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27화
1262화
존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었나.
밖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당연하다. 기사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가 봐. 그리고 데려와.
“충.”
짧은 명령을 받은 기사가 달리듯 막사를 나갔다.
언뜻 듣기에 앞뒤가 없어 보였지만, 기실 검왕의 지시는 둘이었다. 나가서 쓸데없는 소란이면 수습알 하되, 만약 정말 존이 나타났으면 그를 데려오라는 것.
과연 어느 쪽일까.
검왕이 막사의 입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싸늘한 안광이 쭉 뻗어 나온다. 혹시라도 누군가 아무것도 모르고 막사를 들어왔다면 그대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을 만큼 강렬한 눈빛이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조, 존 워스 님을 뵙습니다!”
웬 목소리가 또 한 번 존의 이름을 부른다. 더욱이 그 음성은 아까 막사를 나간 기사의 것과 똑같았다.
“…..”
검왕이 소리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지고 증발해 버린 친구였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찾을 수 없던 동료였다.
그런 그가 마스 군과 대치 중인 자신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도 황제로부터 철수 지시를 받은 이 시점에? 우연일까?
‘미친, 우연일 리가 없잖아!’
황제의 지시를 알고 온 것일까? 마스와 대치 중이라는 사실은?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까?
갑작스러운 존의 등장에 검왕은 명료하던 머릿속이 갑자기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필 그가 지금 나타난 사실과 현 상황이 합쳐지며 모든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사에 검왕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중, 불쑥 웬 손 하나가 나타나 막사의 입구를 가린 천을 열어젖혔다.
“하하. 잘 지냈…… 이런. 자네, 굉장히 무서운 눈을 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던가?”
손의 주인은 존이었다.
검왕의 안광을 마주한 그는 가슴을 부여잡지는 않았지만, 웃던 것을 멈추고 약간의 농담을 섞어 말을 건넸다. 그러고는 검왕이 뭐라 답하지 않았음에도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빈자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차지하고 앉았다.
과연 검왕의 침묵 앞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정작 검왕에게 있어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존 워스는 그 앞에서 스스럼없이 행동할 수 있는 둘 중 하나였으니까.
“어떨 거 같은가.”
“음~ 미안하다고 하면 되겠나?”
“방금 자네 말・・・・・・ 딱 마르텔 같았다는 것 아나.”
“세상에, 내가 그런 끔찍한 짓을 했던가? 하하하, 진심으로 사과하지.”
마르텔 같다는 말에 질색하면서도 웃음을 터트리는 존이다.
검왕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웃음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다. 자신이 야만의 나라까지 달려온 것이 다 누구 때문인데, 저런 태평한
소리라니.
이곳에 막사가 아니고, 소드 팰러스 자신의 집무실이었다면 크게 한 소리를 했을 텐데.
“거・・・・・・ 사과도 했는데, 화 좀 그만 풀지 그러나.”
“내가 화가 났다는 건 아나?”
“알지. 우리가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그걸 모를까. 얼굴만 봐도 알지. 지금 자네 낯빛이 딱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그 색이거든.”
“빌어먹게도 자세하군.
검왕은 헛웃음과 함께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짜증 났을 때의 얼굴색이라니. 과연 저 친구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걸 알아볼 수 있을까. 가족 앞에서도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좀처럼 없는데 말이다.
과연 친구라는 것일까. 자신은 존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검왕은 새삼 존 워스의 표정을 살폈다.
“자넨…… 얼굴이 좋군. 편히 쉬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보였다면 잘못 본 거야. 나도 나름대로 굉장히 바빴거든.
“궁금하군. 자넨 항상 느긋하지 않았나. 그런 자네가 무슨 일로 바빴단 말인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지. 지금은 그 정도로만 알고 있게.”
“…….”
대답을 회피하는 존 워스. 하나 검왕은 그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이 강요한다고 쉽게 답을 들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 목소리를 높일 때가 아니었다. 그간의 행적 말고도 존에게서는 아직 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좋네. 그건 다음에 듣기로 하지. 하지만 이건 답해 줘야겠어. 자네, 영혼의 관에 들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나?”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무엇 때문에 영혼의 관에 방문한 건가. 자넨………… 미완의 마탑에는 관심이 없던 것이 아니었나?”
미완의 마탑이 연구하는 것은 초인이다.
그래서일까. 평소의 존은 미완의 마탑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관심이 없기는 또 다른 친구인 마르텔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해 미완의 마탑에 대한 처리는 온전히 검왕의 몫이었다.
“이전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정신의 관에서 마탑의 마법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네.”
“갑자기 마법이라도 배워 보고 싶던가?”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만, 새로운 걸 익히기엔 아무래도 우린 너무 늙었지.”
“그럼 무언가?”
존 워스가 나이 들었음을 한탄하자 검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신들이 검으로 높은 경지에 올랐지만, 마법은 또 다른 이야기다. 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신 존 워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들의 마법을 본 나는 그것이 하루빨리 완성되길 원하게 되었네.”
“초인 마법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어째서?”
“내가 본 초인 마법은 완벽하진 못했어.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초인들에게는 매우 위력적이더군. 그때 생각했지. 온전히 완성되지도 못한 마법이 이러면, 완성된 상태는 어떨까? 진정한 초인 마법이 완성되면 저 사생아 같은 초인들을 모조리 끌어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흐흐.
“자넨 정말…….”
그의 섬뜩한 웃음에는 초인에 대한 끝없는 혐오감이 짙게 배여 있었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해하기 힘든 그 모습에 검왕은 잠시 말을 잊었다. 그에 존 워스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내가 이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좌우간, 그런 생각이 들던 차에 마침 마탑의 관주 하나가 죽고 남긴 유품을 우연히 얻게 되었으니. 어쨌겠나.’
“영혼의 관 방문은 그걸 돌려주기 위한 거였단 말인가?”
“그렇지. 나는 유품을 돌려준 후 바로 그곳을 떠났다네. 무엇을 걱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마탑의 인연은 방금 말한 것이 처음이자 끝이야. 내 맹세하지.”
‘맹세’를 언급하는 순간 가볍던 그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술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던 평범한 남자는 사라지고, 그야말로 온전한 철벽의 검왕이 그 자리에 현신한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검왕은 일단 한발 물러났다.
사실 뭐 하나 확실한 거 없는 존 워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지만, 더 닦달하기에는 그 반대 역시 근거가 미약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심을 온전히 거둔 것은 아니었다. 존 워스가 영혼의 관을 방문한 것은 이렇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한 행동에 대해서는 아직 해명된 바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해명은커녕 모두를 위한 일이라며 얼버무리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끝까지 존 워스를 추궁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존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도, 지금은 그럴 틈을 줄 때가 아니다. 대업을 앞두고 존이 돌아서서는 곤란해.’
존 워스는 누가 뭐래도 검왕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검왕이 대업을 꿈꿀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두 검왕의 지지와 신뢰와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중 하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니. 검왕은 존 워스가 떠날 것이 두려웠다. 그가 적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물론 대업을 꿈꾼다면 이 일을 이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 존 워스가 배신이라도 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기는 너무도 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갈등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고 싶었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확실해진 후에야 뚜껑을 열어야 했다. 어차피 정말 존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추궁으로 순순히 진실을 토해 낼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서로 비긴 것으로 하지. 당장 나로 인해 자네가 고생하고 있지 않나.”
“잊지는 않은 모양이군.”
“하하. 그걸 잊을 리가 있나. 내가 눈이 뒤집혀 일을 치긴 했어도 정신이 나간 건 아니라고.”
“후~ 그건 천천히 확인하든가 하고, 이제 당장 급한 대답도 들었으니, 이제 자네 용건을 말해 보게.”
“알고 있었나?”
“당연한 일 아닌가? 이곳이 우연히 지나다 들를 수 있는 곳은 아니잖나. 또한 상황이 상황이니, 어지간한 일이었다면 통신구를 사용했어도 되었을 테고. 내가 자네를 찾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알지. 좀 조용한 곳에 있다 나왔더니. 아주 난리도 아니더군. 용건도 용건이지만, 내가 여기까지 직접 달려온 데는 그 이유도 있네.”
“뭐, 그 문제는 자네가 나타났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말해 보게. 무슨 일인가?”
재차 재촉하는 검왕을 앞에 두고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던 존 워스는 곧 할 말을 정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일단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게. 만약에 말이네. 우리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면, 어떨 것 같나? 시작해 볼 생각이 있는가?”
낮은 목소리와 달리 존 워스가 꺼낸 말은 절대 쉽게 넘길 수 없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존 워스와 마주한 건 다름 아닌 검왕이었다. 그는 전쟁이란 말에도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조금 흥미를 잃은 반응이었다.
“전쟁을 틈타 대업을 이루겠다는 거라면 나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네. 하지만 그러기엔 마스의 전력이 너무 약해.”
물론 진짜 마스가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마스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보유한 강국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아나크렌 제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고작 마스와의 전쟁으로 흔들릴 정도로 제국은 약하지 않았다.
새롭게 등장한 초인 마법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전쟁을 해 봐야 답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겠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니 당연히 내가 말하려는 것도 마스와의 전쟁은 아니네.”
“그럼, 자네가 말한 건…….”
“카논이네. 아나크렌과 카논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