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39화
1274화
“무한성?”
“이름은 거창한 것 같은데, 어떻게 봐도…………….”
“성이 아니라 탑인데?”
어딜 어떻게 봐도 멀쩡하게 생긴 탑을 두고 성이라니. 뭐냐, 그 바보 같은 이름은?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에 비올라는 억울해했다.
“왜 날 봅니까. 내가 붙인 이름도 아닌데.”
비올라는 있는 힘껏 항변했다. 무한성 개발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이름을 붙일 권한이나 위치에 있지도 않던 그였다.
“그래서, 무한성이 정확히 뭐지?”
이드는 그런 비올라의 반응을 대충 한 귀로 흘렸다.
비올라는 쉴라에게 맞은 등허리를 슬슬 문지르며 답했다.
“솔직히 저도 이름만 들어 본 정도지, 자세히 아는 건 아닙니다. 무한성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관에서 연구하던 주제였으니까요.”
“잡설이 길다. 아는 것만 말해.”
아무리 미완의 마탑 소속이었다고 해도, 마탑의 대소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간단히 말해서 무한성은 탑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체계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데? 저 상태에서 공격 마법이라도 쏟아져 나오나?”
아닌 게 아니라, 그극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마탑에선 당장이라도 불꽃이 튀거나 번개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누가 저 모습을 일반적이라고 생각할까. 정상적인 건축물이라면 저럴 수는 없다. 놀이 기구도 아니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저렇게 움직여 댄단 말인가.
마법적인 조치가 따로 되어 있지 않다면 현재 마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상당한 스릴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방어 체계라니까요. 무한성은 그런 공격적인 형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부 공간을 구역별로 나눠 차단, 침입자를 막지요.”
“내부를 미로화한다는 말인가? 정신의 관처럼?”
정신의 관에도 미로화된 구역이 있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게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복잡한 곳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정신의 관과는 다릅니다. 그땐 공격을 위한 수단의 한 부분이었고, 무한성은 적의 침입 그 자체를 막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겁니다.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어째 설명이 점점 부실해지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이름만 들어 본 정도라고.”
“그랬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너무하잖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첫눈에 그렇게 알아보지?”
“아악! 진짜 억울하게 왜 그러십니까. 제가 지금에 와서 이드 님을 속일 리가 없잖아요. 전 진짜 사실대로 말했다니까요.”
비올라가 가슴을 쿵쿵 쳤다.
여간 억울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에 재미를 느낀 이드가 피식 웃어 버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비올라 마법사의 설명은 모두 들으셨을 테고. 어떻습니까. 무한성이라는 것이 발동했으니, 안에서도 우리의 침임을 알아차렸겠지요?”
“모를 수가 없죠.”
“저런 탑 안에서 세상 모르고 태연하게 자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긴 하겠지만요.”
아무렴,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탑과 같이 회전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한들 건물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상태다. 저런 소란이 일어났는데 과연 모를 수가 있을까.
입맛을 다시는 몇몇과 같이 이드도 상당한 아쉬움을 느꼈다.
“탑 안까지는 편하게 진입할 수 있을까 했더니. 아쉽게 됐어요.”
“결계를 이렇다 할 방해 없이 무난히 넘은 것만 해도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하죠. 그보다, 슬슬 뭔가 반응이 나와도 나올 텐데.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지요, 라울 자작?”
이드의 말에 라울보다 플레타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하얀 치아를 보이며 웃어 보이고는 자신의 부대를 향해 손짓했다.
“은색 기사단은 편안히 있으시면 됩니다. 초인 마법이 발동되기 전까지는 우리 플레타 부대가 앞장설 테니까 말입니다.”
그 말대로, 그의 명령을 받은 부대원들이 마치 기사처럼 진형을 갖추며 일행들 앞에 섰다.
그 모습에 검후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쉴라가 은색 기사단을 한걸음 뒤로 물렸다.
누가 뭐래도 이번 영혼의 관 습격은 바벨이 주축임을 인정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가 끝나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탑의 틈에서 검은 파장이 물에 물감이 퍼지듯 새어 나왔다.
그건 색은 있지만, 안개처럼 형태는 없었다.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결계와 마탑 사이의 공간을 채워 버렸다.
그건 공기와 같아 방패로 막을 수도 없었다.
어느새 더욱 어둡게 변한 공간. 그러나 딱히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검은 기운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이는 비올라였다.
“음차원 마나 역장? 이제 와서?”
“이게 그대가 결계에 쓰인다던 그것인가? 과연 거부감이 들기는 한다만.”
이미 일행이 모두 결계를 넘은 시점에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쉴라는 의문을 표했다.
비올라의 말대로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거부감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
자신의 기사들이나 초인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그걸 이제 와서 풀어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
그리고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검은 기운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곧 나타났다. 공간을 채울 때는 옅었던 검은 기운이, 바닥에 깔리자 마치 땅 위에 검은 천을 덮어 놓은 것 같이 어둡게 보였다.
추욱.
그와 함께 땅에 뿌리내리고 있던 초목들이 순식간에 시들어 죽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이 땅의 주인이 하는 일이었거니와, 그런 작은 것에 신경 쓰기에는 곧이어 벌어진 현상이 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르르륵.
쿠룩. 쿠룩.
검은 땅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눈코입.
그 모습은 마치 무엇인가가 물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회색 피부에 날카로운 엄니. 커다란 글레이브와 방패를 든 그레이트 오크.
그레이트 오크보다 두 배 이상 큰 키와 덩치에, 거목을 통째로 뽑아 들고 온 것 같은 커다란 몽둥이를 든 오우거들.
그리고 그 거대한 오우거를 태우고 있는 이름 모를 마수까지.
그랬다. 가라앉은 어둠에서 솟아오른 것은 몬스터 부대였다. 그것도 본능대로 날뛰는 게 아니라, 잘 훈련된 듯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 놈들의 노란 눈에서 뿜어지는 살기를 마주했다면 그 즉시 오줌을 지리고 기절했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허, 겨우?”
“설마 몬스터 따위로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미친놈들이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 중 겨우 몬스터 따위에 긴장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어떤 것이 몰려와도 상대해 주겠다며 앞에 섰던 플레타와 그의 부대원들은 무시당한 듯한 묘한 기분까지 느껴야 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한때 숲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오우거와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 앞에 고작 몬스터를 세워 놓다니.
무엇보다 언제 적 그레이트 오크고, 오우거란 말인가. 오우거가 숲의 제왕이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다.
무공으로 인해 인간의 기본 무력이 급격히 높아진 후 오우거는 모두 산맥 깊숙한 곳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으며, 오크도 인간을 피해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을 공격하는 몬스터가 전부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옛날보다 보기 힘들어진 것은 확실했다.
그런 세상에 몬스터 부대라니. ‘겨우’라는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드는 이런 플레타 부대의 반응을 바라보다 비올라를 찾았다.
“저 몬스터들, 혹시 뭔가 특별한 놈들인가?”
“무슨…….”
“초인기를 쓸 수 있는 몬스터들이냐는 말이야.”
초인기 이식은 미완의 마탑의 연구 주제 중 하나였다.
비올라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관이나 정신의 관이라면 몰라도, 영혼의 관에서 그런 거친 수법을 사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단순한 시간 끌기용이라는 말이로군.
“그렇지 않을까요? 저 정도만 되어도 어지간한 일반 병사들은 쉽게 몰살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초인기를 가진 몬스터’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플레타가 흐흐 웃었다.
“이놈들아. 고작 몬스터 따위로 우리를 상대로 시간을 끌겠단다.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확인시켜 주자! 쓸어버려!”
“와! 가자!”
“모조리 멱을 따!”
“오랜만에 오우거 피 맛 좀 보자!”
플레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대원들이 고삐 풀린 들소처럼 뛰쳐나갔다.
그렇게 모든 초인들이 몰려가자 남은 바벨의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은색 기사단 앞을 지키고 선다.
그에 스폴이 슬그머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묻는다.
“그런데, 몬스터를 이용해서 시간을 끄는 거라면… . 설마 저래 놓고 도망치려는 건 아니겠죠?”
“저들이 마법사라면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폴의 말에 바벨의 마법사가 비올라보다 먼저 답했다.
그의 표정은 아주 단호했다.
“싸움에 나선 마법사가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연구실입니다. 그런 마법사들이 마탑을 두고 도망을 간다니요. 마법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무엇보다 바이트 타블렛이 여기 있는데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흐흐흐. 암요, 절대 못 가지요.”
음흉하게 웃어대는 비올라.
그 모습을 보던 스폴은 쉴라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정말. 괜찮겠어요?”
“…..”
한편, 몬스터 부대를 앞에 두고 여유롭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을 마탑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바로 영혼의 관 부관주, 이더비히였다.
그녀는 잠에서 막 깨어난 듯,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상태로 잠옷을 걸친 몸을 로브로 감추고 있었다.
“언제…….”
“죄송합니다. 마스를 믿고 너무 경계를 소홀히 했습니다.”
그런 이더비히의 뒤로는 어느새 달려온 몇몇 영혼의 관 주요 마법사들이 서 있었다.
“지금은 책임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저들이 누군지 알아냈습니까? 제국인가요?”
현재 영혼의 관의 토벌을 공식화한 곳은 아나크렌 제국이 유일했다. 다른 곳에서는 관심이 있어도 제국의 눈치를 봐서 쉽게 손을 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뿐인가.
그런 제국에 대응해 마스가 영혼의 관을 끌어안겠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영혼의 관을 공격할 세력이라면 현재 제국이 유일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복식이나 전력 구성으로 보아 제국은 아닙니다.
“그럼 저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제국이 아니면 어떻게 아무런 충격도 없이 결계를 넘을 능력이 있는 거죠?”
“아무래도 초인 전력을 봐서…………… 바벨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