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25화
1260화
영혼의 관에 대한 공격 등 라울이 가져온 소식을 전했을 때,
비올라의 반응은 격렬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쾅!
비올라가 책상을 내리쳤다.
와장창.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책상에 있던 물건들이 한 뼘이나 떴다가 이리저리 쓰러졌다.
그 순간, 이드는 봤다. 라미아가 그 광경에 주먹을 말아 쥐는 모습을.
동시에 비올라의 난폭한 행동에 혀를 찼다.
이곳은 그와 라미아가 함께 사용하는 연구실이다. 당연히 라미아 전용의 물건들도 있을 텐데, 그것들이 부서지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
하지만 이런 의문은 무의미했다.
애초에 지금 당장 비올라는 그런 생각을 할 정신이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초인 마법이 완성되다니, 나 없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 어디서 그딴 헛소리를 들고 온 거야!”
책상을 내리친 주먹을 부르르 떨던 비올라가 바락 소리쳤다.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지만, 그는 알아야 했다. 자신의 행동이 누구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말이다.
“이게 슬그머니 또 반말이지!”
파직, 파지지직.
희미한 탄내와 함께, 라미아의 발끝에서 당장이라도 쏘아져 나갈 기세로 스파크가 번뜩였다. 그 모습에 흥분해 날뛰던 비올라가 대번에 낯빛이 핼쑥해졌다.
“아니, 또 왜 그래요. 아직 코피도 안 멈췄는데!”
“데?”
“데요오오…….”
떨리는 목소리로 잽싸게 말꼬리를 수정한 비올라가 바퀴벌레와 같은 걸음으로 뒤를 향해 물러났다. 이런 그의 얼굴에서는 한 줄기 코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앞서 바이트 타블렛을 핥다가 에어봄에 정통으로 두들겨 맞은 흔적이다.
“그러게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거기 책상도 네 거야? 누구 허락받고 내리친 건데?”
“……책상 좀 친거 가리고. 내 더러워서…”
“뭐?”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막힌 소리를 하셔서 저도 모르게 그냥….”
사소한 트집에 잠시 반항을 생각하던 비올라였으나, 곧 본능처럼 바짝 엎드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라미아는 완벽한 갑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스승을 배신한 상황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마법의 길을 열어 주고 있는 존재가 라미아였고, 바이트 타블렛의 연구를 도와주는 이 역시 라미아였으며, 연구실을 마련해 준 것도 라미아였다.
스승이자 동시에 후원자랄까.
그런 감정이 쌓이면 쌓일수록, 비올라는 라미아 앞에서 작아졌다. 당연히 그런 라미아의 위에 있는 이드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뭐가 그렇게 문제라고 소리를 지른 건데?”
“당연히 초인 마법이죠. 말이 안 되잖습니까!”
“하아, 그러니까 뭐가?”
작은 한숨을 더한 라미아의 말에 비올라가 기다렸다는 듯 바이트 타블렛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초인 마법을 완성하다니요. 바이트 타블렛이 여기 이렇게 있는데, 그게 말이나 되냔 말입니다. 저걸 빼놓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두 분도 잘 아시면서 그런 소리를 하시니까, 저도 모르게 그냥…….”
“반말이 나왔다?”
“….그건 실수고요.”
다시 쭈구리가 돼서 코피를 훌쩍이는 비올라다.
이드가 이런 비올라에게 수건 한 장을 주었다.
“확실히 이해 안 되는 일이기는 해. 우리가 알기론, 저게 없으면 초인 마법은 완성할 수 없는 거였잖아.”
“그게 사실이죠.”
“그런데 라울은 왜 완성했다고 말한 걸까?”
“제 말이요!”
이제야 제 답답한 속을 이해할 수 있겠냐는 듯한 비올라를 눈빛으로 내리누른 라미아가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했던 건데. 라울이 말하는 초인 마법의 완성이라는 건, 진정한 의미로의 완성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진정한 완성이 아니라면?”
“정신의 관에 있던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초인 마법 같은 거죠. 효과는 있지만, 완전하지 않아 그 효과에 한계가 분명한 미완성의 마법들. “알지. 아는데, 라울이라고 그걸 모를까?”
물론 라울은 정신의 관에 없었다. 하지만 대신 그곳에 수많은 초인이 있었으니,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잘 알 것이다.
그런 라울이, 그리고 바벨이 ‘초인 마법의 완성’을 말하고 있다면 단순한 착각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간단히 말해, 실전 배치된 마법은 정신의 관의 그것과 위력과 완성도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에 그리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이트 타블렛은 우리가 가지고 있단 말이죠. 현실적으로 이게 없으면 초인 마법의 완성은 힘들어요. 아니, 절대 불가능해요. 그게 가능할 것 같았으면 탑주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회수하려고 했겠어요?”
“그게 또 그렇기는 한데…………….”
“거기다 바이트 타블렛을 해석한 결과도 그랬단 말이에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팔짱을 꼈다. 라미아의 해석 결과도 그렇고, 정신의 관 당시 탑주의 반응을 봐도 바이트 타블렛의 중요도는 확실하다. 그럼 어느 쪽 말이 맞는 걸까.
“혹시 바이트 타블렛을 대체한 것은 아닐까요?”
일리나였다.
“어, 그건…….”
가능한가? 가능성이 있나? 초인 마법의 완성이 사실이라면, 가장 확률 높은 가정이기는 한데.
이드의 눈이 답을 찾아 라미아를 향했고.
절레절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뿐만 아니라 짜져 있던 비올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펄쩍 뛰었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소리・・・・・・ 아니, 일리나 님이 그렇다는 게 아닙.. 크악!”
빠악!
항상 성급한 발언은 실수를 부르기 마련. 그걸 깨달은 비올라였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그의 말보다 이드의 손이 빨랐다.
이드는 기어코 비올라의 코에서 쌍폭포를 터트리고는 수건을 한 장 더 꺼내 주었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넵. 실수였습니다. 아무튼, 바이트 타블렛의 대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이트 타블렛은 단순한 아티팩트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니까요. 그리고 이 상징에는 오직 하나라는 유일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 실수를 아는지, 이번에는 별말 없이 코를 틀어막은 비올라였다. 비록 코맹맹이 소리가 나긴 했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비도, 대체도 있을 수 없다는 거로군.
“어지간한 의식이라면 가능해요. 상위 호환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새로운 진리를 세우는 작업이거든요. 바이트 타블렛이 아니면 안 돼요.’
“정말 안 돼? 절대?”
“정말에 절대. 거기에 더해서 무조건이에요.”
라미아 역시 비올라의 말에 더해 바이트 타블렛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냐는 말을 꺼내기 미안할 정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비올라뿐 아니라 라미아까지 이렇게 강하게 말하자 이드도 그쪽은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할 때였다.
“그 무조건이 통하지 않을 상대도 있지 않을까요? 혼돈의 파편 같은.’
일리나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녀의 입에서 ‘혼돈의 파편’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이드는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혼돈의 파편, 그놈들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으로 하여금 이전에는 있지도 않던 초인을 만들어 내게 한 원흉. 세상이 만들어질 당시에 태어난 태초의 존재. 멸망 그 자체. 과연 이들에게도 세상의 일반적인 법칙이 통할까, 하고 묻는다면 우선 고개부터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왜 진작 이 문제에 혼돈의 파편을 연관시킬 생각을 못 했을까?
혼돈의 파편이 미완의 마탑에 관여하고 있다는 건 메르시오를 통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을 텐데!
“어때, 바이트 타블렛 문제에 이놈들이 관련된 거라면. 그래도 불가능할까?”
“당연하죠. 무조건 불가느읍!”
이드의 말에 생각할 것도 없다며 입술을 나불거리려던 비올라는 라미아가 그 입에 박아 넣은 수건을 물고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대신 라미아가 한참을 고심하더니 어렵게 말을 이었다.
“모르겠어요.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데, 혼돈의 파편이라는 존재가 너무 법칙과 어긋나 있어서. 어쩌면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비틀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어요.”
“결국 절대 불가능은 아니라는 거지?”
이드의 물음에 라미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는 그쯤에서 그 가능성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두고, 일리나를 보며 물었다.
“일리나는 왜 혼돈의 파편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간단해요. 미완의 마탑에서 얻을 건 초인 마법 말고는 없으니까요. 인간도 아니고 혼돈의 파편이잖아요.’
“그렇…… 죠?”
‘인간이 아니고 혼돈의 파편’이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욕심과 욕망이다.
혼돈의 파편은 보석도, 권력도, 하다못해 명예에도 관심이 없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그들 존재의 목적인 세상의 멸망뿐이다. 카논의 대륙 통일도 그 과정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혼돈의 파편이 미완의 마탑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없다.
미완의 마탑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보통 다른 마탑에, 카논에 더 많다. 그러나 오직 미완의 마탑이 가진 거라면, 단 하나. 초인 마법뿐이다. 그리고 바이트 타블렛.
만약 라울의 말처럼 진짜 초인 마법이 완성된 상태라면?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에 혼돈의 파편이 개입한 것이 맞는다면?
“그럼, 혼돈의 파편의 목적은 뭘까요? 초인 마법은 미완의 마탑에서 완성한 것 같은데. 단순히 그런 일에 혼돈의 파편이 그렇게까지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아직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볼 순 있지 않을까요? 무언가 혼돈의 파편이 원하는 바가 있고, 그건 초인 마법에 관계된 일이다. 하나 미완의 마탑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혼돈의 파편이 원하는 목적을 이뤘는지는 알 수 없다.”
“왜 알 수 없죠? 초인 마법은 이미 완성된 상태잖아요.”
“그 완성을 아직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그게 진짜라면, 더 굉장한 위력의 마법을 실전 배치하지 않았을까요?”
이드는 일리나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긴, 시시한 위력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이지는 않겠네요. 자신들을 영입해 가라던 탑주였으니까. 그 성격에 초인 마법을 완성했다면………… 어쩌면 세상에 당당히 발표했을지도요.”
이드가 만났던 탑주는 초인 마법에 대한 열망과 집착이 굉장했다.
또한 대담했으며, 명예욕도 높아 보였다. 그런 인물이 마법 역사는 물론이고 대륙 역사에 이름을 박아 넣을 업적을 이뤘다면, 지금처럼 숨어 있지 않고 당당히 세상에 대고 외쳤을 것이다.
새로운 마법이 세상에 나왔노라고!
무엇보다 이런 선포는 자신들을 악의 흑마법사로 선포하고 토벌하려는 제국에 맞설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었다.
새로운 마법의 계파가 탄생했으며, 내가 초인 마법의 종사다!
한데 이런 선포가 없다는 것은.
“역시 초인 마법이 완벽하게 완성된 상태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겠네요. 아마도 완성 직전?”
자신감 없이 내뱉은 말.
하지만 자신의 그 한마디가 완벽한 정답임을, 정작 말하는 이드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