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05화
1240화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후작 각하.”
“오늘 처리된 서류는 즉각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황궁의 많고 많은 회의실 중 하나.
레오날도 후작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행정관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서류들을 정리했다. 얼마나 일이 많은지 한 사람당 지참한 서류의 두께만 한 뼘이나 되었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쉴 시간 없는 회의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일이 내일로 미뤄지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은가. 일에 치이고, 또 치인 행정관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위로했다.
레오날도 후작은 그런 행정관들을 바라보며 호로록 찻물을 들이켰다. 처음에 쓰고 뒤로 가면 살짝 고소한 풍미가 나는 차다.
레오날도 후작의 입맛은 아니지만, 관리들 사이에는 잠을 쫓는 각성 효과가 있다고 해서 유행한다고 하는데.
‘어째 나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레오날도 후작은 아쉽기만 했다.
사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그가 항상 과로한다는 점이었지.
게다가 스스로 하는 말과는 달리, 몸이 먼저 그 효과를 알아봤다. 그러니 입맛에도 맞지 않는 차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심 투덜거리며 찻잔을 비우고 있을 때,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회의 내내 레오날도 후작의 옆에서 그를 보좌했던 1급 행정관 바들러 남작이었다.
“오늘 회의도 고생하셨습니다.”
“남작도 수고하셨소.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회의를 마친 행정관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만, 어떠신지요?”
회의가 식사 시간을 넘기도록 진행되었으니, 모두 배가 고플 만했다.
게다가 행정관들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남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귀족들이다. 그들로서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레오날도 후작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일.
레오날도 후작은 가끔은 윗사람으로서 주머니를 풀 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고생한 행정관들에게 내가……………”
쿠화화화화
대접하겠습니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뒤의 말은 레오날도 후작의 귀에도, 또 마주 선 남작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대기를 떨어 울리는 묵직한 파공음에 말소리가 묻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저, 저게 뭐야!”
“공격이다! 황궁에 대한 공격이다!”
저 멀리서 뻗어 나온 굵직한 빛줄기가 황궁의 첨탑 위를 스치고 지난 것이다. 거기에 담긴 열기가 실로 어마어마해, 첨탑 꼭대기에 달린 깃발이 불타오른 정도로도 모자라 닫힌 창 너머로까지 열기가 전해졌다.
“수도 기사단은 무얼 하는가!”
“누구냐! 카논이냐? 아니면 라일론? 그것도 아니면, 마스?”
그에 놀란 행정관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딱 봐도 빛줄기는 그만큼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저게 자신들을 향했다면?
그런 생각에 식은땀을 흘리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에 레오날도 후작이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 모두 진정하게, 황궁의 행정관들답게 냉정히 대처하란 말이네.’
“후작 각하!”
레오날도 후작은 손을 들어 자신을 향해 입을 열려는 행정관들의 입을 막고는, 폭풍 같은 명령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대는 당장 가서 수도 기사단에 출동 대기 명령을 내리게 그리고 그대는 황궁 마법사를 찾아 준비시키고, 또 자네는 주요 대신들을 소집하게 그리고 자네.”
“바들러입니다, 후작 각하.”
“자네는 놀란 민심을 수습하도록 하게. 그래, 제국 마탑의 실험 정도가 좋겠군. 절대 외부의 공격이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되네.”
“하지만 후작 각하. 이것이 외부의 공격이라면………..?
차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지금 명령은 레오날도 후작의 독단이나 다름이 없다. 황제의 허가도 받지 않은 명령은 차후 레오날도 후작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그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만큼, 그를 견제하려는 자들 역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오날도 후작은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명령을 내린 행정관들을 향해 어서 움직이라며 손짓해 보였다.
그렇게 행정관들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본 레오날도 후작은 다시 창밖을 살폈다. 정확히는 빛줄기가 시작된 방향이었다.
“저쪽이라면…… 그분이 계신 저택이 있는 곳인데.”
레오날도 후작은 결코 아무런 생각 없이 행정관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저 방향. 고가의 저택들이 모인 곳에 현재 검후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극소수의 몇 명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이번 일도 그녀와 관련된 사고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 분명 그러하리라.
“외부의 공격이었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연락을 해 주셨을 분이지. 그래도 일단 폐하를 뵈어야겠다.”
짐작은 짐작일 뿐, 사실은 아니다.
좀 전의 빛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보아도 실로 무시무시하리만치 위험한 힘이었다. 또 그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수습을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고.
즉, 정녕 사고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저택에 그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황제의 이름이 필요했다.
즈즈즈즉.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유리가 깨어진 듯 구멍이 뻥 뚫렸다. 그 주변으로는 자잘한 스파크가 일어나는 중이다.
그 꼴을 본 이드가 말했다.
“라미아, 저거…”
“맞아요. 탈로스의 성벽이 뚫렸어요.”
“그럼, 방금 그 초대형 열선은?”
“당연히 볼 만한 사람은 다 봤겠죠. 이드도 봤잖아요. 저기 첨탑에 깃발이 불타는 거. 아니, 대련이잖아요. 대련이면 대련답게 적정선을 지켜야지!” 호언장담했던 대비책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머리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던 라미아는 곧 이 일을 벌인 범인을 향해 연무장 위를 노려보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장 거기 있는 라울의 머리를 쥐어뜯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이드에겐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일단은 저거 복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곧 사람들이 몰려들 것 같은데.’
“후우~ 복구. 하기는 해야죠. 아무튼, 라울 저 인간은 진짜!”
라미아는 라울에 대한 원한을 불태우며 주문을 통해 무너진 탈로스의 성벽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마법에 대한 복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라울에 대한 짜증 때문일까. 탈로스의 성벽을 설치할 때보다 주문이 더 복잡하고 길어지는 것 같은 건 기분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드는 그렇게 고생 중인 라미아를 달래며 연무장 위를 살폈다.
그 위에 있던 라울도 온전하지는 않았다. 라미아가 자신하던 탈로스의 성벽에 구멍을 낼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 후유증일까.
그는 땀에 푹 절은 모습으로 연무장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끼고 아끼던 한 수였는데 역시나 통하지 않았군요. 후우~ 졌습니다. 완전히 졌어요.”
“아니, 그대의 이번 공격은 유효했다. 이번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나라도 제법 피해가 컸을 것이다. 이 손이 그 증거다.”
치이이익.
분명 대단하다 칭찬하는 말이지만 고저 없는 목소리 때문일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 앞으로 내민 스케스틱의 손을 보게 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는 스케스틱의 손은 어떻게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닌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일단 조금 전까지의 희고 곱던 그 손이 아니었다. 영롱한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촘촘하게 돋아 있는 비늘은 일반인이 보기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다섯 손가락 끝에 솟아 있는 날카로운 손톱은 또 어떤가. 어지간한 맹수의 발톱보다 흉악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전력을 다한 라울의 회심의 일격을 견디지 못해 인간의 신체 부분이 소멸하고, 그 자리에 드래곤으로서의 구성 성분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그래 봤자 거죽만 벗겨 낸 수준이겠지요.”
라울이 힘없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내심은 드래곤이라는 존재의 어처구니없음에 또다시 치를 떨었다. 거죽만 벗겨 냈다는 말은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진짜는 그 가죽 안에 있는 드래곤이라는 존재였는데, 지금 드러난 모습을 봐라. 저 매끄러운 에메랄드 빛 가죽에 티끌만 한 상처라도 생겼는가. 없다.
그저 한계를 넘어선 열기가 남아 연기를 피워 내고 있을 뿐, 스케스틱의 진신에 상처를 내지는 못했다.
‘이래서야 전설처럼 떠도는 드래곤 본이나, 드래곤 스케일로 만들었다는 무기의 위력이 진짜 같잖아.’
라울은 드래곤의 정보를 찾으며 그냥 흥미로 보아 넘긴 전설의 무기들이 갑자기 가지고 싶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래곤 스케일로 만들어 낸 방어구들이 탐이 났다.
지금 같은 방어력이면 그야말로 여벌의 목숨 몇 개를 지니고 다니는 것 같지 않겠는가. 이번 일이 마무리되고 바벨로 돌아가는 즉시 찾아보리라. 라울은 그렇게 은밀히 마음먹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드래곤 앞에서 그들의 신체로 만든 무기에 흥미가 생겼다는 티를 낼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과연 스케스틱도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 내는 재주는 없는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터벅터벅 라울을 향해 다가섰다. 연기를 뿜어내던 손은 어느새 하얗고 곱던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찢기고 타 버린 자국이 남은 옷자락만 아니라면 싸웠다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조차 없는 스케스틱이었다.
라울 앞에 선 스케스틱이 말했다.
“인정하지. 그대와 그대가 속한 바벨은 저 혼돈의 파편과 싸울 만한 최소한의 힘은 가지고 있다. 그대는 그것을 증명했다.”
“….어쩐지 생각만큼 기쁘진 않네요.”
라울은 푹 웃고는 떨리는 무릎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쁘지 않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스케스틱과의 대련을 통해 라울은 혼돈의 파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얼마나 강력한 적인지를 새삼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드래곤이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존재가 혼돈의 파편이다.
이런 드래곤들로 하여금 모두 외계로 쫓겨나게 만든 것이 혼돈의 파편이다.
‘과연 혼돈의 파편과 싸우는 것이 바벨을 위한 옳은 선택일까.’
어쩌면 바벨이 위대해질 기회가 아니라, 바벨의 최후가 될 위기를 향해 제 발로 찾아든 것인지도 모른다.
라울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이제 와 발을 뺄 수는 없다.
‘이렇게까지 하고서 말을 바꾸면, 눈앞의 드래곤이 가만히 있겠냐고.’
자신은, 그리고 바벨은 이제 최선을 다해 혼돈의 파편과 싸워 나갈 수밖에 없다.
‘・・・・・・・혹시 마스터가 이건 내 개인의 선택이라면서 날 내치는 건 아니겠지?’
문득 한번씩 속 모를 짓을 해 대는 바벨의 마스터가 유일한 걱정인 라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