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26화
1261화
초인 마법이 아직 미완성일 수 있다.
혹은 혼돈의 파편이 초인 마법의 완성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
가설은 여러 가지 나왔으나, 어떻게 당장 손을 써 확인할 수는 없는 일들.
그렇기에 변하는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얘기들이 오갔으니 더더욱 영혼의 관으로 가야만 했다. 가서 확인해야 했다.
정말 바이트 타블렛 없이 초인 마법이 완성된 건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돈의 파편이 손을 썼는지.
만약 진짜 그들이 개입했다면 과연 무엇을 노린 것인지도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연구실에 내려온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해서 이드는 영혼의 관 동행에 관해 비올라에게 전하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끔 준비하도록 했다.
“뭐, 혹시라도 원하지 않으면 연구실에 남아 있어도 되고.”
“무슨 말씀을! 가야죠. 당연히 제가 가야죠! 가서 바벨의 눈이 멀었다는 걸 확인시켜 줄 겁니다. 내가 없는데 초인 마법 완성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죠. 크하하하하하!”
앞서 초인 마법 완성이라는 말에 한번 뒤집어졌기 때문일까.
‘영혼의 관에 직접 갈 수 있다’는 소식에 비올라는 그야말로 희희낙락.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놀이공원에 가자는 말이라도 들은 어린아이 같았다. 뭐,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귀엽기는커녕 무대 조명처럼 정신없이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끔찍할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 얘기도 다 전했겠다. 우린 그만 올라갈까?”
그 모습을 더 보고 있기 힘들어진 이드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데 라미아가 그런 이드와 일라나에게 손짓했다.
“전 남아서 할 일이 있으니까, 두 사람만 먼저 올라가세요.”
“뭔지 몰라도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하지? 지금은 저 정신없는 인간 때문에 제대로 집중이나 되겠어?”
“괜찮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조용히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천천히 해도 되는 일도 아니고.”
이드는 그와 함께 라미아의 눈이 바이트 타블렛을 향하는 것을 봤다.
“바이트 타블렛? 그건 이미 충분히 살피지 않았어?”
게다가 그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었다. 특히 비올라의 경우는 잠시도 거기서 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는 핥아서 맛까지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래도 핵심 구성에 대해서는 해석이 거의 끝이 나 있었기 때문에, 연구 속도가 이전처럼 나지는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바이트 타블렛을 그렇게까지 잡고 있지는 않았던 라미아다.
“그랬는데, 상황이 변했잖아요. 바이트 타블렛은 원래 세 개가 한 쌍이니까, 다른 것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면 여기에도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커요. 일종의 표식 같은. 그걸 살펴봐야겠어요.”
“흠. 알았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부탁할게.”
이드는 라미아를 살짝 안아 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하나 그는 내심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라미아가 여태 바이트 타블렛을 완전히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게 이제 와 갑자기 튀어나오긴 어려울 테니 말이다.
대신 말리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예상이 그렇다는 거고, 꼼꼼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이드가 라미아를 연구실에 남기고 저택으로 올라가는 사이.
연무장에서는 갑자기 시작된 훈련이 한창이었다.
그것도 무려 검후가 주관하고 지켜보는 가운에 벌어지는 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좀 전까지 시답지 않은 수다로 긴장이 풀려 있었을 텐데도 은색 기사들은 사소한 실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시작된 훈련의 원인.
“……”
해쉬와 바인은 검후 옆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석상.
이런 그녀들에게 검후가 내린 명령은 하나였다. 훈련 중인 기사단의 주요 진형들을 머리에 집어넣을 것.
그러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검후의 존재에 단단히 긴장해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이들이, 과연 훈련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조차 의문인데. “해쉬 경과 바인 경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 저 많은 길목을 외워야 하는 일이니.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러워 마라. 숙지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면, 두 사람은 초인들을 최후방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임무를 맡으면 될 일이니.”
신입들에게 과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온화한 말투.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에 해쉬와 바인은 한발 늦게 두 눈을 부릅떴다. 말이 좋아 최후방이지, 결국 전투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지 않은가. 동료가 된 은색 기사단과 검을 들고 함께 싸우지도 못하고, 뒤에서 보호나 받고 있어야 한다고?
검을 들지 못할 부상을 입은 것도, 특별한 임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외우겠습니다!”
“네. 절대로 외웁니다. 최후방으로 물러나는 그런 일은 절대 생기게 하지 않겠습니다!”
자존심이 있지, 그런 꼴을 당할 수는 없다.
두 기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곤 기사단의 모든 진형을 그대로 가슴에 새기겠다는 듯 두 눈을 있는 대로 부릅떴다.
이런 모습을 검후는 흡족하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자신한다면 믿어 보겠다.”
단순히 지켜볼 뿐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듯 몇 마디 말을 더한다. 그 모습은 마치 의욕 만만의 어린 조카를 지켜보는 이모의 눈빛, 그것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의욕에 불타는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은색 기사단의 훈련은 온종일 끝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누군가는 바쁘게, 누군가는 힘들게, 또 누군가는 여유롭게 길지 않은 기다림의 나날이 흘렀다.
정확히 42시간.
이틀 후, 라울이 영혼의 관 공격을 위해 출발을 알려 왔다.
“으흐흑.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최후방이라니. 최후방이라니. 최후방이라니. 최후방이라니!”
그에 가장 절망한 이들은 해쉬와 바인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은색 기사단 검진 암기는 실패했다. 수많은 길목을 다 외우기엔 이틀은 너무 짧았던 것.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니까, 너무 우울해하지 말아요.”
“그럼, 그럼. 일단 이번 임무에서 완전히 빠진 것도 아니잖아요.”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나서 기사단의 새로운 막내들을 위로했다. 그렇게 기사들이 마지막으로 검의 상태를 확인하고 파츠 아머의 끈을 조이는 둥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이드는 라울을 상대하고 있었다.
“오늘입니까?”
“오늘 출발해서 내일 블레인 영지 경계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내일까지 도착하기엔 너무 먼 거리인데?”
“당연히 이동 방법은 저희 쪽에서 해결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특히 검후님은 특별히 신경 써서 모시겠습니다.”
“기사들의 수가 적지 않다. 믿어도 되겠지?”
“제가 어디 그런 자신도 없이 말을 꺼낼 사람이겠습니까. 하하.
이드는 과연 라울이 어떤 이동 수단을 준비했는지 기대가 되었다.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단순히 말을 타서는 이동이 불가능했다. 많은 인원을 옮길 수 있는 초인기라도 있는 걸까.
‘아, 혹시 그건가? 뭐, 성능만 좋으면 방법이야 상관없지만.’
짧은 순간 이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건 일전 숲에서의 전투였다. 공간을 비집고 투하하듯 하늘에서 떨어지던 초인들.
이드는 기억 속 한 장면을 뒤로하고 말했다.
“이동이야 처음부터 바벨에 맡겼던 일이고. 다른 준비도 끝이 난 겁니까? 듣기로 마스의 병력이 블레인 영지를 둘러싸고 있다던데.”
“흐, 어째서 준비에 이틀씩이나 걸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실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는 라울에 이드는 더 물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곧장 영혼의 관으로 들어가면 되는 모양이군요.”
“아무렴요. 그 때문에 준비한 건데요. 아, 물론 매끄러운 문제 해결에는 황제 폐하께서 큰 도움을 주셨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히는 바입니다.”
“음? 황제가 말인가?”
아무래도 라울이 다시 방문하기를 기다리는 사이. 바벨과 황제 사이에 어떤 교류가 오갔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습니다. 보자, 아마 지금쯤이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
“흐음.’
손에 들린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서신이 검왕의 손에 들어가고 벌써 한 시간.
추적조 대장 우그라임은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해 먼저 입을 열고 말았다.
“검왕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흐음.”
“검왕님!”
“자네에게도 따로 명령이 내려왔나?”
바라던 명령은 아니지만 한 시간 만에 열린 말문이 그저 반가운 우그라임이 급히 답했다.
“네. 검왕님의 지휘를 받아 최대한 피해 없이 제국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상하군. 이상해.”
“…..무엇이 이상하단 말씀이신지?”
“어째서 자네에게 내 지휘를 받으라 하느냔 말이야. 추적조의 대장은 엄연히 자네인데.”
“…..”
우그라임은 차마 그 당연한 일이 어째서 이상하냐는 말을 끝내 뱉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말이 대장이지, 검왕이 합류한 시점에서 실질적인 지휘권은 이미 모두 그에게 넘어갔다. 실제 여태 추적조를 지휘한 것도 검왕이었다.
그걸 이제 와 이상하다고 말하면 무어라 답해야 하는가.
물론 우그라임은 그에 대해서는 정말 티끌만큼의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검왕의 지휘 아래서 움직여 보겠는가.
“검왕님의 지휘를 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추적대의 피해를 줄이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아닐는지.”
“……흐음.”
“그리고 명령대로라면 곧 움직여야 할 시간입니다. 부디 하명해 주십시오.”
“일단…… 출발 준비를 하게.”
“충!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어렵게 재촉의 말을 꺼낸 우그라임은 결국 원하던 말을 얻어 내고는 날 듯이 막사를 나갔다. 그러자 검왕 뒤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사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주군.”
“음. 문제라면 문제이고, 아니라면 아닌데. 읽어 보겠느냐?”
묻는 말과 달리 이미 손에서 떨어지는 서신을 서둘러 받아 낸 기사가 서신의 내용을 읽어 내렸다.
그것은 황제의 명령서였다. 검왕에게 명령서를 내리려면 황제의 이름 정도는 들어가야 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마스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시기가 머지않았으니, 적진에 있지 말고 서둘러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추적조의 무사 귀환에 대한 부탁까지.
“송구합니다. 주군께서 무엇을 문제라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게 문제야.”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걸까. 검왕을 모시던 기사는 순간 혼란이 일었다. 하나 그 혼란은 길지 않았다.
때마침 밖에서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조, 존 워스 님?”
“……뭣?”
검왕이 그렇게 찾던 이름.
기사는 황급히 몸을 돌렸고, 그 뒤에 않은 검왕의 눈이 소리 없이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