습을 지우고, 그 자리에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을 가져다 놓았다. 쿠어어어엉!
쩍 벌어진 입에서 터지는 로어는 분명 환청이다.
쿠르르릉.
그러나, 그 로어에 방의 창문이 깨어질 듯 흔들렸다.
“크허억…….”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힘없이 뒤로 물러나는 라울의 모습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