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16화
1251화
심드렁한 반응.
하지만 내심 전율을 금할 수 없는 타란 백작이었다.
‘이미 완성된 마법의 수정, 보완을 이런 단시간에 끝내다니. 믿기지 않아. 이들의 역량이 이렇게나 대단하단 말인가.’
그가 비록 검의 길을 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귀족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있는 데다가, 변경백으로서 크고 작은 싸움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마법 전력이니 어찌 무지할 수 있겠는가.
이런 타란 백작이 알기로, 마법의 양식을 수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져 있었다.
타란 백작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이전 야산에서 처음 보았던 초인 마법이 선명했다.
준비 시간은 길었고, 위력은 일정치 못했으며, 기사가 체감하는 반동도 심했다.
특히 갑자기 힘이 폭증한 경우 아군 기사들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눈 깜짝할 사이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는 치명적인 허점이었다.
적이 이걸 알고 노린다면 전장에 선 초인 기사들은 그야말로 몰살을 당하고 말 터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부분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다.
그게 타란 백작이 세운 기준이었더랬다.
그리고 지금.
미완의 마탑에서는 이런 타란 백작의 기대를 넘고도 남을 결과를 보여 주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구려.”
“그렇게 보셨다니 다행이군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오. 피오 단장과 구른 단장은 기사들의 상태를 확인하시오.”
“옛, 백작님.”
타란 백작의 명령에 조용히 뒤를 따르던 두 기사단장이 기사들을 살폈다.
이미 한 번 경험이 있기에 제법 꼼꼼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타란 백작이 이번에는 베나이온 자작을 돌아보았다.
“자작도 함께 수고해 주셔야겠소.”
“물론입니다. 제가 동행한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니겠습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소, 부관주.”
마법진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 베나이온 자작은 두 기사단장이 살피고 지나간 기사들을 다시 한번 하나하나 관찰했다. 그건 기사들이 보는 종류와는 다른, 마법사 관점에서의 관찰이었다.
베나이온 자작.
그는 마법사로, 타란 백작에 더해 미완의 마탑이 내어놓은 초인 마법을 살피기 위해 림몬에서 내려보낸 이였다.
바로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해서 말이다.
“그나저나, 대단하오. 솔직히 이렇게 빠르고 확실하게 개선될 줄은 몰랐소.”
세 사람의 모습에서 눈을 뗀 타란 백작이 그제야 이더비히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지금 눈앞에서 직접 보고 확인하기 전까지, 그는 내심 이번 방문이 헛걸음일 거라고 여겼다.
“백작님의 그런 의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보통은 이럴 수 없지요.”
말을 멈추고 미소와 함께 위를 올려다보는 이더비히.
“마법사를 늘려 술식 운용과 발동 과정을 단축하고, 발동 과정의 간소화로 마법에서 발생하는 반동을 감소시켰죠. 그리고 술식을 재구축해서 마법의 위력을 일정하게 조종하는 일. 이건 현존하는 어떤 마법에도 쉽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초인 마법은 가능하죠.”
“미완의 마탑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오?”
“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이곳에는 위대한 저희들의 탑주께서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초인 마법의 시작과 끝인 분이시니까요.”
“…..”
여태 이더비히를 바라보고 있던 타란 백작은 그 말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위를 바라보았다.
높디높은 천장이 보였다.
귀부인 같던 첫인상의 이더비히였거늘, 탑주에 대해 말할 때는 마치 신에 대해 노래하는 신관처럼 절대적인 믿음을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저 천장 너머의 탑주가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타란 백작은 문득 이더비히가 말하는 ‘탑주’가 궁금해졌다.
자신과 자작의 방문에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탑주.
과연 어떤 자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초인 마법.
그것은 초인 전력에 있어 더없이 완벽할 정도로 압도적인 전략적 우위를 가져올 방법이었다.
그렇다.
그는 이제 완벽히 인정했다.
‘림몬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과거의 결정이 성급했다고는 생각한다.
추적대를 공격해 제국의 앞길을 막아설 때만 해도 초인 마법을 보기 전이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처럼, 그 선택은 옳았다.
다만, 림몬에서는 그럼에도 어째서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가.
이전 자신을 야산으로 오르게 만든 명령을 고려해 봤을 때, 왕과 대신들은 결코 초인 마법을 직접 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결국 말만으로 저 능구렁이 같은 왕과 대신들을 설득시켰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마법사가 저 정치에 닳고 닳은 왕과 귀족 대신들을 설복시켰을까.
탑주는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일까.
타란 백작은 그 대단한 수완을 가진 탑주가 보고 싶었다.
아마도 영혼의 관을 직접 방문한 지금이 탑주를 만날 최고의 기회이지 않을까.
“탑주는 언제 볼 수 있겠소?”
“탑주께선…….”
어째서일까.
탑주를 만나겠다는 말에 이더비히의 표정이 사뭇 굳어질 때였다.
쿠쿠쿵!
갑작스레 머리 위에서 천둥이 치며 영혼의 관이 흔들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늘 영혼의 관을 찾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소리와 진동이 아니라도, 온몸을 내리누르는 기파는 마나를 다루는 초입에 있다면 느끼지 못할 수가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백작님! 지금 이건……!”
“부관주.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소?”
타란 백작은 놀란 기사들과 자작을 진정시킨 후 이더비히에 설명을 요구했다.
“많이 당황하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놀랄 만한 일은 없으니, 부디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놀랄 일이 아니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진동은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탑주께서 초인 마법에 대한 최종 조정을 하시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잡음에 불과합니다.”
이더비히의 설명에 타란 백작이 기가 찬다는 얼굴이 되었다.
“마탑이 통째로 흔들렸소. 이걸 고작 잡음이란 단어로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마법의 새로운 계통을 뚫어 내는 일입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또 위대한 작업인지 이해하신다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작은 잡음조차 심상치 않을 수밖에 없음을 아실 겁니다.”
“허・・・・・・ 기가 막히는군. 그러니까 그대 말은, 방금 그게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입니다. 그만큼 완성이 가까워진 상태지요.”
“…..듣고 나니, 나는 오히려 그대들이 더 대단해 보이오.”
아무것도 아니라며 답하는 이더비히에 타란 백작은 혀를 내둘렀다.
그가 직접 경험한 소리와 진동, 그리고 그 속에 깊이 뒤섞인 기파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나를 다루는 자에게 있어, 그건 멈추지 않는 단말마를 듣는 셈이었다.
비록 지금 소음과 진동은 멈췄지만, 기파는 여전히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온몸을 휘감은 그것은 아무런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어, 마음을 위태롭게 몰아간다.
기파가 빠르게 진정되고는 있지만, 이 상태가 오래도록 이어지면 멀쩡한 사람도 미쳐 버릴 것이다.
특히 마나를 다루는 기사와 마법사에게 있어 그 악영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저것은 주화입마의 씨앗과도 같았다.
“저희도 사람입니다.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습니다. 다만, 탑주께서도 그런 점을 생각하고 계시기에 저희가 악영향에서 벗어나게끔 따로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백작님께서 영혼의 관에 오래 머무르신다면 이용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중히…… 사양하겠소.”
“호호호. 아쉽네요.”
질색해서 거절하는 타란 백작에 이더비히가 입을 가리며 웃어 보였다.
‘최종 조정 중이라고 했다. 그럼 눈앞에 있는 이 초인 마법은 무엇인가. 설마 이게 아직 온전히 완성된 수준이 아니란 건가.’
타란 백작은 그런 웃음을 한 귀로 흘리며 소리가 들렸던 위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모를 일이다.
그때, 두 단장이 기사들의 상태 점검이 끝났음을 알려 왔다.
베나이온 자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결과는 어떤가?”
“일정한 듯합니다. 하나같이 말하기를, 절반가량의 초인력이 일순간 증발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좋군. 베나이온 자작의 확인만 끝나면 이대로 전장에 쓸 수 있겠어.”
물론 잠시 후 모든 기사의 상태를 살핀 베나이온 자작의 보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소, 부관주.”
“만족하셨다니 저도 기쁘군요. 그렇다면 급한 일도 끝이 나셨으니, 쉴 곳을 안내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위험한 곳을 제외하고, 영혼의 관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관주께서 직접 말이오?”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는 이번 일을 탑주께 보고해야 해서요. 이후의 안내는 두네르 마법사가 하도록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두네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녁 시간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누가 잡을 사이도 없이 자리를 뜬 이더비히는 그대로 상층으로 향했다.
한층 한층 오를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는 흐려지고, 그 자리에 걱정과 근심이 들어찼다.
최근 탑주의 연구실을 향할 때면 항상 이렇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가는 길에 마주치는 마법사들도 조용히 길을 비킬 뿐이다.
항상 미소로 마법사들을 대해 주던 그녀의 변화는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낯설었지만, 감히 그에 대해 대놓고 물어볼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사실 묻지 않아도 대부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근심이 생긴 시기. 그리고 영혼의 관 꼭대기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한 시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잠시 후, 탑주의 연구실 앞에 도착한 이더비히가 복장을 단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