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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99화


1234화

명령을 전달받은 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감히 누구의 명령인데 늦장을 부릴까. 연무장 안팎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러는 중에도 대부분은 그 이유를 몰라 어리벙벙했다. 

“갑자기 소집이라니. 저기, 혹시 무슨 일인지 알아요?”

기사의 물음에 검은 돌의 요원이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일은 저희도 잘.

“죄송할 것까지야. 하긴, 그쪽 분들이라고 다 알고 있을 수는 없죠.’

“그래도 귀인들께서 모두 모여 있는 게,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요원의 말에 연무장 안을 살피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후님도 계시고, 명예 후작님 내외분에, 단장님까지. 확실히 무서운 분들이 모여 있기는 한데.”

“야, 야! 그 옆에 봐 봐. 라울 자작이야.”

“쓰읍. 저 인간은 또 왜 온 거래니?”

많은 인원이 한데 모이자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정련된 기사라도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각자 딴소리를 하는 중에도 한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라울을 향한 날 선 눈초리였다. 검후를 납치한 장본인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만 그런 흐름 가운데 낀 검은 돌 요원들은 이 자리가 영 불편했다.

‘기사들은 그렇다 치고, 우린 왜 부른 거야?’

‘어우야~ 이쁘긴 한데, 무서워 죽겠다고!’

저택에 머물며 함께 얼굴 보고 지낸 시간이 적지 않음에도, 요원들이 기사들을 어려워하는 건 여전했다.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기사와 요원이라는 현 위치를 떠나서, 이들은 귀족과 뒷골목 출신이라는 그 태생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쉽게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신분의 차이는 제법 무력을 갖춘 요원들조차 기사를 어려워하게 만들었다.

작전만 내려오면 기사도 습격해서 처리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물론 이런 요원들도 할 말은 있었다.

이제 와 신분의 벽이란 콧방귀로 날려 버릴 것이었다. 상대가 전승 작위를 받은 대귀족도 아니고, 일개 기사 따위.

하지만 만만하게 보는 것도 일반 기사들에게나 가능하지. 이 저택에 있는 자들이 어디 보통 인물들인가 말이다.

저 이름도 높은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다.

실력과 인품, 명성과 미모까지 어디 하나 모자란 것 없는 완벽한 이들. 감히 어둠에 숨어 사는 조직의 일원이 손을 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어려웠는데, 요원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검후가 은색 기사단을 정말 혈육처럼 아끼고, 가르친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은색 기사단에 검후의 손길이 깊게 스며 있었다.

그간 알려진 소문이 우스울 정도로!

은색 기사단의 심기를 자극하는 것은 곧 검후를 자극하는 것과 같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 사실을 확인한 검은 돌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어렵던 은색 기사단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렇게 각자의 사정으로 어수선할 때, 그들 앞으로 쉴라가 나섰다.

“전체, 위치로!”

처처처척!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기사들이 각자 정해진 위치에 도열했다. 직전까지 수다스럽던 분위기는 연기였던 것처럼 무겁게 정련된 위압감을 뿜기 시작하는 기사들,

‘그러니까 우리는 왜에에!’

얼떨결에 그 옆에 서 버린 검은 돌 요원들이 울상을 했다.

연무장이 조용해지자 쉴라가 입을 열었다.

“조금 뒤 이 연무장에서 대련이 있을 예정이다. 귀관들을 소집한 이유는 그 대련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이것은 매우 드문 기회로, 검후께서 귀관들을 위해 특별히 허락을 받아 주신 기회다. 그러니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머리에 새겨 최대한 많은 것을 깨우치고 얻기를 바란다.” 

“충! 검후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 빛나는 검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자신들이 모인 이유가 검후의 배려라는 것을 안 기사들이 검후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혀 감사를 표했다.

기사들은 각 잡힌 모습이었고, 검은 돌은 어딘가 어설픈 형상이다.

이드는 너무 차이나는 그 모습에 삐뚜름히 웃음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 기사들이 대련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는 과정에 사소한 문제도 있었다.

대저택이라 연무장이 크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십 명이 들어와 구경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중간에 벽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연무장 밖에서 안을 보기도 어려웠던 것.

하지만 이 문제는 라미아가 나서며 간단히 해결되었다.

“방해되는 건 잠깐 치워 두면 되는 거죠. 디스멘틀!”

7클래스의 분해 마법에 연무장을 둘러싼 벽은 벽돌 더미로 변해 한쪽 구석에 높은 탑처럼 쌓였다.

순식간에 환하게 열린 시야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심하던 쉴라가 감사를 표했다. 라미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간단한 일이에요. 대신, 벽을 다시 쌓는 작업은 손으로 해야 해요.”

“그거야말로 간단한 일이죠.

대련 참관 후, 기사들과 요원들이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눈앞에서 일거리가 튀어나온 상황에 몇몇이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본 이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도 대련이 끝났을 때 저들이 할 일은 없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무려 라울과 드래곤의 대련이다. 과연 연무장에 깔린 돌덩이가 그 여파를 견딜 수 있겠는가.

더욱이 두 사람이라면 딱히 주변 상태를 살피며 힘을 쓸 것 같지도 않으니. 아마도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건 기사나 검은 돌 요원들로는 어려웠다. 더욱이 수리를 위해서는 어차피 벽은 임시로 철거해야 할 부분이었고.

‘나중에 할 일을 미리 해 준 거지.’

그렇게 이드가 연무장 공사비를 누구에게 받아 내야 하나를 고민할 때.

넓게 트인 시야 덕에 편하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 사이에는 또 다른 의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검후가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허투루 참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누구의 대련인지가 의문이었다. 일단 연무장 위에 올라 있는 라울의 모습으로 그가 대련의 당사자 중 하나임은 모두 알았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지?”

마찬가지로 연무장에 올라 있는 스케스틱을 본 기사와 요원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라울 자작이 맘에 드는 인간은 아니라도, 바벨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다는 걸 보면 대단한 실력을 가진 거 같은데.”

“그런 라울과 대련이라니. 실력자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일단 명예 후작님과 함께 돌아오셨지 않습니까.”

“에이. 중요 인물일 수는 있어도, 그게 강하다는 증거는 아니잖아.”

“그래도요. 명예 후작님이 아무나 데려오셨겠습니까. 그리고 언뜻 봤습니다만, 단장님은 물론이고, 검후님까지 조심하던 분이세요.”

“그래? 난 못 봤는데.”

“난 봤어. 식탐이 대단한 분이셔.”

분위기 파악 안 하지! 여기서 식탐이 왜 나와!”

그렇게 소문에 소문이 쌓여 가는 중임에도 시끄럽진 않았다. 그들 앞에 검후가 있고, 이드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낮춘다고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드가 연무장을 눈짓하며 말했다.

“모두 궁금해 죽겠는 모양인데. 따로 소개라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뭐라고요. 스케스틱 님의 정체가 드래곤이라고 밝혀요?”

검후가 입술을 삐쭉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드는 그것도 재밌겠다며 낄낄거렸다. 물론 아마 진짜 그렇게 사실을 밝혔다가는 아무도 대련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검후의 말이니 의심하지 않을 테지만, 세상에 드래곤이라니. 이야기 속에서만 나오는 드래곤이 눈앞에 나타난 거다. 더욱이 그냥 나타난 것도 아니고, 대련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한다.

아무리 검후 앞에서는 항상 진지한 은색 기사단이라도 정신 차리긴 힘들 것이 분명했다.

“기사들이 많이 놀라겠어요. 정체불명 실력자의 등장이라니. 움츠러들지 않으면 좋을 텐데.”

“저희 은색 기사단에 그런 기사는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될 겁니다.”

“음! 음음음음!”

나란히 선 일리나와 쉴라의 대화였다. 옆의 스폴이 평소의 헛소리를 내놓기는 했지만,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어차피 뭔 얘길 할지 뻔하다며 일찌감치 쉴라가 그녀의 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 기대를 안고서 대련을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사이, 준비를 마친 라울과 스케스틱이 연무장 중앙에서 마주 섰다.

사실 준비랄 것도 딱히 없었다. 그야말로 그럴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그들과 같은 존재들이었으니까.

대신 말없이 스케스틱을 바라보던 라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이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저도 힘을 억제할 생각은 없는데. 제가 말하긴 그렇지만, 제 초인기는 제법 화려합니다. 저택 밖은 물론이고, 어쩌면 황궁에서도 보일 정도로.”

사실 황궁에서 보이는 것이야 무슨 문제일까. 황제도 이곳에 누가 있는지를 아는데.

다만 진짜 문제는 안티로스에 사는 귀족들과 평민들이다. 그들 입장에선 갑자기 난리가 난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더욱이 아직 안티로스까지는 소식이 닿지 않았지만, 카논에서는 이미 한 차례 백악궁이 날아가는 사태가 있었다. 어쩌면 그와 한데 묶여 이상한 헛소리가 돌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괜찮지 않지요.”

헛소문도 문제지만, 라울의 정체나 스케스틱의 존재가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저택의 존재, 정확히는 그 안에 머무는 검후와 이드의 존재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드의 말에 이어 라미아가 한 손을 펼쳐 들었다.

“그래서 준비했죠. 하늘을 달리는 처녀의 치맛자락을 보라. 블레임의 달이 하늘을 달리고 별빛이 숨어드니··

그녀의 손 위에 놓인 것은, 각각의 빛깔이 고운 일곱 개의 보석이었다. 라미아의 주문이 시작되자 보석들이 저절로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날렸다.

이내 보이지 않는 보석 가루가 연무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그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탈로스의 성벽이여. 지금 여기에 일어나 가리고, 막고, 속일지어다!”

사르륵. 사르륵.

천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일까. 처녀의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일까.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와 함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주변 풍경이

아른거렸다.

화려한 마법진도, 눈을 찌르는 마법광도 없었다. 마법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마법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

그러나 실패는 아니었다.

“탈로스의 성벽, 상당한 고위 마법을 이렇게 쉽게 사용하는 걸 보면, 과연 그분의 딸다운 솜씨입니다.”

“호호호, 별말씀을요.”

스케스틱의 감탄에 라미아가 입을 가리는 것도 잊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옆에서 이드가 재촉했다.

“자, 자작이 걱정하던 문제는 여기 우리 마나님께서 다 해결하셨으니. 어디 마음대로 날뛰어 보십시오.”

딴소리 그만하고 빨리빨리 싸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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