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45화
1280화
천 마리에 가까운 몬스터다.
규모가 작은 몬스터 웨이브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다.
그 속에 든 오우거의 숫자도 제법 되어서, 시골의 작은 영지 정도는 흔적도 없이 쓸어버릴 수 있는 위력.
이 짝퉁 몬스터 웨이브가 얼마나 연속해서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이게 끝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강력한 전투력이 아닌, 숫자로 밀어붙이는 폭력.
플레타 부대원들이 모두 뛰어난 전력이다. 다만 그렇다고 이들이 숫자의 우위를 벗어던질 만큼의 강자는 아니었다.
거기에 더 골치 아픈 점은 따로 있다.
이쪽이 아무리 베어 봤자 적의 전력에 직접적인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검은 몬스터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플레타 입장에선 더없이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전투.
그렇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말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올바른 지휘관이라면 부하를 아낄 줄 알아야지. 암.”
이 모습을 본 검후의 평가는 담백했다. 추가로 플레타에 대한 호감이 더해진 것은 덤.
“검후,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걸 왜 내게 묻지?”
난데없이 허락을 구하는 라울에 검후가 무슨 수작이냐는 눈을 했다.
“검후 님의 보좌로서 당연히 허락을 구해야지요.’
“그 보좌라는 거. 난 허락한 기억이 없는데. 일단・・・・・・ 마음대로 하지? 언제는 내 허락을 받고 행동한 적이 있던가?”
보좌 일을 허락한 적도 없는데 보좌를 자처하는 지금처럼 말이다.
“하하. 그럼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상당히 띠꺼운 검후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고개를 숙인 라울이 전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
카라라락.
그 발끝에서 황금색 빗살이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 황금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냈다. 수레바퀴는 라울을 따라 움직이며 천천히 회전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방을 비추는 등대를 떠올리게 했다.
라울은 플레타가 수레바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거리에서 멈췄다.
“그럼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자네가 찾아 줄 것은 두 가지야. 인형들이 나타나는 걸 멈출 방법. 그리고 뒤에서 저 인형들을 움직이는 놈들의 위치.”
어느새 검은 무리는 코앞까지 접근하고 있다.
플레타는 그런 놈들을 향해 흉흉하게 이빨을 갈아 보이고는 아탄을 찾아 소리쳤다.
“아탄, 지휘는 네게 맡긴다. 부대의 체력을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어라.”
“충! 지금부터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아탄이 단숨에 가장 선두로 달려 나갔다.
플레타도 그랬지만, 지휘관이 선두에 서서 부대를 이끄는 것이 그들 부대의 특징인 듯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플레타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놈들을 찾아내면 내가 직접 뒤에서 인형 놀이나 하고 있는 놈들을 치지. 골든아이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잖아. 그렇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가능하지. 다만 내가 보기에 바로 그놈들을 치긴 힘들 것 같다.”
“쯧…… 어쩔 수 없지.”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의 공략이 힘들다는 말에 플레타가 혀를 찼다. 그렇다고 라울에게 이유를 따져 묻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말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라울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플레타를 위해 라울의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 이 공간은 둘로 나뉜 상태다. 인형사인지 마법사인지 모를 놈들을 보려면, 일단 통상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 먼저야. 이 공간에서 곧장 놈들을 공격할 방법은 없어.”
“안전한 곳에서 마법만을 사용한다는 건가? 마법사다운 방식이군.’
플레타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마법사니까 마법사의 방법을 사용하는 건 당연한 거야, 친구.”
“이 공간은 어떻게 벗어난다 치고, 그럼 저 몬스터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만 빠져나가면 저놈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내 골든아이에는 이 공간과 몬스터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라인이 보이거든.”
이 백색의 공간은 몬스터들을 만들어 내는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라울은 그렇게 말을 더했다.
그에 또 한 번의 전투를 시작한 자신의 부대원을 살핀 플레타가 대검을 어깨에 걸쳐 맸다.
“좋아.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럼 설명해 봐.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간단하네. 이 공간을 통상 공간에 고정, 그리고 유지해 주는 코어를 파괴하면 돼.”
“정말…… 간단하긴 하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전형적인 공략 방법이야.”
라울을 향한 플레타의 눈에 처음으로 불신이 아주 약간 비쳐 나왔다.
코어라니. 너무 전형적인 수법 아닌가?
라울은 좀 믿으라는 듯 두 손을 펼치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마법이라는 게 원래 틀에 박힌 거라고. 자네가 몰라서 그렇지, 많은 마법들이 시전 과정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알면 깜짝 놀랄 거야.”
“……”
마법이라는 만변의 학문을 저렇게 획일적으로 매도하다니.
후방에서 전투를 대비하던 마법사들이 눈에 불만을 품고 라울을 향해 모여들었다. 물론 그래 봤자 실제 마법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사람은 없다. 라울이 다름 아닌 그들의 상관이기 때문이다.
그냥 상관도 아니고, 그들이 속한 바벨의 간부로 한 손에 꼽히는 초 고위층.
마법에 대한 자부심도 좋지만, 직장인으로서는 사회생활이 먼저였다. 마법사도 아닌 사람을 상대로 괜히 한마디 해서 찍히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많고 많은 마법에 대한 오해와 편견 중 하나일 뿐이다. 세상의 그 모든 오해를 자신이 나서서 풀어야 할 의무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자기 합리화는 어디까지 바벨 소속의 마법사들 이야기였다.
바벨과는 상관도 없고, 마법사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비올라의 입은 결코 얌전히 있지 않았다.
“흐흐, 듣자 하니 어이가 없어서. 무한성의 무차원 공간을 어떻게 보고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비올라 마법사. 그대는 내 말에 어떤 불만이 있는 모양이오?”
“코어를 파괴하면 끝이다?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무한성은 무차원 공간을 비틀어 생성시킨 무결정 공간입니다. 물론 이 무차원 공간도 코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걸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착각입니다. 시시각각 공간 좌표가 떠도는 무결정 공간에서는 일반적인 탐지 마법은 아예 먹히질 않는단 말입니다.”
“그건 몰랐던 사실이군.”
“몰랐・・・・・・ 그러니 어이가 없다고 한 겁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코어를 파괴하면 끝이라고 쉽게 말씀하시다니요. 마법이 단순하다 어쩐다 하는 오해도 풀겸, 마법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과 이해부터 갖추시는 것이 어떠실지?”
이걸 충고라고 해야 할까. 비꼰다고 해야 할까.
참으로 애매한 말투로 입꼬리를 사정없이 비틀어 말아 올리는 비올라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법사들은 마음이 복잡했다. 자신들이 하고 싶던 말을 들었기에 속이 시원하기도 하면서, 괜히 같은 마법사로서 찍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걱정이 생긴 것.
원래 고위층이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반박당하면 자존심 상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건 마법사들이 아직 라울을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공부나 더하라는 비올라의 말을 들은 라울은 기분 나쁘긴커녕 자존심에 스크래치 하나 나지 않은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옳은 말이야. 사람이라면 공부를 해야지. 하지만 자네가 하나 모르는 것이 있어서 가르쳐 줄까 하는데.”
“……”
“누구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맞아. 하지만 하나를 깊게 판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자연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다네. 무엇보다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 꼭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시시각각 좌표가 떠돌아서 탐지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고? 그게 어떤가? 현재 대륙의 공간 좌표도 노이즈가 심해서 텔레포트가 어려운 실정이야. 하지만 우리 초인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공간을 넘어 다니지.”
“…….”
“의외로군. 자네는 원래 바벨 소속이지 않았나? 그렇다면 알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초인기는 기존의 법칙이나 한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바로 지금의 경우가 그렇지. 아무래도 공부가 부족한 건 자네가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바벨을 제외하고 초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누구일까.
아마 각국에선 서로 자신들이라고 주장할 거다.
각국은 마법이나 기사 양성에도 많은 돈을 쓰지만, 초인 양성과 초인기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덴 한계가 있다. 연구가 금지된 분야도 많다.
그에 비해 미완의 마탑은 어떤가. 불법, 합법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온갖 연구를 전심전력으로 진행했고, 결과를 내기 직전이다.
미완의 마탑이야말로 초인에 대해 자신들이 저 바벨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일 것이다.
그리고 비올라는 바로 그런 미완의 마탑 출신이다. 뭐, 미완의 마탑 세 개의 관 중 그 중요도가 가장 떨어지는 생명의 관 출신이지만. 그럼에도 초인 마법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다른 관에 뒤지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미완의 마탑 생명의 관 소속으로서, 초인기의 가장 핵심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익…….”
뻔뻔한 웃음은 어디 가고 얼굴이 벌개진 비올라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라 반박하고 싶지만 팩트 앞에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비올라를 향해 라울이 웃어 보였다.
앞서 비올라의 입가에 있던 웃음이 그대로 자리만 옮긴 것 같은 미소.
“좋아. 이해한 모양이군. 딱히 자네 잘못은 아니야. 미완의 마탑 소속이었어도 막상 초인들의 진짜 초인기를 볼 기회가 있기는 했겠나. 이번에 좋은 기회이니 잘 봐 두라고. 하하하.”
“거, 쓸데없는 잔소리 끝났으면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지? 우리 애들 힘들게 땀 흘리고 있는 모습은 안 보이냐?”
그리고 때마침 플레타가 이런 라울을 재촉했다.
그 말처럼 검은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한창 열이 오르는 중이었다.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사이 어느새 바벨 소속 기사 전력까지 투입된 상태. 덕분에 몬스터의 숫자는 차근차근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부대원들의 체력도 빠져 갔다. 플레타의 말처럼 땀에 젖어 바쁜 숨을 내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도 라울은 태연했다. 분명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아직 사상자는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판단하지 못할까.
“간다, 가, 하여튼, 성격만 급해서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코어가 어디 도망가는 것 아니거든? 날 재촉할 시간이 있으면 힘쓸 준비나 해 둬라. 저 초인에 대해 이해도가 모자란 마법사의 말을 들어 보면, 코어가 쉽게 부서져 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코어도 코어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마법사들은 두 손 놓고 있을까?
“알았으니까 어서 찾아내기나 해!”
하지만 갈길 바쁜 플레타에겐 그저 뻔한 잔소리로 들릴 뿐이었다.