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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17화


1252화

방긋.

언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냐는 듯 소녀 같은 미소를 띤 이더비히가 문을 두드렸다.

“탑주님. 이더비히가 왔습니다.”

대답하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익숙한 듯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하고는 몇 번 더 문을 두드렸다.

철컥.

그렇게 세 번 정도를 반복하자 굳게 잠겨 있던 연구실의 문이 비스듬히 열리며, 그 사이로 건조한 목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들어와라.”

그제야 탑주의 허락을 받은 이더비히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함께 익숙한 듯 낯선 연구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탑주의 연구실은 부모님의 방만큼이나 익숙한 곳이었다. 한데 최근 그런 연구실이 점점 낯설게 변하고 있었다. 벽 쪽으로 옮겨진 책상과 연구 자재들. 그 위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까지 올려진 상태였다.

“속상하게. 또 식사를 거르신 건가요?”

그렇게 고개를 돌리던 이더비히는 곧 연구실 중앙에 새롭게 생긴 커다란 기둥에 시선을 빼앗겨 잠시 말을 잊는다.

미간에 졌던 희미한 주름도 사라졌다.

에메랄드를 깎아 만든 듯 황홀한 녹색의 기둥. 벌써 몇 번을 보는 것임에도 볼 때마다 사람을 홀리듯 시선을 잡아끄는 저 신비로운 기둥이 연구실을 낯설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 또한 이더비히는 잘 알고 있었다.

“바이트・・・・・・ 타블렛.”

초인 마법의 결정체이자, 진리와 초인 마법을 잇는 연결고리.

마법이라는 대륙에 초인 마법을 정박시킬 닻.

바이트 타블렛을 정의하는 말은 끝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오히려 과연 이 모든 의미를 하나에 담을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싶지만,

이더비히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바이트 타블렛은 그녀와 미완의 마탑에 있어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었다. 바로 그런 바이트 타블렛이 연구실 중앙에 끝도 없이 높게

솟아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탑주의 연구실은 넓다.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넓어도 그 끝엔 벽이 있고, 천장이 있기 마련.

그런 한계가 있는데, 과연 끝도 없이 높이 솟는 게 가능할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벽을 부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저 바이트 타블렛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없이 높이 솟아 바이트 타블렛이 천장에 닿은 부분.

하나 그곳에 더 이상 그녀가 알고 있던 단단한 천장은 없었다.

뭉게뭉게.

반짝반짝.

구름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몽글몽글하고 뿌연 무언가가 그 주변을 가리고 있던 것이다. 평범한 회색의 천장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색색의 빛이 반짝였고, 작은 틈으로는 검고 푸른 공간이 언뜻언뜻 비쳐 보였다.

그렇다. 그건 절대 천장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늘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저곳은 이미 더 이상 물질계가 아니었다.

바이트 타블렛은 바로 그 물질계 밖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과연 저 너머로 얼마나 높이, 또 어디까지 닿고 있을까.

‘중간계에 묶인 인간은 닿을 수 없는 진리의 바다.’

그 짙고 푸른 공간을 바라보던 이더비히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녀가 쌓은 지식이, 그곳이 어떠한 장소인지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라면,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라면 꿈에도 그리는 곳.

모든 것의 해답이 살아 숨 쉬는 곳.

마법사가 끝없이 마법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기에 닿기 위해서다. 바로 그런 공간이 눈앞에 열려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바이트 타블렛에 의해서.

이대로 손만 내밀면……

뿌득.

욕망을 좇아 흘러가는 생각에 이더비히는 질끔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온 힘을 다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해서든 저쪽을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마법사에 있어 저것은 마약 이상의 유혹이다.

그런 이더비히 앞에는 어느새 그녀를 향해 돌아앉은 탑주가 있었다.

“너는 올 때마다 한결같구나. 매번 흔들리면서도 견뎌 내.”

“그런 탑주님은 좀 가려 주시면 좋지 않나요.”

“어째서 가려야 하느냐? 황홀하지 않으냐? 나는 그저 보고만 있어도 더없이 흐뭇하다. 내가 진리의 문을 열었다. 그 증거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딨다고 그걸 가린단 말이냐.”

“……저 말고 다른 이들이 보면 참지 못한단 말이에요.’

“흐흐. 참지 못한다면 그 정도일 뿐인 게지. 그리고 어차피 네 명으로 연구실에 들어오는 이도 없지 않으냐.”

“그래서, 시중드는 아이가 없어 또 식사를 거르신 건가요?”

이더비히는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을 보며 눈꼬리를 말아 올렸다. 잔소리를 퍼부어 대는 그녀의 모습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퍽 익숙해 보였다.

그건 잔소리를 듣는 탑주 역시 마찬가지.

“한 끼 거른다고 죽지 않아. 지금은 밥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중요한 일이 많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탑주님. 그 중요한 일도 탑주님이 쓰러지신다면 모두 멈추어 버린단 말이에요. 사람은 먹어야 움직일 수 있어요.”

“쯧쯧, 그놈의 잔소리. 알았다. 놔두면 먹을 테니 그만해라.”

“약속하신 거예요.”

끈질기게 다짐받는 이더비히. 탑주는 그런 모습이 싫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도 이더비히는 아끼는 제자이며, 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최근 그의 마음은 아주 너그러운 상태였다.

드디어 바이트 타블렛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완전’을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진짜 바이트 타블렛이 아닌 콘티에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진리의 문을 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제 초인 마법의 완성은 코앞에 왔다고 할 수 있었다.

“보아라. 아름답지 않으냐? 이제 곧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된다.”

“조금 전 마나 파동이 영혼의 관을 흔들고 지나갔어요.”

“내가 콘티에롬을 조정 중이었다. 또 잔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에 대해선 이미 네가 대책을 만들어 두지 않았느냐.”

앞서 타란 백작에게도 사용한 ‘대책’. 그건 사실 탑주가 아닌, 이더비히가 준비해 둔 변명이었다.

“그렇죠. 사실 이젠 굳이 그게 아니라도, 저를 포함해 영혼의 관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모두 익숙해진 상태였죠. 하지만 새로운 손님은 아니었어요.” 

“손님?”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반응하는 탑주에 이더비히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양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마스에서 일전에 준비한 마법의 개선안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이 왔어요. 일전에 말씀을 드렸던 일이에요.”

“・・・・・・ 그러고 보니 들었던 것 같기도 하구나.”

대답이 살짝 늦은 탑주,

하지만 이더비히는 그의 말과 달리 탑주가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음을 알았다. 탑주를 상대한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행동만 봐도 그 속내를 대충 짐작할 지경에 이른 그녀였다.

그녀가 보기에 탑주는 아마도 바이트 타블렛의 최종 조정에 빠져 듣고도 한 귀로 흘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화낼 일도 아니었다.

타란 백작의 방문. 그건 확실히 탑주까지 신경 써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만큼은 탑주도 알아야 했다.

“마스의 타란 백작과 베나이온 자작이 탑주님을 뵙기를 청했어요.”

“흥, 겨우 백작 따위가? 보지 않겠다.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이 목전에 왔다. 마스의 왕이 직접 행차해도 나가 볼까 말까 한데. 겨우 백작을 보자고 시간을 내란 말이냐?”

이런 탑주의 반응에 이더비히는 예상한 일이라는 듯 간단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타란 백작은 제가 따로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항상 널 믿고 있단다. 알고 있겠지?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된다. 이것이 완성되는 순간. 우리 마탑은 마법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이름으로 우뚝 설 것이다. 하하하’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찬사를 받는 순간을 상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이더비히는 껄껄 웃어 대는 탑주의 모습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시 눈에 들어오는 바이트 타블렛.

하지만 한 번 유혹을 떨쳤기 때문일까. 다시 그 빛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때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트 타블렛의 허리.

맑은 옥빛이 흐르는 중에 바이트 타블렛의 허리 부위의 빛만이 흐렸다. 무엇보다 희미하지만 보이는 틈. 그것은 눈이 아닌 마나의 흐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그렇게나 신비롭고 완벽해 보였던 바이트 타블렛이 사실은 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너무 완벽하기에 너무 부족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탑주님께선………… 이것을 보고 계신 걸까.’

마음 한쪽에 치워두었던 근심이 다시 일어났다.

이더비히는 자신이 보는 것을 탑주도 보고 있으리라고 여겼다. 저 불완전함을 알기에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을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탑주는 어째서 완전해질 수 없는 것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가.

비록 진리의 문을 열었지만 콘티에롬이라는 가짜로는 진짜 바이트 타블렛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닌 자신의 눈에도 보이는 것이 탑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탑주님의 눈에 보이는 게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더비히는 차라리 자신이 모자라 볼 수 없는 쪽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너무 미울 것 같았다.

‘역시 그때 존 워스의 의도를 좀 더 의심해야 했을까.’

콘티에롬을 가져다주고 사라진 존 워스. 이더비히는 당시 존 워스의 의도를 의심했었다. 그럼에도 콘티에롬을 탑주에게 전했다. 그건 탑주의 혜안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라면 존 워스가 콘티에롬을 통해 무언가 수작을 부렸더라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산이었지.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탑주님의 집념을 너무 가볍게 보았다.’

생명의 관에서 한 번. 정신의 관에서 한 번.

탑주는 바이트 타블렛을 두 번 잃었다. 이더비히는 탑주가 그로 인해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에 얼마나 조급증이 생겼는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탑주가 콘티에롬이라는 바이트 타블렛의 복제품을 가지고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을 시도할 거라는 사실 역시도!

하긴, 알았다고 해도 막을 수 있었을까.

현재 정신의 관에 있던 바이트 타블렛의 행방도 정확하지 않은 상태인데, 도대체 무슨 말로 탑주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이더비히는 복잡하게 끓어오르는 불안을 누르고 눌렀다.

부디 큰일이 없기를.

바보처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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