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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33화


1268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싸움을 붙이는 겁니다.”

“……누구와 누구를…….

“당연히 마스와 검왕이죠.”

이드가 산 아래 마스와 제국 측 불빛을 가리켰다. 저들 말고 여기 누가 있다고. 이런 모습에 이드의 두 아내를 제외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마스와 검왕.

마스의 정규군 대 제국의 추격대.

이들을 싸우게 만든다? 말은 쉽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드가 말을 이었다.

“라울 자작이 검왕을 움직이려 했던 이유는, 그를 미끼로 군을 영혼의 관에서 떼어 놓기 위해서였죠.”

앞서 라울이 말했던 사실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아마 같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아무리 제국 쪽에 검왕이 있어도, 전체적인 전력에서 압도적으로 마스가 유리하기 때문에 제국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밀린다는 거지, 딱 까놓고 말해서 뒤돌아 전력으로 도망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되면 마스도 그들을 쫓아 나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더해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영혼의 관에 신경을 쓰기도 어려울 터였다. 당장 눈앞에 검왕이 있는데 영혼의 관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괜찮을까요? 현재 마스와 제국은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그게 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될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제국을 향해 오만방자하게 나오는 마스에 심기 불편해하던 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들고 달려나갈 것이 뻔하다. 이드도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분명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어차피 벌어질 전쟁은 멈출 수 없지 않을까요.’

“영혼의 관이 없어지더라도 말입니까?”

마스에서 강하게 나오는 이유에는 영혼의 관과 초인 마법이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검왕이 철수 명령을 거부하고 남아 있는 이유가 뭘까 하는.

“…………놈이 전쟁을 원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검왕이 다시 언급되자 검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 황제의 명을 거역한 것만으로 죄가 무거운데, 거기에 더해 전쟁이 목적이라니. 확인된 것 없는 이드의 생각일 뿐이지만,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꺼낸 발언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과연 검왕이 저 자리를 지켜 얻을 수 있는 게 뭐겠습니까? 마스와 제국의 긴장감만 높일 뿐입니다.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결국 싸움은 이곳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제국이다.

아니, 마스 입장에선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할 벅찬 상대다. 하지만 이미 전쟁을 결정했고, 때마침 제국의 중요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드 팰러스의 검왕이 자국 땅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과연 이 시점에 마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자국 안에 들어와 있는 제국의 중요 전력인 검왕을 처리하는 것이다. 결코 얌전히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저 아래 마스의 정규군은 단순히 영혼의 관을 지키는 게 아니라, 검왕이 등을 보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검왕의 존재는 전쟁의 스위치와도 같았다.

“확실히 검왕 정도라면 그런 판을 벌일 수 있는 위인이긴 하지요.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그렇게 해서 검왕이 얻는 것이 있을까요?” 

이드는 라울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검왕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검왕의 명령 거부 사유가 전쟁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짐작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희에게 중요한 건 영혼의 관이니까요.’

검왕과 전쟁이라는 말에 잠시 머리가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관 공격이었다.

라울이 검후의 생각을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검후님.

“내 생각이 중요한가?”

“아무래도 이 일로 마스와 제국의 전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차라리 관계자가 없다면 나 몰라라 하고 일을 벌일 수 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해 사상자가 나오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늦든 빠르든 벌어질 일이었다고 하면 눈 딱 감고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제국의 관계자가 있다.

그것도 그냥 관계자가 아니라, 황실의 제일 큰 어른이 말이다.

“다른 방법이 있나?”

“궁리하면 없지는 않겠지만, 당장 명예 후작님의 것보다 효과적일 듯한 계획은 없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 네. 없는 것 같군요.” 

슬쩍 돌아보는 눈길에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그저 몰래 침입만 하는 거라면 방법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마스의 군을 떼어 놓는 일은 어지간한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게 아니라면, 영혼의 관에 더해 저기 있는 마스의 군대까지 상대할 작정을 하는 수밖에.

‘이드와 라미아가 있으니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검후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제국이 이드의 짐을 덜어 주진 못할망정 더해서야 되겠는가.

“다른 수가 없다면 명예 후작의 계획대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검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라울은 즉시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저놈들이 옆에서 누가 싸우란다고 싸울 놈들이 아니지 않은가. 싸우긴커녕 무슨 속셈이냐고 칼 들고 달려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이쪽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싸움을 붙일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쉴라가 그런 라울과 머리를 맞댔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는 검후 곁으로 다가갔다.

“정말 괜찮겠어?”

“그렇게 물으실 거면서 싸움을 붙이잔 말을 꺼내셨어요?”

검후가 피시시 웃어 보인다.

“말 그대로 어떻게든 시작될 전쟁이니까, 좀 빨리 시작한다고 어떨까 싶고. 무엇보다 여기 오래 있을 것도 아니잖아?”

“그렇죠. 오래 있을 곳은 아니죠.”

검후도 있고, 라울도 있는 만큼 밖에서 힘을 써 줄 곳은 많다. 하지만 이미 반쯤 눈이 뒤집힌 마스를, 그것도 영혼의 관을 지키고 있는 군을 움직일 방법은 없다.

거기에 이드도 언제까지 이곳에 묶여 있을 수는 없다.

전쟁.

그 가볍지 않은 주제를 계속 언급하기 힘들었는지 검후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의외네요.”

“응?”

“스케스틱 님이요. 저는 당연히 동행하실 줄 알았거든요.”

이번 영혼의 관 공격에 스케스틱은 동행하지 않았다. 초인과 초인 마법, 그리고 바이트 타블렛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모습을 생각하면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혼돈의 파편까지 관련이 있지 않던가. 물론 스케스틱이 정말 관심이 없어 동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는 어지간해선 수도를 비우는 건 피해야 하니까.”

“이드 님의 예감이 그렇다는 거죠?”

“예감도 그렇지만, 카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암살 사건이 꺼림칙하잖아. 아나크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피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스케스틱 정도는 있어야 하고.”

스케스틱이 동행하지 않은 이유. 그건 이드의 부탁에 의해서다.

“이드 님은 카논의 암살 사건이 혼돈의 파편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확신은 없지만. 분명 어떤 의도가 있어. 심상치 않은 느낌이야. 그런 만큼 미리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스케스틱도 필요하면 언제든 와 줄거고.”

스케스틱이 안티로스에 순순히 남은 까닭은 이드의 부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영혼의 관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미아의 존재가 그런 이동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드래곤의 능력이라면 어지간한 차원진도 무시하고 다닐 텐데, 거기에 라미아가 관제탑의 역할까지 해 준다면 그야말로 제집처럼 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되는 거다.

말 그대로 혼돈의 파편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 숨겨 둔 한 수랄까.

일리나에 라미아, 그리고 스케스틱이라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일행을 보호,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사소하고 소소한 잡담을 주고받으며 잠깐 시간을 보냈을 때다.

“작전 계획이 끝났습니다. 한번 보시죠.”

라울의 말에 돌아본 곳에는 그와 쉴라, 그리고 어느새 끼었는지 라미아가 이드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장 고양이처럼 우쭐해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그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모양이었다.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바위 위에 죽죽 그어진 선과 화살표들 속에 유독 붉은색으로 보이는 선이 굵직하게 바위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 “에헴, 이게 제 역할이에요.”

아무리 봐도 라미아가 우쭐할 만한 스케일은 아닌데. 하지만 이드는 이런 생각을 얌전히 속으로 삼켰다.

아무렴 어떤가. 본인이 보람을 느끼고 좋으면 된 거지.


스스스스.

새벽이 머지않은 시간.

스멀스멀 일어난 안개가 순식간에 사방 수 킬로미터를 뒤덮었다.

“웬 안개가?”

블레인을 앞에 두고 진을 친 지 수일째. 하지만 안개를 본 건 처음이었다. 원래 안개가 자주 끼는 새벽에도 이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보초를 서고 있던 기사는 별달리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블레인 영지의 영지민도 아니고,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좁은 지역이 아니라, 주변 지역 전체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아는 범위에서 이만한 안개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안개가 시야를 차단하고 있기에 좀 더 경계의 수위를 올렸다.

비록 수일째 대치 중인 마스가 갑자기 공격해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닌가.

보초를 설 때 시야를 가리는 게 생기면 무조건 경계해야 했다. 기사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열심히,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오늘도 조용하다고 생각하며 안개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옷깃이 스치는 소리. 섬뜩한 감각에 기사가 검 자루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에 기사의 이어질 행동을 막아서듯 어깨에 단단한 손이 올라오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란 피우지 말도록.”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은 검왕이었다.

그를 본 기사는 곧바로 인사를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검왕이 심상치 않은 눈으로 안개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왕의 말,

“아무래도 마스의 인내심이 다한 모양이군. 경은 지금 당장 다른 기사들을 깨우도록.”

“……!”

예감했던 말을 들은 기사는 검 자루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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