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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06화


1241화

레오날도 후작이 급히 황제를 찾았다.

“폐하! 보셨습니까!”

“봤네. 그러니 소란 떨 것 없어.”

“깃발이 타오르고, 첨탑이 날아갈 뻔 했습니다. 그걸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이 황궁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 심각한 모습에 황제가 의뭉스럽게 답했다.

“무슨 소리. 여기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나. 황궁의 주인이 놀라지 않았는데, 호들갑은 그만들 떨라고 해.”

“지금 그렇게 농을 하실 때가 아닙니다.”

“농담은 아니었네만. 이번 일은 사건이 아니라 사고일 것이네. 자네도 짐작할 텐데.”

“네. 하지만 저곳에 그분이 계신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모르지 않습니까. 습격이라고 경동하는 자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황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안티로스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저들은 자네가 움직인 것이겠지?”

“만약을 대비해 허락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잘했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지. 그나저나 한동안 시끄럽겠어. 조용히 넘어가긴 힘들겠지?”

가능하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게 황제의 바람이었지만, 레오날도 후작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황실 마법사들이 실수로 사고를 쳤다 해도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이건 수도에서 황궁을 향한 공격이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 카논의 황궁에서도 사고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것과 관련해 말이 나올 게 분명합니다.”

“그런 헛소리는 무시하면 돼. 카논과 아나크렌의 황궁을 동시에 노릴 미치광이가 어딨다고. 흥.”

황제는 벌써부터 예상되는 헛소리에 콧방귀를 끼었다.

싸움에 있어 적의 머리를 치는 일은 분명 최고의 수다. 그러나 상대가 국가 규모라면 단순히 머리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위급 사태에 유능한 신하들이 새로운 머리를 가져다 붙일 테니 말이다.

대부분 머리는 상징적인 존재이고, 실질적인 싸움은 손발이 하는 것. 그런 만큼 어떤 머리라도 가져다 붙이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내부의 동요는 일단 봉합할 수 있다.

게다가 오히려 머리를 잃었기 때문에 적은 독이 바짝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섬멸전이랄까.

더욱이 상대가 아군의 머리를 노리면, 이쪽도 적의 머리를 노릴 명분이 생긴다. 그런 만큼 국가 간의 전쟁에서 이는 피해야 할 암묵적인 금기였다. 하지만 논란을 만들고 음모론을 외치는 자들이 어디 그런 걸 생각하고 말하던가. 더욱이 실체적인 위협이 발생한 사건이다.

열선의 시작점에 검후의 저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황궁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황제의 뒤에서 레오날도 후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혼돈의 파편이라면・・・・・・ 두 제국의 황궁을 동시에 노릴 수도 있을 겁니다.”

혼돈의 파편.

황제는 최근 머리에서 한시도 떠난 적 없는 그 이름에 표정이 살짝 굳은 듯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려면 벌써 했겠지.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카논 건은 명예 후작의 작품이란 걸 알잖나.”

“제 말은, 방심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문제야 자네가 대신하면 되지. 그나저나 방금 그 열선은 저택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지?”

“그렇다고 생각하나 확인은 필요합니다. 검후께서 그러실 분은 아니지만, 방향이 조금만 틀어졌어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겁니다.”

“황궁에 설치된 보호 마법을 너무 얕보는 발언이 아닌가?”

“그런 게 아니라, 위험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후 대신들이 조사를 주장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렇겠지. 하게 되면 저택이 있는 방향일 텐데. 골치 아프군. 아직은 검후님이 모습을 드러내실 때가 아닌데.”

물론 검후의 존재가 밝혀져 제국에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황제와 검후의 대립을 걱정했던 귀족들도 반길 것이다. 존 워스로 논란이 일고 있는 소드 팰러스도 안정을 찾을 것이며, 어쩌면 처벌을 피해 모습을 감추고 있는 존 워스가 소드 팰러스에서 퇴출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도 생길 것이다.

객관적으로 검후의 등장은 제국에 긍정적인 일이었다.

누가 뭐래도 제국의 제일 높은 어른이며, 큰 기둥이니까.

하지만 혼돈의 파편과 미완의 마탑이라는 적을 앞에 둔 황제는 이쪽의 전력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더욱이 검후 옆에는 이드가 있다.

황제가 보았을 때, 검후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면 이드는 모습을 감출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돈의 파편이 몸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황제로서는 이드가 아나크렌을 떠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길 원치 않았다. 오래전 이야기 속에 나오던 그런 인물을 곁에 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혼돈의 파편이라는 위험천만한 존재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이 이드와 같은 전력을 곁에 둬야 했다.

“그래도 자네 말대로 확인은 해야겠지.”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린다? 지금 그 말은 뭐지? 마치 내가 직접 저택에 갔다 와야 한다는 의미 같이 들리는데.”

“폐하가 아니시면 감히 누가 갈 수 있겠습니까.”

검후의 존재는 그야말로 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더욱이 사건이 사건이다.

저택과 검후의 존재를 알고 있는 기사를 보내 대충 전해 듣고 끝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심상치 않은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만큼, 검후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움직여야 했다.

“자네가 다녀오지?”

그러나 그런 사람 중 일인인 황제도 검후는 불편했다.

저택만 다녀오면 황제로서의 위엄이 깎여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가능하다면 최대한 방문을 자제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고 싶지만, 저는 지금 일어난 사건과 관련하여 처리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당장 수도에 있는 귀족들의 소집도 걸어 놓은 터라…….” 

하나하나 달려올 귀족들을 상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게 귀찮다. 더욱이 귀족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황제가 할 일은 아니다. 

“끄음…… 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 하는가.”

팔짱을 낀 황제가 어지간히 가기 싫은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라울이 이런 모습을 내심 웃으며 바라볼 때였다. 문밖을 지키던 기사가 큰 목소리로 황녀의 방문을 알려 왔다.

“아바마마, 무사하십니까!”

“오? 오~! 밀리아리아 황녀. 그래, 네가 있었구나. 마침 잘 왔다. 하하하!”

“아바마마?”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반기는 황제에 걱정이 되어 달려왔던 황녀는 자신도 반사적으로 한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하지만 레오날도 후작은 그것이 결코 황녀의 탓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기엔 황녀를 반기는 황제의 모습이 심상치 않을 정도로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빛이 밝으면 그만큼 그림자가 짙은 법이라고.


한바탕 대련이 끝난 저택은 조용했다.

원래는 계획은 이후 그와 관련한 보충 설명을 더해서 기사들을 교육하려던 검후였으나.

“어떤 멍청이 덕분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은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탈로스의 성벽이 일차적인 방벽이 되어 준 덕분에 열선의 정확한 발사 지점을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인해, 탈로스의 성벽을 뚫고 나온 열선을 가장 가까이 선 본 사람들조차 가리키는 발사 지점이 각각 다른 것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기사와 병사들이 핀 포인트로 저택을 향해 달려왔을 테니까. 하나 지금은 이 일대를 둘러보는 중에 그쳤다.

아무래도 고급 주택가인 만큼, 저택의 주인 역시 하나같이 쉽게 대할 수 없는 이들. 그런지라 무턱대고 저택 내부를 수색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황궁에서 조사 명령이 내려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럼 외부의 공격은 아니었던 것이네요. 할마마마.”

“열선은 외부인의 것이지만, 공격은 아니었습니다. 황녀.”

황녀의 물음에 사소한 부분을 수정하며 답하는 검후였다.

그런 검후 옆에는 이드 일가와 쉴라가 함께였다.

그들은 현재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사건의 속사정을 알기 위해 달려온 황녀에게, 오늘 있었던 대련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다만 그런 자리에 사건의 당사자들은 함께하고 있지 않았다.

스케스틱의 경우는 굳이 황녀를 만날 이유가 없다며 자신의 방으로 갔고, 라울의 경우는 대련의 충격을 핑계로 저택을 떠났다. 그로서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들었고, 드래곤의 힘까지 확인한 만큼 굳이 저택에 붙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현재 검후의 반응으로 보아, 그가 남아 있었다면 대련에 대한 감상을 핑계로 그야말로 대대적인 조롱을 받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라울이 완전히 안티로스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마스와 미완의 마탑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날 방문을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니 패배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내일 다시 방문하세요. 황녀.”

“……네. 할마마마.”

그야말로 얄밉게 날이 선 검후에 황녀는 드물게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녀도 지금과 같은 검후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후의 낯선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황녀로서 확인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 보면, 대련이 굉장했던 것 같네요. 명예 후작님이 보시기엔 어떠셨나요?”

다만 검후에게 정확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고 여긴 황녀가 이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옳은 선택이었다.

쉴라나 스폴 역시 검후의 눈치를 보느라 라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공격의 정밀성을 따지면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력만큼은 확실히 대단했지요. 특히 마지막 열선의 경우는 골드 드래곤의 브레스를 닮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위험했단 말인가요?”

열선의 위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황궁이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이에 검후가 어림도 없다며 끼어들었다.

“이드 님도 참, 브레스라니요. 그 정도로 출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황녀도 놀랄 것 없습니다. 그 정도 위력이면 황궁에 설치된 보호 마법이

대부분의 충격을 막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더욱이 보호 마법이 하나 뿐인 것도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황궁에 설치된 보호 마법은 대부분 다중 마법이다. 혹시라도 있을 만약을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황녀는 이런 검후의 말에도 사건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바벨의 간부 일인이 그만한 위력의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바벨의 힘은 제국에서 살피고 있는 것보다 강한 듯합니다. 아바마마께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법 무게를 담은 황녀의 말에 열심히 검후도 라울에 대한 깎아내리기를 멈추고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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