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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04화


1239화

끼잉- 끼이이이잉-

수많은 빛줄기가 연무장을 난도질했다. 일말의 규칙성도 없었다. 그저 아이가 나뭇가지를 휘두르듯, 여기저기에 빛이 난무했다.

달궈진 연무장 바닥이 폭발하고, 탈로스의 성벽에 막힌 열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런 적극적인 공격에 스케스틱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휘황찬란한 마법들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끊임없이 뽑혀 나와 열선을 휘감아 꺾고, 찢어 낸 것이다.

여기서 일어나는 여파 역시 탈로스의 성벽이 모두 훌륭히 막아 냈다.

이 모습을 보던 이드가 문득 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아이고, 죽겠네. 이러다 대련이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쓰러지는 거 아냐? 싸우는 사람은 저 둘인데. 어째 힘은 내가 더 쓰는 것 같은 기분이…….”

“기분 탓이에요.”

“응, 그럼 그런 걸로.”

괜히 엄살을 부려 보려던 이드는 라미아의 단답에 조용히 뒷말을 삼켰다.

사실 라미아의 말과 달리, 기분 탓만은 아니다. 실제로 탈로스의 성벽 유지에 이드의 마나가 사용되고 있으니까.

다만 엄살은 맞았다. 마법의 유지에 사용되는 마나는 이드가 품고 있는 것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코 고생이라고 할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물려받은 드래곤 하트 덕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검후가 실실 웃었다.

이드는 묘하게 기분 나쁜 그녀의 미소에 불퉁한 얼굴을 했다.

“검후께선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엉뚱하다니요. 전 그냥 두 분의 모습이 부러워서 그런 건데요. 어쩐지 남편이 살아 있을 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말은 반칙이지요.”

검후가 죽어 버린 남편을 들고나오면 이드로선 할 말이 없다. 이런 이드에게 혓바닥을 날름 내밀어 보인 검후가 연무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제야 좀 볼만해졌네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아까까지는 어른 앞에서 재롱부리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재롱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드는 하고 싶은 말을 참기로 했다. 아무렴 검후 눈에는 라울의 노력이 재롱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기사들이 참고할 부분이 많지 않은 건 아쉽네요.”

이드는 연무장 주변에 모인 기사들을 살폈다. 어느새 다들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련에 열기를 보이며 각자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대련의 내용은 거의 그들에게 도움 될 게 없었다.

무공의 경지가 스폴 정도가 되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아직 그 수준에 닿지 못한 기사들에게는 현재의 대련이 완전히 다른 분야였으니까. 하지만 검후의 생각은 달랐다.

“미래는 모르죠. 그리고 당장 무공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도, 이후에 초인과 마법사를 상대할 때는 참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당장 머지않은 영혼의 관 토벌에도 도움이 될 거라며 쉴라가 나섰다.

이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영혼의 관에서라면 마법사와 싸울 일은 많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 마법사와 기사가 맞서 싸울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이미 기사를 눈앞에 마주한 시점에서 마법사는 패배할 확률을 절반 이상으로 갖고 시작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사이.

끼이이이이잉-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열선 한 줄기가 강렬한 빛으로 또 한 번의 눈뽕을 시전하며 쏘아졌다.

스케스틱을 향한 것이기는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게 향한 방향은 황궁 쪽이었다.

파르르륵!

탈로스의 성벽에 막혀 스러지기는 했지만, 열선이 내포한 초고열을 생각하면 실로 섬뜩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방향 설정에 바로 분노의 목소리를 터트린 검후였다.

“저놈이 분명 노리고서 저리 쏘아 낸 겁니다!”

“아니, 그건 아니에요.’

아무리 라울이라지만, 그거야말로 누명이다. 이드는 냉큼 고개를 저었다. 저게 어떻게 노린 건가. 그렇게 따지면 공격을 막지 않고 피한 스케스틱도 탓해야 할 일이다.

이드는 엉뚱한 분노를 터트리는 검후를 버려 두고 라미아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네 말대로 성능 하나는 확실하네.”

“에헴, 뭐. 이 정도는 기본이죠, 기본. 칭찬거리도 아니라고요.’

칭찬할 것도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게 기본이면 기본도 못 하는 마법사들은 어쩔 거야.”

“에헤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호호호.”

“아무튼. 눈먼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건 확실히 막았네.”

방금 라울이 쏘아 낸 열선의 위력은 상당했다. 그럼에도 잘 방어한 것을 보니, 작정하고 탈로스의 성벽을 부술 생각이 아닌 이상 전투의 여파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드는 말과 달리 신경 쓰이는 게 있나 봐요?”

라미아와 함께 팔짱을 끼고 있던 일리나가 연무장에서 잠깐 눈을 돌려 말했다. 이드는 그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스케스틱의 존재가 알려지면 아깝잖아요.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다고 자신만만한 미완의 마탑 같은 녀석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의미에서, 혼돈의 파편 놈들에 신경이 쓰이네요.”

“헹,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탈로스의 성벽은 그렇게 쉽게 관측될 만한 허술한 물건이 아니라고요.”

“그거야 알지.”

라미아가 마법을 사용한 순간, 탈로스의 성벽에 대한 지식이 떠오른 이드다. 하지만 그보다 몸으로 느끼는 점이 컸다.

일차적으로, 싸움의 여파로부터 기사들을 보호하던 성능만 봐도 탈로스의 성벽의 은폐성은 매우 뛰어났다. 이드도 저택 안이 아니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면 감지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혹시 파편 중 하나가 안티로스 안에 들어와 있다면 모르겠지만.

“없어.”

슬쩍 눈치를 주는 라미아에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안티로스도 돌아온 후 파편에 대한 탐색을 해 본 이드였다.

아무렴, 혼돈의 파편이 대담하기는 해도 이드의 영역에 제 발로 찾아 들어올 일이 있기야 할까.

일리나가 말했다.

“그런데, 스케스틱의 존재에 대해서라면 그쪽에서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있죠. 하지만 모를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파편 쪽에서 사용하던 제법 큰 직통 라인을 끊어 버린 거라.”

아무리 혼돈의 파편이라지만 차원의 벽을 넘는 게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닐 테니, 연락을 주고받는 일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이드는 그레센에 들어와 있는 혼돈의 파편이 스케스틱의 존재를 최대한 늦게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숨겨 둔 전력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영혼의 관에 대한 토벌에는 분명히 혼돈의 파편도 손을 댈 게 분명하다. 그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혼돈의 파편을 처리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나만 믿어요. 아무리 혼돈의 파편이라도 저택 대문 앞까지 오지 않은 이상!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죽었다 깨도 모를 테니까!” 

라미아가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을 날렸다.

이드는 그 모습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미아의 장담이 아니라도, 주변에 혼돈의 파편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확인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스케스틱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이드는 연무장을 바라보는 한편, 이후 스케스틱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 머리를 굴렸다. 혼돈의 파편에 대한 행방이 묘연한 만큼 스케스틱의 활용 방안 또한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자자~ 여러분. 좀 더 대련에 집중해 주세요!” 

짝짝.

그리고 때마침 들려오는 스폴의 손뼉 소리에 이드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스폴이 집중을 당부한 것도 괜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화력전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 주는 듯한 대련이 어느새 중후반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여전히 화력이 전혀 줄지 않은 열선을 뿜어내는 라울에 비해, 스케스틱의 반응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같은 공격을 좀 더 단순하게 막고,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의 수를 파악했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대련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닌, 대련의 당사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제 실력을 증명하겠다고 했는데. 어쩐지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카락, 카라라락.

어지럽게 허공을 달리던 바퀴들이 하나둘 라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마치 크고 작은 성벽을 쌓는 양 라울 주변을 돌았다. 마치 공격을 대비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스케스틱은 그에 눈도 주지 않았다.

“사실 실망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대의 전투 능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평가에 가차 없는 타입이셨군요.”

라울이 씁쓰레한 입맛을 다셨다.

하긴, 스케스틱이 뭐가 아쉬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말을 하겠는가. 라울 앞에서 대놓고 바벨은 빼자고 했던 장본인이다.

하나 스케스틱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전투 센스에 한해서이고, 그대가 증명한 초인기의 위력은 앞으로의 싸움에 있어 충분히 효용이 있다고 보았다.” 

“분명 기뻐해야 할 말씀입니다만. 저 개인으로서는 어쩐지 미묘한 기분이 드는 평가로군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걸 해석하면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란 말밖에 더 되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보물을 가지고 썩히고 있다는 평가였다. 전투 센스가 좋은 사람이 자신의 초인기를 가졌다면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였을 거라는 말인데.

‘빌어먹을 드래곤. 골든아이의 진짜 대단한 점은 따로 있단 말이다!”

아무리 라울이라도 이런 평가에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골든아이의 진짜 쓰임새는 정보 계통이지, 결코 전투 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자신 스스로 전투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싸웠거늘!

“좋습니다. 그럼 끝내기 전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라도 스케스틱 님의 평가를 고쳐 보도록 하죠.”

카락. 카락, 카라라라락!

말 그대로 최후의 일격이라고 대놓고 말한 라울.

그의 말을 따라 바퀴들이 다시 허공을 달렸다. 그들은 멀리 이동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바퀴들이 서로 맞물리며 크고 작은 원을 그렸다. 그건 긴 원통처럼 보였다.

가장 뒤의 원이 제일 작고, 라울의 머리를 지나 스케스틱을 향한 가장 앞의 원이 제일 컸다.

카락.

첫 번째 원이 돌아가며 그 앞에 열선이 생겨났다. 열선은 곧바로 쏘아지지 않았다. 마치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응축하고 또 응축한 후, 찌이이이이잉!!

쏘아졌다. 아니, 분출되었다. 폭발했다.

더욱이 그렇게 쏘아 낸 열선은 앞에 있는 톱니바퀴의 원을 지날 때마다 그 위력과 덩치가 배로 늘어나더니, 가장 마지막에 원에 이르렀을 때는 그야말로 직경 십 미터의 빛 덩이가 되어 있었다.

꾸우우우우우-

대기가 타들어 가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소멸되는 열기. 그에 외부의 공기가 빨려 들어가며 동굴과 같은 이명을 내며 열선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저건 무린데!!!”

탈로스의 성벽을 넘어선 위력에 놀란 라미아의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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