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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13화


1248화

초대장을 전한 라울이 떠난 후,

이드 일가는 멈췄던 쇼핑을 이어 갔다.

영수증을 보내 달라는 라울의 말 때문일까. 남은 쇼핑은 라미아가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여러 가게를 찾아 그녀가 요구한 것은 오로지 하나.

명품, 명품 그리고 또 명품이었다.

그 저돌적인 모습에 지켜보던 이드는 순간 라울에게 불쌍한 감정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돌고 돌아 명품 거리에서도 최고에 속하는 물건을 손에 넣은 후 돌아온 이드는 짐을 정리한 후 곧바로 검후를 찾았다.

그녀는 라울을 만난 이야기에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어머나, 유니콘의 황금 뿔을 받았단 말인가요?”

“황금 뿔을 가진 유니콘이 있다고?”

“아니, 제 말은 그놈이 초대장이라고 내놓은 인장이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놈이란다.

검후의 입에서 놈이라는 단어를 나오게 만들 수 있는 건 라울뿐일 거다.

라미아가 황금 인장을 꺼내 보이자.

“이거?”

검후가 냉큼 낚아챘다.

“맞아요! 이게 바로 황금 뿔이에요.”

“거기에 이름까지 있어?”

“중요한 물건에 대부분 특별한 이름이 붙죠. 우리 황제의 인장들에도 각각 이름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툴레의……….”

“아아~ 그런 설명은 됐고.”

“아하하. 하긴, 이드는 알 필요 없는 것들이죠.”

“그래서, 그 인장이 황제의 것만큼 중요하다는 거야?”

감히 황제의 인장에 비교하다니. 듣기에 따라 매우 불경한 말일 수 있지만, 정작 황제와 같은 핏줄인 검후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분명 대단한 것이긴 해요. 바벨 마스터의 인장이잖아요. 그리고 여기에 유니콘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이 인장에 실린 권한 때문이 아니라 희귀성 때문이에요.”

“희귀성이라. 그래서 유니콘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거로군.”

유니콘.

가끔 동화책 속에서 볼 수 있는, 이마에 뿔이 솟은 말이다.

일부에선 상상 속 동물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순수한 처녀를 좋아하는 이 변태 말은 사실 실존하고 있는 생물이다.

좀 더 정확히는, 말의 형태를 한 요정이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뿔은 최상급 마법 재료로, 세상에 나오기만 하면 사람 한둘은 꼭 죽어 나가게 만드는 귀물이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즉, 그만큼 이 뿔을 얻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다.

뿔을 얻자면 유니콘을 잡아야 하고, 유니콘을 잡으려면 우선 이놈을 찾아야 하는데.

어지간해선 한평생 유니콘의 꼬리를 보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이 놈들의 취향에 맞는 아름답고 순수한 처녀를 준비해서 유인하는 것인데.

보통 이 단계에서 절망하고 나가떨어지는 사냥꾼들이 태반이다.

도대체가 유니콘이 원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처녀의 기준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 문제를 연구한 마법사의 논문에 따르면, 유니콘이 순수한 처녀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나 아름다움의 기준에 있어서는 사람처럼 취향이 각각 다르다나?

아니, 도대체 본 적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말의 여자 취향을 어떻게 알고 준비를 하냔 말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유니콘을 사냥하겠다는 사냥꾼은 멸종한 지 까마득히 오래다.

“귀하죠. 얼마나 귀하면 우리 황제도 이 인장은 없다니까요.”

“그래?”

“일반적으로 거대 조직들은 해당 국가의 지배자에게 인장을 진상하는 것이 관례거든요.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의미인 거죠. 하지만 유일하게 바벨은 이런 관례를 지키지 않고 있어요.”

“그럴 만하겠던데? 라울의 말로는 이런 인장은 세 개뿐이라고 했으니까.”

그 말에 검후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어이없는 일이죠. 그 정도 조직의 장이 달랑 세 개가 다라니. 각각 단계를 두고 못 해도 수십, 수백 개는 사용하는 게 보통인데요.”

인장이 가진 의미는 많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는 관계의 고리다.

인장을 통해서 서로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중심에는 보통 조직의 수장이 있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 또 외부와의 중요한 협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벨은 이런 불문율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거다.

물론 아무 대책 없이 이러는 것은 아니다.

바벨의 수많은 회원이 모두 각국에서 한자리를 하는 데다, 바벨은 이미 이들을 통해 각국과 채널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분명 일반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이런 것도 바벨이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게 아닐까?”

“흥, 그것도 눈 가리고 아웅이죠. 공식적인 지부만 없을 뿐이지, 바벨을 모르는 건 어디 이름도 없는 시골에 처박혀 사는 노인네뿐일걸요.”

“하하하. 하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 그래도 자기들 주장이 그러니까. 머지않아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이런 절차도 조금씩 바뀌겠지.”

“뭐, 바뀌건 말건 저하곤 상관없어요.”

어련하겠는가. 본인이 무려 소드 팰러스의 주인인데.

검후는 꼼꼼히 살펴본 인장을 다시 라미아에게 반납했다.

“그래서, 바벨의 마스터…………… 바이젠이랬나? 그자는 언제 만나 볼 생각이에요?”

진짜 궁금한 건 이것이었을까. 탁자에 팔을 올린 검후가 상체를 내밀었다.

이에 대한 이드의 대답은 담백했다.

“글쎄, 당장 급한 건 아니라서. 대부분 문제는 라울하고 해결이 되고 있어서 말이야..

“그럼 당장 볼 생각은 없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나야 아쉬울 게 없으니까. 인장을 보내 온 것도 저쪽이고,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 온 것도 저쪽이고.”

아마 라울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답답함에 가슴을 쳤으리라.

언제든 방문을 환영한다며 전달한 인장에는 ‘조만간에 만나자’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었으니까.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이드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 사정을 알아차린 검후가 깔깔거렸다.

이드가 그 모습을 보다 물었다.

“그런데, 그걸 묻는 걸 보면, 너도 그쪽에 용건이 있는 거야?”

“음, 그렇다기보단 그냥 궁금해서요. 과연 그런 델 이끄는 수장의 낯짝은 어떻게 생겼나 싶거든요. 그리고………… 정식으로 사과도 받고 싶고.” 

감금된 검후를 상대한 건 라울이지만, 어차피 그 일을 최종적으로 허락한 이는 바벨의 마스터일 터.

“사실 의문이기도 했어요. 꽤 긴 시간 갇혀 있었지만, 그동안 그자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바벨의 뻔뻔한 주장대로, 바벨이 공식적인 활동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도 아닐 거고. 이번만 해도 그래요. 바벨에 있어서도 혼돈의 파편은 정말 중요한 문제일 텐데, 여길 직접 찾아오지 않고 있잖아요. 여기만 오면 이드와 저, 그리고 황제까지 만날 수 있는데도.”

검후의 말대로 의아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드는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말을 아꼈다.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인물에 대해 괜한 선입견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바르지 않은 편견은 판단에 오류를 만들어 낸다. 어차피 혼돈의 파편과의 싸움이 좀 더 본격화되고 표면화된다면, 그쪽에서 알아서 얼굴을 내밀어 올 것이다.

게다가 검후에게 말했다시피 이드는 당장 바벨의 마스터를 찾을 정도로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다.

그건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혹시 반대라면 몰라도.

그래서 인장에 대한 문제는 일단 여기까지 다루기로 했다. 어느 쪽이 되었든, 당장 쓰일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혹시 만날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저도 꼭 끼워 줘야 해요!”

이런 당부에도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넘긴 이드가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바인 경과 해쉬 경 다음 시험은 어떨 거 같아?”

“이미 합격 선물도 사 놓고 그걸 물어요? 앞뒤가 바뀐 거 아니네요?”

“대충 결과가 보였으니까. 그리고, 합격 못 하면 이건 위로의 선물이 되는 거지.”

“위로 선물이 참 거창하네요.”

그렇게 답한 검후가 창밖을 잠깐 돌아본 후 답했다.

“저는 좋게 봤어요.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 그리고 수석 기사가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곧 은색 기사단의 일원이 될 거예요.”

“좋았어.”

쉴라는 검후의 최종 결정이 남았다고 했었다. 하나 양측이 서로 마음에 든다고 했으니, 현실적으로 바인과 해쉬의 입단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문제만 없다면요.”

“……두 사람에 대한 조사라면, 이미 끝난 거 아냐?”

“아뇨. 바인 경과 해쉬 경 말고요.”

“그럼, 무슨 문제? 입단이 막힐 만한 일이 있어?”

“이드가 돌아오기 전에 황녀가 다녀갔는데, 아무래도 마스가 심상치 않은가 봐요.”

“그쪽하고는 벌써 틀어지지 않았어? 좀 새삼스러운데.”

며칠 만에 다시 튀어나온 이름에 라미아가 반문했다. 이드도 공감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일리나는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에 찻물을 조용히 다시 데우기 시작했다.

“그랬죠. 그래서 속내가 무언지 알아보기 위해 제국에서 공식으로 압박을 시작했는데.”

“그, 억지라는 거?”

“네. 그에 대한 반발이 예상보다 심하다고 해요. 당장이라도 전쟁을 시작할 거 같은 태도라나. 곧장 선전포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전쟁.

입에 쉽게 담을 수 없는 무게를 가진 단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슬프고 무서운 어휘이긴 하지만, 이드나 검후는 그보다 더한 ‘멸망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 멸망과 관련한 작은 사건일 뿐이다. 혼돈의 파편과 관련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이 아닌 열 번이라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게 바로 전쟁이었다.

“흐음. 그 정도로 반발이 심하면……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그렇죠. 단순히 국지전 형태로 국경을 마주한 영지 간 다툼도 아니고, 마스와 아나크렌의 공식 발언이었으니까요. 이 수준이면 곧바로 전면전이에요. 마스가 아무리 호전적이라도 결코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규모가 아닌 거죠.”

아무리 제국이어도 전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인간과 물자, 그리고 돈을 잡아먹는 수렁이나 다름없으니까.

특히 이번엔 무려 왕국과 제국의 싸움이다. 다만 왕국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그럼에도 마스에서는 당장이라도 칼을 빼 들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확신해야겠지?”

“황제와 대신들의 생각도 그래요.”

이렇게 되면, 제국에서 쉽게 전쟁을 시작하기 힘들다. 일단 상대가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어야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의 노림수도 모르고 시작하는 전쟁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

“하지만 영혼의 관이 걸린 문제지. 영혼의 관에는 혼돈의 파편이 관련되어 있고. 적당히 시간을 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황제도 각오는 하고 있어요.”

과연 그 정도로 될까. 

이드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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