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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42화


1277화

괜히 말을 꺼냈다.

비올라가 펄펄 뛴다. 그러다 바이트 타블렛이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냐는 거다. 틀린 소리가 아니다.

자칫 힘으로 누르다 여러모로 복잡해질지 모르는 일. 역시 이럴 땐 정공법이 최고다.

이드는 밖에서부터 공략해 보겠다는 생각을 깔끔히 접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비올라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인데 어쩔 수 있나.

그 사이.

플레타 부대가 재정비를 끝냈다.

플레타가 그런 부대의 상태를 살핀 후 명령했다.

“오탄, 부대를 둘로 나눈다.”

“예, 알겠습니다. 전 부대, 메이슨을 기준으로 갈라진다. 실시.”

“실시!”

부대장 오탄의 명령에 따라 플레타 부대는 반으로 쪼개졌다. 평소 그에 관한 훈련이 된 듯,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부대를 나누는 겁니까?”

“아무래도 전투와 명령의 신속성을 위해서 그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러는 편이 사이사이에 기사단을 배치하기에도 좋을 겁니다.”

“바벨의 작전이 그렇다면, 저희도 그에 따르도록 하지요. 스폴 경.”

“네.”

플레타와 몇 마디를 나눈 쉴라의 명령에 따라 은색 기사단도 두 개의 조로 나뉘었다. 그렇게 갈라진 기사들은 각각 두 조로 나뉜 플레타 부대의 후방에 배치되었다.

은색 기사단의 주 임무는 초인들이 불의의 공격으로 무력화되었을 때 플레타 부대를 방어하는 것인 만큼, 그들의 움직임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순서는 자연스레 가장 앞에 플레타 부대가 서고, 그다음이 은색 기사단. 다시 플레타 부대, 그리고 가장 끝에 은색 기사단이 되었다. 확실히 그렇게 배치가 되자 긴급 상황에서 은색 기사단이 좀 더 신속하고 입체적으로 움직이기 쉬워졌다.

이드가 그 모습을 보다 물었다.

“공격 방향을 각각 달리할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부대는 편의상 둘로 나눴을 뿐이고, 공격로는 하나로 통일합니다.”

공격대는 하나뿐이라는 말이었다.

이드는 검후와 라울을 한번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플레타 부대와 기사단을 합하면 적지 않은 인원인데. 굳이 무리해서 전부 끌고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공격대를 둘로 나눈다면 좀 더 빠르게 공략 가능할 텐데요.”

정신의 관 때도 다양한 방향에서 토벌이 진행되었다.

하물며 이곳은 마스의 땅, 영혼의 관을 느긋하게 공략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당장만 해도 검왕을 쫓아간 타란 백작과 그의 군이 언제 돌아올지 모를 상태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계획했으니 명예 후작께서는 부디 저희를 믿고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결코 바벨의 작전을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영혼의 관 습격은 엄밀히 바벨의 주도로 진행되었고, 이드 역시 그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작전이 진행되는 사이사이 나름대로 필요한 부분을 챙기긴 하겠지만, 결코 자신이 먼저 나서 이끌 생각은 없다.

이런 정중한 이드의 반응에 플레타가 곤란한 기색을 보이더니, 곧 라울을 불렀다. 말주변이 부족해서인 듯했다.

“속도도 중요하나, 이번 작전의 핵심은 신속보다는 정확성입니다. 서두르다가 오히려 중요한 걸 놓쳐서는 곤란하니까요.”

“너무 늦어지면 외부 전력이 들어오거나 도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마스가 간섭해 올 일은 없을 겁니다. 타란 백작 역시 검왕을 노리는 이상 쉽게 말머리를 돌리지 않을 것이고요.”

꽤 자신만만한 대답이 아닌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는 보이지 않는 게, 아무래도 마스가 움직이지 않도록 바벨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설령 마스가 알게 된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거라는 염려는 적다. 아무래도 주요 전력이 모인 마스의 수도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전력을 파견해 봤자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전투는 이미 끝나 있을 것이다.

“또한 통신 방해와 함께 외부에 인원을 배치하고 있으니, 도망자에 관해서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어차피 길어 봐야 만 하루. 영혼의 관을 정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벨의 자신감입니까? 라울 자작의 자신감입니까?”

“둘 다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검후님, 명예 후작님과 두 분 부인. 그리고 은색 기사단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대라니.

이드는 그런 라울의 말을 웃어넘겼다. 어차피 말만 저렇게 할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주도하는 것이 바벨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 사람이 바로 그이지 않은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자신과 은색 기사단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내심은 오로지 바벨의 힘만으로 영혼의 관을 정리하고 싶을 것이다.

은색 기사단이 나서게 된다는 건, 곧 그만큼 초인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발생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이후 두고두고 바벨과 초인을 위협하는 칼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라울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당연했다.

“자, 그럼 몸풀기 운동도 끝났고, 본격적으로 진입해 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플레타는 대화가 끝난 듯하자 앞으로 나섰다. 그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양 가장 선두에 가서 섰다. 

“그럼 던전. 영혼의 관 공략을 시작합니다.’

“던전……입니까?”

이드가 그런 플레타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 이드의 뒤로는 라미아와 일리나가 함께하고 있었다.

“던전이 따로 있겠습니까. 나쁜 마법사들이 숨어 있으면 그곳이 던전이지요. 하하하. 그나저나 명예 후작님과 두 분 명예 후작 부인께서 저와 함께하시는 겁니까?”

“그럴 겁니다. 원하신다면 검후님과 바꿔 드릴 수도 있어요.”

“하하하. 천만의 말씀입니다. 명예 후작님과 함께 싸울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저야말로 플레타 대장님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이드는 그렇게 답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라미아, 일리나가 앞으로 온 만큼 가장 뒤에 선 은색 기사단에는 검후와 쉴라가 함께했고, 라울이 그 옆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었다. 당연히 이렇게 나눈 이유는 긴급 상황과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드와 검후라면 예측하기 힘든 적의 공격도 충분히 막아 낼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건, 이드와 검후가 신경 쓰는 건 플레타 부대가 아닌 은색 기사단이라는 점이다.

당연했다.

바벨에 협조하기 위한 전투에 와서 은색 기사단이 큰 피해를 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남이 주인공인 싸움에 끼어들어 다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

부대가 전진했다.

그극. 그그극.

영혼의 관은 말없이 회전할 뿐, 여전히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일.

일행은 느리다 싶은 속도로 이동하는 굳게 닫혀 있는 문 앞에서 처음으로 멈춰 섰다.

‘복잡한 건 아니지만, 마법으로 잠겼어요.’

그와 함께 마음속으로 라미아의 말이 전해져 왔다. 과연 플레타와 그의 부대는 어떻게 저 문을 넘을까.

이드가 궁금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플레타의 손짓에 따라 부대원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흡’

특이하게 간소한 파츠 아머가 아닌 중장갑을 걸친 남자가 짧게 힘을 주자 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힘의 그물이 나타나 그를 감쌌다.

방어에 최적화된 초인기로 보였다. 이드가 보기에 실드보다는 호신강기에 가까운 방법.

남자는 그 상태로 문을 밀었다. 함정이 있든, 문 뒤에 적이 있든 상관없다는 듯한 행동.

하지만 라미아의 말처럼 마법으로 잠긴 문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함정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무모하네요. 그걸 몸으로 직접 확인할 생각을 하다니.’

‘그만큼 방어에는 자신 있다는 거겠지.’

다시 한번 더 힘을 쓴 남자가 문에서 손을 뗐다.

“잠겼습니다. 느껴지는 반탄력으로 보아 마법입니다.”

“열 수 있겠나?”

“열 수 있지만, 시끄러울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온 건 다 알아. 열어.”

플레타의 말에 남자가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머리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깊이 몸을 숙이고는 일순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 타!”

불쑥.

그러자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힘의 그물이 말려 올라가며 그의 양어깨와 머리 위에 커다랗게 뭉쳤고,

남자는 그런 힘의 그물을 앞으로 내밀며 하나의 포탄이 되어 문에 가 부딪혔다.

콰앙!

순간 대포가 발사된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문 위로 희미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곧 와장창 깨져 버렸다. 그렇게 마법진이 부서지자 남자는 그대로 문을 들이받았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은 그대로 절반이 부서지며 안으로 쓰러졌다. 왈칵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어두운 공간을 밝히고 있는 빛이 보이는 내부. 남자는 문틀에 남아 있는 나뭇조각을 두드려 떼어 내고는 돌아섰다.

“임무 완료했습니다.”

“수고했다. 위치로.”

“위치로!”

이드는 원래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용감한 부대원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단단해도 그렇게 두려움 없이 달려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저희 부대원이라면 이 정도는 다 기본입니다. 크하하하.”

부하가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그 공이 상관에 돌아가는 건 당연. 플레타가 기분 좋게 껄껄 웃어 보였다. 그런 기분이 이어진 것일까.

“그럼 들어가시죠. 과연 마법사 놈들이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지 봐줘야겠습니다. 제가 앞장서지요.”

플레타가 문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이드도 그런 플레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부서지며 안으로 밀려들어 온 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실내는 어두웠다. 하지만 군데군데 라이트 마법이 밝혀져 있었고, 그게 아니라도 이드의 안력이면 이 정도의 어둠은 애초에 문제가 될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드 눈으로 살핀 실내는 넓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기둥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

밖에서 생각하고 있던 적의 모습은 옷깃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당장 느껴지는 기척도 없었다.

감지되는 것이라고는 그저 사방에 가득한 마력.

“이건 당연한 거고.”

하지만 이곳이 어딘가. 미완의 마탑의 핵심. 영혼의 관. 마법사들의 성이 아니던가. 사방에 마력이 깃들어 있는 건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방을 살피는 와중, 가장 끝에 선 은색 기사단의 기사와 검후가 문 안으로 들어온 순간.

파앗.

갑자기 눈을 찌르는 강렬한 빛과 함께 사방이 변했다.

어느새 어두움은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새하얀 백색의 공간에 이드와 일행들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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