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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01화


1236화

푸우욱! 관통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바위의 창이 라울의 복부를 꿰뚫었다고.

마법은 강력한 대신 조금 느리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산산이 깨부수는 속도였다. 그야말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기사의 찌르기 못지않은 일격이었다.

‘이거 대련 아니었어?’

그렇기에 놀랐고, 동시에 사고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놀라는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 즉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과 검은 돌의 일부 요원들은 오히려 눈을 번들거렸다.

그들은 잊지 않은 것이다.

현재 연무장에 올라 공격당한 인간이 다름 아닌 라울이라는 사실을. 바벨의 이름 때문에라도 결코 저리 쉽게 당할 작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의심은 정확했다.

정확히 라울의 복부를 파고든 바위의 창은 그의 등 뒤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휘릭.

스케스틱의 등 뒤, 연무장 바닥에서 난데없이 또 하나의 만상안이 불쑥 솟아올랐다. 한데 놀랍게도 그건 스톤 엣지에 관통된 것과 일치하는 생김새였다.

게다가 똑같이 생긴 건 만상안만이 아니었다.

콰콱!

스케스틱을 노리고 만상안의 옆면에서 불쑥 솟아 나온 바위의 창도 라울을 꿰뚫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전이인가?”

둘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라울의 경우와 달리 스케스틱을 노리던 바위의 창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형태를 잃고 흩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마법에 당할 정도로 드래곤의 마법 컨트롤 능력이 어설프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섬세한 컨트롤까지도 필요 없었다. 마법을 이루는 근간, 즉 마나가 그 공격이 스케스틱을 향하는 순간 스스로 마법을 붕괴해 버린 것이다.

바로 드래곤의 마나가 한 일이었다.

“쯧, 비슷합니다.”

그에 복부를 공격당한 듯 움츠리고 있던 라울이 허리를 폈다. 역시나 라울의 몸엔 상처 하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만상안에도 아무런 흠집이 없었다.

처음부터 공격당한 적도 없다는 듯.

대신 수레바퀴가 굴렀다.

구륵. 구르르륵.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바퀴는 스케스틱을 중심으로 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엄청난 속도에 잔상이 일어나는 순간.

콰콰콱!

잔상을 포함한 만상안이 스톤 엣지의 바위 창을 찔러 냈다. 다만 앞서와 달리, 이번 공격은 바위 창이 스스로 붕괴하진 않았다. 그러나 통하지 않기는 역시 마찬가지.

그득- 그드드득―

스케스틱을 노리던 네 자루의 바위 창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산산이 조각나 떨어져 내렸다.

“전이와 복제, 확실히, 비슷하지만 달라. 특별한 구석이 있군.”

전이는 둘째치고, 바위 창도 복제였다면 공격은 애초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이 알아서 붕괴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시 말해 라울은 스케스틱의 마법을 복제하는 동시에, 구성을 일부 바꾸었다는 것이다. 완성된 마법의 구성을 바꾸다니.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일반 마법사라면 백이면 백 고개를 저을 터였다. 방법은 둘째치고 그런 일이 이런 단시간에 가능하냐겠느냐고.

하지만 스케스틱은 그런 의문을 티끌만큼도 가지지 않았다. 왜? 그의 입장에선 당연히 가능하니까.

놀라긴커녕 오히려 탐구욕이 솟아오른 것 같은 모습이다. 초인기로 마법을 복제하다니.

“그럼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궁금하시면 확인해 보시지요.”

“그렇게 하지.”

이런 스키스틱에 라울은 지지 않고 받아쳤다. 하지만 기죽지 않은 겉모습과 달리, 속내는 제법 놀란 상태였다.

물론 그도 깜짝 공격이 한 번에 통할 거라고 편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맥없이 실패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감에 빠져 있을 시간은 라울에게 없었다.

퉁퉁!

시험해 보겠다는 스케스틱의 말은 사실이었다.

바이첼로가 바닥을 두 번 두드리자, 스케스틱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던 보석에서 돌연 불줄기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스톤 엣지보다 한 클래스 상위 마법. 파이어 스트라이크였다.

엄청난 고위 마법이나 대단위의 범위 마법이 아닌, 딱 한 클래스 위의 마법. 그걸 보아 이미 대련은 뒷전으로 하고 라울에 대한 시험에만 집중하는 스케스틱의 의도가 단숨에 드러났다.

하지만 라울은 그에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그가 바라던 바였다. 이 대련에서 그가 얻으려는 바도 승리가 아니라, 자신과 바벨을 스케스틱 앞에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구르르르릉!

그에 따라 바퀴가 다시 바쁘게 구르기 시작했다. 라울의 앞을 지키던 수레바퀴가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집어삼키고, 다른 만상안을 통해 뱉어 냈다. 앞선 스톤 엣지 때와 꼭 같은 형태의 반격. 차이가 있다면 마법의 위력과 난이도뿐이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었다.

파이어 스트라이크에 이어.

블레스트.

썬더 레이.

레이 플레어.

그야말로 어느 하나 유사성 없는 마법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유일한 규칙성이라고는 점점 마법의 클래스가 올라간다는 것. 오직 그것 하나였다. 그야말로 때리는 스케스틱 앞에 샌드백이 된 듯한 라울의 상황.

하지만 라울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콰륵. 콰륵. 콰르르륵!

어느새 하이에나처럼 스케스틱 주변을 돌고 있는 수레바퀴는 네 개가 되어 있었다. 네 개의 바퀴에는 땅과 하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연무장 바닥에서 솟아오를 때처럼 바닥으로 스며드는가 하면, 다른 바퀴는 허공을 마음대로 내달렸다.

속도 또한 화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물론 스케스틱이 잡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는 굳이 그쪽에 눈을 주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어느새 라울의 능력의 확인하는 것으로 변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확인 방법이 계속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퉁퉁!

까득.

바이첼로가 또다시 바닥을 두드렸다. 다만 이번엔 두드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 군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비스듬히 앞을 향한 바이첼로 슈아아아악!

그 앞으로 회오리바람 한 줄기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정체는 퓨리 사이클론이라 불리는 8클래스 마법.

처음엔 작았으나, 순식간에 몸을 키운 회오리는 압축된 대기로 인해 새파란 색이 비쳐 보였다. 내부에 얼마나 강력한 압력이 휘몰아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채비를 갖춘 회오리는 곧 음흉한 뱀처럼 사냥에 나섰다. 앞선 마법과 달리, 회오리가 노리는 것은 라울이 아니었다. 이번에 스케스틱이 목표로 지정한 것은 바로 그의 주변을 맴도는 만상안.

‘주에서 종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종에서 주로 역류시키는 것도 가능한가.’

샤하아아아

듣는 순간 옷깃을 조이게 만드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뱀이 허공을 미끄러졌다. 회오리의 움직임은 뱀처럼 불규칙했고, 또 재빨랐다.

“체엣!”

라울이 인상을 썼고, 수레바퀴는 꽁지 빠지게 달렸다. 하지만 도망치기에 회오리는 너무 빨랐고, 무엇보다 그 주변으로 강력한 흡입력이 동반되고 있었다.

콰콰콰콱!

결국 수레바퀴 중 하나가 회오리 중심으로 쑥 빨려들었다. 하나가 빨려들자 다음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쉬웠다.

콰득.

콰드드득.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든 수레바퀴는 거친 바람 사이에서 오래 견디지 못했다. 퓨리 사이클론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몸을 꼬아 힘을 쓰자 수레바퀴는 금방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스케스틱이 멀뚱히 그 모습을 지켜보자, 라울은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웃었다.

“기대하시는 힘의 역류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아보았나?”

“만상안은 단순히 멋진 이름만이 아니지요. 전이와 복제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특징. 그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건, 우선 대상을 올바로 본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발단, 대련의 시작. 그리고 대련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목적이 미세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일까.

라울이 평소 그답지 않게, 자신의 초인기에 대해 말했다.

어차피 이 정도 내용은 알려진다 해도 피해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선 안에서의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특이한 일이었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떠벌리는 것은 평소 삼류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라울의 생각이야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스케스틱은 바로 흥미를 보였다.

“과연. 해석인가. 처음부터 힘의 방향성에 대한 해석이 완료되었다면 역류도 제어가 가능하겠지.”

“아무렴요. 해석할 시간만 충분하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요.”

쿠르르륵!

라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아 있던 바퀴가 회오리의 목덜미를 향해 달렸다. 희미하던 잔상은 순식간에 실체가 되어 순식간에 부서진 수레바퀴보다 더 많은 수의 바퀴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목줄이 채워진 순간.

쌔애애액!

퓨리 사이클론이라는 뱀은 지금까지 없었던 흉흉한 기세와 속도로 자신의 주인인 스케스틱을 휘감아 조였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조이는 힘도 수레바퀴를 부술 때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걸 증명하듯 새파랗던 회오리가 한층 더 진한 파란색으로 변해, 감싸고 있는 스케스틱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저 중심에서 예상되는 압력은 그야말로 수백 톤.

바위마저 짜부라트릴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휘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일 초도 걸리지 않아 내장을 토하고 죽게 만들 힘.

그러나 스케스틱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진짜 인간이 아니었다.

“놀랍군. 전이와 복제만이 아니라, 탈취까지 가능하단 말이지. 그것도 내 마법을 탈취할 정도로 강력한 간섭력이라니. 아니, 이건 간섭이 아니라 마법 구성의 빈틈을 비집고 든 것인가.”

극도로 압축되어 귀가 떨어질 것 같은 거센 바람 소리를 뚫고서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 말이 이어지는 중에 퓨리 사이클론의 내부에서 바람이 불어 나왔다.

그 바람은 퓨리 사이클론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새파란 색이었다. 퓨리 사이클론은 그 바람 앞에 눈 녹듯이 녹으며,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리던 진파랑이 빠지자 처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스케스틱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머리카락, 옷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스케스틱은 언제 바람에 휩쓸렸나 싶은 모습이었다. 하물며 지금도 그에게서 바람이 뿜어지고 있음에도 평온한 그 자태는 대관절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문외한의 입장에서 볼 때였다.

라울은 뱀을 잃고 허공을 달리기 시작한 바퀴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허탈해했다.

“빌어먹을. 아까와 같은 방어 마법도 아니고, 단순히 마나 방출만으로?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너무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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