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24화
1259화
과연 황제.
제국의 주인다웠다. 어떻게 해야 자국에 이득이 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바벨에게 필요한 대답을 얻어 내고 돌아온 황제까지 더해, 의논을 이어 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바벨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정된 사항.
그걸 전제로 이제 각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직위가 직위인 만큼 황제가 해 줘야 할 일이 가장 많았지만.
“허허허. 편히 다녀오십시오.”
황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하긴, 제국을 운용하는 황제에게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몇 개 더해져 봐야 티도 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제국의 뜻과 별도로 움직여 영혼의 관을 공격하는 일이 차후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인간 사회에서는 이런 명분에 관련한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허허,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걱정이 담긴 일리나의 말에 황제가 단호하게 장담했다. 심지어 검후가 그런 황제의 말에 덧붙였다.
“물론 이전까지는 토벌이 사건의 중심이었지만, 마스가 나서며 전쟁이 언급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의 눈과 귀가 그쪽으로 향해 있잖아요. 오히려 이제 토벌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전쟁이 언급된 원인은 토벌이지만, 막상 그 전쟁이 일어나면 토벌은 뒷전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전쟁이 벌어지는 중에 적국 땅에서 토벌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 상태라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토벌에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연히 영혼의 관이 어찌 되든 역시 관심을 주지 않을 테고.
물론 진짜 전쟁이 일어나고, 그 안에서 초인 마법이 엄청난 위력으로 주목을 받으면 이야기는 엉뚱한 곳으로 흐르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께서 나서는 이상, 어차피 그럴 일은 없을 테지요.”
믿고 있다는 투로 은근히 압박을 주는 황제였다.
영혼의 관은 둘째치고, 전쟁을 위해 외부에 나가 있는 마법사들을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하지만 그에 대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황제는 황녀를 데리고 일어났다.
“검왕에 대해서는 말씀만 해 주시면 바로 제국에 소환하는 형태로 처리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이드가 고개를 숙일 때, 황녀가 검후에게 포옥 안겨 왔다.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할마마마.”
검후에 대해 걱정을 담은 황녀의 두 눈에는 미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녀는 조금 전까지 검후와의 동행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신의 관 토벌에 참가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황녀는 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황제와 검후에 의해 별 힘을 쓰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녀를 보호할 제국의 전력이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의 토벌과 달리, 영혼의 관에 대한 이번 공격은 어디까지나 바벨이 주도하는 일.
앞서와 같이 황녀를 보호할 기사단을 동행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물론 은색 기사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역시 바벨의 요청을 받은 이상 은색 기사단의 임무가 분명했다.
대(對)초인 마법에서의 초인 보호,
황녀에만 신경을 써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따로 기사단을 준비할 수는 있다. 어쩌면 바벨에서도 반길지 모를 터였다. 비록 그 주목적이 황녀 보호라도, 결과적으로 기사와 마법사 전력이 늘어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황제가 반대했다.
“그만한 인원을 움직이면, 적에게 정보가 샐 수 있다.”
“……”
과연 영혼의 관이 그만큼 정보력이 있나?
하지만 지혜로운 황녀는 그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황제가 말하는 ‘적’이라는 단어에 담긴 대상이 영혼의 관만을 한정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황제와 황녀가 돌아갔다.
올 때처럼 조용히 돌아간 이들의 방문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직 거의 모든 기사가 연무장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드는 두 사람을 배웅한 후, 라울을 접객실로 다시 불러왔다.
“설마 황제께서 이렇게 전격적으로 방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라울은 아직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 표정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황제가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이다.
검후는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바벨의 요청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대들의 일에 함께하도록 하지.”
“검후님의 배려가 담긴 결정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그 정도로 하고. 다만 알아 두어야 할 점은, 이쪽의 인원 구성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네.”
“요청한 인원에서 크게 줄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인원이 줄지는 않을 것이야. 오히려 그 반대지.”
“바보 마법사 하나가 추가될 것 같아요.”
검후의 말에 라미아가 꺼내기도 부끄럽다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내심 웃음을 삼켰다.
라미아가 말하는 ‘바보 마법사’ 비올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지하실에 처박혀 있다. 언제나처럼 바이트 타블렛에 매달려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외골수. 초인 마법에 인생을 바친 남자.
이드는 문득 탑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이트 타블렛을 회수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나섰던 인물.
어쩌면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비올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드가 봤을 때 비올라는 탑주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초인 마법에 빠져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 초인 마법 이외에 무관심한 비올라도 영혼의 관에는 함께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함께하지 않으면 난리를 피울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혼자서라도 영혼의 관으로 달려갈지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바벨의 요청을 받는 인원에 그를 채워 넣었다. 라울이 의문을 표시한다면 설명해 줄 생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었다. “비올라 마법사를 말하는 것이라면 저희도 좋습니다. 미완의 마탑에 대한 정보를 가진 이가 더해진다면 오히려 환영해야죠.” 잘도 비올라에 대해서 알아낸 모양이다.
비올라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지도 않았을 텐데,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일까. 정말이지, 바벨의 정보력 하나는 인정해 줘야 했다. 한데 비올라에 대한 라울의 반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그와는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만?”
“미완의 마탑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거라면 포기하라고 말해 드리죠. 그는 영혼의 관에 대해서 전혀 알고 있지 못하거든요.’
괜히 바이트 타블렛 연구에 빠져 있을 비올라를 불러 봤자 좋은 소리가 나오지는 않을 거다. 거기에 라울의 말솜씨에 말려 괜한 말실수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기에 이드는 좋은 말로 라울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런 이드의 거절에 라울도 굳이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라도 결국은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삼 일 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목적을 이룬 라울도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드는 그런 라울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이내 연무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검후를 본 그는 그 옆으로 다가갔다.
연무장에는 기사들이 자유롭게 둘러앉은 상태였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새로운 식구인 해쉬와 바인이 있었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뭘 보는 거야?”
“바인과 해쉬요. 입단하고 곧바로 위험한 임무를 나가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가여워?”
“가엽다기보단, 기사단에 적응할 시간이 너무 없어서요. 손발이 맞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사실 오늘 입단한 신입에게 당장 손발을 맞추라는 건 불가능한 요구다.
집단 전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호흡이다. 그 호흡을 위해서 몸이 기억할 정도로 훈련에 훈련을 더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바인과 해쉬는 그런 훈련은커녕 은색 기사단의 기본 검술조차 익힐 시간이 없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걱정이면 이번 임무에서 제외하는 것도 방법인데.”
“기사단의 일에 두 사람만 빼놓을 수는 없어요. 아무래도 오늘부터 속성으로 훈련을 좀 해야겠어요.”
검후가 검을 쥐어 들었다.
아무래도 연무장에서 하하 호호 이어지던 즐거운 시간은 곧 끝나고, 대신 비명이 그 자리를 채울 것 같다.
“……적당히 해. 훈련도 좋지만 쓰러지면 곤란하다고!”
“저 검후예요.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요.”
검후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고서 접객실을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 이드 옆으로 일리나와 라미아가 다가왔다. 잠시 후, 창밖에선 연무장으로 나온 검후에 앉아 있던 기사들이 모두 일어났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저쪽은 검후에게 맡기고, 우리도 비올라에게 가 볼까?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시켜 둬야지.”
“그럼요, 그럼요. 안 그럼 그 인간, 출발 직전까지 바이트 타블렛에 붙어서 정신 못 차릴 거예요.’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곧장 비올라를 찾아 저택의 지하로 향했다.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빠져나간 덕에 저택의 지하는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런 지하실 안쪽에 자리한 연구실 앞에서 이드가 문을 두드렸다.
“이 연구실은 저도 사용하는 곳인데. 그냥 열고 들어가죠?”
“상대가 누구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게 좋아.”
그 작은 배려가 바로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또한 그 작은 행동이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 나가는 힘이다.
“……라고 어떤 강사가 말했었죠.”
“좋은 말이네요.”
“일리나가 들어도 그렇죠?”
이드의 말에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미아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려해 주면 뭐해요. 상대는 이쪽이 배려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데.”
라미아는 문을 두드려도 대답 없는 비올라를 두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드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배려는 필요한 사람에게 해야죠. 비올라 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인간 상대로는………… 에어봄!”
그리고 드러난 모습에 라미아가 곧바로 대기 폭발 마법을 쏟아 냈다.
이런 반응도 당연한 것이, 연구실 안에서는 비올라가 바이트 타블렛을 핥아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펑!
“쿠엑!”
“……도대체 무슨 짓이야! 이 미치광이 마법사 놈!”
라미아는 연구실 구석으로 날아간 비올라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드는 이런 라미아의 반응이 전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이트 타블렛을 핥다니.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보기 힘든 행동이 아닌가.
해서 라미아에게 무어라 하는 대신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